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오토메게임의 전환점 '구운몽: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

기대했던 만큼 아쉬움도 많은 게임

등록일 2014년04월18일 16시40분 트위터로 보내기

* 아래 리뷰 내용 중에는 '구운몽: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의 내용을 상세하게 설명, 해설하는 부분과 스크린샷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직 게임을 모두 마치지 않은, 스포일러를 피하려는 분들은 먼저 게임의 모든 엔딩을 본 뒤에 기사를 보시기 바랍니다. 

네온스튜디오가 개발한 '구운몽: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이하 구운몽)는 발표 당시부터 여성 게이머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은 게임이다. 남성 게이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비중을 차지하는 여성 게이머를 상대로 하는 국내 게임이 적고, 특히 연애 시뮬레이션 장르의 게임은 수요도 적어 동인게임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대사 음성 수록, 공략 캐릭터 총 8명이라는 규모의 PC기반 패키지 게임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동인 게임이 아닌 넥슨의 자회사에서 개발, 출시된다는 소식은 여성 게이머는 물론 성우 팬에게도 더 없이 반가운 일이었다.



  
김만중 원작의 소설 구운몽의 주제는 '인생무상'이다. 하지만 꿈 속 이야기 자체는 능력이 출중한 주인공이 온갖 위기를 뛰어넘고 여덟 명의 처첩을 거느리는 영웅담 구조를 취하고 있다. 때문에 '구운몽을 기반으로 국산 남성향 미연시(미소녀 연애시뮬레이션)가 나오면 좋겠다'라는 희망사항이 게이머들 사이에서 흔히 농담처럼 이야기 되었는데, 이와 달리 등장인물 성별을 바꾼 여성향 연애 시뮬레이션이 나온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했다.

텍스트 기반의 어드벤처 게임이나 남성향 연애시뮬레이션은 몇 차례 접해봤지만, 전혀 반대의 감성을 가진 여성향 연애시뮬레이션에는 익숙하지 않아 가능한 장르에 대한 편견을 배제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플레이 해봤다.



단지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가볍다
앞서 말했듯 구운몽은 동명의 소설을 모티프로 삼았지만 인물관계나 역할, 큰 내용 전개가 비슷할 뿐이며 등장인물의 성별이 바뀐 만큼 인물들의 행동 동기나 개개인의 이야기도 달라졌다. 그러나 주인공의 개성과 존재감이 컸던 점은 예상 밖이었다.

연애시뮬레이션의 장르 특성 상 플레이어의 이입을 중요하게 여겨, 주인공의 목소리가 따로 없고 스탠딩 CG는 게임 내에 나타나지 않으며 게임 중 나타나는 주인공의 얼굴도 플레이어가 임의로 가릴 수 있다. 또한, 주인공의 얼굴이 따로 없는 경우가 많아 SD 캐릭터나 이벤트 CG에서 주인공 얼굴의 일부를 가리거나 뒷모습만 보여주는 등의 연출이 자주 쓰이는데 반해, 구운몽의 경우 주인공이 공략캐릭터와 대등하게 함께 나오는 이벤트 CG가 대다수였다.



이처럼 공략캐릭터와 플레이어의 1:1의 관계를 중점적으로 다루다 보니, 원작 구운몽의 결말처럼 주인공이 모든 공략 캐릭터를 한꺼번에 취하는 엔딩이 없다는 점이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공략 가능한 캐릭터가 총 여덟 명에 각 캐릭터 당 엔딩이 두 가지씩 있기 때문에 게임 자체의 볼륨은 작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공통 스토리를 비롯하여 개별 스토리로 넘어가더라도 메인 스토리의 흐름 자체가 중첩되는 부분이 있어서 적절히 '건너뛰기'나 '빨리보기' 기능을 이용해 단기간에 여러 차례 플레이 하기에 부담되지 않는 편이다.

'몽자류 연애 어드벤처 게임'을 표방하는 구운몽은, 장르명을 통해 꿈에서 있던 일들이 현실과 관련 있는 내용이며 결국은 게임의 스토리가 꿈에서 현실로 이어지는 환몽구조를 취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 점을 숙지하고 간 덕분에 엔딩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고, 현실로 돌아오는 엔딩을 보고도 그다지 허탈함을 느끼지 않았다.(플레이어들 중에는 중간에 선택지를 잘못 택하면 나오는 돌발 엔딩을 보고 초반부터 이미 눈치 챈 경우도 있을 것이다.)



 
모든 스토리를 꿈이라고 가정하면 전개나 관계의 진전에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도 이해가 가능하다. 주인공이 꾸는 꿈이니 주인공의 출중한 능력과 이를 통해 문제들이 쉽게 해결된다든지 주인공에게 한 없이 친절한 주변 인물들의 행동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마치 ‘꿈’이라는 장치를 방패막이 삼아 스토리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에 대한 도망칠 구멍을 만들어 둔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처음 공개되었을 때 공략 캐릭터의 모습들이 기자의 취향과는 동떨어져 있었지만 원작 구운몽을 좋아하기도 해서 내심 스토리를 기대했다. 그러나 게임이 목표로 하는 대상 연령층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솔직히 전반적인 스토리는 기대 이하였다.



반복되는 지루한 공통 스토리, 떨어지는 개연성
특히 공통 스토리는 등장인물을 소개하고 접점을 만드는 데 급급해서 개별 공략으로 나아갈 만큼 충분한 관계 형성이 되었다고 보기 힘들다.

