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넥슨 '퍼스트 버서커: 카잔', '소울라이크'가 아닌 '하드코어 액션 RPG'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

등록일 2025년03월25일 08시05분 트위터로 보내기

 

"액션 게임 팬이라 기대가 큽니다. 꼭 멋진 게임으로 만들어 주세요."

 

"그렇게 될 겁니다."

 

작년 '퍼스트 버서커: 카잔(이하 카잔)' 지스타 현장 인터뷰가 끝난 뒤 네오플 윤명진 대표와 나눈 짧은 대화다.

 

게임업계에 몸담고 있으면서 숱하게 개발자들과의 인터뷰나 사담을 해왔지만, 어쩐지 그의 단호한 그 한 마디는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지금도 여전히 기억 속에 깊게 남아 있다. 그저 자신감 넘치는 그의 말이 믿음을 줬기 때문인지, 그냥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나의 개인적인 바람 때문인지 아직까지도 이유는 모르겠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출시에 앞서 즐겨본 '카잔'은 그의 단호한 말에 걸맞은, 아니 그 이상으로 멋진 게임이었다. 도전적인 난이도와 치밀한 적과의 공방, '카잔'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몰입감 넘치는 복수극과 이를 뒷받침하는 멋진 비주얼의 3D 셀 애니메이션 렌더링 그래픽, '소울라이크'의 특장점은 취하되 제자리에 머무르기를 거부하는 개발진의 고민과 해답까지 게임에 고스란히 녹아 들어 있었다.

 

출시 전 미디어 리뷰용 빌드를 제공받은 뒤 업무 시간, 퇴근 후 개인 시간과 주말까지 모조리 '카잔'에 갈아 넣으며 50여 시간을 플레이한 소감을 전한다.

 


 

'소울라이크'가 아닌, 하드코어 액션 RPG '카잔'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

'카잔'은 '소울라이크'라 분류되는 게임들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여러 시스템을 채용했다. ('세키로'는 전통적인 소울라이크라 보기는 어렵지만) 액션의 코어 시스템도 '세키로: 섀도우 다이 트와이스' 등의 게임을 떠오르게 한다. 이 때문에 '카잔'은 일견 '소울라이크' 게임으로 비쳐질 수 있다.

 

시스템적으로 유사하거나 채용한 요소가 물론 있지만(딱히 이에 대해 지적하고자 함은 아니다), '카잔'은 '소울라이크' 장르 게임에 머무르기를 거부한다. 자신만의 독자적인 노선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한 '인왕'처럼, '카잔'에는 게임 곳곳에 하드코어 액션 RPG '카잔'이자 '던전앤파이터'의 정체성을 계승 및 유지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한 고민의 흔적이 녹아 들어있다.

 

가장 직접적인 예가 바로 액션이다. 앞서 언급했듯 '카잔'은 '세키로: 섀도우 다이 트와이스'와 상당히 유사한 코어 시스템을 갖고 있다. 기본적으로 매우 탄탄하게 잘 설계된 시스템인 만큼 '카잔'의 액션과 전투 경험도 마찬가지다. 액션 게임에서 매우 중요한 조작감도 준수하며, 직전 가드를 비롯한 각종 기술들의 손맛도 뛰어나다.

 

스크롤을 보면 알 수 있듯, 세트 아이템은 그 종류가 상당히 많다. 무기 & 악세서리 세트 조합도 있다.

 

높은 레벨의 사용하지 않는 장비를 먹이(?)로 줘서 주력 장비의 레벨을 올릴 수 있다.

 

여기에 변주를 주는 것이 바로 여러 RPG에서 볼 수 있는 재료 획득, 장비 제작 및 옵션 변경, 세트 아이템의 추가 스킬들이다.

 

아이템을 얻고, 직접 사용하거나 갈아서 재료로 만든 뒤 원하는 아이템으로 제작하고, 장비 계승 시스템으로 장비 레벨을 올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옵션은 '라크리마'를 소비해 바꾸고,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과 잘 어울리는 세트 아이템을 갖춰나가는 과정은 마치 싱글 '던전앤파이터'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특히 고 티어 무기나 세트 아이템의 경우 공격력 등 단순 스탯을 올려주는 효과 외에도, 조건부로 더 높은 옵션을 제공하거나 기존 스킬 트리에는 존재하지 않는 스킬을 제공하는 등 이점이 매우 크고 액션에 다양한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이 스킬들을 사용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일례로 창의 스킬 중 주력으로 사용 가능한 '무아지경'의 하위 트리를 해금하다 보면 '투지 스킬 사용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없어지는 패시브를 얻을 수 있다. 이 스킬이 해금 된 후에는 연계의 변화 폭이 대폭 넓어지게 되는 식이다.

