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인류가 멸망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친환경, '디스트로이 올 휴먼즈!'

등록일 2020년08월07일 13시05분 트위터로 보내기

 

외계 문명에 대한 궁금증과 탐색, 접촉에 대한 노력은 꽤나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광년(光年)'이라는 단위를 사용해야 할 정도로 드넓은 우주에서, 서로 간에 대화를 하고 기술을 발전시켜 우주 여행을 하는 등 문명을 이룩한 지적 생명체가 인류만 존재할 리 없다는 어느 정도 합당한(?) 논리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실제로 우주에 대한 탐색이 경쟁적으로 이루어졌던 냉전시대에는 인류의 고향인 지구의 풍경과 인류의 대략적인 과학 진척도, 인류 해부도, 당시 고위 관계자들의 환영 메시지와 교향곡 등을 담은 '골든 레코드'를 만들어 우주로 쏘아 보내기도 했다. 당시에는 외계 문명이 호의적인지, 호전적인지 그 성향을 알 수 없음에도 너무 쉽게 인류의 '정보'를 제공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지만, 이제는 실제 외계 문명과의 접촉 가능성을 점치기 보다는 우주 진출에 대한 상징성을 담은 것으로 그 방향성이 조금은 바뀌었다고 한다.

 



 

'골든 레코드' 외에도 1890년대 라디오가 발명된 이후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인류는 각종 라디오 전파를 우주로 내보내고 있다. 인류와 교신할 수 있는 지적 외계 생명체의 수를 계산하는 공식인 '드레이크 방정식'으로 잘 알려져 있는 미국의 천문학자 프랭크 드레이크는 전파 망원경으로 '골든 레코드'와 유사하게 인류 정보 및 숫자, DNA 구성 등을 담아 'M13' 구상성단으로 쏘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미국항공우주국 나사(NASA)가 2019년 발표하기를, 인류가 우주 태초의 고대인(생명체)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우주에서 행성의 탄생은 이제 시작되는 단계이고, 지적 생명체 중 하나가 인류이기 때문에 인류가 '고대 문명'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이 때문에 한때 온라인 상에서는 인류가 사실 '스타크래프트' 속 만물의 창조주인 '젤나가'라거나, '테란'인줄 알았는데 '프로토스'였다는 식의 유머도 퍼지곤 했다.

 



 

인류 문명과 외계 문명의 감동적인 만남은 없다
이미 오래 전부터 미디어에서는 외계 문명에 대한 상상을 담은 작품들이 많이 등장해 왔다. 이렇게 등장한 외계 문명들은 대체로 호전적으로 인류를 공격하고 침공하는데, 인류(주로 미국이지만)는 용감무쌍하게 이에 맞서 외계인들을 퇴치하고 평화를 수호한다는 식의 클리셰가 만들어지게 됐다. '화성침공'이나 '인디펜던스 데이' 등 고전 명작도 물론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는 작품이지만, 평화를 사랑하는 외계인을 감동적으로 묘사한 영화 'E.T.'가 명작으로 칭송 받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외계인들의 침공 클리셰를 반대로 뒤집은 사례도 있다. 바로 외계인의 입장이 되어 지구를 침공하는 게임, '디스트로이 올 휴먼즈!(Destroy all Humans!)'다.

 

'디스트로이 올 휴먼즈!'는 2005년 첫 작품이 등장한 이래 꽤나 여러 번 발매됐던 게임이다. 대부분의 게이머들에게 흔하게 알려져 있는 게임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팬층도 있는 편이다. 흔히 외계인 하면 떠오르는 특징들을 클래식하게, 또 충실하게 담아낸 타이틀이기도 하다.

 

이번에 정식으로 발매된 '디스트로이 올 휴먼즈!'는 대대적인 리메이크를 거쳐 발전된 게임성과 그래픽은 물론이고 나름대로의 침공에 대한 합당한 이유(?)까지 외계인의 입장에서 꽤나 진지하게 표현되고 있다.

