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게임장애 질병코드 등재, 건국대 하지현 교수 "게임에 낙인 찍기 위한 것 아니다"

등록일 2018년04월17일 17시30분 트위터로 보내기


한국게임전문미디어협회가 금일(17일) 선릉역 소재 '스타트업 얼라이언스'에서 기자 클럽 행사를 진행했다.

이번 행사에서는 인터넷 중독 개념이 정립되기 시작한 초창기부터 연구를 진행해온 건국대학교 정신과학교실 하지현 교수를 초청해, 최근 국내 및 해외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국제보건기구(WHO)'의 게임 질병코드 등록과 관련된 강연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하지현 교수는 '인터넷 게임 중독'이라는 것에 대한 정확한 개념 정립, 정부 부처의 조사하는 방법에 대한 오류 지적, 그리고 실제로 '인터넷 중독'이 존재하는지에 대해 고찰 및 설명하고 앞으로 게임 업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더불어 현장에 참석한 게임 전문 기자들과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하고 답변하는 질의응답도 진행했다.


'자가 보고'를 유도하는 신뢰도 낮은 방식의 설문 조사 및 연구는 지양해야
의학계에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의존하게 만들거나 금단증상을 일으키는 것을 '중독'이라고 표현한다. 중독을 일으키는 물질을 알코올, 마약, 대마초 등 13개 항목으로 구분하며, 이 외에도 도박 중독과 같이 물질이 아닌 병적 도박 또한 인간의 '행동'도 중독될 수 있다는 하나의 사례로 분류된다. 특히 도박 중독은 마약과 같은 유사한 증상이 나타나며 치료도 유사하게 이루어진다.

국내외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인터넷 게임 중독과 관련된 연구는 주로 아시아 국가의 젊은 남성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를 포함해 중국과 대만 등이 이에 해당한다.


하지현 교수는 "하지만 이러한 연구들은 대부분 단순한 설문지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며, '자가 보고'를 유도하는 설문지를 돌려 만든 결과를 신뢰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ICD-11' 포함은 낙인을 찍기 위한 것 아냐, 적절한 예방 및 치료 도구를 만들기 위한 것
'ICD-11는 '국제질병분류' 코드를 공유하는 것으로, 치료법을 공유하고 조직을 공유하는 등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단순히 특정 한 국가에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저개발 국가부터 상당한 의료 기술력을 가진 국가까지 모두 공유하는 범용 코드다.


하지현 교수는 'ICD-11'에서의 정의는 인터넷 게임 중독을 매우 보수적인 방향에서 접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ICD-11'에서는 '인터넷 중독'을 다른 일상 활동보다 게임을 우선하고 이를 조절하는데 어려움을 겪으며, 이로 인해 부정적인 문제가 발생하는데도 불구하고 지속되거나 증가하고 최소 12개월 이상 여러 영역의 기능에 심각한 손상이 있어야 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실제로 정신질환 중 중증으로 보는 조현병의 경우, 환청이나 망상이 6개월 이상 지속 됐을 때야 비로소 진단을 내린다. 우울증 또한 식욕이 떨어지는 등의 증상이 2주 가량 계속 됐을 때 진단을 내리게 된다. 즉 'ICD-11'에서 언급된 12개월이라는 기간이 실질적으로 짧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현 교수는 "물론 알려진 바와 같이 심각한 문제를 겪는 사람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12개월은 정말 길며 진단하기도 어렵다고 본다. 실제로 진료한 환자 중에서도 12개월을 넘어서 온 사람은 드물다"라며 "'심각한' 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잘 생각해야 한다. 특히 우울증이나 조현병, 사회공포증 등에 의한 것이 아니어야 하고, 이러한 다른 정신질환을 모두 제외하고 남는 사람들이 'ICD-11'에서 말하는 인터넷 게임 중독에 해당한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허들이 높고 보수적이지만, '인터넷 게임 중독'이 '판' 위에 올라온 것은 사실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ICD-11에 포함한 이유는 각 지역의 문제에 처한 사람들을 위한 치료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건강관련 전문가들의 관심을 증가시켜 적절한 예방 및 치료 도구가 만들어지는 것을 의도하고 있기 때문이며, 낙인을 찍기 위함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게임을 하는 모든 사람이 이러한 'ICD-11'의 인터넷 게임 중독 조건에 해당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게임에 할애해 일상 활동에 분명한 지장이 있거나, 신체 및 심리적 건강이나 사회 기능에 문제가 발생한다면 면밀히 주의해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인터넷 게임 중독'은 과정을 거치지 않고 만들어진 진단명
의학계에서 진단명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먼저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증상이 새롭게 발견되면 사례보고가 이루어진다. 이후 전형적으로 두드러지는 특징들을 모아 역학조사를 실시하고, 해당 질병의 가장 큰 핵심 특징들을 1~2개 내외로 정리한다.

수 년 이상 이러한 단계를 모두 거친 다음에야 비로소 증후군(Syndrome)으로 분류한다. 질환이라는 것은 과정(Course), 예후, 다른 병과의 관계 등이 모두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현 교수는 인터넷 게임 중독에 대한 논의가 이러한 면밀한 과정 없이 곧바로 '질환' 단계에서 시작했다는 점을 꼬집었다.


하지현 교수는 "이와 관련해 1990년대부터 진행된 연구들은 상당히 많다. 대부분 젊은 남성을 대상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조사된 경우가 많아 선택의 오류가 있다. 이러한 설문조사의 근거는 아무도 모른다. 병적 도박을 조사할 때와 같이 '자가 보고'를 하도록 해 만든 것일 뿐이며 지금의 진단 기준은 도박 중독을 조사할 때의 조건을 치환해 만든 것이므로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게임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한 시점
한편, 하지현 교수는 "개인적으로 본 심각한 '인터넷 게임 중독'의 수준은 학교를 연달아 유급하거나, 직장에서 해고당하는 등 실질적인 문제가 발생하는 것 외에도 도저히 통제가 되지 않아 병원에 입원하거나 6개월 이상 사회관계가 없는 정도로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현실도피, 강박증,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등 이러한 표면적 이슈 아래에는 더욱 본질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학생들이 게임을 하지 않으면 무엇을 하게 될지 생각해 본다면, 불량한 친구들과 돌아다니며 담배를 피는 등의 행동을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고 말했다.


3년 전 기준으로 'RISS'에 '인터넷 중독(internet addiction)'이라는 단어로 검색했을 때 각종 석박사 논문의 수는 약 2,900개에 달한다. 반면 게임이 갖는 이로운 점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위험한 이야기들만이 뉴스가 되고 주목을 받는다는 것이다. 하지현 교수는 이러한 연구들의 대부분은 앞서 설명한 '자가 보고'를 통한 설문 조사로 이루어진 것들이며, 부모와의 관계나 학습문제, 양육 문제 등으로 결과를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ICD-11'에 '인터넷 게임 중독'이 거론되는 것을 보고 큰 일이 났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실질적으로 'ICD-11'는 굉장히 보수적인 입장이다. 연구 결과들의 구조적인 한계가 있는 만큼 생각해볼 만한 문제이다. 실제로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기존에 알려진 바와 같이 엄청나게 많은 수는 아니다. 이제는 게임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이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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