 

또 스킬 트리에는 보너스를 제공하는 패시브 스킬들 외에도 직접 등록하거나 특정 조작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각 무기 별 액티브 스킬들이 존재한다. 이 스킬들은 '투지'를 자원으로 사용하며 극적인 성능과 액션의 변화를 주는 역할을 한다.

 


 


 

충분하게 준비된 콘텐츠와 뛰어난 완성도의 보스전

인게임 볼륨은 충분하다. '설산 하인마흐' 등 모험할 수 있는 챕터(지역)가 총 16개 존재하고, 각 챕터 안에 메인 퀘스트와 여러 서브 퀘스트가 들어 있는 형태다. 지역마다 서브 퀘스트의 숫자는 상이하다.

 

메인 보스는 챕터와 동일하게 총 16종이 준비돼 있다. 몇몇 초반부 보스들은 (외형을 조금 바꾸고, 모션이나 패턴을 재사용 하긴 했지만) 중~후반부에 서브 퀘스트에서 중간 보스로 재등장하기도 한다.

 


 

게임의 초반부 경험은 좋은 의미로 무겁고 묵직하다. 도쿄게임쇼나 TCBT, 데모 버전 등 여러 번 초반부를 경험 했음에도 불구하고, 흔한 잔챙이들의 공격 하나하나마저 위협적이며 보스전도 마냥 쉽지만은 않다. 부족한 기력과 알 수 없는 패턴에 당하며 게임에 적응하는 시간이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역경을 이겨내며 실력이 향상되고, 어느 정도 장비와 스킬이 갖춰지며 게임의 흐름에 적응한 중~후반부터는 보다 액션이 경쾌하게 바뀌며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던전앤파이터'의 캐치프레이즈인 '액션 쾌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항아리 등의 수집품이나 귀석 찾기는 어느 정도 보이는 것만 획득하고, 서브 퀘스트를 전부 싹싹 긁어 먹으며(?) 플레이 한 초회차, 일반 난이도 기준으로 나는 50시간 가량이 걸렸다. 보스 공략에 고생하거나 수집품을 꼼꼼하게 찾는다면 조금 더 걸릴 수 있다. 곳곳에 숨겨져 있는 아이템들을 파밍하다 보면 맵은 꽤 넓게 느껴지며, 종종 전투 없이 이동하는 구간이 길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특별히 아쉽지는 않았다.

 

기본 볼륨 외에도 ▲더 높은 레벨과 등급의 아이템 ▲스킬 트리 공용 탭의 일부 스킬 레벨 제한 해제 ▲세 가지 엔딩 ▲초회차 엔딩 후 해금되는 외형 변경(아바타) 등 다회차 권장 요소들도 잘 갖춰져 있다. 플레이 타임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후 회차 플레이에서는 노하우가 쌓인 상태인 만큼 이보다는 줄어들 여지도 있다.

 


'룩덕질'이 가능한 '던파' 특유의 외형 변경 시스템도 잘 구현돼 있다. 2회차부터 가능하다.

 

작게는 맵부터 넓게는 챕터와 캐릭터 및 플레이어의 실력 향상까지 전반적인 레벨 디자인도 잘 다듬어져 있다. 순수 액션이 아닌 RPG 요소가 강하게 녹아 든 게임인 만큼 장비와 스킬, 스탯에 어느 정도 신경을 써주며 게임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실력 향상도 따라오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말루카'나 '스칼펠' 등 타 게임에서의 입국 심사 요원 내지는 선생님에 해당하는 보스들을 격파했을 때 특히 그렇다.

