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포커스에 신입기자로 입사한 지 9개월, 드디어 지스타 취재를 위해 부산으로 첫 출장을 떠나게 됐다.
"지스타 출장 하루하루가 매우 고통스러울 것"이라던 선배기자들의 '공갈'이 사실인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 온 것이다.
11월 19일 수요일, 대한민국 게임대상 취재를 위해 지스타 하루 전날 부산행 KTX를 탔다. 부산에 한파 예보가 왔다며 제법 추울 지도 모른다는 부산 사는 지인의 말을 철썩 같이 믿고 겨울 옷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왔건만 부산역에 내리니 대체 한파는 어디 갔는지 너무나도 쾌적하고 따뜻한 날씨가 나를 맞았다. 뭔가 시작부터 삐걱이는 듯한 싸늘한 느낌과 함께...
해운대 숙소에 짐을 풀고 '대한민국 게임대상'이 열리는 영화의 전당으로 이동하기 위해 택시를 탔다. 그런데 택시 기사님에게 정말 깜짝 놀랐다. 이 '부산의 흔한 택시 기사'님이 어찌나 게임에 대해 잘 알고 계시는지... 정확한 명칭이나 게임제목을 모르셨지만 업계의 중요한 이슈나 맥락은 죄다 꿰고 있었다. 과연 서울에서 이만큼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택시기사를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괜히 10년간 지스타를 개최한 게임의 도시가 아니구나'
20일 지스타 첫 날, 시간은 어찌나 빠르게 지나가는지 분명 아침 9시에 벡스코에 도착해서 프레스룸에 발을 들였는데, 전시장을 몇 번 오가고 각종 인터뷰 등 취재 스케줄을 끝내고 오니 해가 저물고 있었다.
첫 날이라 비교적 관람객 수가 적다고 했지만 어느 시연대든 줄이 늘어서지 않은 곳이 없었으며 숙소로 돌아가는 셔틀버스는 항상 만원이었다. 숙소로 돌아와 침침한 불빛 아래에서 밀린 기사를 처리하면서 생각하니 출장 전에 겁먹었던 것에 비하면 그리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오히려 서울에서의 출근 때 보다 더 늦게 일어나도 되는 장점이 있기도 했고... 다만, 퇴근이 따로 없어 피로가 풀리기도 힘들었다.
둘째날에는 벡스코가 아닌 김해공항으로 향했다. 바로 '게임오브워'의 홍보모델를 맡은 세계적인 모델 '케이트 업튼'의 입국 사진을 찍으러 간 것. 사실 전날 지스타 부스걸 사진 촬영에 대한 교육을 듣고 직접 현장에서 다양한 각도로 카메라를 들이 밀던 스스로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게임쇼에 게임이 아니라 모델을 찍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성을 상품화 시키고 성에 대한 그릇된 이미지를 재생산하는데 일조한다는 것에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아침 일찍 공항으로 달려가 케이트 업튼 입국 사진 촬영을 해야한다니 좀 씁쓸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케이트 업튼 실물을 볼 생각에 내내 기분이 들떠 있었다. 참으로 간사하다. 속물.
그런데 입국 사진 찍기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미리 자리를 맡아둔 전문가(?)들 뒤에 겨우 서서 빈약한 DSLR을 들이밀었지만 괜찮은 사진 한 장 건질 수가 없었다. 김해공항 입국 게이트와 정문 사이는 어찌나 짧은지... 유유히 공항을 빠져나가는 케이트 업튼 뒤를 바짝 쫓아 플래시를 터뜨려 대다가 금세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해산하는 연예부 사진 기자들의 모습을 한 걸음 뒤에서 지켜보고 있자니 힘이 쭈욱 빠졌다. '이런 일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라고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되는, 나름 진기한 경험을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4일이 흘렀다. 처음 경험하는 지스타, 모든 것이 새로워 관심이 가고 호기심이 생겨 가슴 벅찬 출장이 될 것을 예상했지만 이제 와서 돌이켜 본다면 그다지 자극적인 경험은 아니었다. 사전에 이런저런 정보를 알고 갔기 때문일 수도 있고 순수한 관람객의 입장으로 갔던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부산이라는 공간도 지스타 그 자체도 꼼꼼히 살펴보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안타까운 한편, 과연 지스타를 온전히 즐긴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제법 고민할 거리로 남았다.
행사장 내에 있는 게임 시연대를 섭렵하여 모든 게임을 체험해보거나, 부스에서 진행하는 각종 이벤트에 참가해 여러 가지 경품을 모으거나, 항상 환한 얼굴로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어여쁜 부스걸을 구경 다닌다거나 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토요일 오전 개장 직전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관람객이 모여들어 벡스코 주변이 북적였다. 잔뜩 모인 사람들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바깥으로 나갔다. 이른 시각부터 지스타를 찾은 관람객 중 초등학생 정도의 어린이들이 무척 많았던 점이 제법 인상 깊었다. 이 정도 나이면 보호자 동반으로 올 법도 한데 삼삼오오 또래 친구들끼리 모여 입장을 기다리며 김밥 한 줄과 편의점 삼각 김밥을 까먹고 오늘만을 기다렸다는 듯 얼굴 가득 기대를 감추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며 며칠간 업무로 밖에 대할 수 없었던 지스타에 대해 거리를 둘 수 있었고 어렴풋이 행사가 누구를 위한 행사가 되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한 행사가 되어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는 사업적인 영역이고 업무의 연장이며 누군가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 테지만 결국 게임은 사람들을 위한 놀이 문화 아니던가.
게임쇼인 지스타 역시 마찬가지여야 한다. 의미 없는 것들로 겉포장을 하고 허울을 씌우기 보다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우리들의 문화를 향유하고 펼쳐 보이는 장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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