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출시 이후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스팀스파이에 따르면 10월 10일을 기준으로 컵헤드의 판매량은 약 47만 장이다. 이는 900만 달러로 원화 103억 원에 해당하는 수익을 올린 것이다.
몰덴하우어 형제는 이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 집을 담보로 걸 정도로 게임에 모든 것을 걸었고 그 도박은 결국 성공으로 이어졌다. 이 때문에 유저들은 개발자들이 마치 게임에서처럼 악마와 계약을 한 것이 아니냐는 우스개소리를 하기도 했다. 물론, 딘 타카하시의 게임플레이가 게임에 대한 관심을 끌어 모으는 데 어느정도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게임 자체가 플레이어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면 아마도 이런 판매량을 달성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제는 비주류로 취급 받는 2D 횡스크롤 슈팅 액션 장르에 쉽지 않은 난이도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열풍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권선징악을 비트는 참신한 스토리
어느 날 카지노에 도박을 하러 간 컵헤드 형제, 승승장구하던 그들 앞에 악마가 나타나 매력적인 거래를 제안한다. 이기면 카지노 전체를 받고, 패배하면 영혼을 빼앗기는 한판 승부, 결과는 당연하게도 악마의 승리였다. 영혼을 담보로 악마의 일수꾼 일을 맡아서 하게 된 형제는 할아버지가 준 마법 포션의 힘으로 채무를 청산하고 종국에는 악마를 이겨야 한다.
'컵헤드'는 마냥 신선하기만 한 주인공의 뻔한 권선징악 이야기를 비틀었다. 선과 악이 명확하게 구분되던 기존의 게임의 틀에서 벗어나 정의보다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싸우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루는 점은 매우 신선하다. 단순히 나쁜 녀석들과 착한 녀석들을 구분 지어 놓고 '이 녀석을 없애야 한다!'는 간단한 구성 대신에 두 등장인물이 싸워야만 하는 동기와 목적을 부여해 몰입도를 확실히 높였다.
핵심만 담은 간결한 게임
기존 2D 횡스크롤 액션 게임은 스테이지를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해당 장르의 유명 게임들은 전부 스테이지를 따라 런앤건 액션을 한 뒤, 보스와의 대결을 통해 패턴을 공략하여 승리하는 것이 주된 흐름이다. 때로는 스테이지 진행이 매우 어렵지만 보스는 너무 쉬운 경우도 있고, 보스전이 재미있더라도 스테이지 진행이 너무 지루해서 다시는 손을 대고 싶지 않은 경우도 있다.
'컵헤드'는 일반 스테이지와 보스 스테이지를 따로 구분하여 게임의 즐거움을 극대화시켰다. 다음 단계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모든 보스 스테이지를 클리어해야 하지만, 일반 스테이지는 플레이어의 취향에 따라 건너뛸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부분만 골라 담아 게임을 진행할 수 있는 것은 큰 매력포인트이다. 액션 게임이 줄 수 있는 재미만을 극대화시키는 한편 늘어지는 부분 없이 게임을 간결하게, 하지만 알차게 구성하였다.
다만 보스 스테이지와 일반 스테이지의 분량 구성이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임 전체에서 보스 스테이지는 총 19개인 반면, 일반 스테이지는 6개 정도에 불과하다. '컵헤드' 에서는 일반 스테이지를 '런 앤 건'이라고 표현하지만 막상 런앤건 스테이지라고 해도 '슈팅 액션'보다는 '점프 액션'을 더 많이 해야하는 만큼, 게임이 표방하는 '슈팅 액션'이 제대로 담겨있는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화면을 벗어나면 적이 다시 리셋이 되기 때문에 한 자리에 오래 머무르며 모든 적을 처치하는 것은 오히려 게임을 어렵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또한 후반으로 진행할수록, 적의 탄막보다는 구덩이에 떨어져 죽거나 사물에 부딪혀서 사망하는 경우가 많아서 피할 수 있는 적은 피하고 지나가는 플레이를 하게 된다. 게임의 장르가 슈팅 액션이지만 일반 스테이지를 플레이하면서 이 게임이 슈팅 액션이라고 느낀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독창적인 게임 콘셉트, 평범한 게임 스타일
제작자가 공식적으로 1930년대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힌 만큼, 게임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셀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그래픽이다. 일일이 손으로 그려서 만들었기에, 1930년대 애니메이션의 향기가 물씬 풍겨난다. 의도적으로 1930년대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게임 화면에는 노이즈가 들어가 있지만, 게임 플레이에 방해되지 않기 때문에 분위기를 한층 더하는 효과가 난다.
또한 OST 역시 빅밴드를 채용하여 1930년대 재즈 풍의 음악을 선사하고 있다. 재즈에 기반하여 때로는 삼바까지 보스 별로 다양한 테마의 BGM이 존재하기 때문에 플레이하는 내내 눈과 귀가 모두 즐거웠다.
