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약 10~20년 전 PC게임 시장은 황금기였다. 모든 게임을 열거하지 못할 정도로 다양한 게임이 쏟아져 나왔으며 유저들은 환호했다. PC게임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매체가 있었으며 공중파를 통해 방송도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인기에 편승하듯 발매된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 시리즈의 발매는 이러한 분위기를 가속화 시키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
그러나 불법복제가 성행하면서 PC게임 시장은 국내에서 명맥만을 유지할 정도로 그 크기가 작아졌다. 시장의 크기가 작아지니 당연히 해외 게임들의 한글화가 제대로 이루어질리가 없었다. 한국에서 게임이 팔리지 않는데 굳이 한글화까지 해가며 한국에 게임을 출시하려는 유통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저들의 외국어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은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한 선택조건이 아닌 필수조건이 되었다.
유저들은 게임을 즐기기 위해 게임의 배경지식, 용어 및 단어를 철저하게 습득했다. 사전 찾는 것은 기본중의 기본이었다. 게임을 이해하기 위해,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 선택이 아닌 필수였으며 기본적인 '노력'이 필요했다.
위 표와 같이 전성기를 맞이했던 PC게임 시장은 2002년을 정점으로 하락세에 접어들었으며 그 이후 해마다 유일하게 마이너스 성장세를 보여주는 플랫폼이었다. 특히 2001년에 국내 발매된 PC게임의 수는 207편에서 2002년 약 150편 2003년에는 63편에 불과하였다.(게임 산업개발원 2004년 발표자료)
유저들 입장에서는 게임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사실 게임을 완벽하게 즐기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게임의 언어는 게임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컨텐츠이자 개발자와 유저간의 소통을 담당하는 매개체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한편, 비디오게임 시장의 경우 2000년 초 XBOX와 PS2, 게임큐브의 발매가 이루어지고 그와 함께 엄청나게 많은 타이틀이 한글화가 이루어져 발매되기 시작했다. 게임유저의 불모지였던 비디오게임 시장은 한글화와 더불어 엄청난 성장을 하기 시작한다. 그 타이틀을 일일이 열거하는 것 보다 전체 발매된 게임 목록에서 비한글화 타이틀을 꼽는 것이 쉬울 정도로 많은 타이틀이 한글화 발매가 되었다.
그러나 이런 게임 홍수 속에 대다수의 유저들이 불법공유를 택하면서 PC에 이어 비디오 게임 시장까지 침체의 늪에 빠지게 되었다. 불법공유를 통해 판매량이 저조해지자 한글화 작업에 투입되는 투자대비 수익률도 낮아지기 시작했으며 결국 비한글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이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유저들은 과거 한글화 게임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언어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게임에서 감동을 느끼는 것은 그저 먼 나라의 이야기가 되버린 것이다.
그 때문일까? 게임의 재미를 공유하기 위해 국내에 발매되는 외국 게임들이 하나 둘씩 유저들의 손에 의해 한글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단순히 텍스트 번역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식발매라고 말해도 의심되지 않을 정도로 수준 높은 한글화 작업을 진행한 타이틀도 있었다.
'유저패치'라고 불리는 한글화 작업은 말 그대로 상업적 용도를 배제하고 순수하게 현지화를 목적으로 나오는 결과물이지만 일부 게임에선 소스코드 분석 자체만으로 법적인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본다면 게임 내 중요 시스템을 건들이지 않는 선에서의 폰트 한글화는 게임을 알리는 측면에서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개발사에서도 크게 문제 삼지 않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이와 관련, 한글화 패치를 진행하는 많은 유저들 중 최근 '데드스페이스 2'의 한글화를 진행하여 많은 유저들에게 이름을 알린 '루넨스'라는 아이디를 쓰는 유저와 만나 한글화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통해 개발자와 업계관계자가 아닌 순수한 유저의 눈으로 보이는 한글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았다.
*인터뷰 원문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서체를 바꾸지 않았음을 양해 부탁 드립니다*
Q. 본지를 통해 처음 접하는 유저들을 위해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처음으로 인사드립니다.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루넨스'라는 ID를 쓰고 있는 17살 남학생입니다.
