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리뷰 내용에는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의 일부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품을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은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스타워즈가 돌아왔다. 스타워즈의 창조자인 조지 루카스로부터 프랜차이즈를 인수한 디즈니는 J.J.에이브럼스 감독을 고용, 2015년 새로운 세대의 이야기인 '깨어난 포스'를 만들어 역대급 흥행에 성공한 바 있다. 그 뒤를 이은 것이 스타워즈 영화 시리즈 최초의 스핀 오프인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이하 로그 원)'이다.
스핀 오프의 첫 작품인 로그 원은 스타워즈 시리즈의 기원인 에피소드 '새로운 희망' 직전을 다룬 이야기이다. '왕의 남자'가 조선왕조실록 연산군편의 한 줄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던 것처럼, 로그 원 역시 스타워즈 시리즈의 전통인 오프닝 크롤에 쓰인 '전투 와중에 반군 첩보원은 제국의 절대적인 무기인 데스스타의 비밀설계도를 가까스로 훔치는 데 성공했다.'로부터 시작된 것. 훗날 로그 원이 되는 루크 스카이워커와 반군 연합이 어떤 희생을 통해 데스스타를 파괴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프리퀄이라고 할 수 있다.
디즈니는 루카스필름을 인수하며 이전에 전개되었던 스타워즈 프랜차이즈 사업 중 영화 시리즈를 제외한 EU(Expanded Universe) 등 기존에 출시된 스타워즈 작품 거의 대부분을 레전드란 이름 하에 비공식화 하고, 오직 정식 넘버 영화만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프랜차이즈 전개를 선언한 바 있다.
디즈니는 에피소드 7인 깨어난 포스를 시작으로 에피소드 9까지의 시퀄 3부작과 로그 원을 시작으로 한 솔로, 보바펫 등 스타워즈 앤솔로지라는 이름의 스핀 오프 작품을 번갈아 낼 예정이다. 그런 만큼 시퀄 3부작은 기존 시리즈를 잇는 전통을 유지하겠지만, 앤솔로지의 경우 기존 스타워즈에서 벗어난 다른 시도로 새로이 세계관 확장에 나설 것이라 예견되어 왔다.
그 첫 작품인 로그 원은 시작부터 스타워즈의 전통을 거스른다. 상징과도 같았던 오프닝 크롤은 사라졌고 오프닝 타이틀도 바로 나오지 않으며 제다이 역시 등장하지 않는다. 로그 원은 공화국이 무너지고 제국이 성립되는 시간 동안 전설 속으로 사라진 제다이의 빈 자리를 일반 병사들의 역사로 메웠다.
고질라(2014)를 헐리웃에서 훌륭하게 리부트했던 신예 감독 가렛 에드워즈는 로그 원의 메가폰을 잡았을 때, 주인공 일행이 데스스타 설계도를 훔치는데 주력하는 '케이퍼 무비'였던 초고를 수정해, 스타워즈 세계관 안의 전쟁영화를 표방하는데 주력했다고 한다. 이러한 방향으로 선회하며 로그 원은 극단적인 장단점을 갖게 되었고, 스타워즈 시리즈 중 문제작이 될 소지를 안게 됐다.
우선 가장 큰 장점은 스타워즈 영화에서 '전쟁'이 벌어진다는 점이다. 기존 스타워즈에서도 전쟁 장면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주인공인 제다이와 시스가 등장하면 곧 전투는 결투가 되어버리곤 했다. 액션 클라이맥스 역시 1대1 혹은 1대2의 결투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스타워즈 세계관 안의 전쟁 영화를 표방한 로그 원은 일반 병사들의 전투라는 면에서 인상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스카리프 상공에서 벌어지는 스타 디스트로이어와 반군 함대의 결전과 동시에 지상에서 펼쳐지는 스카리프 해안 백병전은 그 전투의 클라이맥스다.
시대 상황상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제국군의 전략적 시점과 그 압도적인 힘을 막기에 급급한 전투 현장의 반군 시점의 대비 역시 잘 그려내고 있다. 대표적으로 데스스타의 비공식 시험 사격으로 몰락한 제다이의 성지인 제다를 폭격한 장면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고요하게 대기권을 뚫고 피어 오르는 버섯구름을 보고 아름답다고 읊조리는 크레닉 국장과, 버섯구름에 지평선이 사라져 튀어 오른 작은 바위덩이 하나에만 깔려도 죽게 생긴 진 어소 일행이 나오는 장면 말이다. 이 스케일의 차이로 인한 압도감은 스카리프 전투 시 반군 병사 입장에서 올려다 볼 수밖에 없는 AT-ACT에서도 느낄 수 있다. 로그 원에 앞서 고질라(2014)를 성공적으로 리부트 해냈던 가렛 에드워즈답게 마치 괴수 앞에 선 일반인의 무력함과도 같은 현장감을 잘 그려냈다.
캐릭터 표현에 있어서도 기존 스타워즈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들을 만들어냈다. 영화 도입부에서 데스스타 설계도 유출에 대한 정보가 새어나갈 것을 우려한 카시안이 제국군에게 잡힐까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정보원을 등 뒤에서 쏴 죽인다.
