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하 150도의 추위보다 더욱 고통스러운 윤리적 선택, '프로스트 펑크'

등록일 2018년07월03일 10시15분 트위터로 보내기

 

전쟁의 참혹함과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았던 '디스 워 오브 마인'의 개발사 11 비트 스튜디오가 새로운 게임 '프로스트펑크'로 돌아왔다.

 

'프로스트펑크'는 영국 인근을 배경으로 한 스팀펑크 풍의 시티 빌더 게임으로, 게임을 대표하는 시나리오인 '새로운 고향'에서는 최저 온도 영하 150도까지 떨어지는 갑작스러운 빙하기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자들의 고군분투를 그리고 있다.

 

플레이어는 생존자들의 리더가 되어 석탄을 연료로 사용하는 증기기관(발전기)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고향 '뉴 런던'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더불어 주위에 낙오된 생존자들을 찾아 도시로 데려오거나 또 다른 생존자들이 모여있는 도시를 정찰하고 최종적으로는 살아남는 것이 게임의 목표다.

 

공식 한글화가 예정되어 있기는 하나, 이에 앞서 유저들이 십시일반(十匙一飯)해 유저 한글패치를 완성해 배포 중에 있다. 이 자리를 빌어 유저 한글화에 참여한 31명의 유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스팀펑크, 시티빌더, 생존, 그리고 이제는 11 비트 스튜디오의 아이덴티티가 된 '끊임없는 윤리적 질문'이 한 게임에 담긴 '프로스트펑크'를 플레이 해봤다.

 



 

인간의 존엄성과 가혹한 현실 사이에서의 선택
'프로스트펑크'에서 플레이어는 소수의 생존자들을 이끄는 대장이며, 빙하기가 찾아온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도시를 재건하고 이를 위해 가혹한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러한 선택의 중심에는 법률서(Book of Law)가 있다. 일반적인 시뮬레이션 또는 시티빌더 장르의 게임에서 찾아볼 수 있는 테크트리는 고급 건물이나 유닛을 생산하기 위한 기술적 측면에 치우쳐져 있다. 하지만 '프로스트펑크'에는 여기에 더해 게임의 초반부터 엔딩까지 크게 영향을 끼치는 '법'을 통해 생존자들을 어떻게 이끌어 나갈 것인지, 그리고 도시는 어떤 성향을 띄게 할 것인지 방향성을 결정하게 된다. 이를테면 일손이 부족한 상황에서 고사리 같은 손을 가진 아이들에게 노동을 시킬 것인지, 아동 보호소를 건설하고 아이들을 실습시켜 교육하도록 할 것인지 선택하는 식이다.

 


 

가혹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하는 과정은 꽤나 고통스럽다. 게임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끊임없이 효율과 윤리적 선택을 놓고 선택하도록 만든다. 톱밥을 넣은 음식이나 24시간 근무 정도는 애교다. 치료 가능한 환자만 골라서 치료하거나, 중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절단 수술도 마다하지 않는 끔찍한 비윤리적 법안도 존재한다. 심지어 그릇된 신앙, 권력의 남용으로 인한 독재 같은 절망적인 결말도 가능하다. 물론 반대로 효율을 버리는 대신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법안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결정은 오롯이 플레이어의 몫이다.

 



 

이러한 게임의 요구와 선택들이 마냥 기분 나쁜 경험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어쩔 수 없다는 자기합리화일 수도 있고, 또 현실이 아닌 게임이니까 조금 죄책감이 덜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신의 윤리적 성향과 효율을 놓고 저울질하는 과정을 통해 게임의 몰입도가 상상 이상으로 극대화되고, 게임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핵심 주제인 존엄성과 현실 사이에서의 선택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는 것이다.

 



 

게임에서도 무엇이 옳은 것인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법률서와 각종 이벤트를 기반으로 한 플레이어의 선택들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실제로 비극적인 상황에 놓인 생존자들의 리더라고 느끼도록 만든다. 그리고 선택이 불러온 결과를 게임의 엔딩에서 문장으로 확인하는 순간, 마치 한 편의 디스토피아 영화를 보고 감정을 전달한다.

