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어비스 게임디자인실 주재상 실장이 지스타 컨퍼런스에서 '아침의 나라 개발기'라는 제목으로, '검은 사막'에 업데이트되어 세계적으로 많은 인기를 모은 '아침의 나라' 업데이트를 개발한 경위와 개발과정에 대해 직접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먼저 주 실장은 자신의 어린 시절 추억을 소개하며 '한국 캐릭터, 한국 문화를 소재로 한 콘텐츠'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한국 콘텐츠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80년대 중반에 태어나 어린 시절 오락실을 다니며 당대 최고의 인기게임 '스트리트파이터2'를 플레이하는데 주인공이 일본인이더라. 일본에서 만들었으니 당연히 그럴 텐데, 나머지 캐릭터를 보면 춘리는 중국 캐릭터인데 이쁘다. 가일은 미국, 장기에프는 소련. 블랑카 브라질이고 보스는 스페인 사람에 태국 사람도 나온다. 그런데 한국이 없더라. 초등학생 때라 잘 몰랐지만, 일본에서 만든 게임인데 중국이나 달심의 인도, 태국보다 한국이 가까운 나라인데 왜 한국 캐릭터는 안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드래곤볼', '란마'... 그 시절 만화를 보면 중국 캐릭터는 자주 나오는데 한국 캐릭터는 안 나오더라. 물론 지금은 김갑환, 화랑도 있고 송하나도 있고 KPOP 아이돌도 있고 한준기도 있고 전 세계적으로 한국인 캐릭터가 사랑받지만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다 보니 아쉬움이 있었다. 이런 마음을 늘 갖고 있었다.
2013~2014년경 펄어비스에 입사하기 전 '검은 사막' PV를 봤는데 글로벌 출시를 목표로 개발하는 게임인데 동양인이 있더라. 생김새가 한국인인지 조금 애매했지만 기대감을 갖게 했다. 그 '검은 사막'에 금수랑 캐릭터가 추가되는데 개량 한복을 모티브로 만든 아바타가 있더라. 금수랑 캐릭터가 한국 색채가 있었지만 액션은 아쉬었다. 우슈를 기반으로 한 기공 무술이었다. 완벽한 한국 캐릭터라고 자랑하기엔 부족한 면이 있었고 국적을 헷갈려하는 분도 계시더라"
주재상 실장의 회상이다. 그 다음에는 자신이 펄어비스에 합류한 뒤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금수랑 다음은 '무사'인데 이제야 완전히 한국적인 검법을 구사하는 캐릭터로 개발이 됐다. 아직 '검은 사막'이 글로벌에 진출하기 전이었다. 유저들이 한국 캐릭터에 뜨겁게 호응해 줘서 이어서 매화가 나올 수 있었다. 기술을 쓰면 매화꽃이 날리는 이쁜 캐릭터였다. 이렇게 개발하고 나서 해외 진출을 준비하게 됐는데, 처음 진출한 국가들은 한자 문화권이라 무사나 매화를 그 나라에 맞게 읽으면 됐다. 그런데 러시아, 북미, 유럽에서는 어떻게 할지는 고민거리였다"
당시 펄어비스에서는 무사가 도를 사용하니 '블레이더'로 해외 버전의 이름을 정하자는 쪽이 다수 의견이었다. 직업 이름이 직관적이어야 한다는 일반론이 지지를 받으며 블레이더로 정해질 것 같았지만, 마지막에 고유명사를 그대로 가자는 안이 통과됐다. 결국 무사의 글로벌 버전 표기는 'MUSA'가 됐다.
'검은 사막'에 어느날 갑자기 '아침의 나라'라는 테마로 한국적 요소를 넣은 것이 아니라, 처음 서비스를 시작할 때부터 조금씩 한국적 요소를 게임에 넣기 위해 노력해 오며 빌드업을 한 끝에 '아침의 나라'가 나오게 됐다는 것.
펄어비스에서는 2019년 '대양' 업데이트를 하고 유저들이 바다에서의 모험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주재상 실장의 설명이 이어진다.
"바다가 있으면 항구가 있어야 한다. 중세 서양 세계관인데 모험가들이 바다를 건너가 무엇을 만나면 좋을까, 역사 속 '지팡구' 같은, 동양의 땅이 들어가면 바다를 건널만 하겠다 싶어서 끝에 동양적 항구를 준비했으니 그것이 랏 항구였다. 랏 항구 주변에도 땅을 준비해 두고 언젠가 신비로운 동양 맵을 제공하자고 생각했는데 개발이 좀 지연됐다.
유저들이 랏 항구에 와서 넓은 동양 지역을 모험하고 싶다는 요청을 많이 해와 고민을 많이 했다. 동양에 오긴 했는데 여기가 정확히 어느 나라지? 단순히 랏 항구를 확장할 것인지 확보해 둔 넓은 땅을 제대로 개발할 것인지 고민하다 동양 지역을 제대로 확장하기로 마음먹고 참고할 만한 것이 없나 살펴보니 일본을 모티브로 한 것이나 중국 모티브의 대륙 레퍼런스는 굉장히 많더라.
