약 1년전인 지난 해 3월 출시됐던 '툼레이더(Tomb Raider)'는 1996년부터 명성을 이어 온 ‘크리스탈 다이나믹스(Crystal Dynamics)’ 사의 3인칭 액션어드벤처 툼레이더 시리즈의 리부트 작품이다.
툼레이더 시리즈의 주인공 라라 크로프트는 강력하고 굳센 여전사 캐릭터로 오랜 기간 게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해왔으며 수많은 게임의 남성 주인공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왔다. 게임의 주인공답게 라라 크로프트에게는 대적할 자가 없으며 그녀는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툼레이더 시리즈의 신작은, 여전사 라라 크로프트의 기원을 다루는 리부트 작품으로써 비단 툼레이더 시리즈의 스토리를 새로이 할 뿐만 아니라 불굴의 여전사가 아닌 인간 라라 크로프트에 대해 심도 있게 묘사하고 있다.
툼레이더의 주인공인 라라 크로프트는 고고학을 공부하는 스물한 살의 평범한 여성이며, 어떤 면에서는 한 없이 나약한 인간이다. 갑작스러운 위험에 빠져 두려움과 불안에 떨며 사람을 죽이고 스스로의 행동에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은 과거의 라라 크로프트에게서는 볼 수 없던 부분이다. 처음부터 완성된 영웅의 면모가 아닌 모험에 겨우 첫 발을 내딛는 어리고 연약한 라라 모습은 게임 내에서도 여러가지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다.
게임은 철저히 주인공을 중심으로 진행되며 라라의 영웅적인 행보가 아닌 이야기 흐름에 따른 라라의 반응과 심리에 무게를 두고 있다. 특히,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라라의 혼잣말과 지난 사건들을 돌이켜 보며 쓰는 일기를 통해 인간적인 두려움을 느끼는 라라의 솔직한 속내가 드러나기도 한다.
빨리 위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절박한 심정은 물론이며 주변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책임감, 자신을 위해 누군가 희생당해야 했을 때의 아픔을 곱씹으며 라라는 매번 약해지는 마음을 붙잡고 결의를 다진다. 갈 수록 더 큰 사건이 벌어지고 더 큰 위험에 처하지만 처음 라라를 휩싸던 불안함에 비하면 심리적인 동요가 점차 줄어드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벤트 장면에서는 라라의 얼굴을 자주 클로즈업하여 감정어린 풍부한 표정을 아낌없이 담아낸다. 힘들어 울상을 짓거나,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지 못하고 막막한 심정에 한숨을 쉬는 라라의 표정에서 동정심이 느껴지는 한편 그런 부분이 그녀만의 인간적인 매력으로 다가오게 된다.
또한, 액션게임 답게 게임에서 전투가 상당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특히 라라가 고통스러워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이 빈번하게 표현되는데 라라가 전투에서 다쳐 피흘리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핏자국, 상처가 그대로 남아 시각적으로 자극을 주기도 한다. 몇몇 사망 장면의 묘사는 제법 끔찍해서 실수로 라라가 죽는 장면을 거듭하여 보게 될 때는 속이 무척 거북해 질 수도 있을 것이다.
게임 시스템 역시 스토리 진행과 마찬가지로 라라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맨몸으로 겨우 스스로를 추스르기도 힘들어하던 라라가 활과 작은 도끼를 시작으로 여러가지 무기와 도구를 다루게 되고 많은 경험과 전투를 겪어 경험치를 쌓아 생존에 필요한 스킬을 배워나간다.
아이템을 더 쉽게 발견한다든지 소지할 수 있는 탄환의 수를 늘리는 정도의 단순한 스킬에서 더 나아가 맞아도 쉽게 죽지 않거나 적을 즉사시키는 공격 스킬을 갖추면 전투가 한결 더 수월해진다. 라라를 그저 다루기 쉬운 평범한 여자 한 명으로 생각했던 적들도, 라라가 점점 강해지자 역으로 자신들에게 위협이 됨을 깨닫고 그녀를 경계하는데, 적들의 대화에서 엿들을 수 있는 태도 변화를 살피는 것도 제법 재미있다. 이처럼 스토리와 함께 성장시스템이 잘 어우러져 라라가 무적의 전사로 거듭나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라라 크로프트가 성장형 주인공이라는 점과 스토리의 전개와 연출, 시스템이 모두 주인공에 집중된 게임의 구조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라라에게 쉽게 공감하고 이입하도록 도와주고, 게임에 몰입하게끔 하는 효과를 낳았다.
라라 크로프트는 액션과 볼거리를 위해 아이콘처럼 존재하던 게임 속 인물이 아니라, 마침내 스스로의 이야기를 이끌어나갈 주인공으로 재탄생했다. 툼레이더의 새 시리즈가 플레이어가 함께 공감할 수 있고 내·외적으로 성장해 가는 여전사 라라 크로프트라는 인물을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더 입체감 있게 다루며 깊이 있는 전개를 펼쳐나갈 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