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예고도 없이 깜짝 등장한 액션 게임이 1분기 게임 시장을 들썩이게 하고 있다. 베데스다가 유통하고 탱고 게임웍스가 개발한 '하이-파이 러시(Hi-Fi Rush)'가 그 주인공. 출시 이후 2월 8일 기준 '스팀'의 유저 평가는 7600여개 중 98%가 '긍정적'으로, 전체 평가는 '압도적으로 긍정적'을 기록 중이다.
게임은 1월 26일 엑스박스 개발자 다이렉트에서 처음 공개된 뒤 곧바로 출시됐다. 일반적으로는 어느 정도의 사전 정보를 미디어를 통해 공개하고 PV, 트레일러 등으로 마케팅도 함께 겸한다.
하지만 '하이-파이 러시'는 일절 마케팅이나 사전 정보 공개 없이 출시돼 오히려 크게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마케팅 과정 없이, 공개 즉시 바로 출시되었다는 점은 그만큼 베데스다와 탱고 게임웍스가 게임의 완성도에 자신감이 있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게임을 플레이 하면서 줄곧 '하데스'가 떠올랐다. '하데스'가 연말 시상식에서 경쟁해야 했던 게임들은 '더 라스트 오브 어스 2', '둠 이터널', '인왕 2' 등 게이머라면 대부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유명 게임이었다.
하지만 '하데스'는 그 가운데서도 뛰어난 완성도와 개성 그리고 매력 포인트로 많은 유저들의 지지를 받았고 크게 성공했다. '하이-파이 러시'와 마찬가지로, '하데스'는 약 20만 개의 평가 중 98%가 '긍정적'으로 평가, '압도적으로 긍정적'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하이-파이 러시'는 닮은 구석이 상당히 많다. 게이머들에게 압도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이끌어냈고, 뛰어난 완성도와 '게임다움'으로 게이머들의 호평에 보답했다. 올해 상반기를 강타한 화제작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평하고 싶다. 더 자세한 후기는 아래에 정리했다.
관성을 이겨낸 개발사의 변신은 '무죄'
본격적으로 게임에 대해 살펴보기 전에, 우선 짚을 만한 이 게임의 독특한 점이라면 개발사의 이력이다. 탱고 게임웍스의 대표 게임은 '디 이블 위딘' 시리즈와 '고스트와이어: 도쿄'다. 두 게임 모두 '하이-파이 러시'와는 비주얼부터 추구하는 장르적 재미까지 완전히 다른 노선의 게임이다. 오죽하면 공식 트레일러 영상에서도 강조했을까 싶다.
하지만 개발사의 이력과는 상관 없이, 원래 개발하던 장르와 스타일이 아님에도 '하이-파이 러시'의 완성도는 매우 뛰어나다. 물론 좋은 '레퍼런스'들이 많았기 때문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감안하더라도 전반적인 만듦새가 정말 훌륭하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뛰어난 액션성이 이를 증명한다.
특히 '하이-파이 러시'는 (의도적으로 선택했겠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액션 게임의 성공 공식을 바꿔버린 '소울라이크'가 아닌, '데빌 메이 크라이'나 '베요네타' 등 스타일리쉬 액션 게임에 영향을 크게 받은 모양새다.
모든 물체에는 외부에서 힘이 작용하지 않았을 때 운동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성질, 즉 관성이 존재한다. 무거운 분위기의 호러 게임을 개발하던 개발사가 갑작스럽게 유쾌한 하이틴 스타일의 스타일리쉬 액션 게임을 만든다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하이-파이 러시'의 등장이 놀랍게 느껴진다. 역량이 된다는 전재 하에, 개발사의 변신은 '무죄'라고 평하고 싶다.
'하이-파이 러시'의 알파이자 오메가, 전투와 음악의 조화
앞서 언급했듯이, 이 게임의 전투는 '데빌 메이 크라이'와 '베요네타' 등 스타일리쉬 액션 게임의 감성을 진하게 느껴볼 수 있다.
특히 전체적인 스테이지 구성과 오브젝트의 배치, 연출은 '데빌 메이 크라이'를, 약 공격과 강 공격을 활용한 액션 시스템은 '베요네타'에 가깝다. 이 게임들을 플레이 해본 사람이라면 게임의 액션 시스템에 적응하는데 크게 지장은 없을 것 같다.
'하이-파이 러시'의 액션은 타 액션 게임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약 공격, 강 공격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 딜레이를 줘 다른 기술을 사용하거나, 동료 캐릭터들의 어시스트 공격 그리고 필살기 등의 '소스'로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3연속으로 가능한 회피나 2단 점프, 공중 회피, 패링과 적을 추격하는 와이어 시스템 등도 스타일리쉬 액션 게임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다.
