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기자에게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 2017년 게임포커스가 창간 특집으로 '베리어 프리'와 장애인들의 여가 생활을 조명했을 당시 인터뷰를 진행했던 에보42게임즈 이종환 대표가 게임을 완성했다고 알려온 것이다.
에보42게임즈는 가상현실(VR)을 오로지 소리만으로 구현해낸 '오디오 VR 시스템'을 활용해 시각에 문제가 없는 게이머는 물론이고 시각장애인도 즐길 수 있는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 그리고 오랜 개발기간 끝에 첫 발걸음을 떼는 작품이 바로 지난 3월 초 양대 앱 마켓에 출시된 '움벨트(Umwelt)'다.
인터뷰 당시 이종환 대표는 “드라마나 영화처럼 감동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고 도전하는 개발사가 되는 것이 목표다”라고 당찬 포부를 밝혔었다. 새로운 장르의 게임이 자리를 잡고, 새로운 시장이 펼쳐졌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개발에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드디어 모바일 플랫폼으로 출시됐고, 오는 2분기에는 '스팀'을 통해 PC 버전도 출시될 예정이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게임 구성과 '오디오 VR'의 색다른 경험
과거 인터뷰 당시 핵심 시스템이 구현된 데모를 잠깐 플레이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비쥬얼 측면에서 발전해 상당히 만족스럽다. 당시에는 화면에 어느 정도의 상호작용을 위한 그래픽만 표현되었을 뿐 다소 심심하다는 인상마저 받았는데, 완성된 '움벨트'에서는 1인칭 시점과 각종 컷씬, 간단한 퍼즐 요소까지 구현돼 나쁘지 않은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플레이 하다 보면 게임이 아닌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영화와 게임의 경계를 넘나드는 '레이트 시프트'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더불어 에보42게임즈가 가장 신경을 쓴 핵심 시스템 '오디오 VR'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화면에는 그래픽이 당연히 표현되지만, 시각장애인들이 즐기기에도 무리가 없을지 궁금했던 기자는 실제로 눈을 감고 플레이 해봤다. 자이로 센서를 사용하는 조작이 익숙하지 않아 처음에는 다소 어렵게 느껴지긴 했지만, 소리만으로 방향과 공간감이 느껴지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이 외에도 시각 장애인들을 배려한 게임 내 세세한 부분들이 눈에 띈다. 기본적으로 모든 텍스트는 자막과 나레이션을 지원해 플레이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로딩 중에는 발자국 소리와 '로딩중입니다'라는 안내 멘트를 통해 배려했고, 진행해야 하는 곳을 크고 밝게 표시했다. 전체적으로 게임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모두 문제 없이 즐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하나로 묶다, 게임의 이름이 갖는 의미
게임은 풀프라이스로 판매되고 있고, 스토리가 핵심이 되는 어드벤처 게임이기에 이번 리뷰에서 스토리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기자가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고자 한 것은 게임의 이름과 에보42게임즈가 이 게임을 통해 말하고자 한 의미였다.
게임을 플레이하기 전, 게임의 이름이 인터뷰를 했을 당시 '더 오로라'에서 '움벨트'로 바뀐 점이 가장 눈에 띄었다. 들어본 적이 없는 생소한 단어라 조금 검색을 해보니, 에스토니아 출신의 생리학자 야곱 폰 웩스쿨이 새로이 만들어낸 용어였다.
'움벨트'는 독일어로 'Um(둘러싸인, 주변의)'과 welt(세계, 환경)'의 합성어로, 주변 환경이라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벨트'가 객관적인 세계 그 자체를 말한다면, '움벨트'는 '자기 중심적 세계'를 의미한다. 다소 복잡할 수 있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세상에 존재하는 만물은 같은 세상을 저마다 다른 방법으로, 또 자기 중심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식한다는 개념에는 시간과 공간을 모두 포함한다. 이를테면 인간은 적외선이나 전자파, 음파를 신체 능력만으로 느끼거나 볼 수 없지만 뱀이나 박쥐는 아니라는 식이다.
사람들은 모두가 자신만의 신념이나 생각을 갖고 살아간다. 인격, 생각, 신념들을 하나의 '움벨트'로 놓고 본다면, 타인과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공감했을 때 서로 기뻐하는 것은 어쩌면 근본적으로는 자신만의 세계인 '움벨트'가 교집합을 이루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측면에서,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보는 세계를 묶는 교집합 그 자체가 '움벨트'가 아니었는지 생각하게 한다. '움벨트'는 개발 초기부터 비장애인도, 시각장애인도 모두 즐길 수 있는 게임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움벨트'는 유명한 오픈소스 프로젝트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데이비드 이글맨이 'TED' 강연에서 선보인 조끼 감각대체장치가 기자에게는 마치 '움벨트' 게임과도 같이 느껴졌다. 'TED' 강연에서는 소리를 태블릿으로 받아들여 신호로 변환하고, 이것을 조끼를 통해 느끼면서 뇌가 자연스럽게 해석하는 실험의 과정이 소개됐다. 이와 마찬가지로 '움벨트'라는 게임을 통해 장애의 유무와는 관계 없이 완전히 같은 경험을 하고, 또 이러한 게임들이 시장에서 자리를 잡는다면 시각장애인에게 일종의 '감각 확장의 수단'으로 자리잡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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