그쪽이 대중적이니 우리도 따라가야 하나 고민하다 우리는 한국 사람인데 레퍼런스대로 하면 그냥 흉내내는 것에 그친다.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하자는 생각에 과감하게 조선을 생각하게 됐다"
'검은 사막' 개발팀이 조선을 테마로 정하긴 했지만, 처음부터 '아침의 나라'라는 거대한 땅을 만들자는 계획은 아니었다. 게임에 판옥선이 나오니 판옥선을 만들 수 있는 조선 항구를 만들자, 학자들이 모인 섬을 만들자는 식으로 부분 부분을 만들어 제시했고, 유저들이 뜨거운 호응을 보여 용기를 갖고 개발을 시작했다고.
"우리는 어떻게 한국적 게임을 만들지를 고민하다 우리가 내린 결정은 기획적으로 정해 두고 맞춰서 그리기보다는 조선이라는 테마 하에 펄어비스 '검은 사막' 각 부서가 자유롭게 구상해 보자는 것이었다. 조선을 테마로 배경을 만들어 보고, 조선 테마로 몬스터, 캐릭터를 자유롭게 디자인해 보고, 스토리도 자유롭게 만들어 보는 식으로 각자 자유롭게 상상해 봤다"
가장 먼저 배경이 완성됐다. '검은 사막' 개발팀에 '우리가 이런 멋진 것을 만들 수 있겠구나' 하는 공감대와 감동이 공유됐다.
캐릭터 디자인실에서는 구미호와 산군이 만들어졌다. 세계에 보여줘야 하니 대중적인 몬스터가 필요해 구미호를 고르고, 조선이 테마이니 민화에 등장하는 호랑이의 느낌을 살려 산군이 만들어졌다.
주 실장의 회상이 이어진다.
"조선에 등장할 법한 NPC들도 디자인됐다. 구미현은 개발팀 모두가 처음 보자마자 너무 이쁘다, 유저들이 좋아하겠다 싶었다. 구미호 하면 나오는 이미지를 조금 탈피해 보고자 디자인에 신경을 쓰고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해 스토리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그 다음이 우사와 매구이다. 조선 배경에서 기존 캐릭터로 플레이하는 것도 좋지만 한국적 캐릭터로 플레이하면 더 재밌겠다 싶어 준비했는데, 모션실에서도 캐릭터 둘을 만들어 주겠다 제안해 줘서 가능했다. 쉬운 결정이 아닌데 아침의 나라를 위해 큰 결정을 해 줘서 만들 수 있었다.
검은 사막에서 소개된 한국 캐릭터들 대부분이 칼을 쓰는 캐릭터인데 이번에는 칼을 사용하지 않는 도사 캐릭터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도사가 뭐가 있나 공부도 했다.우사는 우도방 매구는 좌도방 소속인데 도가 분파를 공부하고 특성을 파악해서 디자인했다. 우도관은 비, 바람, 번개를 쓰는 정통파 도사이고 매구는 귀신과 접신해 힘을 끌어쓰는 무당같은 좌도방 소속으로 디자인했다"
우사와 매구는 펄어비스가 미국 LA에서 개최한 '칼페온 연회'에서 최초 공개됐다. 미국에서 한국 캐릭터를 소개하면 반응이 어떨지에 사내 걱정도 많았다는데, 뜨거운 반응이 쏟아져 한국적 콘텐츠가 통할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고.
펄어비스에서는 기존의 새로운 지역에 사냥터를 제공하고 지나가는 콘텐츠로 하기보다는 온전히 세계와 스토리에 집중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아침의 나라'를 스토리 중심으로 구성했다. 전투도 사냥터보다는 1대1 보스 전투를 먼저 준비했다. '아침의 나라' 업데이트 후의 콘텐츠도 철저히 한국의 전통 설화, 민화 등을 참고해 개발해 한국적 콘텐츠가 세계에 통한다는 것을 확인해 왔다.
이제 펄어비스 '검은 사막' 개발팀에서는 '아침의 나라' 2부를 준비중이다. 1부에서 스토리 중심으로 1회성 콘텐츠가 중심을 이룬 것에 비해 2부에서는 온라인게임 다운 반복 콘텐츠와 전투 콘텐츠에도 더 공들일 계획이라고.
한편 주재상 실장은 강연 내내 많은 박수를 받았지만, 많은 유저들이 기대한 우사와 매구의 화해는 "그릴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해 아쉬움을 샀다. 하지만 팬을 이기는 개발사는 없는 법. 유저들이 간절히 바라면 언젠가 우사와 매구가 화해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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