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계가 우주로의 진출을 시도했다. 그리고 믿기 어렵겠지만 결과는 성공적이다.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국산 영화 '승리호'가 화려한 CG를 필두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전례가 없는 큰 도전, 그리고 공개 이전의 우려를 감안하면 여러모로 괄목할 만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승리호'는 '늑대소년' 그리고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을 연출했던 조성희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송중기, 김태리, 유해진과 최근 '핫'한 배우인 진선규 그리고 '참나무 방패 소린'으로 잘 알려진 '리처드 아미티지(Richard Crispin Armitage)'가 주연을 맡았다. 여기에 '신과 함께'의 실사 영화판에서 미려한 CG를 선보였던 덱스터 스튜디오가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한국에서도 자랑스럽게 선보일 만한 우주 SF 영화가 탄생했다는 평가다.
수준급의 CG에 대해서는 호평이 일색이지만 일각에서는 클리셰, 또 일각에서는 오마쥬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하고 한국 영화 특유의 가족주의적인 메시지가 결합된 결말부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리기도 한다.
영화가 이제 막 공개되어 한참 이슈가 따끈따끈한 지금, 게임포커스 취재팀의 이혁진 기자와 백인석 기자가 영화 '승리호'의 여러 면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자유로운 의견 개진을 위해 스포일러를 마구 발산하는 점은 미리 양해를 구한다.
#수준급 퀄리티의 CG, 최종전의 연출 방식은 조금 아쉬워
이혁진 기자(이하 '이') : 놀라운 수준의 시각 효과다. 국내 VFX 기술력이 상당하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제대로 보여준 느낌이다. 국내에서도 수요가 많다는데 앞으로 해외에서의 수요도 늘지 않을까.
배경과 무대를 모두 CG 처리하는 대신, 일부는 세트를 만들고 또 이를 합성하는 방식으로 작업한 것 같은데, 덕분에 완성도를 크게 끌어올린 느낌이다. 전반적으로 빛 처리를 잘 해서 장인정신이 느껴질 정도다.
백인석 기자(이하 '백') : '백두산'이나 '신과 함께' 등 그동안 국내 영화 중에서도 수준급 CG를 보여준 경우들이 왕왕 있었는데, 어느정도 현실에 기반을 둔 두 작품과 달리 우주라는 완전 가상의 공간을 보여주는 '승리호'는 조금 더 큰 도전이었겠다.
우주 정거장, 폐허가 된 지구, 그리고 그와 대비되는 '지상낙원'으로서의 '화성'의 모습도 잘 담아냈더라. 콘셉트 아트워크를 들여다보고 싶다. 우주 쓰레기를 수거하는 우주선의 면모나 작중 사용하는 무기들의 세부 설정도 궁금해질 정도로 디자인이 매력적이다.
백 : 영화 전반에 깔린 CG 자체는 참 좋은데, 이를 100% 활용해야하는 최종전은 조금 아쉽게 느껴졌다. 영화 전반에 걸쳐 최종 보스인 '설리번'이 인간을 초월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묘사가 나오는데, 정작 최종 결전에서는 4족 보행 로봇에 탑승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모름지기 인간을 초월한 존재라면 막바지에는 '승리호'에 맨 몸으로 올라타 그 위력을 과시하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비슷한 장르를 워낙 자주 본 탓일까, '설리번'의 야망의 스케일이 조금은 작게 느껴졌다.
이 : 기왕 4족 보행 로봇을 등장시켰다면, 로봇의 전체 모습을 보여주고 화려한 액션을 연출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임팩트 있게 등장한 것에 비해 잠깐만 모습을 드러낸 점이 아쉽게 느껴지더라. 안드로이드인 '업동이'의 경우 큰 움직임을 보일 때 동작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는데, 어색하다기보다는 “로봇답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백 : '업동이'의 경우 음성에 보이스웨어를 입히는 대신 유해진 배우의 목소리를 과감없이 그대로 노출했는데, 이 때문에 일반적인 영화의 안드로이드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들더라. 나쁘다는 것은 아니고 로봇에게서 구수한 향기가 느껴져서 당황스럽다는 기분.
예전에 '전우치'에서 맡았던 배역도 그렇고 많은 감독들이 배우 유해진에게서 비슷한 모습을 발견하는 것인가 싶다. 무투파인 '타이거 박'보다 어쩌면 전투 병과에서는 더 유능한 것 같기도 한데 '업동이'의 전투씬이 영화의 백미이기도 하니, 시간을 내서 한번 더 봐야겟다.