캐릭터 별 공략의 분기가 되는 선택지가 직관적이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며 이야기 진행에 따라 공략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순서가 정해져 있어서 주인공과 순차적으로 만나므로 아직 만나지도 않은 캐릭터와 호감도를 쌓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때문에 공통 스토리에서의 선택지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높다고 느껴진다. 이를 위해 공략을 돕는 '상태보기' 등의 기능이 게임 내에 마련되어 있기는 하지만 공통 스토리 자체가 잃어버린 소꿉친구 채윤을 찾는 과정이라, 선택지가 주인공의 심경 변화나 공략 캐릭터들과의 관계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공통 스토리의 허술함은 체험판에서도 심각하게 느끼던 부분이었는데 체험판은 소개를 위한 압축판이며 본편과는 또 다른 전개를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해서 어느 정도 감안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개별 분기로 나뉘는 선택지와 사건들이 추가되었을 뿐 공통 스토리의 전개 방식이 체험판과 크게 다르지 않아 실망이 컸다.

또 아무리 개별 스토리로 분기가 나뉜다 해도 캐릭터 몇 명을 빼고는 난양대군의 다미국 원정과 왕위 찬탈이라는 중심 이야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각 캐릭터만의 개성 있고 깊이 있는 이야기가 있었으면 했지만 흐름이 언제나 정해져 있어서 거기에 휩쓸리는 바람에 각 캐릭터 고유의 갈등은 너무 싱겁게 풀리거나 무게를 잃어버리는 모습이 종종 보여 아쉬웠다.



게임을 여러 차례 진행하며 더욱 깊이 있는 이야기를 즐길 수 있도록 후반에 공략할 수 있는 세 캐릭터를 따로 두고 무게를 준 것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공통 스토리 초반부터 등장하는 캐릭터들이라는 점과, 해당 캐릭터들의 특징 및 개별 스토리 및 연출이 게임을 관통하는 '꿈'이라는 중심 소재도 잘 살렸다고 생각한다. 다만 후반 세 캐릭터들을 공략하고 게임 전반에 있던 숨겨진 이야기와 의도를 알고 나면 상대적으로 나머지 다섯 명의 이야기가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싱겁게 느껴지는 등 공략 캐릭터마다 편차가 생기는 것이 안타깝다.

다음 패치 업데이트에는 나아지려나, 2% 부족한 시스템

부족했던 것은 스토리의 개연성뿐 만이 아니다. 게임 시스템 면에서도 불편한 점이 제법 있었는데 특히 텍스트 출력(대화 표시속도)과 관련된 부분을 지적하고 싶다.



또 모든 대사 음성 수록이 강점인 게임인데도 불구하고 음성과 텍스트 출력 순서를 조절할 수 없다. '자동넘김' 기능을 적용해 두고 캐릭터 대사만을 들으며 플레이하려고 했지만 음성이 채 끝나지 않았는데 문장이 넘어가버려 대사가 중간에 잘리는 일이 대부분이고 주인공의 대사는 음성도 없어 전체가 다 출력 되기도 전에 넘어가버린다. 텍스트 출력 완료 시 음성도 함께 넘어갈 지, 음성이 전부 나온 뒤 텍스트도 함께 넘어갈 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기능이 필요하다고 본다.

앞서 언급했듯 개별 공략으로 가더라도 겹치는 대사가 제법 많으나, 문장 단위로 건너뛰기 기능을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텍스트 자체가 CG 등장이나 선택지 분기 마다 나뉘는 장면을 기준으로 한 덩어리로 묶여 있기 때문에 이미 봤던 대사라도 넘어가지 못하고 여러 번 봐야 하는 비효율적인 스킵 기능을 갖추고 있다.

이처럼 텍스트 중심의 게임이므로 더욱 세심하게 신경을 써주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불편함은 차후 패치를 통해 개선되길 바라고 있지만 체험판에서부터 이미 틀이 잡힌 시스템이어서 쉽게 고쳐지지 않을 것 같다.

이 밖에도 '불러오기'를 했을 때 가장 최근에 저장했던 세이브 파일이 위치한 페이지가 바로 표시되지 않고 무조건 첫 번째 저장 페이지로 위치가 고정되어 있다든지 흑백, SD CG가 게임에서 봤던 CG와 주요장면을 모아 볼 수 있는 '몽상록'에서 빠져있는 등 사소한 문제들도 아쉬움을 남긴다.



무엇보다도 구운몽을 플레이하며 시종일관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있던 것은 공략 캐릭터들의 외형이 한 몫 했다. 뻣뻣한 스탠딩 CG에 비하면 이벤트 CG 쪽이 퀄리티도 분위기도 나았지만 획일화된 겉모습에 흥미가 떨어져 게임 상황에 적극적으로 이입하는 것이 힘들었다. 연애 시뮬레이션에서 공략할 대상의 첫 인상과 외형이 플레이어의 취향에 맞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통감했다.

기자의 개인적인 취향은 논외로 둔다 해도 등장인물의 나이대가 전부 십대 청소년인 것과 모호한 시대배경에 판타지가 더해진 점에서 플레이어들의 호불호가 갈릴 만하다. 엔딩 장면에 잠깐씩 나온 현대 장면을 보고 아쉬운 마음에 차기작은 현대 학원물로 부탁한다는 요청도 있을 정도다.



구운몽은 출시일정 연기, 원화 교체, 패키지 구성 문제 등 출시 직전까지 여러가지 문제 제기와 우려도 많았지만 그만큼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 게임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든 대사에 음성이 수록되어 있고 패키지 형식을 갖춘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 나왔다는 데에 크게 의의를 두고 불모지와도 같던 분야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길 바라며 장래에는 좀 더 다양한 취향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게임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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