 

 

 

맵 탐험 과정에서의 경험은 '소울라이크'의 그것과 유사하다. 이리저리 꼬여 있는 맵을 돌아다녀 숏컷을 찾아내고, 당장 갈 수 없는 장소에 있는 아이템을 획득하는 등 전반적으로 유경험자라면 '그 맛이구나' 하고 느낄 수 있다. 또 나를 포함해 '소울라이크' 팬들이 좋아하는 독 늪이나 거대 철구와 궁수가 함께 배치된 테마파크, 좁디좁은 길과 방패병, 코너 옆 숨은 적 등의 공식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보스전에서의 경험은 매우 뛰어나다. 보스 저마다의 공략 방법이나 매력 포인트가 달라 도전하는 재미가 살아있다. 앞서 언급했듯 메인 보스는 16종이며, 이중 TCBT 등을 통해 직접 상대할 수 있었던 초반부 보스(예투가, 블레이드 팬텀, 바이퍼, 볼바이노)를 제외해도 그 뒤 준비된 분량과 퀄리티가 상당히 좋다. 보스 별로 보유한 특수 패턴의 공략도 몸으로 직접 부딪혀 가며 깨닫는, 말 그대로의 도전의 재미가 있다. 공식 채널을 통해 공개됐던 보스 외에 후반부에 어떤 보스들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비밀이다.

 

 

 

차별화 꾀한 3D 셀 애니메이션 렌더링, 그리고 준수한 최적화

'카잔'의 비주얼과 아트 스타일은 매우 만족스럽다. 비록 보유하고 있는 PC의 사양이 좋지 못해 최고 옵션으로 플레이 하지는 못했지만(최적화는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상당히 좋다.), 흔하고 일반적인 3D 그래픽이 아닌 3D 셀 애니메이션 렌더링으로 구현된 그래픽은 다시금 탁월한 선택이라는 감상이 들었다.

 

유혈 표현이나 캐릭터들의 표정 표현 및 모델링, 배경 등의 완성도가 뛰어나며, 개발팀이 원했을 '차별화'라는 방향성과도 잘 어우러진다. 세이브 포인트(귀검) 주위에서 다소 광원 효과가 과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게임 전반의 경험을 해칠 정도는 아니다. 대부분의 게이머들이 알고 있겠지만 모션 블러는 끄는 편이 훨씬 좋다.

 



평범하지 않은 비주얼은 만족도가 높았다.

 

최적화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거리가 있다. 최근 물리적 한계로 인해 하드웨어 발전의 속도가 더뎌지고 일명 '깡성능'의 정체 시기가 온 가운데, 프레임 생성이나 업스케일링 등의 소프트웨어적 기술로 이를 상쇄하는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 AAA 게임들의 최적화가 과거에 비해 부족한 이유가 DLSS 등의 기술 때문이라는 불만과 지적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카잔'은 매우 준수한 최적화를 보여준다. 상점 페이지 상 최소 요구 사항 지포스 GTX 970(낮음 옵션 1080p 30fps), 권장 요구 사항 지포스 RTX 2070(높음 옵션 1080p 60fps)로 표기돼 있는데 실기 플레이 또한 이에 부합한다.

 

비록 콘셉트 스크린샷을 촬영할 때를 제외하면 실기 플레이 때는 옵션을 타협해야 했지만, 수 세대 전 PC 스펙(인텔 i7-7700K, 지포스 GTX 1080 / AMD 라이젠 5 3500, 지포스 GTX 1050ti)으로도 FHD에서 큰 불편함 없이 플레이할 수 있었다. 4K에서의 플레이는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현역(?)인 PC 사양으로 플레이하는데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편의 기능 및 옵션과 관련해서도 짚고 넘어가자. 지난 체험기에서도 언급했듯, '카잔'이 '던파 유니버스'에서 차지하고 있는 포지션을 생각했을 때 '쉬움' 난이도의 도입은 매우 적절했다고 본다. 얼마나 쉬워지는지는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설명대로 액션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을 위한 난이도라면 입문에 부담은 없을 것 같다.

 

또 하나 칭찬하고 싶은 것은 거미 공포증 옵션을 도입했다는 것. 나는 곤충형 적을 매우 싫어해서 '엘든 링'을 하며 상당히 고생했기에 반가웠다. 데모 버전에서 키보드/마우스로 조작 시 락온한 적 전환이 마우스 휠 업 다운으로 고정돼 있었지만, 이 또한 선택지를 제공하는 형태로 개선된 점도 마음에 들었다.

 


거미 공포증 안전 모드를 켜면 거미 적들의 외형이 돌로 변경된다.

