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외자판호 발급이 재개되어 한국 게임사들의 중국 진출이 다시 활발해질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출시된 게임들이 큰 반향을 얻지 못하며 국내 게임업계의 실망과 당혹감도 감지된다.
게임은 중국에서의 한국 문화 콘텐츠 서비스에 비공식적으로 제한을 건 소위 '한한령'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콘텐츠 영역으로 꼽힌다. 2016년에는 한국 게임만 35개 작품이 외자판호를 받고 중국 서비스를 진행했지만, 한한령이 시작된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 동안 외자판호를 받은 한국 게임은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2020년과 2021년, 컴투스와 펄어비스의 게임이 외자판호를 발급받은 데 이어 2022년 12월, 한국 게임 6개에 외자판호가 발급되어 거대한 중국 시장이 다시 한국 게임사들에게 열렸다. 국내 게임업계에서는 중국 시장 진출 재개에 큰 기대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영원할 것만 같던 한한령 기간 동안 국내 게임업계가 변한 만큼, 아니 그보다 더 중국 게임시장, 게임 유저, 중국 게임이 변했다.
무엇보다 한국 게임보다 한 수 아래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던 중국 게임의 퀄리티가 크게 높아져, '원신'과 '붕괴: 스타레일' 등 초 고퀄리티 멀티플랫폼 게임들이 중국에서 나와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 정부의 규제에 적응하며 중국 게임과 게이머들의 성향도 예전과는 크게 달라졌다.
중국 시장의 현재, 무엇이 바뀌었는가. 그리고 한국 게임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디인지에 대해 전망해 보려 한다.
2022년 주춤한 중국 게임시장 회복세로 돌아서
2020~2021년 사이 코로나 특수를 맞았다 2022년 하락세를 경험하고 위기가 이어지고 있는 국내 게임업계와 마찬가지로 중국 게임시장 역시 코로나 특수가 끝난 2022년 역성장에 직면했다.
중국 게임시장의 전체 매출규모는 10% 감소했고, 유저 규모도 축소됐다. 무엇보다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는 모바일게임 시장이 14.4% 축소되어 충격을 안겨줬다. 이는 중국 게임업계에 '규모 성장'이 끝나고 계속 강조되어 온 '고품질화'와 '유저들의 유료 서비스 이용 습관 정착'에 더욱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중국 정부에서도 게임산업 육성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고, 진흥정책이 펼쳐질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얼마 전 끝난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e스포츠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도 그런 방향성의 일환으로 분석된다.
2022년 시장 규모와 유저 수가 모두 줄어들었던 중국 게임시장은 2023년 다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2023년 상반기 중국 게임시장 전체 매출 규모는 줄었지만 게임 유저 수는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2022 년 중국 게임시장 매출 규모는 약 2659억위안(약 49조 2740억원)으로, 코로나 특수로 호황을 맞은 2021년에 비해 약 306억위안(약 5조 6700억원) 감소해 충격을 줬다. 코로나 19 사태 장기화의 영향으로 게임사의 운영 비용 증가, 프로젝트 감소, 현금 유동성 부족, 작업 효율성 감소 등이 주요 요인으로 거론됐다. 거기에 중국을 포함한 그롤벌 경제 상황의 악화로 국내, 해외 매출이 모두 줄었고, 투자 감소와 그로 인한 신작 출시도 줄어들며 위기감이 커졌다.
매출만이 아니라 유저 수까지 줄어들었다는 통계가 나와 위기감을 증폭시켰다. 2022년 중국의 게임 유저는 6.64억명으로 2021년에 비해 0.33% 하락했으며, 2014년 모바일게임 시대가 열린 후 성장만을 거듭해 온 모바일게임 유저도 약 6.54억명으로 2021년에 비해 0.23% 감소했다. 중국에서 10년 가까이 이어진 모바일게임 성장기가 끝났다는 분석이 쏟아졌다.