더 이상 스타워즈에서 반군은 어린 시절에 보아온 정의의 사도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선언과도 같은 장면이다. 반군뿐만 아니라 제국군 안에서도 성과 가로채기와 충성 경쟁이 횡행하는 모습을 보인다.
크레닉에게서 데스스타를 가로채는 타킨은 현재 우리 사회를 보는 듯 한 모습이다. 반군 연합에도 극단주의자들부터 합종과 연횡을 제각각 외치는 여러 정치 세력이 존재하고 제국군 내에도 변절자뿐 아니라 여러 라인 권력 다툼을 하고 있다는 점을 내보이며 여태까지 스타워즈가 가지고 있던 것과는 다른 종류의 사실성을 부여했다. 이는 스타워즈 세계관의 확장이란 면에서 기여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이 확장이 긍정적이기만 한지는 의문이다. 이 확장을 위해 각본의 개연성과 캐릭터를 훼손한 부분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극단주의자라지만 반군이었던 쏘우 게레라가 겔렌 어소의 메시지를 들고 제국에서 귀순한 제국 화물선 파일럿 보디 룩을 고문하는 장면을 보자. 쏘우 게레라는 포로가 아니라 귀순이라는 의사를 명확히 밝힌 보디 룩을 이미 메시지가 든 메모리까지 건네 받은 시점에서 자칫 사람을 미치게 만들 수도 있는 보 걸렛의 촉수로 고문한다.
이 장면은 새로운 희망의 한 장면과 오버랩 된다. 바로 다스베이더가 레아 공주를 고문하는 장면이다. 베이더는 무력으로 침탈한 외교선에서 제국 의회 의원인 레아 오르가나를 강제로 구속한 것도 모자라, ITO인터로게이터로 자백을 유도하기 위한 고문을 한다. 제국군의 악독함을 단 한 장면으로 느낄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그런데 그 이전 시간대인 로그 원에서 제국군과 다를 바 없는 무자비한 고문을 반군도 이미 행하고 있었다면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심각하게 말해 둘 다 같은 도덕 수준이라면 은하 내전을 반군의 입장에서 봐야 할 필요가 있나 싶기까지 하다. 어느 쪽에도 명분이 없다면 오히려 더 강한 제국을 지지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이야기로 확장될 수도 있는 부분이기에 더 조심스러워야 하지 않았나 싶다. 초고에서는 보 걸렛에게 촉수로 고문당할 캐릭터가 진 어소였다고 하니, 불필요함을 넘어 여러 면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는 장면인 것 같다.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와 장면들을 이상한 방향으로 뒤틀 우려가 있는 장면은 또 있다. 스카리프 전투에서 절반의 승리와 데스스타의 설계도를 기어코 쟁취해낸 반군은 어렵사리 이를 레아에게 전달하고, 반군 기함에서 분리된 외교선 탄티브IV는 전장을 탈출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이 대단원은 다음 에피소드이자 스타워즈 전설의 시작인 새로운 희망의 오프닝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이야기의 흐름이 이상해진다.
우선 레아 오르가나라는 반국 연합과 제국 의회 최중요 요인의 외교선인 탄티브IV가 급작스레 결정된 스카리프 타격의 반군 기함에 왜 실려있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깨어난 포스에서 황제의 죽음으로 신 공화국이 성립되어 세력이 군벌 수준으로 줄어든 구 제국 잔당인 퍼스트 오더에 대해 군사적 대비를 해온 일종의 매파 포지션인 레아의 캐릭터에는 맞는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전개대로라면 자료를 보관하는 아카이브로서 일종의 후방 기지인 스카리프를 반군은 공식적으론 실체조차 불분명했던 데스스타를 저지하기 위해 명확한 증거도 없이 선제적으로 덮어놓고 군사 도발을 한 셈이 된다.
어쨌든 데스스타는 실제로 존재했고 설계도도 있었으니 군사 도발 자체는 넘어간다고 치자. 그런데 그 전투를 치른 군함에서 분리되어 나간 탄티브IV를 제국군과 반군 모두 뻔히 보고 있었는데 외교선 이라고 우기는 것은 아무래도 모양새가 빠진다. 심하게 말하면 레아는 주차된 스카리프 들이받고 뺑소니치던 외교잡범 수준으로 격하되는 것이 아닌가? 이래서는 만에 하나 레아가 데스스타 설계도를 제국 의회에서 폭로했더라도 역풍을 맞았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새로운 희망의 인트로의 의미가 이상하게 뒤틀린다. 면책특권의 외교선조차 함부로 수색하는 악독한 제국과 이를 이용해 데스스타 설계도를 빼내려고 했던 영리한 반군이란 도식이 깨지게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다스베이더의 추격과 수색에 정당성만 부여하는 꼴이다. 새로운 희망으로 이어지는 장면에 집착한 나머지 억지스럽게 끼워 맞춘 결과가 아닌가 싶다.