 

'던파'의 또 다른 매력 포인트, 수많은 캐릭터와 이야기들

원작 '던전앤파이터'와 유사하게 어두운 분위기로 설정된 세계관과 연출, 그리고 다른 곳으로 새어나가지 않으며 일관된 흐름을 유지하는 전개에도 호평하고 싶다.

 

자세한 이야기는 스포일러가 되므로 이번 리뷰에서는 밝힐 수 없지만 메인 스토리의 전개는 정석적인 복수극을 따르며, 주요 장면에서는 더빙과 연출을 더해 이해하기 쉽도록 했다. 또 '카잔'과 함께 복수극을 소화해낸 플레이어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는 에필로그도 준비돼 있다.

 

다만 메인 퀘스트를 이루고 있는 주요 사건들, 서브 퀘스트에서 다루는 이야기의 진행 방식이 다소 획일화된 느낌을 주는 점은 아쉽다. 메인 스토리의 복수극이라는 주제가 큰 변주를 주기 어려운 만큼 어느 정도 결말이 예상되는 면도 있다. 그러나 '복수'라는 행위에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한 장치들인 만큼 게임에 크게 흠이 날 정도의 단점은 아니다.

 

사실 '던전앤파이터' 하면 대표적으로 액션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나 또한 '카잔'을 플레이 하기 전까지는 그랬었다. 하지만 플레이 한 뒤에는 이 세계와 설정, 인물과 스토리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기고 '던파 유니버스' 공식 홈페이지를 뒤적거리는 흥미로운 경험을 했다.

 

개발진이 의도한 바가 이런 것이었을 테다. '던전앤파이터' IP를 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경험하게 하는 것. 세계관과 설정, 스토리와 캐릭터들도 '던전앤파이터'가 가진 매력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리는 것.

 




나 또한 '그렇게 되기를' 소망하며… 팬들에게 선물 같은 '시리즈'가 되길

넥슨과 네오플은 그동안 '던전앤파이터' IP를 기반으로 한 세계관 확장, 설정 구축을 지속하며 여러 시도를 해왔다. '던전앤파이터 모바일'은 원작의 핵심 게임성을 계승하면서도 여러 새로운 개선점들을 적용하면서 주요 게임으로 자리를 확고히 잡았고, 'DnF Duel'은 '던전앤파이터'의 특유의 액션성을 기반으로 대전 격투 게임까지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해냈다. '던전앤파이터: 아라드'나 '프로젝트 오버킬' 등의 신작들도 개발되고 있다.

 

'카잔'은 이러한 '던파 유니버스', '던전앤파이터' IP의 확장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게임이며, 단순한 '던전앤파이터' IP 기반의 또 다른 하나의 게임이라는 평가에 안주하지 않는다. 주인공 '카잔'은 작중 '펠 로스' 제국군을 이끄는 핵심 인물이자 대장군이었다. 이처럼 게임 '카잔'은 '던파 유니버스' 확장의 최전선에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정말 '대장군'과도 같은 중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카잔'이 최초로 공개될 당시 프로젝트명은 '프로젝트 AK'였다. 인터뷰를 통해 공개된 AK의 뜻은 '아라드 크로니클'로, '카잔'에는 '아라드 크로니클'을 계속 써 내려갈 것이라는 의지가 담겼다는 설명이다. 내가 엔딩을 봄으로서 '카잔'이라는 인물의 여정은 끝났지만 '던파 유니버스'의 본격적인 여정은 이제 시작인 셈이다.

 

지난해 '지스타 2024' 현장 인터뷰에서는 '카잔'의 다음을 말하기에는 이르다고 들었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이 게임이 '카잔' 단일 타이틀로 끝나면 너무 아쉬울 것 같다. 마땅히 DLC나 후속작('퍼스트 레인저' 라든가...)이 나오며 '던파 유니버스'의 핵심축으로의 선봉장이자 개척자 역할을 해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럴 만한 자격과 퀄리티도 충분했다.

 

'카잔' 외에 또 다른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며 '던전앤파이터' 팬들, 액션 게임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선물 같은 '시리즈'가 되었으면 한다. 나 또한 윤명진 대표의 말처럼 '그렇게 되기를' 응원하고 또 소망해 본다.

 

우리나라 게임업계에서도 골드행(GONE GOLD) 사진을 찍을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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