Q. 한글화 제작에 참여한 게임은 어떤 게임이고 어떤 동기로 시작하게 되었나요?
A. 최근엔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는 '데드스페이스2'의 한글화 작업을 완료했고 그 이전에는 '문명 5'의 유저패치 및 '마피아2'의 인터페이스 수정 작업 등을 했습니다. 그리고 요즘엔 '쇼군 토탈워2', '심즈 미디블', 'Europa universalis3'의 한글화 패치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이런 유저패치를 통한 한글화를 시작한 동기는 2008년경 'Emperor ~rise of middle kingdom~' 이라는 게임 때문이었습니다. 이 게임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한글화를 통해 더욱 재미있게 즐기고자 과감히 도전했었는데 당시 나이도 어리고 그와 관련된 지식도 없어 일부 한글화로만 결과물을 만들고 포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한글화에 대한 어떠한 선망을 가지고 있었고 그러한 마음에 다른 여러 게임의 한글화를 시도했지만 좌절의 쓴 맛만을 느꼈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2011년, 우연찮게 아프리카 방송의 “ID : 홍방장” 이라는 분의 '데드스페이스2' 방송을 보게 되었습니다. 방송 자체는 매우 재미있게 봤었는데 방송 중 그분이 게임의 비한글화를 통한 어려움을 호소하며 많이 아쉬워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데드스페이스2'의 한글화를 시도해보자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2011년 2월쯤 1인 작업으로 '데드스페이스 2'의 한글화를 거의 마무리 하였습니다.
Q. 작업이 상당히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글화 과정은 어떻게 준비하였나요?
A. 한글화 작업은 분명 까다로운 작업이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어려운 것은 아니고 게임이 어떤 기반으로 프로그래밍 되어있는지에 따라 비교적 쉬운 게임과 어려운 게임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앞서서 말했지만 프로그래밍쪽의 지식은 거의 없기 때문에 좀 더 활성화된 유저패치가 많은 중국패치를 기반으로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중국의 유저 패치에 한글을 씌울 수 있도록 2byte 출력을 가능하게 해주는 패치를 해준 다음 중국 패치의 폰트를 수정하고 한글출력등의 작업을 거치면 그 이후에 번역작업을 시작하게 됩니다.
보통 출력 작업은 빠르면 7일 내로 가능하고 번역작업은 1~2달 걸리는 편입니다.
Q. 제작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이나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A. 과정 설명에서 이야기 했듯이 제작과정 중 가장 어려운 부분은 아무래도 번역과 그 번역물을 출력하는 작업입니다. 중국어 패치를 하면 보통 한글이 출력이 되지 않는데 한글로 출력을 하기위해 일부 프로그램을 수정하거나 폰트를 대체해야 되는 일이 발생합니다.
한글 출력에 필요한 프로그램도 제각각이라 작업을 진행하다보면 힘들어 지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시간을 보내고 첫 패치로 한글출력이 될 때의 기쁨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네요^^
중국어 패치과정에서 영어 대사파일이 존재하지 않아 대사파일 미비로 포기하는 게임도 대다수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을 진행하며 많은 유저들이 응원해주셔서 이에 용기도 많이 얻었습니다. 최근엔 한글화 관련해서 규모가 큰 까페의 매니저분이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시고 계십니다.
이런 소소한 재미 때문에 한글화 작업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하고 있습니다.
Q. 혹시 한글화 제작과 관련한 목표가 있는가? 있다면 어떤 목표인가?
A. 간단합니다. 아직 못해본 게임들의 한글화를 다 진행해보는 것 그리고 최대한의 번역률을 자랑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근데 실생활에선 의지가 약한 편이라 이 모든 것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네요.~_~
Q. 국내에 정식 발매되는 게임은 완전 한글화보다는 부분 한글화, 가이드북, 직수입의 형태가 많다. 이렇듯 완전 한글화가 안 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불법복제로 인한 판매량 저조를 뽑을 수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A. 한글화가 안되는 이유의 개인적인 생각은 불법복제도 있지만 유통사측에서 불법복제로 인해 굳이 많이 팔리지도 않을 타이틀에 돈을 더 들이지 않고 최소한의 비용을 들여 최대한의 이윤을 내려 하는 기업구조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완벽 한글화를 위해 성우를 고용하고 텍스트를 한글화 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생각보다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들이 번역하는 것은 그만큼의 노력과 비용이 더욱 필요하겠지요.
