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빠른 실수 인정과 사과, 그리고 대응책 마련으로 그냥 그렇게 끝날 것 같았던 '메갈리아' 논란이 해당 기업의 말바꾸기와 책임 전가 그리고 이에 동조한 관련 단체들이 집단 행동에 나서면서 논란은 점점 확대되고 진실게임과 같은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리고 논란이 커진 만큼 차라리 이번 기회를 통해 게임업계의 '메갈리아' 논란이 완전히 불식되기를 바라는 목소리도 더 커지고 있다.
지난 25일 넥슨의 대표 게임 중 하나인 ‘메이플스토리’의 애니메이션 영상을 제작에서 발견된 남성 혐오 손동작, 일명 ‘집게 손’이 발견되고 난 후 다양한 프로젝트들에서 유사하거나 동일한 것으로 판단되는 작업물이 연이어 발견되면서 게이머들은 해당 프로젝트의 외주 제작을 맡은 스튜디오 뿌리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를 냈다.
사건이 터지자 이미 메갈리아 논란으로 큰 홍역을 겪은 바 있던 다른 게임사들도 혹시 자사 게임에도 비슷한 표현이 있는지 확인에 나섰고 몇명 유명 게임을 이끄는 디렉터들 역시 민감하게 반응하며 논란을 사전에 차단하고자 빠르게 움직였다.
그런데 논란이 터지자 바로 사과문을 올리며 수습에 나섰던 외주 제작사인 스튜디오 뿌리는 돌연 지난 4일,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억울함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의도적으로 그럴수도 없다(넥슨도 함께 검수를 하기 때문에)’, ‘이번 논란은 혐오 논란을 부추기기 위한 짜깁기다’, ‘(잘못하지 않았지만)넥슨의 압박에 어쩔 수 없이 잘못했다고 말했다’였다.
그들의 입장이 한 편으로는 이해가 간다. 기자도 다양한 애니메이션 제작사, 감독들과 인터뷰를 진행해 봤기 때문에 구조상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 역시 이해할 수 있고 속내는 알 수 없지만 일부러 혐오 표현을 넣을 의도가 없었다는 것 역시 믿고 싶다. 하지만 그들의 해명은 1프레임(0.017초)이라는 짧은 순간 굳이 없어도 되는 어색한 집게 손 모양이 논란이 된 게임만이 아닌 다수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혹시라도 이 글을 보게 되는 스튜디오 관계자가 있다면 인터뷰를 통해 직접적으로 해명을 한 던전앤파이터의 PV영상을 제외한 모든 영상에서 거의 동일한 집게 손 모양이 유지됐어야 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면 기사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하겠다.
개인적으로 혐오 논란을 떠나 기자 역시 스튜디오 뿌리가 설립되고 사업을 한참 전개하기 시작했을 무렵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작은 작업실에서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김 감독의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해당 인터뷰가 공개된 이후 국내는 물론 해외 에이전시들도 관심을 갖고 수차례 김 감독의 연락처를 기자에게 직접 물어본적이 있었고 당연히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해 적극적으로 소개도 한 바 있다.
이 처럼 잘 성장하고 있었던 스튜디오 뿌리가 그야말로 ‘뿌리’채 흔들리고 있는 현 상황이 그래서 더 안타깝다. 진심으로 바라건데 꼭 잘 해결되길 바란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번 사태는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게임업계는 소위 메갈리아와 관련된 논란으로 수년 동안 고통을 받아왔다. 논란이 발생될때마다 게임사의 매출이 휘청일 정도의 큰 타격을 입기도 했으며 개발팀 단위로 징계를 받거나 해고되는 등 해당 논란은 게임업계의 노이로제였다. 다만 이전에는 해당 기업내에서 작업을 진행한 담당자들이 혐오 커뮤니티인 ‘메갈리아’의 이념을 지지하고 있었다는 것이 알려지고 대응도 각 개별 기업, 혹은 게임내에서 진행됐다면 이번에는 다르다. 그러한 개인적 이념을 스스로가 몸담고 있는 회사는 물론 그 회사를 믿고 작업을 맡긴 다른 회사의 소중한 작품에 표출했다고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무것도 모른채 외주를 맡긴 작업물로 인해 기업과 게임에 피해를 입은 넥슨을 '가해자'로 몰며 '선량한' 기업을 압박한다고 몰아가는 일부 언론과 단체들의 행위도 문제다.
