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비주류 게임으로서는 의외의 성적을 거둔 플래티넘 게임즈의 '니어:오토마타'.
전작 '니어 레플리칸트'가 다소 난해한 게임 스토리와 불편한 게임성 등으로 인해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던 것과 달리 '니어:오토마타'는 발매 첫 주에 20만 장을, 2017년 9월에는 출하 및 다운로드 합계 200만 장을 돌파하며 대단한 흥행 기록을 세웠다.
해당 시리즈의 디렉터 '요코오 타로'는 전작의 흥행 부진으로 인해 개발팀이 해체되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나 그가 제작했던 게임의 가능성을 본 플래티넘 게임즈가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니어:오토마타'가 탄생한 것. B급 게임으로 불리던 그의 게임은 비로소 A급 타이틀로 올라설 수 있었다.
2017년 의외의 게임 '니어:오토마타'를 플레이해보았다. 디렉터 특유의 우울한 이야기와 세계관에 놀란 한편, 게임 내에서의 편의성을 다소 희생하면서까지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게임을 뚝심 있게 밀어붙인 결과물을 보면서 고집스러운 장인의 모습도 떠올랐다.
뒤틀린 해피엔딩, 그래서 더욱 좋았다
게임을 하기 전부터 본 작품의 꿈도 희망도 없는 이야기 전개에 대해 많이 들어왔다. 요코오 타로가 디렉팅한 모든 게임들은 기존의 왕도적인 권선징악의 이야기와는 거리가 있었던 바,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고 4회차까지의 엔딩을 보고 나서도 마음 속에 찝찝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있더라도 결국에는 역경을 딛고 일어나 행복해지는 것이 기존 게임들의 규칙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니어 오토마타'는 이런 기자의 기대를 산산이 부숴버렸다. 게임내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등장인물들이 처해있는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어간다. 결국 최후에도 모두가 웃는 그림은 볼 수 없었다. 누군가가 행복하면 다른 누군가가 불행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뒤틀린 해피엔딩이 게임 내 스토리를 더욱 사실적으로 만들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갈등 역시 모두가 행복해지는 방안을 찾기는 힘들다. 한쪽이 승리하면 다른 한쪽은 패배하는 것이 우리가 주변에서 많이 겪는 일들이기 때문에, 게임 내 스토리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또한 작중에 등장하는 인물 전원이 선과 악으로 명확하게 구분 지을 수 없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등장인물들은 저마다의 신념과 사명을 갖고 행동하며, 이런 입장 차이에서 대부분의 갈등이 발생한다. 덕분에 게임 내 인물들의 입체감이 살아난다는 점이 좋았다.
설정과 스토리 텔링 장인이 만들어낸 결과물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니어:오토마타'의 세세한 설정과 스토리 텔링 방식에 감탄했다. '몇 천년 전 시작된 인간과 마족 간의 대결…'로 시작되는 뻔한 방식과 달리 '니어:오토마타'는 게임 내에서 자연스럽게 세계관에 대한 정보를 접할 수 있도록 했다. 게임 진행을 통해 얻어지는 정보 이외에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얻는 데이터 자료를 통해 세계의 진실을 직접 파고드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세세한 설정도 큰 매력이다. 작중 조작하게 되는 인물들은 안드로이드이기 때문에 프로그램 칩을 장착하여 능력치를 올릴 수 있다. 능력 보조 이외에도 기계라는 설정을 충실히 반영해 체력, 경험치 수치, 데미지 등의 기본적인 UI 칩도 장착해야 한다. 특히 메인 OS 칩을 제거하면 그 자리에서 캐릭터가 작동을 정지하는 등 기계라는 설정을 충실히 구현한 점이 좋았다.
최근 게임으로서는 드물게 자동 저장 방식을 사용하지 않는 것도 설정을 충실히 한 결과물이다. 단순히 유저들을 불편하게 해서 게임 내 긴장감을 높이는 장치처럼 보이지만, '서버에 인공지능 정보를 저장하기 위해서 상태를 저장해야 한다'라는 그럴듯한 설정을 붙여 몰입도를 높였다. 이밖에도 무기에도 스토리를 부여하고 작중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적들의 데이터도 전부 살펴볼 수 있다. 기자처럼 설정과 개연성을 중요시하는 유저들은 게임을 더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게임 내 분위기를 더하는 그래픽과 OST
'니어:오토마타'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어두침침하다. 꿈도 희망도 없는 스토리 탓도 있지만 게임의 전반적인 배경들이 전부 어두운 색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주인공 안드로이드들의 옷이 검정색이며, 게임의 주 무대도 폐허가 되어버린 도시이다. 어두운 색감이 게임의 스토리와 어우러져 한층 더 분위기를 더하는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OST도 굉장히 좋았다. 전작 '니어 레플리칸트'가 게임성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OST는 좋은 평가를 받은 것처럼, 이번 '니어:오토마타' 역시 OST에 많은 공을 들였다는 느낌을 받았다. 같은 OST도 상황에 따라 보컬을 빼거나 조금씩 변주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상대 기계 생명체의 회로로 진입하는 해킹 시에는 기존에 재생되던 OST가 8-bit 버전(칩튠)으로 바뀌는 등 소리를 통해서도 게임에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OST들은 게임 내에서 다시 듣는 것이 가능한데, 어느 소리를 키울지, 보컬을 뺄 것인지 등 세세한 설정까지 가능했다. 이 정도면 장인 정신을 넘어 좋은 OST에 대한 집착으로 까지 보였다.