그렇지만 국내 정식 발매 타이틀이 한글화 작업을 거치지 않은 형태로 발매된다는 것은 선택미스라고 생각합니다. 불법복제 탓에 판매량이 저조한 것은 심히 동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글화 타이틀이 정말로 판매량이 적은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가장 대표적인 예로 최근에 정식 한글패치를 진행한 '문명5'를 들 수 있습니다. 유저패치로 인한 한글화사례라고도 생각합니다. 유저패치가 없었다면 '문명5'가 아무리 대단한 게임이었더라도 한국에선 그냥 '타이틀'의 하나였을 것입니다. 이런 부분에서 유저패치를 하는 한 사람으로써 기분 좋기도 하고 아쉽기도 합니다.
솔직히 가이드북을 통한 한글화는 유저들 입장에서 가이드북과 게임 둘 다 신경을 써야 되기 때문에 매우 불편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한국의 불법복제 세태를 본다면 유통사가 가이드북이라도 한글화를 해주는 것에 대해 감지덕지라고 생각해야 된다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유저들 입장에서 한글화는 게임에 대한 친숙한 느낌과 구매의욕을 높이는데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이지요.
Q. 아마추어 한글화 제작자로써 게임 개발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유통사에서 자체적으로 한글화를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생긴다면 일반 아마추어 팀들에게 제작을 맡기는 것도 괜찮은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스폰서 역할만으로 상업적인 수익구조를 취하지 않는 형태에서 각종 소프트웨어의 지원이나 기타 한글화에 대한 도움을 주는 것이죠.
예를 들어 "테트리스가 발매되지만 한글화는 안된다 그러나 스폰서인 팀이 무료제작버전을 제작하고 있다"는 식으로 게임에 대한 재미를 어필한다면 유저들은 자연스럽게 한글화에 대한 걱정을 접고 게임 자체만을 보고 구입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게임의 한글화로 유통사 입장에서도 높은 판매량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고 유저들 입장에서도 게임을 재미있게 즐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추어팀 입장에선 자신의 팀을 알리고 더욱 나아가 전문적인 일을 도모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실제로는 많은 제약이 따르겠지만 실현 불가능하다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역사물을 다루고 있는 가장 유명한 삼국지 시리즈의 한글화는 유저들에게 짤방 등의 웃음거리가 될 정도로 번역율이 높지 않은 것에 비해 유저들이 만든 한글패치는 해당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분들이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상당히 높은 번역률을 보여주는 것이 또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를 생각해볼 때 이런 아마추어팀과 유통사간에 법을 어기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자유로운 협조가 이루어진다면 많은 유저들이 즐겁게 게임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끝으로 게임포커스 독자들에게 한글화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이 있나요?
A. 요즘 들어 부쩍 한글화 작업을 진행하시는 분이 많아졌습니다. 좋다고 해야 될지 씁쓸한 현실의 모습을 부정적으로 봐야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글화 작업을 시작하려고 준비하시는 분들에게 조언을 드린다면 한글화는 어려우면서도 어렵지 않은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들 또한 그 주인공이 될 수 있으며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순수하게 게임의 재미를 공유해주기 위해 아무런 대가없이 불철주야 제작을 하는 모든 한글화 팀을 단순히 불법복제의 확산을 도와주는 업로더라는 인식은 없어졌으면 합니다. 그리고 유저 스스로도 이러한 소비의식을 전환해 자신이 원하는 게임을 정당한 절차를 통해 구입해야하겠고요.
온라인게임은 돈을 주고 정액이용이나 부분유료화를 즐기는데 PC게임은 그러한 인식조차 없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끝으로 한글화를 하는 이유는 자신의 만족도 있겠지만 이런 각고의 노력 끝에 유저들의 노력이 없이도 한글화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사회풍조가 기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없지 않거든요. 편하게 즐기기 위해 무언가가 만들어졌다면 그렇게 되기까지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은 제작자의 노고가 숨어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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