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게임산업의 메카로 자처하는 성남시가 AI활용 중독 예방 콘텐츠 공모전에서 게임을 알코올과, 약물, 도박과 함께 묶는 이른바 ‘4대 중독’으로 표현해 논란이다. 게임업계의 문제 제기 이후 성남시가 해당 공모전 내용을 수정했지만 해당 논란에 대해 별다른 해명과 사과를 하지 않은 채 모르쇠로 일관 하고 있어 논란이 더욱 증폭되는 모양새다.
지난 2014년 前신의진 의원(당시 새누리당)이 대표발의한 ‘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을 시작으로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가 제11차 국제질병분류(ICD-11)에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를 포함시키기까지 오늘날 게임을 중독으로 규정하려는 사회적인 움직임이 지속돼 왔지만 게임중독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미흡할 뿐만 아니라 의학계 등 일부 이익단체의 주장만을 받아들이는 등 객관성의 결여, 그리고 대중들의 이해와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무리한 추진으로 인해 국내는 물론 국제사회에서 조차 '게임 중독'은 일부 이익단체들의 주장이라고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최근의 현실이다.
성남시 홈페이지에 있는 이 작은 글귀만이 유일한 입장문이다
해당 공모전에 대한 비판이 확산되자 성남시 관계자는 “보건복지부의 2025년 ‘정신건강사업안내’에 알코올, 마약류, 도박, 인터넷 게임을 중독 유형으로 명시가 되어 있다”, “성남시가 인터넷 게임을 중독물질로 규정했다는 일부의 해석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내놨다. 자신들은 아무런 생각도 아무런 의도도 없이 그저 정부의 지침대로 했을 뿐이라는 비겁한 변명만 내놓고 있는 상황.
성남시는 지금까지 판교를 ‘대한민국 대표 게임 밸리’라 자처해 왔다. 실제로 판교는 대한민국 게임산업의 매출을 60% 가량 담당하고 넥슨, 엔씨, 네오위즈, 스마일게이트, NHN 등 국내를 대표하는 대부분의 게임사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하지만 정작 관할 공모전에서는 게임을 알코올·마약·도박과 나란히 ‘4대 중독’으로 묶는 촌극을 보여주며 그 한계와 속내를 여실히 보여줬다. 산업 육성과 문화 진흥을 한목소리로 외쳐온 도시가, 게임을 중독물질로 분류한 정부 지침을 단순히 그대로 베껴 넣었다는 해명은 너무 무책임하다.
결국 아무런 공식 입장 표현 없이 논란이 된 ‘인터넷 게임’이란 표현을 수정해 조용히(?) 공모전을 재등록했지만 여전히 게임업계가 성남시를 보는 시선은 곱지 못하다. 성남시가 속해 있는 경기도의 수장인 경기도지사가 ‘겜기도’를 외치며 돌아다니는 사이 국내 대다수의 게임사들이 밀집돼 있는 관할 행정기관은 ‘게임’을 중독으로 묘사하며 치료 방법을 찾고 있는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와 관련해 한국게임산업협회는 공모전 백지화 또는 재검토를 요구했으며 게임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역시 보건복지부와 지자체를 상대로 관련 지침을 시정해달라고 공식 요청하며 사태는 단체와 행정 기관을 넘어 정부 기관사이의 유권해석으로 확전되는 모양새다.
이러한 와중에 지난 19일, 게임산업협회를 비롯해 게임인재단, 한국게임이용자협회, 한국게임정책학회 등 13개 협단체가 보건복지부 장관을 대상으로 하는 공개 질의서를 공개했다. 공개 질의서의 내용은 일반인은 물론 우리가 물어보고 싶었던 한 마디로 등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질문들로 가득했다.
그런데 읽다보니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왜 지금인가?”다. 빠른 대응이라는 측면에서는 일부 긍정적인 해석이 가능하지만 현재 이재명 정부는 내각 인선에 나서고 있고 질의서의 대상은 곧 물러날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힘 없는 이전 정부의 장관이다.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인해 지난 6월 4일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대통령직 인수위를 가동하지 못한 채 당선 즉시 4일부터 새 임기를 시작했다. 때문에 새 정부는 어쩔 수 없이 약 보름 넘게 지난 정부의 장관들과 국정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조만간 새 인선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며, 곧 정부 각 부처의 장차관들이 모두 새로 임명될 것이다. 그리고 장관이 바뀌면 당연히 각 정부부처의 국정 운영방향도 변경될 수 밖에 없다.
특히 정부는 새 일꾼을 찾겠다며 장차관 국민추천제까지 도입했다. '진짜 일꾼 찾기 프로젝트'라고 불리며 지난 10일부터 시작된 '국민추천제'는 행정부처의 장차관 및 공공기관장 등 고위급 인사를 국민이 직접 추천하는 제도로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내세웠던 공약이다.
접수가 시작된 이후 그간 국민추천제를 통해 보건복지부·여성가족부·법무부 등 정부부처의 장관과 등 공공기관 장에 다양한 인물이 추천됐고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과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 등이 복지부 장관에 추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듯 정부 주요직책 공무원, 특히 장관급을 대상으로 한 새 인선 작업이 시작된 시점에 이전 정부의 장관에게 보내는 질의서는 실제로 답변을 받든, 그렇지 않든 실효성에서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실제로 답변을 받지 못할 가능성도 높다.
그렇다면, 자그마치 13개의 게임협단체들이 힘도 없고 권한도 없는 지난 정권의 장관에게 질의서를 보내는 것 보다 누가 임명될지 모르지만 현 정권에서 새로 임명 될 새 복지부장관에게 해당 내용을 수정해 달라고 하거나, '게임을 질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게임산업'에 우호적인 분을 장관에 임명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하는 성명서를 내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자그마치 13개나 모인 게임업계의 대표적 협단체들은 왜 그런 생각조차 못했을까? 혹시 외부의 눈치를 보며 실제로 결과가 나오지도 않을 걸 뻔히 알면서 공연히 형식적으로 하는 체 '눈 가리고 아웅' 한것은 아닐까. 실제로 이국종 병원장은 의료계의 추천을 받은 것으로도 알려지고 있다. 게임업계는 그 정도의 말도 못하는가.
결국 이 공개 질의서는 질의서에 담긴 진실한 의도와는 달리 '우리는 해당 논란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는 생색내기에 가까운 행동으로 비춰질 수 밖에 없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사태의 진지함과 심각성을 희석시키는 형식적인 제스처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또한, 게임협단체 뿐만 아니라 판교에 막대한 세금을 내며 수 만명의 고용을 창출하는 등 지역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게임 개발사들이 게임산업에 악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는 성남시의 이런 몰지각한 행위에 나몰라라 하고 있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국가와 지역의 경제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하면서도 과학적 근거도 없는 '중독 물질' 생산업으로 폄하되어도 '아니'라고 말 한마디 할 수 없는 국내 게임기업들에도 씁쓸한 위로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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