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의 잘 차린 밥상 '캡틴아메리카 : 시빌 워', 고민과 재미를 함께 담았다

등록일 2016년05월11일 16시43분 트위터로 보내기




'슈퍼 히어로(super hero)' 영화들이 우후죽순(雨後竹筍) 쏟아지고 있다.

만화를 실사 영화로 옮기기 시작한 1930년대 이래 한 명의 영웅이 스토리 전체를 이끌어가던 시기가 지나가고, 여러 영웅들이 한 영화에 한꺼번에 등장해 서로 간의 '케미'를 보여주는 시대가 도래했다. 경쟁적으로 '슈퍼히어로물'을 만들어대던 마블과 DC코믹스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상 세계관이 뚜렷한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시리즈)' 구축의 야망을 드러냈다.

마블이 '아이언맨(2008)'을 시작으로 착실히 준비를 거듭한 끝에 '어벤져스(2012)'를 통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마블 스튜디오가 제작하는 영화 속 캐릭터, 줄거리, 설정, 캐스팅 등을 공유하는 가상의 세계관)'의 서막을 알린 반면, DC코믹스는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으로 영웅들을 끌어모을 판을 마련하고자 했지만, 허술한 스토리와 우격다짐에 가까운 무리한 전개로 빈축을 사고 말았다.

좋든 싫든 우리는 슈퍼히어로물의 시대를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 흐름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2020년까지 연평균 5.8편의 슈퍼히어로물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시선은 둘로 나뉜다. 한 쪽은 현실에 지친 현대인들이 슈퍼히어로를 꿈꾸고 있고, 영웅들의 화려한 액션과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담고 있는 슈퍼히어로물이 카타르시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한다.


한편, 슈퍼히어로물의 범람(氾濫)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치유'의 목적보다 '자본의 논리' 때문이고, 상영관을 점령한 탓에 영화의 다양성이 위협받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캡틴아메리카 : 시빌 워(Captain America: Civil War)'를 피해 눈치껏 개봉일을 바꾼 영화가 한두 편이 아니다. 일부 누리꾼들은 한국 영화의 수준이 문제라고 따끔하게 질책하지만, 관객의 선택권 자체가 제한되는 건 그 누구에게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캡틴아메리카: 시빌 워'는 개봉 이틀 만에 120만 관객을 돌파하며 극장가를 점령했다.

'캡틴아메리카 : 시빌 워'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슈퍼히어로물'에 대해 간략히 짚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몇 가지 이야기를 덧대어 봤다. '소비자'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는 않다. 더 화끈하게 즐기든지, 휩쓸리는 파도 속에서 몇 가지 고민들을 하든지, 혹은 그 두 가지를 함께 하든지, 아예 눈길을 돌리든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개인적인 선택을 묻는다면, 아마 파도를 타며 물음표와 싸우지 않을까.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는 그 동안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선보인 모든 히어로들을 만나 볼 수 있는 만큼 전에는 제작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만든 영화들, 특히 '어벤져스' 시리즈 중에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제작자 케빈 파이기)

마블 CEO 케빈 파이기의 호언장담은 적중했다. 자신감에는 이유가 있었다. '캡틴아메리카 : 시빌 워'는 마블의 영웅들을 한 데 모았다는 점에서 '어벤져스' 시리즈와 비교되고, 영웅들이 갈라져 대결을 펼친다는 점에서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을 떠올리게끔 한다. 이야기의 완성도나 등장하는 영웅들을 맛깔스럽게 살렸다는 점에서 '캡틴아메리카 : 시빌 워'는 비교의 대상이 되는 영화들을 압도한다.

영웅들은 싸우고 또 싸웠다. 시민들을 거대한 악(惡)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괴물과 악당에 맞섰다. 그 과정에서 건물이 부서지기도 했고, 때로는 도시가 파괴되기도 했다. 선량한 사람들이 다치고, 죽어나갔다. '다수를 위해서 소수의 희생은 불가피하다'고 여겼다. 영웅들도, '다수'에 속했던 수많은 사람들도, 심지어 스크린을 지켜보는 관객들도 말이다.

영웅들은 거침 없었고, 악은 고꾸라졌다. 세계의 평화는 지켜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불편함'이 싹트기 시작했다. 의문이 생겨났고, 고민이 꼬리를 물었다. 이래도 되는 거야? 세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아름다운 '정의의 승리' 앞에 무고한 희생이 뒤따른다고 하더라도 괜찮은 거야? '민간인 희생'에 대해 입 닫고 덮어두기만 해도 되는 걸까?