연출을 위해 희생한 편의성
'니어:오토마타'의 장르는 액션 RPG이지만 극적인 연출을 위해 액션 요소를 다소 희생했다. 우선 스테이지에 따라 시점이 자주 변화한다. 기본적으로 3인칭 백뷰 시점으로 진행되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2D 횡스크롤 시점으로 게임을 진행한다. 전투기를 타고 있을 때 역시 횡스크롤로 시점이 변환되며, 세로 화면을 기준으로 하다가 갑자기 화면이 가로로 변하거나 백뷰 시점으로 전환되는 등 시점 변화가 잦다.
문제는 이렇게 변화한 시점에서는 가시성이 심각하게 떨어지거나 조작이 불편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횡스크롤로 시점이 변환되는 경우 화면이 많이 축소된다. 이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었다. 공중 전투에서도 화면이 바뀌면 조작이 불편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화면 연출 변화로 인해 극적인 느낌은 더 크게 살았기 때문에 어느정도 희생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게임의 최종 보스전에서는 다른 장소의 두 인물을 교차하며 전투를 치른다. 일정 데미지를 입히면 다른 캐릭터로 조작이 넘어가는 연출인데, 게임의 흐름을 끊고 어지러움까지 느껴지지만 그만큼 처절하게 싸우는 두 등장인물의 상황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연출을 위해 대담한 모험을 하는 디렉터의 장인 정신이 돋보인다.
등장만 하면 흐름이 끊기는 '해킹' 시스템
디렉터 '요코오 타로'의 작품들은 전부 멀티 엔딩 시스템을 차용하고 있다. 본작도 마찬가지로 모든 스토리를 보기 위해서는 4개의 엔딩을 봐야 한다. 3회차는 새로운 이야기가 전개되며, 4회차에서는 챕터 별로 선택하여 플레이가 가능하기 때문에 단조로움을 느끼지 못하지만 문제는 2회차에 있다.
2회차에서는 다른 등장인물 '9S'의 시점으로 기존 1회차의 스토리를 진행한다. 1회차에서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나 자세한 내막들이 밝혀지지만 '9S'만의 전투 시스템인 '해킹'이 게임의 흐름을 끊는다. 설정상 기계 생명체의 회로에 침입해 이들을 원격조종하거나 자폭 시킬 수 있다. 해킹은 미니게임의 형태로 탄막을 피해 목표물을 파괴하면 성공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 미니게임이 본편의 액션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는 것. 해킹에서 등장하는 탄막의 패턴은 몇 가지 형태를 돌려서 쓰기 때문에 해킹 미니게임에 익숙해지는 시점부터는 지루하게 느껴진다. 또한 속도감이 느껴지는 다른 캐릭터의 액션과 달리 일단 멈춰서 해킹을 시도해야하기 때문에 게임의 흐름이 자주 끊겨서 아쉬웠다.
스토리를 진행할수록 '9S'로 플레이하는 일이 잦은 만큼, 해킹도 큰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해킹의 횟수를 줄이고 각 해킹의 레벨 설정에 공을 들였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장인의 고집이 만들어낸 걸작 '니어:오토마타'
비극적인 스토리와 이를 뒷받침해주는 연출에 자신의 게임 인생 전부를 바친 '요코오 타로'는 마침내 걸작 '니어:오토마타'를 통해 당당히 A급 게임 디렉터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전작들을 통해 갈고 닦은 스토리 텔링과 설정, 연출이 플래티넘 게임즈를 만나 좀 더 정제된 형태로 빛을 발했다. 특히 클리셰를 비튼 스토리 라인은 최근 왕도적인 이야기에 진부함을 느끼던 유저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다.
하지만 액션 게임으로서의 속도감이 부족한 점이나 게임의 흐름이 자주 끊기는 점, 가시성이 떨어지는 점들은 향후 차기작에서 보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디렉터인 '요코오 타로'는 이런 불편함마저도 '자신이 추구하는 바'라고 언급했기 때문에 장인의 고집을 꺾기는 조금 힘들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더욱 주류와는 거리가 먼, 그가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바, '니어:오토마타' 이후에 새롭게 선보일 신작이 더욱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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