하지만, 2023년 상반기에는 다시 게임 유저 수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2023년 7월 27일 상하이에서 개최된 중국 국제 디지털 오락 산업 대회(中国国际数字 娱乐产业大会)에서 발표된 '2023년 1~6월 중국 게임산업 보고서'(2023年1-6月中国游戏 产业报告)에 따르면 2023년 상반기(1~6월) 중국 게임 시장의 매출 규모는 1442억 6300만 위안으로 코로나 특수가 이어지던 2022년 상반기보다 2.39% 감소했지만, 시장 규모가 축소되었던 2022년 하반기와 비교하면 22.2% 증가하며 뚜렷한 시장 회복세를 보였다.
게임 유저 수도 6억 6800만명, 2022년 하반기 대비 0.35% 증가하여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강력한 규제에 적응하며 우리와 다른 방향으로 진화한 중국 게임업계
한한령으로 한국 게임 수입을 막았지만, 그렇다고 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들에 진흥책만 펼친 것도 아니었다.
중국 정부는 하루 2시간만 게임 플레이가 가능하도록 미성년자 게임 이용 규제로 대표되는 강력한 규제 정책을 펴 중국 게임사들을 고민에 빠뜨렸다. 우리의 '셧다운제'를 연상시키는데, 중국 게임사들의 이 규제에 대한 적응이 이후 중국 게임과 유저들을 질적으로 변화시켰다는 느낌이다.
국내 게임사들 사이에서는 전반적인 게임 개발의 방향성이 직접적으로 제공하는 콘텐츠, 스토리와 미시적인 플레이 경험을 강화하기보다는 성장과 경쟁이라는 추상적인 보상 체계에 방점을 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유저들을 우리 게임에 얼마나 오래 묶어둘 수 있는가, 온전히 하나의 게임에 매진하도록 만들기 위한 게임 디자인, 소위 '리니지라이크'와 같은 한국식 MMORPG는 그런 방향성의 도달점이라 해도 될 것 같다.
미성년 유저들을 포기할 수 없었던 중국 게임사들은 아무리 유저들을 우리 게임에 묶어두고 싶어도 2시간이 한계라는 주어진 상황 속에서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콘텐츠를 짧은 주기로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짧은 시간에 만족도가 큰 스토리 콘텐츠를 강조하는 방향. 다양한 독창적 설정과 스토리, 캐릭터성을 갖춘 중국 게임들이 쏟아지게 된 배경이다.
그리고 그런 게임들에 적응하고 그런 '미시 콘텐츠'의 재미를 알아버린 중국 유저들에게 한국식 거시 콘텐츠, 성장과 경쟁의 재미가 제대로 통할까 하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중국에 진출한다는 한국 게임들 중 스토리에 확실한 강점을 가진 게임들의 성공 가능성을 높게 예상하고 그렇지 않은 게임들에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원신 쇼크', 개발에서 따져야할 것은 효율성이 아니라 최종 결과물이 제대로 나오느냐는 것 뿐이다
중국 게임시장은 2020년부터 2022년 상반기까지, 코로나 기간 호황을 맞이했지만 2019년 경험한 성장 둔화와 중국 정부의 규제 하에 중국 게임사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멀티 플랫폼으로 승부한다는 전략으로 일찌감치 나아갔다.
현재 글로벌 게임시장에서 지배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초격차 게임 '원신'과 신작 '붕괴: 스타레일'을 앞세운 미호요를 필두로 요스타, 퍼펙트월드, 넷이즈, 텐센트 등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질주하고 있다.
선두 주자인 미호요가 게임 하나 당 개발 규모를 1000명 단위로 가져간다는 이야기가 회자되며(출시 전 만난 미호요 임원은 '원신' 개발에만 매진하는 인력이 500명에 필요한 일에 투입되는 인력도 그정도라고 밝힌 바 있다, 현재의 개발 규모는 꽤 달라졌을 것 같다) 3교대로 24시간 일을 시키는 노동집약적 개발로 중국 게임이 성공했다는 이야기는 다행히 사라진 것 같다.