그래픽 뿐만 아니라 보스나 게임 오브젝트 등의 세세한 부분에서도 고전의 흔적을 느껴볼 수 있다.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의 '켄'과 '류'를 연상시키는 보스도 있는 한편, 월드 1의 보스 Hilda Berg는 고전 횡스크롤 명작 중 하나인 3원더스의 초승달 모양의 보스 히프노스의 오마주이며, 해당 스테이지도 참고 작품처럼 비행기를 통한 액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밖에도 상점은 고전 명작 D&D의 레이아웃과 동일한 디자인이며, 월드 3에는 톰과 제리를 연상시키는 보스도 존재한다. 이처럼 고전 2D 슈팅 액션 게임을 즐겼던 사람이라면 아는 만큼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더불어 게임 플레이 내내 개발자의 2D 슈팅 액션 장르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이미 한번 사용했던 그래픽이나 패턴을 사용하는 경우가 없다. 덕분에 만나는 보스 마다 매번 새로움을 느끼고 다양성에 감탄하면서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었다.
난이도도 억지스럽지 않게 잘 맞춰져 있다. 내가 게임을 못해서 죽는 것과 납득할 수 없는 죽음에는 큰 차이가 있다. '컵헤드'는 충분히 예측 가능한 패턴을 통해 시간을 투자해서 도전한다면 공략이 가능하게끔 스테이지가 구성되어 있다. 사망해도 게임을 그만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아쉬워서 한번 더 도전하는 사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갔음을 느꼈다. 도전 욕구도 자극하는 한편, 하드한 난이도를 원하는 유저도 잡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렸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게임의 또다른 차별점인 패리에 대해서는 그다지 참신하지 않다는 평가를 내리고 싶다. '패리'란 '컵헤드' 내에서 존재하는 특수 액션으로, 점프 도중 점프 키를 한번 더 누르면 사용할 수 있다. 패리를 사용하면 해당 오브젝트가 무력화되면서 컵헤드가 위로 조금 떠오르게 된다. 게임 내의 분홍색 오브젝트에는 패리가 가능한데, 이를 통해 스킬 게이지를 채우고 공격을 무효화 하거나 한번 더 점프가 가능한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탄막을 피해야 하는 슈팅 액션 장르에서 오히려 탄막을 향해 점프를 해야 하는 패리는 다소 역설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메탈슬러그 등의 런앤건 장르의 가장 큰 즐거움은 탄막을 회피하면서 느껴지는 게임의 속도감이다. 그러나 보스 패턴에 패리 오브젝트가 섞이는 순간, 패리를 하기 위해 탄막에 충돌함으로써 이런 속도감이 많이 줄어든다는 느낌을 받았다.
참신한 아이디어와 컨셉으로 무장한 게임이지만, 이 게임에서 그래픽과 OST를 뺀다면 다른 게임과의 큰 차별점이 있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게임성은 보스전을 중심으로 핵심만 담아냈지만, 그렇다고 여타 슈팅 액션 장르의 게임과 크게 다른 부분이 있지는 않다. 조작 상의 차별 요소로 채용한 패리는 슈팅 액션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욱여 넣은 느낌이 많이 들어서 아쉽다.
또한 게임 출시 이후 크고 작은 버그들이 제보 되고 있다. 월드 1 ‘Cagney Carnation’과 월드 2의 Beppi the Clown, 페이크 보스인 킹 다이스의 경우 아예 보스의 움직임을 멈출 수 있는 버그가 존재하며, 일부 스테이지의 경우에는 페이즈를 건너뛸 수 있는 버그도 존재한다. 의도한 시스템인지 알 수는 없지만, 차지샷을 장비하고 대쉬를 하면 차지가 해제된다. 구매 전 이러한 사항들을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노력과 진심은 언제나 통한다
평균 6~8시간 남짓한 플레이 타임, 가볍지만은 않은 난이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이 게임에 열광하고 흔쾌히 게임을 구매했다.
1930년대에서 그대로 가져온 듯한 셀 애니메이션과 재즈풍 BGM, 보스전과 런앤건 스테이지를 구분 지어 플레이어의 피로도를 최소화하는 전략을 통해 가능한 일이었다. 비록 자잘한 버그가 있고, 콘셉트를 제외한 게임성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특징을 발견할 수 없었다. 하지만 게임을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만이 아닌, 스스로 즐기면서 만들 수 있고 사람들도 좋아할 수 있는 하나의 작품을 만들고자 했던 그들의 열정을 볼 수 있기에 차기작이 더욱 기대가 된다. 정말 오랜만에 하나의 작품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게임을 만나서 매우 즐거운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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