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리뷰 내용 중에는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의 내용을 상세하게 설명, 해설하는 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품을 아직 안 보신, 스포일러를 피하려는 분들은 먼저 극장에서 작품을 본 뒤에 기사를 보시기 바랍니다.
** 아래 스틸컷들은 보도를 위해 이십세기폭스코리아가 배포한 것입니다.
'아이언맨'을 시작으로 '어벤져스'에 이르기까지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들이 제대로 꽃피기 전, 마블 코믹스 원작 영화의 간판은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과 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맨'이었다.
히어로 무비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고 있던 시절, 2000년에 나온 엑스맨과 2003년의 '엑스맨2'는 뮤턴트라는 비현실적 소재를 다루면서도 풍부한 메타포로 이전까지와는 다른 현실에 발을 디딘 히어로 무비를 보여주는데 성공했다.
그 후 브라이언 싱어는 엑스맨 차기작을 앞두고 평생의 숙원이던 '슈퍼맨 리턴즈'를 선택해 엑스맨 프랜차이즈에서 멀어졌고, 그 사이 엑스맨 프랜차이즈는 여러 감독의 손을 전전하며 '엑스맨-최후의 전쟁', '엑스맨 탄생: 울버린', '더 울버린' 등의 흑역사를 이어가며 그 명성에 빛이 바랬다.
브라이언 싱어가 원안과 제작을 맡고 매튜 본이 감독한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로 시리즈를 리부트하며 새로워진 모습을 보여줬으나 엑스맨 프랜차이즈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11년만에 직접 엑스맨의 감독으로 돌아온 브라이언 싱어는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로 이 혼란의 흑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마치 '건담'에서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이 '턴에이 건담'으로 모든 건담 시리즈를 긍정했던 것처럼, 과거와 미래의 모든 마법소녀에게 희망의 우주를 선사한 마도카처럼 말이다.
시간여행을 통해 엑스맨의 세계를 통합하다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서, 머지않은 미래에 센티넬이란 대 뮤턴트 병기에 의해 뮤턴트들은 멸종 위기에 처한다. 뮤턴트가 아닌 사람들의 세계도 폐허가 된다. 처음에는 뮤턴트만을 노리던 센티넬들이 장차 뮤턴트를 낳을 평범한 부모를, 그들을 도울 사람들을 차례차례 사냥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마르틴 니뮐러의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처럼 소수자에 대한 억압을 방관한 것이 결국 사회 전체에 대한 억압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 디스토피아에서 프로페서X의 엑스맨과 매그니토의 브라더후드는 손을 잡는다. 잘못 꿴 과거의 첫 단추를 바로 잡기 위해서 말이다. 키티 프라이드의 뮤턴트 능력을 통해 울버린은 50년의 세월을 거슬러 1973년 센티넬 프로젝트가 시작되던 해이자 베트남전이 종전되던 해로 시간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번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동명의 원작 코믹스를 토대로 했다. 하지만 시간여행을 하는 주인공은 울버린으로 바뀌었으며 이동하는 해는 베트남전이 끝나는 1973년으로, 목적 역시 켈리 의원 암살 저지에서 센티넬 프로젝트 저지로 바뀌는 등 적극적인 각색이 이루어졌다.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를 영화화하기 위해 브라이언 싱어는 '터미네이터2: 심판의 날'의 창조주인 제임스 캐머런의 조언을 얻었다고 한다. 이는 미래에서 온 울버린의 첫 등장이 알몸이라는 소소한 오마쥬부터, 각각 사라 코너와 프로페서X의 대사로 등장해 영화 전체를 관통한 "미래는 결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테마에 이르기까지 시간여행물로써 터미네이터2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시간여행물로 완성된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브라이언 싱어가 직접 감독했던 1, 2뿐 아니라 그의 손에서 멀어졌던 후속작들과 외전에 이르기까지 모든 엑스맨을 하나의 세계관으로 대통합하려는 대담한 시도를 했는데, 사이먼 킨버그의 세심한 각본과 브라이언 싱어의 우아한 연출로 훌륭하게 목표한 바를 이루어 냈다.