대신 그런 규모로 개발할 수 없는 우리는 경쟁이 안 된다는 체념이 생겨났고, 1000명의 개발 규모를 관리하는 노하우야말로 중국 게임사들의 경쟁력이라는 새로운 신화가 중국 게임은 24시간 3교대로 게임을 만든다는 신화를 대체하게 된 것 같다.
'원신'의 개발비용은 출시 전 초기 단계에 이미 1억달러를 돌파했고, 2021년부터는 매년 2억달러 이상을 개발에 투입해 이미 6~8억달러 가량이 투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적게 잡아도 8000억원, 최대 1조원 이상의 개발비가 투입되었다는 것으로 1000명은 초기 개발인력이고 지금은 더 많은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해가 되는 수준이다.
이런 초 대규모 개발을 어떻게 관리하는 것인가에 대해 중국 게임업계 관계자들에게 물어보면 한결같이 '특별한 비결이 없다'는 답이 돌아온다. 대규모 개발 규모에서 생기는 비효율과 관리만을 위한 인력의 발생을 감수하고 최종 결과물의 퀄리티를 담보하는 것에만 신경쓴다는 것으로, 개발비 1조원을 썼어도 2023년 상반기에 이미 누적매출 6.2조원을 돌파했으니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기자 역시 특별한 비결이 있을 것이라는 신화를 믿다가 이런 설명에 놀라고 말았는데... 국내 굴지의 게임사 N사가 '우리도 필요하면 1000명 규모 개발조직을 꾸려 대작을 만들어야 한다'는 대표 일성에 실제 대규모 개발 조직을 검토하다 인력 관리를 위한 PM 조직만 50명 이상 규모로 가져가야 한다는 예상에 감당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 생각나 역시 같은 방식으로 중국 게임사들과 경쟁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개발팀 100명으로 90의 효율을 낼 수 있고 1000명으로는 500의 효율 밖에 내지 못해 비효율이 크다고 할 때, 비효율을 감당할 수 없으니 개발 규모는 적정선으로 가자는 판단과 비효율이 크더라도 최고 수준을 끌어내 경쟁에서 이겨내자는 판단, 후자를 고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중국에서도 미호요가 먼저 갔지만 단기간에 따라가는 회사가 나오지 않았을 정도이니 국내에서 '왜 미호요처럼 하지 않았지?'라는 의문은 가혹한 질문이 아닐까 싶다.
'데이브'와 'P의 거짓'이 보여준 가능성, 개발력과 아이디어로 승부할 여지 있어
개발비와 개발 인력 규모로 충격을 준 미호요가 '원신'으로 한국은 물론 일본, 세계 게임업계에 안겨준 더 큰 충격은, 그런 개발 규모라 가능한, 반복 콘텐츠로 플레이 타임을 늘리려는 노력 대신 자주 새로운 콘텐츠와 스토리를 제공하면 된다는 힘으로 밀어붙이는 해법이었다.
일본 게임업계에서 '원신'이 소개된 후 모바일게임 유저들이 다른 유저들과 함께 즐기는 소셜 요소나 경쟁 콘텐츠보다는 싱글플레이 콘텐츠, 스토리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들리게 된지도 몇년 되었는데, 이런 경향은 한국은 물론 세계 모바일게임 유저들 전반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됐다.
