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왕들의 검이 펼치는 검신일체의 액션, '킹스 글레이브: 파이널 판타지 XV'

등록일 2016년09월19일 11시20분 트위터로 보내기


* 아래 리뷰 내용에는 '킹스 글레이브 : 파이널 판타지 XV'의 일부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품을 아직 보지 않으셨거나 스포일러를 피하려는 분들은 먼저 극장에서 작품을 감상하신 후 기사를 보시기 바랍니다.

** 아래 스틸샷들은 영화의 공식 트레일러를 캡쳐한 것입니다.


1999년 헐리웃 블록버스터인 '스타워즈 에피소드 1 : 보이지 않는 위험'이 제작 전 과정을 디지털화하고 CG를 대거 도입하며 조만간 배우들조차 CG로 대체될 것이라는 위기론(?)이 진지하게 나온 적이 있다. 같은 해, 게임계의 블록버스터인 스퀘어의 '파이널 판타지 VIII'이 발매되자마자 'Eyes on Me' 뮤직비디오가 수많은 모니터에서 무한 반복재생 되었고, 이 뮤직비디오는 딱히 게이머가 아닌 사람들조차 매료시켰다. CG 만능론과 함께 배우들이 CG로 대체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곧 현실이 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이후의 결과를 우린 이미 알고 있다.

2001년, 21세기의 시작과 함께 공개된 스퀘어의 풀 CG 영화 '파이널 판타지 : 더 스피릿 위딘'(FINAL FANTASY : The Spirits Within)은 헐리웃 간판 블록버스터 영화급의 돈을 쏟아붓고도 수익은 그 절반도 못 건져 스퀘어를 휘청하게 만들었다.

'파이널 판타지 : 더 스피릿 위딘'은 이미 검증된 스퀘어의 CG 메이킹을 바탕으로, 뮬란의 주인공 성우였던 밍나 웬을 비롯해 도널드 서덜랜드, 알렉 볼드윈, 스티브 부세미, 제임스 우즈 등 잘 알려진 헐리웃 연기파 배우들이 목소리를 연기했다. 극장에서 직접 보기 전까지는 도저히 망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새로운 세기에 새로운 영화의 경지를 보여줄 것이라 생각했던 영화는 '불쾌한 골짜기'의 덫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심심한 서사, 그리고 '파이널 판타지'라는 제목을 달고 나올 필요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지나치게 게임과 동떨어진 느낌 때문에 '망한 영화'의 대명사가 되었다.

사실 이렇게 얘기하면 15년이 지나 극장에서 공개된 '킹스 글레이브 : 파이널 판타지 XV'(KINGS GLAIVE:FINAL FANTASY XV)도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이기도 한다. '킹스 글레이브 : 파이널 판타지'는 검증된 CG 연출 및 기술력을 가진 스퀘어에닉스가 사운이 걸고 만든 풀 CG 영화로, '니드 포 스피드', '브레이킹 배드'의 아론 폴, 출연 자체가 스포일러인 숀 빈, '왕좌의 게임'의 레나 헤디 등 헐리웃 배우들이 연기를 맡았다. 게임보다 영상물로 '파이널 판타지'를 봤던 사람이라면 기시감에 걱정이 될 만도 하다. 하지만 스퀘어에닉스는 다행히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았다.


'킹스 글레이브 : 파이널 판타지 XV'의 캐릭터 CG 완성도는 '파이널 판타지 : 더 스피릿 위딘'은 물론이고, 성공작이라 일컬어지는 '파이널 판타지 VII 어드벤트 칠드런'(FINAL FANTASY VII Advent Children)마저 아득히 뛰어넘는다. 우선 한 캐릭터당 성우와 외형을 본뜬 3D 스캔, 움직임을 따온 모션 캡처가 각각 따로 존재한다.

각 분야의 전문가에게 맡겨진 부분들이 하나가 되어 표정 연기나 움직임에 있어 어색함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얼굴 조형도 뛰어나서, 머리카락이나 수염은 물론 새로 난 상처와 오래된 흉터를 구분하고 있으며 미묘하게 비대칭인 인간의 얼굴 모양까지 자세하게 재현하고 있다. 거칠게 말할 때는 입술뿐 아니라 목울대 부분까지 대사에 맞춰 움직이는데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다만 개별 주요 캐릭터가 아닌 엑스트라 군중 장면의 어설픈 동선과 움직임은 아쉬웠던 부분이다.


기술로 발생한 단점을 보다 발전된 기술로 극복한다는 점에서 미국적인 정서가 느껴지기도 했다. 캐릭터들의 립싱크는 기본적으로 헐리웃 배우들이 연기한 영어에 맞춰져 있다. 일본 국내에서 개봉한 일본 성우들의 더빙이 오히려 외국 영화 더빙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킹스 글레이브 : 파이널 판타지 XV', 나아가 게임 '파이널 판타지 XV'은 일본 뿐만이 아니라 세계 시장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음을 어필한 것은 아닌가 싶다.

스퀘어에닉스는 '킹스 글레이브 : 파이널 판타지 XV'를 CG에 어울리는 종합선물세트 블록버스터 영화로 만들었다. '킹스 글레이브'가 왕의 마법을 하사받아 선보이는 검신일체의 역동적인 액션은 이 영화의 백미이다. 검이 있는 곳으로 자신이 순간이동 함으로써 연계되는 전투방식은 볼거리로서도 훌륭했지만, 그들이 '킹스 글레이브', 즉 왕에게 하사받은 능력을 행사하는 정진정명 왕(들)의 검(KINGS GLAIVE)이라는 점에서 세계관과도 밀착된 좋은 설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영화 초반 제국에 의해 소환된 데몬들은 우리가 극장에서 보고 싶었던 '진격의 거인' 실사 영화가 바로 이런 규모였음을 떠올리게 했다. 영화 후반에는 목숨과 맞바꾼 선왕들의 도움으로 '킹스 글레이브'의 능력을 되찾은 닉스가 데몬과 벌이는 시가지 공방전은 최근 애니메이션에서도 보기 힘든 거대로봇 VS 괴수의 향취를 가져다주었다.


