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페이스북 등 2,300여개 온라인서비스제공자(ISP)가 회원사로 참여하고 있는 유럽 ISP 협회(회장: 올리버 쥬메)가 6월 1일자 보도자료를 통해 우리나라의 웹하드 저작권 규제에 대해 한-EU FTA 위반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유럽 ISP 협회는 우리 저작권법 조항이 한-EU FTA 위반이라고 보았다. 특히 일반적 감시 의무를 위법한다고 본 유럽사법재판소(European Court of Justice)의 최근 판결에 비추어볼 때 FTA 위반임이 분명하다고 지적하였다.
유럽 ISP 협회가 지적한 우리 저작권법 규정은 제104조를 말한다. 이에 따르면, 웹하드 사업자는 저작권자의 요청이 있기만 하면, 해당 저작물의 복제, 전송을 차단하는 필터링 기술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특히 웹하드 사업자는 저작권 침해가 발생하기 전이라도 저작권자가 요청한 저작물에 대한 필터링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러한 예방적 성격의 필터링 의무는 전 세계 어떤 나라도 요구하지 않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규제다. 문제는 한-EU FTA가 온라인서비스제공자에게 일반적 감시의무를 부과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는 점이다(제10.66조). 여기서 일반적 감시의무란 반드시 저작권자의 요청이 없어도 온라인서비스제공자 스스로 취해야 하는 필터링 의무 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우리 정부는 일반적 감시의무를 이렇게 좁게 해석하고 있다), 모든 이용자의 모든 트래픽을 대상으로 기간 제한 없이 필터링 기술조치를 취해야 하는 모든 상황을 일컫는다.
이는 유럽사법재판소가 2건의 판결(Scarlet v. SABAM (2011년 11월 24일), SABAM v. Netlog (2012년 2월 16일) 판결)을 통해 분명히 한 바 있다. 이 사건들에서 저작권 권리자단체는 P2P업체들에 대해 자신들이 권리를 보유한 저작물에 대한 침해를 중단하라는 법원명령을 청구하였고 이에 대해 유럽사법재판소는 SABAM측의 저작물이 자신의 서비스에 올라오는 것을 막으려면 Scarlet과 Netlog 모두 자신의 이용자들의 모든 트래픽을 기간제한 없이 감시할 수밖에 없다면서 이는 EU전자상거래지침(2000/31) 제15조 제1항이 금지한 일반적 감시의무에 해당한다고 청구를 기각하였다. 우리 저작권법 제104조에 따른 필터링 기술조치는 모든 이용자의 트래픽에 대해 24시간 상시 적용해야 하기 때문에 유럽사법재판소의 판결에 비추어보면 일반적 감시 의무에 해당하고, 따라서 한-EU FTA 위반 가능성이 높다.
우리 저작권법은 대부분의 외국과 마찬가지로 저작권자의 통지를 받고 침해 저작물을 삭제하면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책임이 면책되는 이른바 통지-삭제(notice and takedown) 제도를 기본으로 한다. 하지만 우리 저작권법 제104조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저작권자의 요청(request)이 있으면 특정 저작물들에 대한 권리침해의 발생을 예방해야 하는 요청-차단유지(request and staydown) 의무를 웹하드 사업자에게 부과하고 있다.
일반적 감시의무에 관한 프랑스 대법원이나 독일 대법원은 일단 저작권자로부터 침해의 통지를 받고 침해물을 삭제한 후에도 관련 침해물과 관련하여 향후 발생할지도 모르는 저작권 침해를 계속 감시해 차단하는 의무(이를 통지-차단유지(notice and staydown)라 한다)를 부과하면, 이 역시 일반적 감시 의무에 해당하여 위법하다고 보았다. 이 판결에 비추어보더라도 우리 저작권법 제104조는 한-EU FTA 위반으로 볼 여지가 많다.
유럽 ISP 협회의 이번 주장은 협회 회장이 5월말 (사)오픈넷이 미국 하바드대학 버크만센터 등과 공동으로 개최한 ‘정보매개자책임의 국제적 흐름' 세미나에 참석한 직후 나온 것이어서 특히 주목을 끈다. 세미나에 참석한 쥬메 회장과 이 문제를 논의했던 (사)오픈넷 관계자는 웹하드도 한-EU FTA에서는 호스팅 서비스 제공자로 분류되는데, 협정에 아무런 유보도 없이 웹하드 사업자를 차별하면 조약 위반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한편 2013년 1월 최재천 의원은 한-EU FTA 위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저작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는데, 웹하드에 대한 지나친 규제가 통상 분쟁으로 비화되기 전에 서둘러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