이렇게 잘 갖춰진 액션의 기본 뼈대에 음악과의 조화를 더하면서 '하이-파이 러시'만의 특징이 완성됐다. 음악(리듬)과 액션의 조화는 이 게임의 알파이자 오메가다. '차이'와 적들의 모든 행동, 공격은 BGM의 박자와 연동된다. 약공격 한번에는 1비트, 강공격 한번에는 2비트가 필요한 식이다.
이 글에서는 비트가 '필요하다'고 표현했지만, 꼭 박자를 맞춰야만 공격이 나가는 것은 아니다. 단지 아주 약간의 단점만 있을 뿐 플레이 및 진행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물론 박자를 맞추는 편이 훨씬 시스템적으로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자신이 '박치'라고 해도 게임 진행에는 큰 무리가 없다. 당연히 공격을 박자에 맞추는 것이 좋지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반드시' 맞춰야 하는 것이 아니게끔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튜토리얼을 한 시간 분량의 1챕터를 거의 다 활용할 정도로 자세하게 제공한다. 다소 낯선 게임 시스템인 만큼 매우 상세히 게임 내에서 몇 번이고 알려주기 때문에 차근차근 익혀 나가면 된다. 추후 추가되는 패링 등의 각종 시스템들도 당연히 튜토리얼을 자세히 제공한다. 각종 기술들을 활용하기 어렵다면, 별도로 제공되는 훈련장에서 연습을 해볼 수도 있다.
이렇게 액션을 음악과 연동되도록 만들며 생길 수 있는 문제점들도 영리하게 해결했다. 우선 모든 공격이나 회피 등의 동작들은 박자에 반드시 맞추지 않더라도 일단 작동한다는 전재를 깔아 놓았다. 다소 어긋나게 눌렀다고 해도 게임에서 어느 정도 보정을 해주는 느낌이었다.
여기에 더해 플레이 하는 사람이 헷갈리지 않도록 장치를 다양하게 만들어 놓았다. 정확한 박자에 맞춰 움직이거나 공격하면 환호성이나 박수 소리, 말풍선으로 '박자를 정확하게 맞췄다'고 시각적으로 알려준다.
또 눈에 보이는 대부분의 사물들은 박자에 맞춰 움직이며, 언제나 함께하는 고양이 로봇 '808'의 색깔과 파동, 화면 하단에 등장하는 박자 UI 등 각종 보조 옵션들도 활용할 수 있다. 실제 액션 중에는 신경 써야 할 요소들이 많아지므로 대부분 귀(환호성)와 말풍선에 의지하게 된다.
나만의 콤보와 액션을 만들어가는 재미, 하드코어 게이머들을 위한 액션성
물론 '크립트 오브 더 네크로댄서' 등 액션과 음악을 조합한 선례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하이-파이 러시'는 3D 액션 게임인 만큼 보다 '액션' 그 자체를 파고들 만한 요소가 있다.
단순히 미션을 깨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음악에 맞춰 '스타일리쉬'하게 적을 처치할 수 있을지, 또 어떤 기술들을 연계해야 더 높은 랭크를 받을 수 있을지 연구할 만한 깊이가 있다.
이 게임의 경우 (정말 '데빌 메이 크라이'처럼) 액션이나 칩, 기술, 체력과 리버브 게이지를 모두 모으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재화가 필요하다. 즉 2회차 또는 그 이상의 반복 플레이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다만 '요구된다' 뿐이지 액션 게임을 깊게 파는 하드코어 게이머가 아니라면 필수는 아니다.
만약 자신이 하드코어하게 액션 게임을 즐기고, 또 콤보를 만들거나 스타일리쉬한 보스전을 플레이 하기를 원한다면 다회차 플레이를 자연스럽게 하게 될 것이다. 이 다회차 플레이 이후 느껴볼 수 있는 재미, 즉 새로운 기술, 칩과 캐릭터 및 콤보 액션의 조합에서 오는 다양성이 정말 뛰어나다. (더불어 레벨 디자인에 따라, 숨겨진 스토리와 갈 수 없었던 지역도 오픈 된다.)
정리하자면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게이머들이 만족할 만한 수준의 액션성을 갖추고 있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 액션 게임을 하드코어하게 플레이 하는 게이머들도 만족할 수 있을 정도의 액션 시스템도 동시에 갖췄다.
다만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우선 내가 타겟으로 하고 있는 적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 '데빌 메이 크라이'나 '베요네타'처럼 타겟 된 적에게 표식이 생겼으면 어땠을까 싶다.
