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하신 분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조엘 (役.짐 캐리)
변덕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기색을 하고 일어난 남자, 침대에서 일어난 것으로 보아 잠을 잔 것 같기는 하지만 제대로는 못 잔 모양이었다. 그렇게 며칠 밤을 꼬박 샌 것 같은 몰골을 하고도 출근 준비를 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건대 남자는 제법 성실한 타입인 것 같다.
다소 힘겨웠던 준비를 마치고 밖으로 나간 남자는 집 앞에 주차된 자신의 차를 보고 경악했다. 차 문에는 커다란 상처가 났음은 물론 움푹 들어가서 골이 생겨 있었다. 제대로 잠을 못 잤던 남자와 같이 그의 차 또한 밤새 안녕하지는 못 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옆에 주차된 차 주인의 짓인 것 같은데 그의 차는 상처하나 없이 깨끗했기 때문에 더 열이 받았다. 차주에게 짧은 인사의 말을 남기고 남자는 일단 출근길에 올랐다. 기차역 근처에 주차를 하고 출근 행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반대편의 안내방송이 울렸다. '곧 몬탁, 몬탁 행 기차가 도착 합니다.' 분명히 출근 할 생각으로 왔던 기차역이었을 텐데 안내를 들은 남자는 무언가에 이끌리기라도 한 것처럼 달려가 몬탁 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몬탁, 몬탁의 바다
어쩐지 사랑이 시작될 것만 같은 장소 그가 반했던 그녀가 있을 것만 같은 장소
잊어가기, 받아들이기
헤어진 연인은 남자를 처음 보는 사람 대하듯 차가웠다. 심한 말을 하긴 했지만 그렇게 헤어지고 단 하루 만에 자신을 모르는 사람처럼 여기는 연인이 원망스러웠다. 사과하려고 갔던 거였는데 사과할 마음이 다 사라져버렸다. 후에 남자가 알게 된 사실은 자신의 연인이 자신과 관련된 기억을 전부 다 지워버렸다는 것이었다. 남자는 화가 났다. 나와의 추억이 고작 그 정도였나. 애도 아니고 어떻게 그런 일을 그렇게 함부로 결정할 수 있는 걸까. 서운했다. 그리고 남자는 생각했다. 연인이 자신의 기억을 지우고 살아가는데 자신만 연인에 대한 기억을 간직한 채로 살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연인이 기억을 지웠다는 병원을 남자도 찾아갔다. 아픈 기억을 지워드립니다. '라쿠나사'
경로를 이탈할 수 없습니다
상담을 받고 남자는 정리를 시작했다. 물건, 기억, 그 외의 모든 것들. 당장은 화가 나고 서운하지만 딱 하루, 하루만 지나면 모든 것은 연인을 만나기 이전의 그 평온한 날들로 돌아올 것이다.
병원에서 받아 온 약을 복용하고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최근의 기억에서부터 과거의 기억으로의 여행, 무의식 속의 의식. 연인과 관련된 물건, 장소를 떠올리며 함께했던 기억을 지워나가는 여행을 시작한다는 것은 무척 이상한 일이었다.
남자를 항상 화나게 만들었던 연인의 행동들은 기억이 거듭될수록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래 저런 모습에 반했었어, 저런 모습이 좋았지, 참 귀여웠어, 예뻤어. 불현듯 후회가 밀려왔다. 되돌리고 싶었다. 잊고 싶지 않았다. 잃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후회하기에는 이미 늦은 후였다. 남자는 기억 속 연인의 손을 잡고 달렸다. 도망치자. 아침이 밝아오기 전까지 잘 숨어있기만 한다면 기억은 지워지지 않을 거야. 그러나 기억은 남자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집요했다. 도망치고 또 도망쳐도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기억은 계속해서 무너지고 사라지고 잊혀져갔다.
"이런 추억들이 곧 사라지게 돼, 어떡해?"
"그냥 음미하자"
결국 사랑
10주년을 기념하여 재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이터널 선샤인'을 봤다.
로맨스 영화로서 많은 찬사를 받았다는 것 외에는 이 영화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배우 '마크 러팔로'의 출연작이라고 해서 관심이 갔다. 그의 10년 전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정작 영화가 시작되고 나서는 조엘 (짐 캐리)과 클레멘타인 (케이트 윈슬렛)의 이야기에 푹 빠져서 마크 러팔로가 잘 보이지 않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영화가 정말 좋았으니까. 막상 볼 때는 크게 감동받고 그런 것은 없었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니 뒤늦게 여운이 찾아왔다. 이 여운, 꽤나 오래 갈 것 같다. 시간의 교차가 이루어지는 초반은 좀 어수선했다. 장면이 급격하게 전환 됐고 어떤 인물이 뜬금없이 등장했다. 의문이 생겨났다. 대체 뭐지.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영화는 계속해서 흘렀다. 마치 조엘의 기억처럼.
처음에는 좋았던 것들이 시간의 흐를수록 점점 시들해지면서 서로의 사소한 모든 것들에 대해 짜증나고 화가 났다는 연인들의 말. 지금은 진저리를 치게 만들 정도로 싫다고 하지만 단지 잊었던 것뿐인지도 모른다.
사실은 좋아하는 부분이었다는 것을, 좋아하게 만들었던 부분이었다는 것을. 기억을 지우고 새롭게 시작한다고 한들 시간이 지나면 또 다시 지루해하고 싫증내고 화를 낼지도 모른다. 이미 한 번 변했고 앞으로 변하지 않을 것이라 단정 지을 수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작하자고 마음먹은 것은 결국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잔잔한 선율과 조엘의 기억, 그리고 사랑스러운 클레멘타인
나를 기억해줘, 최선을 다해서
당신은 할 수 있을 거야.
글 제공 : 키위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duddjw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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