이름만 왕국과 제국일 뿐, '아우디' 자동차를 타고 다니며 온갖 광고들이 가득한 오늘날 현실 세계와 그리 다르지 않은 근 미래 대도시로 묘사된 '루시스'도 상당한 볼거리였다. 시가지를 배경으로 벌어진 닉스와 글라우카의 결전은 마블과 DC로 대표되는 현대 헐리웃 슈퍼 히어로물의 모습도 엿볼 수 있었다. 지나친 PPL을 걱정했으나 오히려 현실에서도 자주 보이는 그 앰블렘들이 영화에서도 보여 영화에 현실성이 더해진 순기능도 있었다. 익숙한 브랜드들은 처음 보는 이질적인 세계관에 좀 더 편하게 몰입할 수 있게 해주었다.

'킹스 글레이브 : 파이널 판타지 XV'는 2시간 동안 능력자 배틀+판타지 전쟁+히어로+괴수+거대로봇이라는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로서의 소임은 충분히 해낸다. 극장에서 큰 스크린과 스피커로 관람할 때 더 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값어치 말이다.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은 액션에만 포커스를 맞춘 흔한 헐리웃 블록버스터만큼 평이한 게 사실이다. 아마도 이는 세계관의 소개라는 영화의 탄생 이유 때문이 아닌가 싶은데, 반면 그만큼 추후 출시될 게임을 기대하게 만드는 요소들도 많았다. 버릴 수밖에 없었던 자와 버림받은 자, 과거에서 교훈을 얻은 자와 미래에 긍지를 건 자의 격돌이라는 영화 내 주제도 매력적이었지만, 왕국과 제국의 전쟁으로 인한 정세 변화가 의외로 여러 면에서 현실을 반영한 점이 많았다는 것도 재미있는 요소다.
 
'킹스 글레이브'가 '루시스'인들과는 다른 민족으로 이루어진 외인부대라는 점은 전통적인 프랑스 외인부대를 떠오르게도 했지만, 한국 관객으로선 미군의 외국인 모병 프로그램인 '매브니'를 통해 '헬조선'을 탈출하려는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처지를 떠올렸다. 현대와 같은 대도시임에도 왕국이라는 설정은 영국이나 스칸디나비아 같은 유럽을 떠올리게 했으며, 민족 갈등과 난민 유입으로 인한 테러 장면은 현실을 그대로 옮겨온 면이 있었다.

처음 게임 공개 자료를 보았을 때 반 농담 삼아 호스트들이 오픈카 타고 '먹방' 찍으러 다니는 게임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곤 했는데, 영화는 의외로 진지하고 어두웠다. 왕성과 수도 시가지가 함락되는 가운데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임무에 충실 하려는 닉스가 산화하는 모습을 보고 나면, 쿠키 영상으로 등장하는 팔자 좋은 녹티스 일행이 거슬려 이들을 주인공으로 출시될 본 게임이 걱정될 정도이다.

하지만 어쩌면 이조차 현실의 반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오늘도 테러 위협과 반군의 총탄에서 목숨을 부지하길 바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같은 지구에 사는데도 예정된 게임 출시 일정이 밀렸다는 것에 흥분하는 우리 같은 사람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 '킹스 글레이브 : 파이널 판타지 XV'는 어쩌면 게임 '파이널 판타지 XV'와의 이런 대비 되는 구도를 가져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킹스 글레이브 : 파이널 판타지 XV'는 게임과의 연계성을 가진 풀 CG 영화라는 점에서 '파이널 판타지 VII : 어드벤트 칠드런'에 더 가깝다고 할 수도 있다. '파이널 판타지 VII : 어드벤트 칠드런'은 게임의 인기와 스토리에 기반을 둔 후일담이다. 반면 이번에 공개된 '킹스 글레이브 : 파이널 판타지 XV'는 오히려 게임 출시 이전에 처음으로 본격적인 게임의 세계관과 캐릭터들을 소개하는 전일담의 성격이므로, 관객 입장에서는 오히려 독립적인 세계관을 새로 선보였던 '파이널 판타지 : 더 스피릿 위딘'의 성격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파이널 판타지 VII : 어드벤트 칠드런'을 비롯, 영상물이라도 '파이널 판타지' 연계 작품이라면 상징처럼 들리곤 했던 승리의 팡파레나 크리스털의 테마도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또, 여주인공인 '루나 프레야'는 같은 캐릭터임에도 게임과 영화의 성우가 다르다. 같은 '파이널 판타지 XV'의 세계관이지만 이후 출시될 게임과는 독립적 작품으로서 일정 부분 의식적으로 선을 그은 것 같다.

'킹스 글레이브 : 파이널 판타지 XV'는 영화로서는 다소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극장에서 볼만한 액션 블록버스터로서, 그리고 본 게임인 '파이널 판타지 XV'의 세계관을 소개하는 전일담으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과연 '파이널 판타지 XV'는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게 될까? 게이머는 아니지만 기대된다.

* 본문의 내용은 게임포커스 리뷰어 Sion님이 기고하신 '킹스 글레이브 : 파이널 판타지 XV' 리뷰를 가필 및 수정한 것으로, 게임포커스 편집부의 편집 방침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필자 프로필
닉네임 : Sion
영화, 서브컬쳐 칼럼니스트.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지만 덕후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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