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CG 애니, 만화(모에)적 캐릭터 묘사 해법 찾았나

등록일 2013년11월28일 12시35분 트위터로 보내기


지난 11월 7일부터 10일까지 부천에서 열린 부천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은 '마크로스'의 카와모리 쇼지, '에반게리온', '늑대아이' 등의 캐릭터 디자이너 사다모토 요시유키, '프린세스메이커'의 아카이 타카미 등 거장들의 방문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한편 이들과 함께 방한했지만 마니아들 사이에서만 방한 소식이 화제를 모은 이가 있었다. 바로 일본의 유명 애니메이션 평론가 히카와 류스케다.

히카와 류스케는 한국의 애니메이션 마니아들에게 주목할만한 작품으로 극장판 중에서는 '거꾸로 된 파테마'를, TV 애니메이션 중에서는 '푸른 강철의 아르페지오'를 추천했다.

이 중 푸른 강철의 아르페지오는 애니메이션 전문채널 '애니플러스'를 통해 국내에 정식으로 소개되고 있어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다.


동명의 인기 만화를 원작으로 한 푸른 강철의 아르페지오는 키시 세이지 감독의 역작이다. 그는 특유의 연출력과 작업 스타일로 팬들은 물론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푸른 강철의 아르페지오는 무엇보다 일본 TV 애니메이션 사상 처음으로 '캐릭터'를 포함한, 작중 움직이는 모든 물체를 3D CG로 제작한 작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일찍부터 애니메이션 제작에 CG를 도입한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들, 카미야마 켄지, 모리모토 코지, 카와모리 쇼지 등의 공통된 고민은 CG 모델링으로 캐릭터를 표현할 경우 기존 일본 애니메이션과 같은 캐릭터의 매력을 살릴 수 없다는 점이었다. 액션도 기존 셀 애니메이션에 비해 '멋있게', '아름답게' 표현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푸른 강철의 아르페지오는 이런 한계를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액션 묘사도 훌륭했지만 무엇보다 캐릭터 묘사 면에서 기존 애니메이션들에게 전혀 뒤쳐지지 않게, 오히려 더욱 매력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일부 팬들이 전투 신만 CG로 만들어졌고 나머지 부분은 기존 작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는 오해를 하고 있을 정도다.

어떻게 이런 묘사가 가능했을까? 비결은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진의 장인정신(?)에 있었다.

푸른 강철의 아르페지오를 제작하며 키시 세이지 감독은 작품의 매력을 전달하고 임팩트를 줄 1, 2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작품의 '모에'도를 책임질 캐릭터 '타카오' 묘사에 공을 들였다고 한다.

한 가지 사례를 소개해 본다.

키시 감독은 푸른 강철의 아르페지오 1, 2화를 제작하며 한 가지 고민에 빠졌다. 타카오가 허리에 손을 짚고 클로즈업되는 신 등 타카오의 상반신이 클로즈업되는 장면에서 CG 모델링한 타카오의 가슴이 중력의 법칙에 따라 아래로 쳐지며 소위 '만화 가슴'이라 불리는 기존 애니메이션에서 볼 수 있는 봉긋한 가슴이 아니라 아니라 좀 더 리얼하게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타카오의 매력이 반감되었다고 느꼈다.

제작진에게 이 부분에 대해 상담한 결과, 간단한 해결책이 나왔다.

타카오의 상반신 클로즈업은 타카오가 가만히 서서 움직이지 않는 장면이므로 '수작업'으로 가슴의 위치를 옮기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푸른 강철의 아르페지오의 CG 스탭은 성공적으로 이 작업을 완수했다.

'푸른 강철의 아르페지오 1화' 중 한 장면. 애니플러스 제공
'푸른 강철의 아르페지오' 2화의 한 장면. 애니플러스 제공
'푸른 강철의 아르페지오' 2화 중 한 장면. 타카오가 모에하게 보일 필요가 덜 한 장면이라 손을 덜 댄 것으로 보인다

푸른 강철의 아르페지오 1, 2화를 보며 타카오의 클로즈업 장면에서 그녀의 가슴을 보고 위화감을 느낀 시청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례는 '만화적이지 않은, 모에하지 않은' CG 애니메이션을 기피해 오던 일본 애니메이션이 CG를 어떻게 사용해야할지에 대한 하나의 해답을 찾은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히카와 류스케는 푸른 강철의 아르페지오를 추천하며 "일본 애니메이션이 앞으로 CG를 어떻게 쓸 것인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라고 했다. 기자 역시 그의 말에 100% 동의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수작업으로 처리해나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런 작업을 능숙하게 해낼 수 있는 인력도 현재 상황에선 그리 많지 않다.

그런 면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의 CG로의 여정은 이제 시작된 것에 불과하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여전히 부족한 CG 애니메이터가 질적, 양적으로 성장한 뒤에야 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오게 될 것으로 보인다.

어찌 되었든, 푸른 강철의 아르페지오가 애니메이션 마니아라면 한 번쯤 보고 넘어가야 할 작품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Ark Performance/少年画報社・アルペジオパートナーズ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들의 권리는 아크 퍼포먼스, 소년화보사 아르페지오 파트너스에 있습니다. 무단 전제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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