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문화예술로 '지정'된 대한민국 게임과 '모여봐요 동물의 숲' 열풍이 보여주는 것

등록일 2020년05월15일 10시15분 트위터로 보내기



 

지난 5월 7일, 문화체육관광부가 꽤나 의미 있는 변화를 제시했다. 문체부가 발표한 '게임산업 진흥 종합계획'을 통해 문화예술의 정의에 '게임'을 포함시키기로 한 것. 게임을 디지털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예술의 형식으로 내세우고 게임의 인문학적 가치를 널리 전파한다는 것인데, 그동안 '놀이' 정도로만 취급 받던 게임의 위상이 올라선 것은 분명 고무적인 일이다.

 

국내 게임업계의 오랜 숙원이 이뤄진 것이지만, 정작 어린시절부터 끊임없이 게임과 함께한 기자의 생각은 "글쎄"다. 게임이 문화예술이라고 칭할 만큼 거창한 것이냐는 이야기가 아니다. 틀을 깨는 표현 방식, 묵직한 주제, 화려한 비주얼 등 게임은 단순한 즐길 거리를 넘어 다양한 영역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뽐내고 있다. 다만 국내에서 만들어진 게임 중 지금 문화예술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좀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국내 게임 산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모바일 게임 시장은 3040 남성 게이머와 2030 연령층의 소위 '덕후' 유저들이 양분하고 있으며, 게임사들 역시 게임에 많은 돈을 투자하는 이들 계층을 위해 소위 돈이 되는 MMORPG와 2차원 게임 장르에 집중하고 있다. 여기에 시장이 포착하지 못하는 틈새를 공략해야 할 중소 및 인디 게임사들 역시 대부분 독창성보다는 돈을 벌기 위해 대세 장르라는 안전한 길을 선택하는 상황.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게임을 즐기려고 해도 "즐길 게임이 없어" 소외되는 계층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19 게임이용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게임 인구는 2015년부터 꾸준히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그 기저에는 분명 MMORPG와 2차원 게임의 파도 속에서 소외된 게임 이용자 층이 게임 시장에 등을 돌리는 현실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불과 4년 사이에 8%가 넘는 사람들이 게임을 그만두고 있지만 국내 게임사 대부분은 떠난 이들을 붙잡기보다는 남아있는 사람들로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즐길 게임이 없어 떠나간 사람들의 마음을 돌릴 방법은 없을까? 해답은 간단하다. 더 많은 계층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들면 된다. 교과서에나 실릴 법한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우리는 이미 그 해답이 실현된 사례를 겪었다. 국내는 물론이고 글로벌 시장에서 호평을 받으며 상업적인 성공을 이룩한 닌텐도의 신작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 좋은 해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게임 기자로서 일하고 있지만 정작 기자의 주변 사람들은 게임에 관심이 없는 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놀라운 변화가 생겼는데, 기자에게 "요즘 동숲이 그렇게 재미있다는데 사실이냐"라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 입소문을 듣고 단순히 호기심을 가지는 것뿐만 아니라 평소에 게임과는 전혀 연이 없다가도 오직 '동숲'을 즐기기 위해서 흔쾌히 닌텐도 스위치의 구매를 결정한 지인도 있다. '메이플스토리' 이후로는 별다른 게임이 즐겨보지 않은 기자의 여자친구까지도 최근 '동숲'에 푹 빠져 있으니 '모여봐요 동물의 숲'의 사회적인 파급 효과는 두말하면 입 아픈 수준이다.

 

다들 이렇게 게임을 좋아하는지 몰랐다는 질문에 "그동안 할만한 게임이 없었다"라는 우문현답이 돌아왔다. 게임업계와 관련된 소식을 주로 접하고 게임을 중심으로 한 업무환경 탓에 간과하고 있던 대한민국 게임의 명쾌한 현주소다. 소위 말하는 '코어 게이머'를 대상으로 한 신작과 수익 모델이 정착한 탓에 국산 게임 중에서 '라이트 게이머', 더 나아가서는 잠재적으로 게이머가 될 가능성이 높은 이들을 품어줄 만한 게임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화제가 된 '모여봐요 동물의 숲'은 넓은 계층이 고루 즐길 수 있는, 소위 말하는 '착한 게임'이다. 플레이어에게 특별한 행동을 강요하지도 않으며, 매일 접속해서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의무감도 없다. 스트레스를 자극해 경쟁심을 부추기는 콘텐츠는 당연히 전무(全無). 한국에서 '동물의 숲'을 만들었다면 섬과 주민에 등급을 매겨 순위 경쟁을 하는 것은 물론이요, 의상 세트에 맞춰 추가 효과가 적용되고 남의 섬에 방문했으면 시설 정도는 파괴할 수 있어야 한다는 비아냥 섞인 농담들은 그동안 한국 게임이 얼마나 천편일률적인 시스템과 콘텐츠로 점철되어 있었는지를 잘 나타내는 부분이다.

 



 

장르의 과도한 편중이나 과도한 수익 모델에 대한 지적은 국산 게임을 따라다니는 꼬리표이지만 그때마다 게임업계의 답변은 언제나 "시장이 작으니까" 또는 "새롭거나 착한 게임으로는 성공할 수 없으니까"였다. 그러나 화제가 된 게임을 하기 위해서 품귀현상으로 가격이 두 배, 네 배까지도 뛰어오른 게임기를 기꺼이 구매하는 사람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게임 시장이 작다는 이야기도 어딘가 변명처럼 느껴진다. 비(非) 게임 인구는 어딘가로 영영 사라져버린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서 그들을 받아줄 수 있는 게임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는 게 이번 '모여봐요 동물의 숲' 열풍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다시 게임이 문화예술의 영역에 진입했다는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한국 게임이 문화예술에 포함되기 위해서는 더 넓은 계층을 품을 수 있는 변화가 필요하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문화예술로 정의하기로 결정했다고 해서 게임이 문화와 예술이 될 수는 없다. 게임을 할 의향이 있지만 즐길 만한 게임이 없어서 포기하는 이들이 존재하는 한, 대한민국 게임을 문화예술이라 부르기엔 아직 시기상조가 아닐까 싶다.

 

마침내 게임이 문화예술의 정의에 포함되었으니 이제는 국내 게임업계가 보답할 차례다. 등급을 매겨 순위 경쟁을 부추기는 게임이 있다면 스트레스 없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게임도 필요하며, 남을 죽여야만 칭찬받는 게임이 있다면 남과 협력할 때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게임도 필요하다. 덤으로 글로벌 전역에서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반대 여론이 형성되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보다 대중화되고 사회적인 반감이 덜한 새로운 수익 모델에 대해서도 고민해줬으면 하는 것이 기자의 바람이다.

 

지난 주말에는 여자친구와 함께 순수하게 '모여봐요 동물의 숲' 이야기로만 1시간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길을 다니다 피어있는 꽃을 보고 '동물의 숲'을 연상했으며, 이름도 생소할 법한 게임 속 주민들의 이름과 그들의 말버릇, 성격을 이야기하면서 다른 문화예술 콘텐츠로는 형성할 수 없는 게임 만의 독특한 사회적 공감대를 느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원하는 게임의 문화예술적 가치란 이런 것이 아닐까? 높아진 위상에 걸맞는 품격을 선보이기 위해 대한민국 게임업계 내부의 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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