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 공멸을 막기 위한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등록일 2016년07월18일 13시31분 트위터로 보내기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Warcraft: The Beginning)'은 게임 '워크래프트' 시리즈 가운데 1994년에 출시됐던 '워크래프트: 오크의 인간'라는 게임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워크래프트'는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4개의 시리즈와 8번의 확장팩을 통해 탄탄한 세계관을 형성 · 발전시켜 왔고, 전 세계 1억 명 이상의 유저를 확보할 만큼 널리 사랑받고 있다.

애석하게도(?) 필자는 그 1억 명에 포함되지 않고, 따라서 이 영화의 '바깥' 정보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건 그다지 많지 않다. 물론 자료를 찾아보고 공부를 한 다음에 '전달'할 수도 있겠지만, 단기간에 습득한 검색의 결과들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소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래서 이 글은 '워크래프트'라는 게임을 하지 않은, 다시 말해서 '워크래프트'나 '와우(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非유저의 입장을 취한다.


'동질감'을 느낀 사람들이 마땅히 가졌을 질문을 대신 해보자. 그러니까 "'워크래프트' 게임을 몰라도 이 영화를 보는 데 문제가 없나?" 솔직히 말하자면, 이 영화가 다소 불친절한 것은 사실이다. 세계관에 대한 설명도 소략하고, 무엇보다 용어들이 낯설다. 그렇다고 못 따라갈 정도는 아니다. 배려 없음이 좀 아쉽긴 하지만, 1억 명의 '유저'라는 든든한 지원군을 보유했다는 자신감을 표출했다고 이해하기로 하자.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은 지난 2006년 워크래프트를 영화로 만들겠다는 발표가 있은지 무려 10년 만에 나온 작품인만큼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을 유저들에겐 얼마나 설레는 순간이겠는가. 옆에서 목격했는데, 게임을 시작하면 컴퓨터 모니터를 물결처럼 수놓던 '블리자드(blizzard)'를 커다란 스크린을 통해 목격하는 순간부터 흥분하기 시작하고, 오프닝에 오크가 등장할 땐 '감동'을 느끼며 환희에 잠기더라.


非유저들은 '듀로탄(토비 케벨)'이라는 이름에 환호한다거나 '메디브(벤 포스터)'의 마법에 희열을 경험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재미로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을 보냐고? 생각을 해보자. 우리가 언제는 '원작'을 알고 '판타지 영화'를 봤던가? '반지의 제왕'을 책으로 읽고(상당한 분량의 지루한 원작을 접하는 순간 상당히 곤혹스러울 것이다) 영화관에 간 사람이 몇이나 될까?

'판타지 영화'가 주는 특유의 '웅장함'과 '낭만'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얼마든지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을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야기의 큰 얼개는 '인간'과 '오크'의 전쟁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싸우는가? '드레노어(오크족의 고향)'가 황폐해지자 호드(드레노어에 살던 오크들의 집단 공동체)는 생존을 위해 새로운 터전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오크 족의 흑마법사 굴단은 지옥마법을 사용해 '검은 문'을 열고, 이 차원의 문을 통해 오크들은 인간의 땅으로 넘어갈 수 있게 된다. 생존을 위해 다른 종족을 침략하고, 그들의 터전을 빼앗아야만 하는 '전쟁'이 시작됐다. 갑작스럽게 '침략'을 당한 인간도 '생존을 위한 싸움'을 전개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간에게 2m가 넘는 덩치에 물리력도 월등한 오크들의 존재는 버겁기만 하다.

심지어 호드와 맞서야 할 얼라이언스(인간과 엘프, 드워프 등으로 구성된 연합 세력) 진영은 힘을 합치기는커녕 분열돼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가기만 한다. '생존을 위한 전쟁'은 일정 부분 불가피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 '나'를 비롯해 '나의 가족'과 더 나아가 '종족(혹은 민족)의 미래를 결정짓는 사안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생존을 위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전쟁'밖에 없는 것일까'라는 물음을 던져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공존'이라는 답을 떠올리는 건 지나치게 나이브한 생각일까? 영국이 브렉시트(Brexit) 국민투표를 통해 유럽연합(EU)을 탈퇴하기로 결정한 이유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 내막에 '이민자(난민)'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차원의 문을 통해 끊임없이 유입되는 오크들이 인간의 눈에는 그리 보이지 않을까? 전쟁은 불가피하고, 개별적인 국가와 민족의 이익을 위해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생존법을 선택하는 건 지나치게 인간스러워 보인다. '생명'을 동력으로 삼아 지옥마법을 시전하는 굴단은 오크의 입장에서 '위험한' 지도자다. 이를 눈치챈 서리늑대 부족 족장 듀로탄은 '인간'과의 협력을 도모한다.


내부의 적을 제거하기 위해 외부에 손을 내미는 젊은 지도자 듀로탄의 결정은 일견 동족에 대한 '배신'처럼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이 선택이야말로 동족을 악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내고, 인간과의 공존을 도모할 수 있는 신의 한 수이자 터닝 포인트였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또, 위험한 전투에 '직접' 말을 몰고나가 적들과 싸우는 인간의 왕 레인은 오크와의 화해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희생한다.

그 결과는 왕의 복수를 갚자는 인간들의 '단결'을 가져와 더 큰 규모의 전쟁의 '땔감'이 되었지만, 그 리더십만큼은 박수받아야 마땅하다. 듀로판과 레인은 '리더'가 갖춰야 할 판단력과 품격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준다. 캐머런 총리에 대한 평가를 섣불리 할 순 없지만, 그가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승부수로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공약했던 것은 위험한 리더십의 전형을 보여준다. 성급하게 '차원의 문'을 열어제낀 꼴이라고 할까?


전쟁의 서막은 열렸고, 길고 긴 전쟁이 계속될 것이다. '생존'을 위해 또 다른 누군가의 '생존'을 파괴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것일까. 영국의 EU 탈퇴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지켜보면서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의 듀로탄과 레인 왕의 리더십을 떠올리게 된다. 단기적인 이익을 취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퇴행이 불가피한 선택이라면 과감하게 재고해야 한다. (이제와서 국민투표를 되돌릴 순 없겠지만..)

또, '진실'을 알리기 위해 혹은 '해답'을 전달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리더의 모습을 얼마나 아름다운가. 굳이 특정할 필요도 없을 만큼 전세계의 지도자 대다수가 '진실'보다는 '거짓'을 일삼고, '전체의 이익'보다는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버린 듯 하다. 이대로는 '공존'이 아니라 '공멸'이다. 새로운 리더십의 출현이 다급하다.

물론 이건 단지 '리더십'만의 문제는 아니다. 국민투표의 결과를 캐머런 총리에게 온전히 귀결시킬 수 없는 까닭은 그것이 영국 국민들의 '민주적인' 선택에 의한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그 선택에 대해 여러가지 평가를 내릴 수 있겠지만, 영국 전체 더 나아가 EU 전체를 위한 선택이었냐는 물음에 과연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까? 자국(自國)이라면 그나마 다행이겠으나, 극히 제한적인 '집단' 혹은 '개인'을 위한 선택은 아니었을까?


글 제공 : '버락킴' 그리고 '너의길을가라'의 블로그(http://wanderingpoet.tistory.com)

* 본문의 내용은 게임포커스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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