스토리가 좋다는 평가를 받는 모바일게임도 스토리 콘텐츠 업데이트는 매우 긴 텀을 두고 진행이 되고, 처음에 스토리와 싱글플레이를 장점으로 내세워 출시된 게임이라도 유저들이 원하는 속도로 콘텐츠를 제공할 수 없어 결국 PVP와 반복 콘텐츠를 엔드 콘텐츠로 제공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싱글플레이 콘솔게임이 모바일게임과 온라인게임이 득세한 후에도 힘을 잃지 않은 것은 기본적으로 잘 만든 싱글플레이 콘텐츠는 재미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속적인 운영을 해야하는 온라인, 모바일게임에서는 개발 효율이 좋지 않다. 시공간을 불특정 다수의 유저가 공유하는 멀티플레이 게임에서는 콘솔게임의 싱글플레이 캠페인과 같이 정제된 경험을 제공하기도 쉽지 않기에 다른 유저와의 사이에 발생하는 불확실성에 기반한 재미를 주는 방향으로 개발 방향이 발전한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일부 유저나 게임업계 관계자들은 한국 게임업계에서 스토리와 싱글플레이를 만드는 능력이 (사용하지 않아) 퇴화되어 이제 하려고 해도 못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왔지만, 최근 성공 사례들을 보면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다.
사내의 다양한 시도들을 '회사의 이름을 걸고 내놓기엔 너무 작은 게임이다, 적절치 않다'고 묵살해 왔던 넥슨이 브랜드까지 새로 만들어 선보인 '데이브 더 다이브'는 아이디어를 구현할 기회를 주면 한국 개발자들이 멋진, 신선한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 사례이다.
판매량과 평가가 모두 좋게 나와 넥슨 내부에서, 그리고 다른 게임회사에서도 다양한 시도에 나서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긴다.
네오위즈에서 선보인 'P의 거짓'은 언리얼 엔진 개발자를 가장 많이 보유한 한국의 게임사들이 제대로 만들면 세계에 통할 퀄리티의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네오위즈에서 속편 개발에도 나선다는데, 차기작에서 독창성을 좀 더 가미한다면 더 큰 반향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한국은 스토리에 강한 나라, 중국 시장 성적도 장기적으로 기대해볼만 해
청소년들의 게임 이융 가능 시간을 게임 당 2시간으로 규제하던 중국 정부가 총 게임 시간을 2시간으로 제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원신' 쇼크에서 벗어난 중국 기존 강자들의 대작들과도 경쟁해야 하지만 중국은 여전히 포기하기에는 너무 큰 시장이다.
그런 중국 시장에서 스토리와 설정, 캐릭터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됐다. 고퀄리티 게임에 반복 콘텐츠 없이 신규 콘텐츠를 지속 투입하는 미호요의 방법론은 쉽게 따라할 수 없고, 중국의 기존 강자들도 '원신'이 득세한지 3년이 지난 이제야 '원신 게섯거라' 대작을 간신히 들고나올 수 있게 됐다.
넷이즈가 스토리가 좋다는 해외 게임사를 사들이고 유명 작가와 콜라보한 게임을 발표하는 것은 단기간에 좋은 스토리를 확보하기 힘들다는 반증일 것이다. 텐센트가 자사 웹툰을 게임으로도 띄워보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듯 기존 작품의 게임화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제까지 스토리와 설정 같은 요소를 소홀히 한 한국 게임사들이 당장은 애를 먹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게임에서 눈을 돌리면 웹툰, 웹소설, 드라마 등 콘텐츠 전분야에서 참신한 스토리로 세계에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도 한국이다. 스토리를 만드는 능력은 충분히 갖추고 있는 나라 아닌가.
초반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스토리에 강점을 가진 '블루 아카이브'의 향후 성과나 탄탄한 설정을 가진 스마일게이트의 '로스트 아크'의 성과도 기대할만 하고, 현재 개발중인, 앞으로 개발될 신작들로 중국 시장을 공략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멀티 플랫폼, 고 퀄리티, 탄탄한 스토리와 설정이라는 필수 요소를 잘 갖춘다면 충분히 승부해볼만 하고, 이런 요소를 잘 갖춘 게임이라면 중국만이 아니라 국내, 글로벌 시장에서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게임사들은 언제나 위기를 극복하고 도약해 왔다. 현재 국내 게입업계에 불고 있는 한파와 중국 게임들과의 경쟁을 잘 이겨내고 다시 도약할 것이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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