#SF 영화에 K-신파 맛을 첨가, 모험을 위한 보험
백 : 영화에 대한 감상평 중에서 가장 평가가 갈리는 것은 '신파' 요소인 것 같다. 그동안 한국 영화에서 익히 다뤄오던 '가족주의적'인 메시지, 그리고 아군 진영에서는 되도록 죽는 사람이 없거나 죽더라도 아주 슬프게 죽어야 한다는 나름의 공식을 따랐기 때문이겠다.
개인적으로는 '모험'을 위한 '보험'을 들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한국에서 SF 장르라는 미지의 영역에 나서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불확실성이 커지기에, 관객들이 편안함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는 익숙한 감정을 느끼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는 '승리호'의 일원들이 '도로시(꽃님이)'에게 애착을 느낀다는 묘사가 부족하다는 지적들도 나오는데, 영화의 속도감을 살리기 위한 의도적인 생략이 아닐까 싶다. 함께 그림을 그리고, 토마토도 팔아 돈 좀 만졌으면 유대감을 느끼기에는 충분하지 않겠나.
이 : 한국형 신파가 첨가되긴 했는데 전체적인 맛을 해칠 정도는 아니다. 국내에서는 한국형 신파를 지겨울 정도로 봤지만 해외 관객들에게는 신선한 가족 힐링 스토리 정도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가족이 없는 이들이 모여 가족을 이룬다는 고전적인 이야기의 틀 안에서 한국 영화에서는 쉬이 찾아보기 힘들던 캐릭터들을 보여주고, 이들이 가족이 되는 과정을 잘 보여줬다. '도로시(Big-O도 그렇고 안드로이드 소녀의 이름은 도로시로 정해져 있는 것이다)'의 아빠가 너무 쉽게 퇴장하고 잊혀지는 점이 걸리지만, 대신 삼촌이 둘 생겼으니… 문제 없나?
백 : 영화에 미약하게 남겨져 있는 신파적인 감정선이 종국에는 '승리호'가 기존의 SF 영화와 차별화되는 경계선을 만들어줬다고도 이야기할 수 있겠다. 송중기가 연기한 '김태호'는 작중 전반에 걸쳐 '후회'와 '속죄'를 위해 살아가는 인물이다.
으레 이런 장르가 그러하듯 과거의 죄는 죽음으로 씻는 것이 '국룰'인 셈. 그러나 '승리호'는 한국 영화 특유의 가족주의적인 시선, 그리고 따뜻한 마음으로 죽음보다는 현실을 살아가면서 죄를 씻어 나가는 길을 택하도록 했으니 신파가 꼭 나쁘다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번 느꼈다.
#샤아의 야망에 맞서는 '비밥 호'의 일원들, 클리셰의 한국적 재해석
이 : 과거를 간직한 만능 전투요원, 섹시하고 터프한 여전사, 돈만 밝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눈물이 많고 정에 약한 아저씨, 여기에 신비한 힘을 지닌 마스코트까지 그야말로 '카우보이 비밥' 속 '비밥 호'의 승무원 및 '웰시코기 아인'의 오마쥬다. 악당은 샤아 아즈나블이 성형수술을 받고 나왔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역습의 샤아' 속 샤아와도 판박이다.
종합하자면 “샤아의 인류 숙청 야망을 아무로 대신 '비밥 호'가 막아낸다는 이야기”가 '승리호'였다. 감독이 영향을 받은 일본 애니메이션(플라테네스 등)들을 언급하긴 했지만, 기자가 '승리호'를 보고 받은 느낌은 “가라! 액시즈, 더러운 추억과 함께… 인류를 숙청하겠다”라는 샤아의 야망을 '비밥 호'가 막아낸다에 가깝다.
백 : 장르에 대한 감독의 이해도와 애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선장(내부 일에는 관심이 별로 없는 한량이어야 한다), 부하 2명, 그리고 인간이 아닌 것 1개의 구성은 그야말로 스페이스 오페라의 필수 요소. 곱씹어볼수록 '카우보이 비밥'의 향기가 짙게 풍기더라. '카우보이 비밥'을 보지 않았더라도 비슷한 테이스트를 가진 '가디언즈 오브 더 갤럭시'와도 꽤나 느낌이 비슷하다. 물론 어디까지나 분위기에서 바라보았을 경우의 이야기다.
