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의 인디게임 시장, '생계형 게임'의 기로에 놓인 개발자들
#'마인크래프트'의 성공신화를 쫓아 수 많은 인디게임사들이 인디게임 시장에 도전을 시작한지도 어느덧 8년, 인디게임 시장은 이제 과포화 상태의 '레드오션'이 된지 오래다. 국내도 마찬가지. 인디게임의 포화로 인해 시장상황이 악화되고 이 때문에 인디게임 개발자들의 성공가능성이 더욱 희박해지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국내 인디게임 시장이 점점 악화되어 가는 상황에서 게임포커스가 인디게임 시장의 붕괴를 의미하는 '인디포칼립스(Indiepocalypse)' 3부작 기사를 통해 국내 인디게임 시장의 포화 상태와 문제점, 그리고 미래에 대해 짚어보았다.
“결국 돈을 잘 버는 것은 시장의 트렌드를 따르는 게임들입니다. 트렌드를 따라가며 시행착오없이 실적을 내는 팀을 보면서 회의감이 들 때도 많습니다. 이런 생각을 갖는 팀이 많아질수록 인디게임 시장의 몰개성화는 가속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국내에서 여러 차례 게임을 출시해 이름을 알린 한 인디게임 개발자의 말이다. 트렌드를 따르는 소위 '잘 되는 게임'과 인디게임 개발자로서 만들고 싶은 게임 사이의 고민은 비단 그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한해에 출시되는 게임이 나날이 증가하고 소위 '탈(脫)' 인디게임 수준의 작품들이 등장하면서 시장 내부의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독창성과 개성으로 승부해야 하는 인디게임 시장이 '몰개성화'라는 걸림돌을 마주했다. 생존을 목적으로 이미 시장성을 검증 받은 '대세 장르'에 집중하는 이른바 '생계형 게임'을 선택하는 인디게임 개발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가마수트라(Gamasutra)가 지난 2017년 발표한 '2017년 인디게임 트렌드(장르별)'에 따르면, 총 178개의 게임 중 어드벤처 게임 장르의 수는 56개, 액션 게임의 수는 41개로 전체의 50%를 넘는다. 인디게임들이 일부 장르에 심각하게 편중되어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
최근 인디게임 시장에서 인기있는 장르는 '방치형'이나 '로그라이크'로 최근 출시되는 대부분의 인디게임들이 해당 장르의 게임들이다.
이 때문에 하나의 게임이 성공을 거두면 비슷한 게임들이 연이어 출시되는 'me-too(미투) 게임' 현상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카드 게임과 로그라이크라는 장르를 결합한 '슬레이 더 스파이어(Slay the Spire)'의 흥행 이후 비슷한 형태의 규칙과 게임성을 지닌 게임들이 인디게임 시장에 쏟아진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시장의 트렌드로부터 독립한 인디게임, 다시 시장의 뒤를 쫓다
한국게임개발자협회의 전석환 사업실장은 인디게임의 정체성이 모호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독립(Independent)'이라는 의미를 담은 인디게임은 결국 시장의 자본으로부터 독립해 개발한 게임을 의미한다. 시장의 자본은 곧 트렌드를 의미하는 만큼, 인디게임은 근본적으로 시장의 주류와 대치되는 '반 시장'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전석환 사업실장의 설명이다. 그러나 시장으로부터 독립한 인디게임이 결국 시장성과 자본을 쫓는 것이 지금의 상황.
전석환 사업실장은 “인디게임의 정체성은 결국 주류 시장을 쫓는 것이 아니라 자본과 트렌드로부터 독립해 신선하고 처음 보는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드는 데 있다”라며 “그러나 최근에는 AAA급 게임에서 탈피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잘되는 주류 게임을 쫓는 개발사들이 많아지고 있다. 결국 인디게임 시장 내부에서도 주류와 비주류가 나뉘고 있다”라고 말했다.
소위 '잘 되는 게임'에만 집중하면서 인디게임 시장 내부에도 장르 사이의 양극화 현상이 포착되고 있다. 비주얼 노벨 게임에 주력하는 한 인디게임 팀 관계자는 “시장 내부가 포화되고 있다는 지표들은 많지만 장르에 따라서는 아직 '블루오션' 상태인 곳도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인디게임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비주얼 노벨 장르에 주력하는 곳은 드문 상황. 반면, 시장 층이 넓고 비교적 개발이 쉬운 퍼즐 장르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개의 게임이 등장할 정도다.
이처럼 인디게임 시장 내부의 장르 고착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인디게임 전체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도 등장하고 있다. 주류 시장에서 장르가 고착화되고 소비자들이 신작에 흥미를 잃는 주류 게임 시장의 현상이 인디게임 시장에서도 반복되기 때문이다. 한 인디게임 개발자는 “이미 대중에게 인디게임은 '클리커' 또는 '하이퍼캐주얼'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라며 “일각에서는 인디게임에 식상함과 염증을 느끼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등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다음 기회'란 없는 인디게임,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의 시장이 '생계형 게임'을 부추긴다
인디게임 시장의 몰개성화에 대한 질문에 한 개발자는 “소위 '잘 되는' 게임을 개발해 성공한 사람을 폄하할 수는 없다. 오히려 시장을 현실적이고 객관적으로 평가한 결과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많은 인디게임 개발자들이 시장성을 떠나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게임을 위해 인디게임 시장에 진출했지만, 막상 하나의 게임을 출시하고 시장에서 살아남기가 힘들어지면서 '생계형 작품'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디게임 시장의 몰개성화가 가속화되는 이유다.