세계관 설정뿐 아니라 캐릭터의 일관성도 떨어지는 부분이 많다. 기존에 소개되지 않은 캐릭터들과 배경이 한꺼번에 등장해 지나치게 잘게 편집된 초반부는 그렇다고 치자. 재촬영 이슈 때문에 이렇게 난삽해진 건지 혹은 반대로 덕분에 이만큼이라도 된 건지 헷갈리지만 진 어소를 비롯한 주인공 일행의 캐릭터 변화는 납득하기 어려운 면이 많다.
대표적으로 반군의 이두 폭격 이전과 반군 연합 평의회 이후를 기점으로 갑자기 변화한 진 어소의 캐릭터는 어리둥절했다. 진 어소 입장에서는 십 수년간 헤어졌던 아버지를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도 반군이고 결과적으로 겔렌을 죽인 것도 반군의 폭격이다. 그런데 진 어소는 그 직후 열린 반군 연합에서 평의회 구성원들조차 반군을 해체하자는 마당에 희망을 역설하며 싸울 것을 결의하니 말이다.
영화 내내 은하 내전과 정치 상황에서 눈을 돌리고 살겠다고 직접적으로 밝혀온 진이 반군의 전쟁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사람으로 돌아설만한 계기가 보이질 않는다. 오히려 진 어소는 좀 더 반군에 대한 증오를 표출할만한 타이밍이었으니 반군을 떠났다가 어떤 계기를 통해 다시 돌아오거나, 데스스타 파괴는 아버지의 유지인만큼 어쩔 수 없이 협력해 주겠다며 반군의 작전에 가담하는 정도여야 앞뒤가 맞다.
캐릭터 낭비도 이해하기 힘들다. 후반부에 모조리 다 죽어나가는 주인공 일행이야 그렇다 치지만, 직전까지 고문도 불사하며 '제국 털기'에 혈안이 된 쏘우가 대체 왜 갑자기 그냥 죽으려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진 어소와 탈출을 거부하고 거기서 일부러 죽는 것은 깨어난 포스에서 막스 폰 시도우라는 걸출한 배우를 데려와 놓고 시작하자마자 죽인 것과 다를 바 없는 캐릭터 낭비가 아닌가 싶다.
또한 원래 연기 했던 배우가 이미 사망한 몇몇 캐릭터의 경우 다른 배우가 연기를 하고 얼굴 부분만 원래 배우의 얼굴 CG로 복원했다. 추후에 다른 디즈니 영화에도 쓰일 수 있는 새로운 캐릭터 표현을 시험한 듯하지만 그리 성공적이지는 못 했다. 가뜩이나 40여 년 전 만들어진 새로운 희망과의 톤을 맞추기 위해 고전적인 미술 표현에 주력한 로그 원에서 CG 캐릭터에 가까운 타킨은 아무래도 어색해서 튀어 보인다.
스타워즈를 본 적 없는 관객도 즐길 수 있다는 국내 홍보는 고육지책이었겠지만, 로그 원은 적어도 바로 이어지는 새로운 희망, 사실상 스타워즈 캐넌 전체를 모르면 이해하기 힘든 영화이다. 예를 들어 야빈4의 반군 기지에서 베일 오르가나가 어둠 속에서 무게감 있게 등장하는 의미심장한 연출은 팬들 입장에선 반갑기 짝이 없지만 스타워즈를 본 적 없는 사람 입장에서는 왜 저런 연출을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기괴한 장면일 뿐일 것이다.
다소 답답한 캐릭터 메이킹을 거듭하던 로그 원은 역시 다스베이더가 해결해낸다. 스카리프 전투가 끝난 찰나, 다스베이더의 기함인 데바스테이터가 하이퍼 스페이스로 등장한다. 그대로 반군 기함에 승선한 다스베이더가 붉은 라이트세이버로 반군들을 무참히 도륙하는 장면은 이때까지 전쟁 영화였던 로그 원의 장르를 호러 영화로 바꿀 정도의 임팩트를 선보였다. 스타워즈의 팬이라면 이 장면만으로도 로그 원을 볼 가치는 충분했던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스타워즈 세계관에 매력을 느낄 수 있었던 큰 이유 중 하나는 아주 먼 옛날 은하계 저편에서 벌어지는 복잡다난한 가족 드라마와 공화국 말기의 정치적 혼돈을 '라이트사이드'와 '다크사이드'라는 간결하고 명확한 이분법으로 분류해놓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나뉘어 적어도 겉모습은 이해하기 쉬운 종교가 현재까지 살아남았던 것은, 어쩌면 스타워즈가 살아남은 이유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로그 원은, 나아가 스타워즈 앤솔로지는 이 중간에 이른바 어른스럽고 현실적인 회색지대를 만들려는 시도를 했다. 시도는 환영한다. 하지만 그 결과가 충분히 성공적이지 못한 듯하여 아쉽게만 느껴진다.
*** 본문의 내용은 게임포커스 리뷰어 Sion님이 기고하신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의 리뷰를 가필 및 수정한 것으로, 게임포커스 편집부의 편집 방침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필자 프로필
닉네임 : Sion
영화, 서브컬쳐 칼럼니스트.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지만 덕후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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