 



 

외계인들도 나름대로 지구를 침공할 수밖에 없는 절절한 사연이 있다. 그들은 전쟁으로 인해 유전자가 변이 되어 생식 기능이 사라진 '퓨론' 종족이다. 자손을 남길 수 없게 되자 그들은 자가 복제로 연명했지만, 복제품들의 결함 때문에 새로운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그렇게 멸종 위기(?)에 몰린 외계인 '퓨론' 종족은 과거 지구에 방문했을 당시 인간에게 남겨둔 고대의 유전자를 찾아야 하는 운명을 맞이한다. 때문에 인간을 '모르모트'로 삼아 종족의 재 번영을 이룩하려는 그들의 활극이 주된 목표가 되는데, 이 과정에서 당연히 '파괴'가 동반된다.

 

위기에 봉착한 인류의 재 번영을 위한 침공과 개척, 즉 '테라포밍'은 각종 영화에서도 다뤄진, 흔하다면 흔한 소재다. 다만 그 주체가 인간이 아닌 외계인이라는 점, 그리고 그 과정이 상당히 파괴적이면서도 과하게 무겁지 않다는 점은 게임의 매력 포인트다.

 



 

다소 아쉬운 게임성과 약간의 풍자 메시지
게임의 가장 큰 목표이자 본질은 게임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류의 절멸(絶滅)과 철저한 파괴다. 다만 무조건 파괴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고, 각 미션 별로 주어지는 임무를 수행하며 자연스럽게(?) 파괴 공작을 일삼게 된다.

 



 

게임을 아우르고 있는 게임성은 사실 조금 아쉽다. 메인 미션과 서브 미션의 구성, 사용하는 무기와 기술의 업그레이드, 다소 '양키센스'가 짙은 코스튬들은 다소 낡고 진부한 느낌을 준다. '화성침공'에서 미국의 활약과 영웅화를 비꼬는 것과 유사하게, 게임 내에는 냉전시대와 정부에 대한 풍자와 비판의 메시지가 전체적으로 깔려 있다. 다만 이것들이 게임 플레이에 크게 영향을 준다기 보다는 세계관에 몰입하는 것을 돕는 정도의 장치로 활용되고 있다.

 

생각 외로 로컬라이징 수준이 상당히 뛰어나다
 

또 아쉬운 점이라면 개발자도 사람인지라, 결국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외계인의 모습과 각종 기술 그리고 미션들로 구성돼 완전히 신선하다는 느낌을 주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사람을 포함해 각종 물건을 집어 던지는 것, 기억을 삭제시키는 것, 뇌를 터트리거나(?) NPC로 변신하는 것, 퍼져나가는 전기 공격을 구사하는 무기 '따끔이'와 소를 납치하는 '비행접시' 같은 것들 말이다.

 



 

물론 이것들이 외계인 하면 떠올릴 수 있는 클래식한 요소인 만큼 이를 충실하게 따른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나치게 잔인하지 않게 표현된 외계인들의 기술들은 게임을 즐기는 데 부담을 줄여준다. 파괴와 학살을 메인 게임성으로 가져가는 게임 치고는, 그것을 표현하는 수위는 생각 외로 그리 높진 않다.

 



 

정리해 보자면, 전체적으로 자연스럽게 '화성침공'이 떠오르는 게임 내 분위기와 다소 낡기는 했지만 모난 곳 없이 무난한 게임성이 강점인 게임이다. 여기에 더해 외계인의 입장에서 인류를 침공해야 한다는 클리셰 비틀기도 인상적이다. 다만 2020년 기준으로 봤을 때는 게임성이 썩 만족스럽지는 않다는 점이 가장 큰 아쉬움이다. 분량도 적을 뿐더러, 미션도 전체적으로 단순한 편이다.

 



 

비교적 단순한 게임성과 함께 파괴의 미학과 'B급 감성'을 좋아하는 유저라면 한 번쯤 가볍게 즐겨볼 만한 게임이다. 하지만 뭔가를 파고들며 깊게 즐기는 것을 선호하거나, 스토리와 게임성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다. 외계인의 침공을 두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정의로운(?)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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