과거 이런 논란으로 생업이 흔들렸을만큼 업계 사람들이 느낀 고통과 지난 수년 동안의 협업에 대한 믿음이 부정당한 배신감을 헤아리지 못하면서 마치 힘 있는 자가 (잘못을 했는지 안했는지 모르지만)힘 없는 자를 억압한다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다. 의도가 있든 없든 논란을 일으킨 소수의 고통에는 민감하면서 그 소수에 의해 게임 제작자는 물론 게임소비자까지 다수가 해당 작업물로 고통받고 또는 불편해 하는 것에는 왜 모르는척 하는지 의문이다. 물론 '억압'이 당연하다는 것도 아니니 혹여나 오해없길 바란다.
이번 논란을 지켜보자면 예전 한동안 게임업계를 휩쓸었던 ‘욱일기’ 논란이 떠오른다. 역사 고증으로 잘 알려진 러시아의 개발사 워게이밍에서 욱일기가 들어간 일본의 전함을 공개했고, 혐오 표현이라며 삭제를 요구한 한국의 게이머들의 요구를 받아들여준 에피소드다.
당시 워게이밍은 국제제사법재판소의 위법 판정이 없었기에 한국게이머들의 의견을 수용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취했지만 욱일기가 왜 한국인들에게 혐오 표현인지를 입증하기 위해 책 한권 분량의 자료를 근거로 설득에 나선 한국법인의 헌신적인 노력과 유저들의 역사 알리기가 더해지며 최종적으로 게임 내 모든 욱일기를 삭제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비슷한 시기 뉴욕시 역시 최초로 한인사회에 사과를 했었는데 당시 뉴욕시에서는 “욱일기가 표현하는 의미에 대해 잘 몰랐다. 욱일기를 의도할 의사는 없었다”며 “문제의 광고가 여러분과 또 다른 분들에게 아픔을 준 것을 사과드린다. 다시는 해당 디자인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히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런 노력들 때문에 다른 나라의 게임에서 종종 등장하는 욱일기가 국내 게임에는 혹은 국내에서 서비스되는 게임에는 등장하지 않는, 등장했어도 바로 삭제되는 이유도 그래서다.
이번 논란에 대해 오해가 있다면 설명하는 것이 맞고 잘못된 점이 있다면 바로잡아야 하며 일부 사람들이 주도하는 사이버불링 역시 근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얼핏 보면 별 의미 없어 보이며 다른 나라의 다른 게임들에서도 종종 보여지는 '집게 손'에 왜 유독 국내 게임업계가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이해하고 이로 인해 불거진 모든 의혹과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단순히 ‘의도하지 않았다’, ‘억울하다’ 혹은 '해외의 수 많은 다른 게임에서도 사용된다'며 변명하고 모른척 해서는 안된다.
오해는 또 다른 오해를 낳고 그러한 오해는 또 다른 증오의 수단으로 활용될 뿐이다. 진짜 오해가 있을수도 있다. 그리나 의도가 있든 없든 이런일이 발생했고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본인들의 행위가 다른 잘못없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혔다면 억울하다고만 하지 말고 그 피해에 대해 제대로 사과를 하는게 우선이다. 그리고 오해였다면 진심으로 그 오해가 해소되고 다시 좋은 작업물을 만드는 데에 집중할 수 있도록 관련된 모든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다시는 이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좋은 방안을 찾아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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