이 고민의 출발은 '현실'에서 비롯됐다. 현란한 이름의 미사일들이 하늘을 뒤덮고, 폭격 순간의 희열이 TV화면을 통해 생생하게 재생되는 현대의 여러 전쟁들은 사람들을 흥분시켰다. 전쟁의 포화가 걷히자, 무고하게 희생됐던 시민들의 널부러진 사체와 가족을 잃은 이들의 눈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현실에선 절대 용인될 수 없는 일이 영화에선 가능한 것일까?


누구나 실생활에서든 정치적으로든 한 문제를 두고 갈라지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를 히어로들에게 반영한다면 흥미로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정부의 뜻에 따라 움직일 것 같은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본다면, 다들 군인 출신인 캡틴 아메리카를 꼽을 것이다. 그렇지만 예상을 뒤엎고 캡틴 아메리카는 정부의 슈퍼히어로 등록제 법안에 반대하며 아이언맨과 다른 관점으로 대립하게 된다. (케빈 파이기)

어떤 이들은 굳이 '판타지'이자 '픽션'인 히어로 영화에서까지 그런 질문을 해야 하냐고 마뜩잖아 했지만, 오히려 '영웅들로 먹고 사는' DC코믹스와 마블은 그 고민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그것이 또 다른 '돈벌이'가 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었으리라.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은 압도적인 힘을 가진 슈퍼맨이 '재앙'이 될 수 있음을 두려워한 배트맨이 그를 제거하려는 시도를 담아냈다.



마블은 한걸음 더 나아갔다. 어벤져스를 UN의 제약을 받도록 하자는 '슈퍼히어로 등록제'를 두고 12명의 영웅들이 자신의 신념에 따라 갈라서 대결하는 양상을 만들어냈다.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킨 승리는 승리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아이언맨과 '모두를 구하려고 하다간 아무도 못 구한다'는 캡틴 아메리카를 중심으로 '찬성파'와 반대파'가 대결을 벌인다.

'시빌 워(civil war)'라는 제목처럼 '찬성파'와 '반대파'는 '내전'을 벌이게 되는데, 이 싸움은 생각보다 훨씬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처음에는 반목(反目)하다가, 나중에는 다시 힘을 합쳐 싸우겠지'라는 관객들의 기대(?)를 가볍게 뛰어넘는다. 어설픈 봉합을 보여줬던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과의 차별성이 도드라진다. '캡틴아메리카 : 시빌 워'는 이 고민이 일회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영화를 통해 뚜렷하게 보여준다.



이렇듯 '자유'와 '책임'을 두고 벌어지는 영웅들 간의 신념 대결이 이 영화의 '핵심(가장 중심이 되는 부분)'이라면, 12명의 영웅들이 각 팀으로 나뉘어 공항에서 벌이는 액션신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가장 빛나는 부분)'라고 할 수 있다. 각각의 영웅들은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뽐내고, 영화는 그 능력치를 최대치로 뽑아내 여러가지 조합들을 만들어냈다. 특히 '스파이더맨'과 '앤트맨'의 활약이 돋보이고, 새로운 히어로인 '블랙 펜서'도 이야기 속에 잘 버무려졌다.

마블의 행보가 더욱 주목되는 까닭은 '잘 차린 밥상' 덕분에 캐릭터 간의 다양한 시도와 조합, 그리고 변주가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이 빠질 순 없다)은 캡틴 아메리카와 윈터 솔저의 '브로맨스'가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영웅들 간의 신념 대결의 팽팽함이 다소 느슨해졌고, 그 바람에 캡틴 아메리카는 '친구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이기적인' 리더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캡틴아메리카 : 시빌 워'는 기존의 '선과 악'이라는 단순한 구도를 비틀었다. 공동의 적을 제거하기 위해 협력한다는 이야기의 틀도 탈피했다. 그 자리는 '자유'와 '책임'이라고 하는 거대한 '고민'이 자리잡았고, 각각의 영웅들은 자신의 신념과 철학을 주장하며 '편을 갈라' '내전'을 벌인다. 단순히 즐기기만 하던 관객들도 새로운 도전을 받게 됐다. 당신은 어느 쪽을 지지하는가. 캡틴 아메리카인가, 아이언맨인가! 자유인가, 책임인가!

글 제공 : '버락킴' 그리고 '너의길을가라'의 블로그(http://wanderingpoet.tistory.com)

* 본문의 내용은 게임포커스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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