 

와 닿지 않는 '시티빌더' 장르의 특징, 빈약한 콘텐츠도 아쉬워
'프로스트펑크'는 흔히 알려져 있는 '시티즈: 스카이라인'이나 '심시티' 등과 같은 '시티빌더' 장르의 게임 특성을 지니고는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장르의 특성은 크게 부각되지 못한다. 석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건물 배치만 신경 쓰면 그 이상 크게 의미 있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결국 게임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온도 관리인데, 높은 '난방' 테크트리로 올라갈수록 석탄 소모량이 급격하게 증가해 '스팀 허브'와 '온실' 등 중요 건물들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배치하는지가 관건이 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조금 더 도시를 '스팀펑크'답게 꾸며 자신만의 '뉴 런던'을 만들 수 있는 선택지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편, 콘텐츠가 상당히 빈약하다는 점도 아쉽다. 현재 게임에는 '프로스트펑크'의 정수를 느껴볼 수 있는 '새로운 고향'과 과학자들의 고군분투기를 그린 '방주', 그리고 계급간 갈등을 그려낸 '피난민들'까지 총 세 개의 시나리오가 준비되어 있고 더욱 높은 난이도의 '철인' 모드도 업데이트를 통해 추가됐다. 그러나 첫 번째 플레이에만 시간이 다소 소요될 뿐, 익숙해지면 시나리오 전체의 엔딩을 15시간 내외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즐길 거리가 부족하다는 것은 상당히 큰 단점으로 지적하고 싶다.

 



 

여기에 더해 시나리오가 늘 고정적으로 흘러간다는 점이 앞서 언급한 콘텐츠 부족에 기름을 붓는다. 온도가 떨어지거나 런던파가 등장하는 등 게임의 큰 줄기를 담당하는 이벤트들은 언제나 고정된 시기에 발생하고, 선택에 따라 등장하는 소규모 이벤트들은 게임 진행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첫 플레이에 마음대로 테크트리를 올리면서 자신만의 방법대로 도시를 살아남게 했을 때는 긴장감이 넘치지만, 효율적이고 최적화된 '빌드'를 깨닫게 되는 순간 재미가 급감하게 된다. 더욱 어려운 난이도도 설정할 수 있지만 이것이 반복 플레이를 해야 하는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연구를 통해 올리는 테크트리의 종류와 법률서를 통해 선택하는 도시의 방향성이 다양하기는 하나 이벤트가 선형적이라는 단점 때문에 이러한 장점이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뛰어난 서사성과 윤리적 질문의 만남, '프로스트펑크'
전작인 '디스 워 오브 마인'이 그러했듯이, 뛰어난 서사성과 플레이어로 하여금 계속해서 고민하고 선택하게 만드는 윤리적 질문 그리고 이를 풀어내는 과정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해 매우 인상적이다.

 

게임은 가혹한 상황 속에서도 최소한의 윤리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것인지, 아니면 극단적인 종교를 통해 신격화된 리더, 인권을 무참히 짓밟는 독재자의 권력을 통해서라도 살아남을 것인지 계속해서 되묻는다. '선'을 넘었다면 도시는 살아남았지만 과연 그러할 가치가 있었는지 묻기도 한다. 그 강도는 비교적 약하지만, 플레이어의 행동을 비난하며 “영웅이 된 것 같냐”고 비꼬는 '스펙옵스: 더 라인'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하지만 랜덤 이벤트 등 빈약한 볼륨을 채워줄 시스템과 콘텐츠의 부재, 스팀펑크 세계관의 시티빌더 게임처럼 보이지만 효율적인 배치만 이루어지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게임성, 중~후반부로 갈수록 아쉬운 최적화 문제 등이 발목을 잡는다. 도시를 건설하고 운영한다는 '시티빌더' 장르를 표방하고 있지만, 여러 차례 플레이하며 자신만의 도시를 건설하는 것이 백미인 장르의 특색은 거의 묻어나지 않아 아쉬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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