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남자를 불타오르게 하는 것들이 있다. 새로 출시된 고성능 전자제품이나 어여쁜 여자 아이돌 그룹, 평생 일해도 살 수 없을 것 같은 고가의 자동차나 화끈한 화력의 훌륭한 대화수단, 술 한 잔 걸친 여자 친구의 '라면 먹고 갈래?' 등등.
그 중에서도 남자라면 '메카닉'을 빼놓고는 불타오름에 대해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용자왕 가오가이가'와 '천원돌파 그렌라간'으로 대표되는 열혈 메카닉물은 남자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든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렇다면 '미소녀'는 어떤가? 미소녀는 그야말로 일본을 대표하는 문화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매년 셀 수 없을 정도로 미소녀가 등장하는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어떤 주제의 작품이라고 해도 미소녀는 늘 등장하기 마련이다. 미소녀를 좋아하는 남자들도 셀 수 없이 많다. 아닌 척 하는 사람도 있지만, 누구나 좋아하는 캐릭터가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여기 남자를 불타오르게 하는 메카닉과 미소녀, 두 가지가 만난 모바일게임이 있다. 넥슨에서 지난 9월 20일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M.O.E'(Master Of Eternity, 이하 '모에')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얼핏 생각하기에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메카닉과 미소녀의 조합으로 완성된 '모에'를 직접 플레이 해봤다.
'모에'는 정말 '모에' 한가?
'모에'는 정식 서비스 전부터 미소녀와 메카닉의 이색적인 조합으로 화제를 모았던 게임이다. 기본적으로는 메카닉을 활용한 SRPG의 성격을 띄고 있지만, 마치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을 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호감도 시스템과 화면 연출도 보여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다소 오글거린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연출적인 측면에서 기존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의 틀을 잘 따르고 있다. 처음 정한 함장의 이름이 자막에 줄곧 나오며 유저가 게임 속 주인공에 동일시 할 수 있게끔 한다거나, 성우의 더빙을 통해 몰입감을 높인다거나, 함장이 미소녀에게 맞을 때 화면이 흔들리거나, 미소녀의 대사에 맞춰 표정이 변하는 등 기존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의 연출을 충실히 보여주고 있다.
또, 다양한 미소녀와 의상이 준비되어 있어 유저의 수집욕을 자극한다. 스토리를 진행하거나 특정미션을 완수하면 미소녀를 얻을 수 있고, 호감도를 올리면 반응이 달라진다거나, 의상을 선물해 입혀줄 수도 있다. 호감도를 채운 후에는 미소녀 개인의 에피소드가 열리고, 모든 에피소드를 완료하면 각성과 함께 스킬도 얻을 수 있다. 사실상 스토리를 완료하고 나면, 미소녀 개인의 스토리를 열고 의상을 수집하는 것이 주요 콘텐츠가 되는 것.
특히, VR 모드만큼은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VR 기기가 없어 경험해 볼 수는 없었지만, 미소녀가 등장하는 게임이므로 충분히 유저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모에'의 흥행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요소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VR 모드를 탑재했다는 시도 자체를 높게 평가하고 싶다.
한마디로 '모에'는 넥슨의 미소녀에 대한, 또 주 소비층인 오타쿠에 대한 고민과 나름의 해답이 엿보이는 게임이다. 같은 메카닉과 미소녀 조합을 선보인 '여신의 키스'의 캐릭터들이 상대적으로 더 '모에'하다는 유저들의 평이 있지만, 어느 정도 개인의 취향이 반영될 수 있는 만큼 어느 게임의 미소녀가 더 '모에' 한지는 주관에 맡겨두도록 하자. '모에'가 내놓은 해답이 정답은 아닐 수 있지만, 고민한 흔적은 게임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모에'는 '모에' 나름대로 '모에'하다.
전략도 합격점, '모에'의 전투 시스템은?
'모에'의 기본적인 전투 시스템을 보면, 자연스레 기존의 유명 SRPG인 코에이의 '삼국지 조조전'이나 리부트된 '엑스컴' 시리즈, '창세기전' 시리즈 등을 떠올리게 된다. 기자가 첫 전투에서부터 '엑스컴' 시리즈를 떠올린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SRPG의 기본에 충실했다는 이야기다.
바둑판 형식의 필드에서 턴제로 전략을 주고받는 식의 장르는 사실 오래 전부터 있던 방식이다. 그러나 성공적으로 리부트를 마치고 마니아층을 형성한 '엑스컴' 시리즈나 출시된 지 20년 가까이 된 고전 명작 '삼국지 조조전'이 모바일게임으로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 턴제 전략 시뮬레이션은 현재까지도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장르임에는 확실하다. '모에'의 선택은 천편일률적 자동전투가 아닌 체스와 같은 턴제 전략이었고, 충분히 성공적이었다.
