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표적 글로벌 기업 엔씨소프트, 시각도 글로벌이어야 한다

등록일 2016년04월21일 16시25분 트위터로 보내기


최근 엔씨소프트의 대표 MMORPG '블레이드&소울(이하 블소)'의 북미 런칭 과정을 담은 공식 블로그 글이 화제가 됐다. 최근 특히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성 평등 문제', '성차별적 인식'에 관련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엔씨소프트 공식 블로그 '우주정복'에는 지난 11일부터 '블소, 북미에 가다'라는 제목으로 블소의 북미 런칭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을 흥미롭게 담은 포스트가 업로드 되고 있다. 지난 19일 올라온 '블소, 북미에 가다'의 두번째 글은 블소의 아이덴티티라고도 여겨지는 게임 내 아트에 관한 내용이었다.

부제는 '양성 평등을 둘러싼 말말말'. 포스트의 내용을 요약하면 NC WEST(엔씨 웨스트) 담당자들과의 협의를 거쳐 아트웍 전반에서 '현지화' 작업을 거쳤다는 것. 국내 게임이 해외에 서비스되면서 으레 거치는 과정이지만, 포스트의 부제를 보면 협의 과정에서 어떤 부분이 '걸림돌'이 되었다고 엔씨소프트 측이 생각하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캐릭터 의상은 여성 뿐 아니라 남성 캐릭터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라는 엔씨 웨스트 담당자의 요구는 북미 버전 캐릭터 의상 장식적인 부분, 노출 면적의 개선을 이루었을 뿐 아니라 한 쪽 성별 전용 특별 의상 마저 없앴다.

“여성 전용 의상만 있는 건 양성평등을 해치는 예라고 해서, 여성 의상에 맞춰서 남성 의상도 세트로 제작했어요. 그 결과가 재밌었죠(웃음).” (김지하 과장/블소 개발실)

“이건 좀 ‘많이’ 민망한 얘기인데요. 여성 캐릭터의 가슴을 부각시키려면 남성 캐릭터의 사타구니도 함께 부각시켜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답니다(일동 경악)! ” (주보경 과장/블소 개발실)

-해당 포스트 본문 일부 직접 인용(출처:http://blog.ncsoft.com/?p=15354)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현지 담당자의 요구에 대한 개발자들의 코멘트도 볼 만하다. '재밌다' 혹은 '민망', '경악'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로 북미와 한국의 문화적 차이를 실감한 단적인 예로 볼 수 있다. 북미 측 담당자의 수정 요구는 의상에 그치지 않았다. 캐릭터의 외형에서 보다 다양성을 요구했고 그저 '보기 좋음'을 강조했던 기존 버전과 달리 신체적 노화나 캐릭터의 태도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고 포스트에서 설명하고 있다.

문제는 북미와 한국의 차이를 표현한 이 포스트(혹은 작성자)의 관점이다.

만약 이 포스트가 '이번 북미 진출을 통해 블소 내에(혹은 국내 게임들 안에) 얼마나 많은 차별적 시선이 존재하는지 알게됐다'는 방향으로 작성되었다면 크게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사회 전반에 만연한 차별적인 시선이 게임에도 '자연스럽게' 포함되는 것은 블소 한 작품 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포스트는 시종일관 현지의 수정 요구와 이미 수정된 부분을 폄하하는 '태도'를 유지했다. 포스트 작성자는 시종 북미 담당자는 블소의 아이덴티티인 아트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기어이 이를 훼손시켰다는 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수정 사항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곱게 넘어가지 않았다''딴지''용납할 수 없다'라는 강하고 부정적인 단어까지 사용했다.

캐릭터의 성(性) 문제에 앞서 수정된 십자가를 연상시키는 무기나 나치 정권의 상징이었던 하켄크로이츠를 연상시키는 '만(卍)'자 문자를 활용한 무늬 등 '종교적' 혹은 '정치적'인 부분에 대한 수정에는 별다른 '반발심'없이 설명하고 있다. '여기까진 납득이 가는 상황'이라 얘기한 반면 이후 서술하는 성평등 문제에 대한 수정사항에는 명확히 불만을 표시 했다. 엔씨소프트가 게임내 종교적, 정치적 차별은 반대하지만 남녀 성차별은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사실 한국과는 다른 타문화권의 정서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물론 남녀 성차별의 문제가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문제는 아니다) 해당 문화권에 게임을 서비스하고자 한다면 더욱 그렇다. 더군다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게임기업 엔씨소프트가 아니던가.

블소의 정체성을 꺾을 수 없어 현지 서비스를 포기한 것도 아닌데, 마치 '어쩔 수 없이' 현지 담당자의 요구에 맞춰야 했다는 태도는 그래서 이해하기 힘들다. 포스트 작성자는 무엇이 그렇게 억울했을까? 현지화 과정에서 어떤 고충과 어려움이 있는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취지의 기획 포스트가 타 문화와 성차별에 대한 몰이해로 얼룩져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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