하나의 작품이 실패하더라도 다른 게임을 통해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일반 게임사와 달리, 인디게임 개발자에게 '다음 기회'란 없다는 것이 인디게임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실제로 기자가 만난 인디게임 개발자 다수의 목표는 '메가 히트작'이 아닌 다음 게임을 개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안정적으로 팀을 운영하고 장기간 버틸 수 있는 '맷집' 없이 독창적인 작품을 시도하는 것은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인 격이다.
이는 인디게임 개발자들을 위한 사회적인 안전망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력이나 자본 상의 한계가 있는 인디게임 개발팀이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지원이 필수적이지만, 인디게임 개발자들을 위한 도움이 부족하다는 것. 인디게임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정부 단위의 지원사업들이 존재하지만, 전문적인 사업 계획서나 보고서 등의 장벽으로 인해 개인이 지원사업을 신청하는 것은 힘들다는 점도 인디게임 개발자들이 꼽는 어려움 중 하나다.
“인디게임 개발자들이라면 누구나 본 적이 없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 그러나 '뿌리 복지'가 없이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실패를 뒷받침해줄 안전망이 없다면 지금처럼 생계형 게임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힘든 환경 속에서 도전적인 작품을 개발하더라도 기대 수익이 낮다는 점도 많은 인디게임 개발자들이 '생계형 게임'을 선택하는 이유다. 많은 소비자들이 인디게임에게 독창성과 개성을 요구하지만, 정작 시장에서 본 적이 없는 독특한 작품들의 실제 수익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 한 인디게임 개발자는 "인터넷 상에서의 여론을 보면 '인디 감성'이 잔뜩 뭍은 게임들을 원하지만, 실제 수요는 극히 일부"라며, "이런 여론이 실제 수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주류 시장에서도 인디만의 독창성을 살려라, 장르 아닌 소재의 다양성으로 승부해야
반면, 인디게임 개발자들의 도전정신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 공감할 수 없다는 의견도 대립하고 있다. 시장 내부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살아남는 것이 힘들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시장에서는 독특한 매력과 게임성으로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게임들이 등장한다는 것. 특히 최근에는 선택할 수 있는 장르의 폭이 줄어들면서 많은 개발자들이 장르가 아니라 소재의 다양성으로 승부하고 있다.
2017년 출시 이후 약 한달 만에 900만 달러(한화 약 103억 원) 이상의 수익을 낸 '컵헤드'는 일반적인 횡스크롤 액션 게임의 형식에 복고풍 애니메이션과 재즈 스타일의 OST라는 독특한 소재를 결합했다. 국내에서 많은 주목을 받은 인디게임 '던그리드' 역시 '로그 레거시'의 시스템이나 특징을 상당 부분 참고했지만, '로그라이크' 장르의 진입장벽을 낮춘 '로그라이트'라는 게임성 덕분에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한국게임개발자협회의 전석환 사업실장은 게임의 독창성 못지 않게 시장의 반응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게임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저들로부터 외면 받는 게임은 성공할 수 없다는 것. 이에 게임의 개성이나 특색 못지 않게 유저들로부터 피드백을 받고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게임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전석환 사업실장은 “사무실 안에서는 해답을 찾을 수 없다”라며 “기존의 상용화된 타이틀과 다른 특색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장에 나가 자신이 만든 게임의 재미를 커뮤니티로부터 검증 받아야한다. 성공한 인디게임 개발자들도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개발사만의 개성과 특징을 살리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많은 인디게임 개발자들이 소위 잘 되는 장르에 집중하고 있지만, 자신들의 게임의 정체성을 다지는 것에는 소홀하다는 것. 한 인디게임 개발자는 "새로운 장르나 게임에 도전하는 것은 개발사의 상황에 따라 힘들 수 있다"라며 "그러나 인디게임의 도전이 꼭 장르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개발자 만의 특색이나 개성을 살리는 것 역시 도전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한편, 전석환 사업실장은 현재 인디게임 시장의 상황에 대해 '조제남조'라고 표현했다. '조제남조'는 시장이 커지면서 완성도가 낮은 상품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는 현상을 의미하는 단어로, 야마우치 히로시 전 닌텐도 사장이 처음 사용한 단어다.
인디게임 시장이 확대되고 출시되는 게임들이 증가하지만 전체적인 품질의 수준은 높아지지 않았다는 것. 이에 과열 경쟁 상황 속에서 조악한 퀄리티의 게임들이 양산되고 미국 게임 산업 전체가 몰락한 '아타리 쇼크'가 인디게임 시장에서도 일어날 것이라는 주장들도 나오고 있다.
인디게임 시장 내부의 환경은 점차 황폐화되고 있다. 만들고 싶은 게임의 꿈을 가지고 홀로서기에 나서지만, 정작 이중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 시장에 새로 투입되는 인디게임 개발자 못지 않게 열악한 환경에 좌절하고 시장을 떠나는 개발자들도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2020년을 전후로 인디게임 시장이 사장 단계에 접어들 것이라는 주장들도 제기된다.
위기에 처한 인디게임 시장은 정말 붕괴하는 것일까? '인디포칼립스' 기획기사 3부에서는 '인디포칼립스'가 실현될 것인지에 대해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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