최근 출시되는 모바일게임, 특히 RPG에는 유저 편의를 위한 자동전투 시스템이 거의 대부분 탑재되어 있다. 모바일게임을 주로 플레이 했던 유저라면 '모에'의 약간은 불편한 턴제 전투 시스템이 낯설게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사람이 게임을 하는 시간 보다 자동전투가 게임을 하는 시간이 더 많은 게임들 사이에서 '모에'의 선택은 더욱 빛난다.
특히, 이 부분에 대해서는 비슷한 출시 시기와 콘셉트를 가진 게임 '여신의 키스'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 돌직구 기사에서 기자는 '여신의 키스'를 플레이 하면서 체스나 장기처럼 효과적인 위치를 선정해 전투를 벌이는 전략 구성 방식은 좋았지만, 결국 기본 전투가 자동으로 진행되고 유저가 전투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부분이 매우 적어 아쉬움을 느꼈다고 평했었다.
그러나 '모에'는 기존 SRPG의 구성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며, 일반 전투를 진행할 때는 자동전투가 지원되나 스토리 전투를 진행할 때는 자동전투를 사용할 수 없어 전투는 오로지 유저의 선택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 최근 자동전투가 어떤 방식으로든 대부분 탑재되어 출시되는 것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차별화를 꾀한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장르 비중의 시소타기
기자는 '여신의 키스' 돌직구 기사(기사 바로가기)에서 게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메카닉과 미소녀의 비중이 다소 미소녀 쪽으로 치우쳐 아쉬웠다는 평을 한 바 있다. '모에'는 이러한 부분에서 밸런스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미소녀 '픽시'를 해금하고 의상을 모아 VR 모드로 감상하거나 '픽시'의 개인 에피소드를 즐기는 것이 주 콘텐츠 중 하나라면, 메카닉을 활용한 정통 SRPG의 전략적 재미를 충실히 따르고 있는 전투가 콘텐츠의 다른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전투뿐만이 아니라 메카닉의 디자인적인 측면에서 '여신의 키스'보다는 '모에'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낮은 등급의 기체들은 다소 심심하긴 하지만, (그래픽 때문에 조금 아쉽긴 해도) 등급이 오를수록 정성이 느껴지는 디자인을 하고 있다. 그만큼 메카닉이면 메카닉, 미소녀면 미소녀로 지나치게 치우치지 않은 비중을 보여주고 있다.
이색적인 장르의 조합, 취향을 일깨우다
게임포커스에서 진행했던 '모에' 개발자와의 인터뷰(관련기사 보기)에서 김미희 PM은 "미소녀와 메카닉, SRPG라는 세 장르를 동시에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걱정"이라고 토로한 바 있다. 맞는 말이다. 세 장르를 동시에 좋아하는 사람은 찾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세 장르가 합쳐진 게임인 만큼, 각각의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이 '모에'를 해볼 여지는 있다. 메카닉을 좋아하던 사람이 게임을 하면서 미소녀의 아름다움에 눈을 뜰 수도 있고, 미소녀를 좋아하던 사람이 SRPG 고유의 전략적 재미를 알게 될 수도 있다.
또, 대중적이지는 않더라도 각 장르의 마니아들을 붙잡아둘 수 있다면 충분히 성공이다. 실제로 '모에'의 현재 매출 순위는 40위권 내에 머무르고 있어 다른 게임들에 비해 엄청 높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 '모에'의 순위는 각 장르의 마니아들이 모여 만들어낸 의미 있는 순위이다.
결과적으로 세 장르를 모두 좋아하는 유저만 모으는 게 아니라, 셋 중 하나라도 좋아하는 유저라면 '모에'의 유저로 만들어보자는 '모에' 개발팀의 전략은 적중했다.
이런 장르도 유저들에게 충분히 '먹힌다'는걸 보여준 '모에'
한마디로 총평하자면 '모에'는 꽤 잘 만든 미소녀 메카닉 SRPG이다. 정통 턴제 전략 시뮬레이션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전투와 '덕심'을 자극하는 미소녀들, 오타쿠들의 통장 잔고를 노리는(?) 라이트 노벨 출간과 음원 출시 등 각종 마케팅까지 두 장르와 주 소비층에 대한 고민과 전략도 충분히 느껴진다.
새로운 도전에는 늘 시행착오가 따른다. '모에'는 얼핏 생각하기에 잘 어울리지 않는 메카닉과 미소녀라는 조합으로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충분히 의미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더욱이 국내에서는 시도된 적 없는 두 장르의 결합이었기에 그 의미가 더 크다.
'모에'는 출시 직후 이름을 올렸던 순위에 비해 다소 낮아졌지만 낙담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조금은 마니악하다 여겨지는 메카닉과 미소녀, SRPG 장르의 조합으로 이 정도의 성과를 낸 것은 고무적이다. '모에'와 '여신의 키스'가 이런 장르도 충분히 '먹힌다'는 보여준 만큼, 앞으로도 독특한 장르의 조합이나 미소녀가 자주 등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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