또 여러 적이 섞여 나왔을 때, 화면 밖에서도 원거리 적이 무차별로 공격하기 때문에 상당히 정신 없고 또 종종 불합리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앞서 스테이지 구성이 '데빌 메이 크라이'나 '베요네타'와 닮아 있다고 했다. 이 특징에 따라, '하이-파이 러시'는 일직선 진행이지만 숨겨진 아이템들과 수집품을 찾는 재미도 함께 갖췄다. 게임 도중 각종 읽을 거리와 그래피티를 모을 수 있고, 게임 내내 부족한 재화를 보상으로 얻을 수 있다.
때에 따라서는 플랫포머 게임처럼 제한시간 내에 특정 구역을 돌파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플레이 하는 사람에 따라서는 '불호' 요소일 수 있겠지만 크게 거슬리지는 않았다. 낙사에 대한 패널티도 크지 않으므로 부담스럽지 않다.
게임의 흥을 더해주는 음악, 왕도를 지킨 스토리와 유쾌한 연출
OST들의 완성도도 훌륭하다. 전투와의 연계, 전투 진입과 종료 시 시스템 상으로 구분하는 방법도 세심하다. 음악 때문에 게임 또는 전투의 흐름이 끊긴다는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다. 굉장히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고 또 음악이 귀에 거슬리지도 않는다. OST들은 적재적소에 활용되면서 흥을 돋우는 윤활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게임의 분위기와 라이선스 곡들의 조화도 훌륭해 흠잡을 데가 없다. 잠에 들기 전 OST들이 귓가를 맴도는 느낌마저 들었다. 특히 '프로디지'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데 'Invaders Must Die'가 흘러 나올 때 소름이 다 돋았다.
과하지 않으면서도 각자의 매력이 확실한 캐릭터도 강점이다. '락스타'를 꿈꾸지만 기타는 칠 줄 모르는 엉뚱한 주인공 '차이', 그를 돕는 조력자이자 매력적인 히로인 '페퍼민트', 게임의 마스코트인 로봇 고양이 '808', 몸집과 힘은 장사이지만 싸움을 싫어하는 '마카롱' 등 저마다의 개성이 잘 살아있다. 캐릭터 간의 '케미'도 잘 어우러져 있어 부담 없이 다가온다.
이러한 캐릭터들을 보다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는 캐주얼 카툰 렌더링 비주얼, 캐릭터들의 살아있는 표정도 호평하고 싶다. 특히 각 장면에서 유머러스하게, 또 다소 과장되면서도 세밀한 눈과 표정의 표현이 인상적이다.
부패한 회사의 중역들과 맞서 싸우는 '왕도'를 잘 지킨 스토리가 흥미로우며, 일본 개그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다소 과장되고 코믹한 연출과 패러디도 일품이다.
여기에 성우들의 열연이 이러한 몰입감을 높이는 중요한 포인트인데, 영어와 일본어 더빙을 지원하며 저마다의 매력이 다르다. 일본어 더빙은 마치 가벼운 애니메이션을 보는 느낌을 받을 수 있고, 영어 더빙은 모난 곳 없이 정석적이면서도 깊은 몰입감을 경험할 수 있다.
범람하는 AAA급 게임 사이 빛나는 군계일학, '하이-파이 러시'
수십, 수백 억 원의 자본을 들이 부어 만드는 소위 AAA급 타이틀이 범람하는 시대다. '하이-파이 러시'는 (제작비의 문제를 떠나) 범람하는 게임들 사이에서도 군계일학처럼 빛나는 타이틀이다. 막대한 자본과 유명 개발사의 신작이라는 '네임벨류'도 좋지만, 이보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재미 그리고 트렌드를 새로이 만들어낼 수 있는 통통 튀는 기획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게임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AAA급 게임으로 포지셔닝 했던 '포스포큰'이 비슷한 시기에 출시되어 비교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결국 게이머들이 원하는 것은 재미와 높은 완성도다. 재미가 있다면, 그리고 완성도가 만족스럽다면 가격은 둘째 문제가 된다.
최근에는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이전보다 게임 하나의 가격이 싸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수십 달러에 달하는 게임을 '보기에 좋아 보인다'고 덜컥 구매하기에는 솔직히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다 큰 마음을 먹고 구매한 게임의 완성도가 만족스럽지 않다면 점차 '예약 구매'나 비싼 게임을 멀리하게 되는 것도 당연하다.
'포스포큰' 외에도 '돈 값 못하는 게임'이 수두룩한데, '하이-파이 러시'는 딱 잘라 말하자면 정가로 사서 해도 '돈이 아깝지 않은' 게임이었다. 이마저도 부담스럽다면 엑스박스 게임패스라는 좋은 제도가 있으니 활용하자. 재미를 느끼기 위해 억지로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는, 자연스럽게 음악에 몸을 맡기고 플레이 하며 순수하게 재미 있었던 게임이었다.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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