장르의 왕도를 따르고 있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한국 영화 특유의 가족주의적인 시각이 '승리호'에 독특한 색채를 더해준다. 구성원이 모인 만찬의 분위기가 좋은 예가 아닐까. '카우보이 비밥'에서는 조촐한 식사를 끝으로 구성원들이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지만 '승리호'에서는 모든 일이 마무리된 뒤, 온 가족이 함께 둘러앉아 된장찌개에 밥을 먹는다. 여태까지는 보기 힘들었던 우주 식사의 한국적인 재해석이다. 마지막 장면이 꽤나 인상깊었던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이 : 일본 애니메이션 뿐만 아니라 헐리웃 고전 SF 영화들에 대한 오마쥬도 군데군데서 보였는데, 워낙 유명한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볼펜 신 같이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장면도 있었지만 기자도 첫 감상에서는 못 보고 지나친 장면이 많을 것 같다. 설 연휴 때 다시 뜯어보며 찾아봐야겠다.
#극장 개봉 불발이 아쉬워, 큰 화면으로 다시 보고파
이 : '승리호'는 한국에서 만든 SF 액션 대작이다. 적어놓고 몇 번을 읽어봐도 조금 어색하다.
어린시절 한국 로봇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다 어른이 된 후, 그것들이 모두 어디선가 가져온 표절 덩어리들임을 확인하고 충격을 받은 트라우마 탓일까? 뭔가 어색한 화면과 엉성한 액션,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유머코드 같은 것들이 가득 담겨있을 것만 같은 선입견을 떨쳐내기 힘들었다.
'승리호'를 보기 전 기대가 그리 크지 않았던 것은 이런 선입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난 뒤인 지금, 조승희 감독과 제작진, 열연한 모든 배우들에게 사과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승리호는 기대 이상의 영상미로 펼쳐지는 우주활극이었다.
클리셰와 오마쥬를 잔뜩 담았지만 튀거나 어색하지 않게 잘 버무렸다. 감독이 젊은 시절 본 일본 애니메이션들과 헐리웃 고전 SF들을 참고해 한국적(?)으로 완성해 냈다. 코로나가 없던 평상시라면 극장에서 수백만 관객을 동원했을 것 같은데 아쉽다. 더 큰 화면에서 빵빵한 사운드로 즐기고 싶은 영화다.
넷플릭스로 승리호를 본 세계 관객들의 반응이 궁금해지는데,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조승희 감독과 배우들에 대한 러브콜이 많아지는 것 아닐까 싶다.
백 : “SF 장르 불모지인 한국에서 이런 영화가 등장했다”라는 것이 국내에서 '승리호'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주된 이유지만, 국적을 떼놓고 봐도 만족할 만한 작품이다.
특별한 기대가 없이 작품을 감상했기에 내릴 수 있는 평가인가 되돌아봤지만 감독이 그려낸 나름대로의 세계관, 그리고 군데군데 엿볼 수 있는 설정들이 의외로 탄탄했다. 단편 영화로 쓰고 접어 두기엔 조금 아쉬울 정도이니 이후에 다른 미디어믹스로의 확장 가능성도 지켜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문득 코로나19 시국이 야속하게 느껴진다. 넷플릭스라는 무대를 벗어나 극장에서 상영되었다면 조금 더 대단한 성적을 내주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반대로 코로나19 시국이었기에 SF라는 마이너한 장르가 관람객들의 이목을 사로잡았을 지도 모르는 노릇. 어디까지나 결과만 놓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겠다. 개인적으로는 코로나19 시국이 정리된 이후 극장에서 다시 한번 '승리호'를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다.
여러모로 우리가 익히 봐왔던 외산 SF물에 한국 영화 특유의 감성이 섞였다. 송중기가 연기한 '김태호'가 모든 과거의 짐과 증오를 짊어지고 희생을 택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마무리가 참으로 한국스럽다는 생각이 들더라. 궤도를 이탈하기 직전, '순이'와 '꽃님이'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남고, 승리호에 생존신호를 보내는 엔딩을 생각했는데... 왕도를 벗어나면서도 해피 엔딩을 그려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추가로 영화 속 음성 녹음이 조금 엉성한 편이다. 넷플릭스에서는 한국어로도 자막을 제공하니 놓치는 대사가 없도록 하자. 국산 영화 특유의 녹음 문제를 해결할 뾰족한 수는 없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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