자칫 잘못하면 구멍투성이가 되거나 각본을 잘 썼더라도 미숙한 연출로 자기들끼리만 알아먹을 수 있는 영화로 전락하기 십상일 터인데, 이 함정들을 능숙하게 비켜갔다.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의 교통정리를 통해 기존의 엑스맨 시니어 멤버들은 하나의 행복한 세계를 맞이하며 매듭을 짓게 되었고,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로 리부트된 시점부터 같지만 새로운 엑스맨의 이야기가 확장될 수 있게 되었다.
제3의 방법론과 자유의지
엑스맨 탄생: 울버린의 스리마일 원전 사고,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의 쿠바 핵미사일 위기에 이어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서는 JFK 암살과 베트남전이라는 현실의 역사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는 엑스맨이 사회의 소수자, 특히 성적 소수자의 메타포로 자주 쓰여 현실 문제와는 불가분의 관계인 영화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 감독인 브라이언 싱어와 매그니토 역의 이안 맥컬렌, 키티 역의 엘렌 페이지 등 상당수 참여자들은 커밍아웃한 게이이다.
나아가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소수자들이 사회에 저항하는 방법론의 충돌을 그리고 있다. 이는 엑스맨의 찰스와 에릭의 실제 모델이라고 알려진 마틴 루터 킹과 말콤X의 예를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미국 흑인 인권 운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두 사람이지만 성장 과정과 그 방법론은 판이하게 다르다.
부유하게 자라 백인 이웃들과 원만한 관계로 자란 킹과 불우한 환경에서 KKK단에게 가족을 살해당한 말콤X는 사회를 바라보는 시점과 생각해낸 해결책이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온건주의와 급진주의는 두 사람 이전에도 간디와 네루처럼 비폭력 무저항주의와 무력에 의한 저항으로 드러나곤 했다. 기본적으로 엑스맨 시리즈의 프로페서X와 매그니토는 각각 이들의 입장을 대변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기존의 이 입장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바로 미스틱의 존재를 통해서이다.
클라이막스 부분에 이르러 백악관에서 닉슨과 마주친 미스틱은 비폭력 융화의 길을 걷는 찰스와 폭력 혁명을 부르짖는 에릭 사이에서 제3의 길을 택한다. 닉슨 대통령으로 변신한 미스틱은 TV카메라가 지켜보는 가운데 매그니토 앞에 맞서는 모습을 보이고, 결국 닉슨 대통령과 센티넬 프로젝트를 만든 트라스크 둘 다 죽이지 않는다. 대중 앞에서의 이미지 관리와 깰 수 없는 비밀로 상대가 빚을 지게 함으로써 일종의 가위 바위 보처럼 서로를 견제하는 형태를 만들어 낸다. 이런 현실정치적인 해결책은 최근 미국에 공개되어 좋은 평가를 얻고 있는 '설국열차'처럼 길밖에도 길이 있음을 보여준다.
또 인간과 뮤턴트의 공존을 강요에 가까운 당위로만 주장하던 찰스가 미스틱에게 미래를 위한 선택을 온전히 맡기는 장면은 브라이언 싱어의 또다른 히어로 무비 슈퍼맨 리턴즈를 강하게 떠오르게 만든다. 슈퍼맨 리턴즈에서 캐서린이 크립토나이트를 스스로 버리는 장면과 로이스가 스스로 담뱃불을 끄는 장면처럼,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의 미스틱이 보여준 선택은 아무리 고매한 이상이더라도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결정해야만 의미가 있다는 것을 웅변한다. 이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 더 나은 미래를 만든다고 말이다.
대담한 세계관 통합과 심도 있는 함의들뿐 아니라, 과거를 현재를 아우르기 때문에 등장하는 화려한 풀 캐스팅, 퀵실버와 블링크로 보여주는 재치있는 액션의 재미까지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어벤져스와는 또다른 형태로 히어로 무비 프랜차이즈가 펼쳐낼 수 있는 한 정점을 보여주었다.
쿠키 영상에 등장한 고대 이집트를 통해 차기작이 1980년대를 다룰 '엑스맨: 아포칼립스'라는 것을 천명한 브라이언 싱어. 진정한 새출발을 시작한 엑스맨 프랜차이즈가 어떤 도약을 보여줄 수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 본문의 내용은 게임포커스 리뷰어 Sion님이 기고하신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리뷰를 가필, 수정한 것으로 게임포커스 편집부의 편집 방침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필자 프로필
닉네임 Sion. 영화, 서브컬쳐 칼럼니스트.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지만 덕후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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