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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K-인디 절망편, '국산 인디'는 더 이상 세일즈 포인트가 아니다

등록일 2021년06월18일 09시25분 트위터로 보내기

최근 논란이 된 인디게임 '블러디레이첼'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국산 인디'라는 수식어는 그 자체만으로도 세일즈 포인트가 될 수 있었다. MMORPG와 모바일 게임 일변도를 걷는 국내 게임 시장의 흐름에서 벗어나 무언가 다른 게임을 만들어줄 것이라는 게이머들의 기대감이 '국산 인디'라는 이름표에 담겨있었기 때문이겠다. 그 기대감에 힘 입어 '국산 인디'는 장르와 게임성을 넘어 하나의 영역으로 자리잡았고 그 이름만으로도 게이머들의 관심을 모을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국산 인디'라는 이름표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냉랭해졌다. 이유는 명료하다. 국산 인디게임이 더 이상 게이머들의 기대감을 충족시켜주지 못한다는 것. 시장의 흐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개척했으면 하는 것이 '국산 인디'라는 이름에 걸었던 게이머들의 기대였지만, 실상 길을 개척하기보다는 '잘 나가는' 게임들이 걸어온 길을 따라가는 일이 잦았던 것이 '국산 인디'의 지난 행적이다. 방치형, 로그라이크, 도트 3박자로 국산 인디게임을 설명할 수 있다는 회의적인 여론이 나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다.

 

차가워진 게이머들의 시선에 결정타를 꽂는 일이 일어났다. 인기 게임 '카타나 제로'를 표절한 국산 인디게임 '블러디레이첼'이 화제가 된 것. "게임을 어필하기 위해 카타나 제로의 핵심 요소에 기댔다"던 입장은 곧 "표절작이 나오게 되었다"라는 '유체이탈 화법'식 해명으로 이어졌고, 다행히 프로젝트 개발 및 펀딩도 취소되었다. IGN 취재에 따르면, '카타나 제로'의 유통사인 디볼버 측에서도 유감을 표했다고 하니 K-게이머의 입장으로서도 낯부끄러운 일이다. 습작이라면 모르겠지만, '블러디레이첼'은 엄연히 수익을 목적으로 펀딩까지 진행했으니 해프닝으로 보기도 어렵다.

 

'블러디레이첼'의 표절 논란을 소수의 일탈로 치부하기에는 그간 국내 인디게임 시장에서는 벤치마킹과 표절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사례가 종종 나온 바 있다. "어?"라는 말이 나오면 표절, "어!"라는 말이 나오면 오마주 혹은 패러디라는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표절이냐 아니냐의 기준은 모호하지만 게임을 보는 사람들의 의견은 대체로 일치한다. 요즘처럼 게임 커뮤니티가 활성화되고, 소비자도 성숙해진 상황에서 개발 측만 눈과 귀를 닫고 "우리 만의 특색을 더했다"라는 식의 변명은 더 이상 통하지도 않는다. 

 

앞으로 국내 인디게임 업계에서는 '블러디레이첼'을 필두로 한 연쇄 반응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벤치마킹을 위시한 표절이 만연한 가운데에서도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하고, 개발 철학을 담아내기 위해 분주히 노력하는 인디게임 개발 팀도 분명히 있다. 시장에서 본 적이 없는 게임은 만들기도 어렵고 성공 여부도 불투명하다는 현실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게이머들은 각 개발 팀의 사정보다는 인디게임 업계 전반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요즘 같은 상황에서 "그렇지 않은 개발사도 많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숲이 아닌 나무를 보는 것과 같은 말이다. 앞으로 국내 인디게임 업계가 헤쳐나가야 할 길은 한층 더 가혹하고 냉랭하지 않을까.

 

이에 더 이상 '국산 인디'라는 수식어는 세일즈 포인트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힘든 환경에서 독립해 게임을 개발해줬으니" 이해하고 응원하던 게이머들도 점차 등을 돌리고 있다. 구체적인 이름들을 나열하기는 어렵지만, '블러디레이첼' 사태를 보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거나 또는 "우리가 타깃이 아니라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는 인디게임 개발 팀도 여럿 있을 것이다. 들키지 않은 것이 아니다. 게임이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라 굳이 언급조차 되지 않는 것이다. 그정도로 K-인디게임을 바라보는 시장의 시선이 차가워졌음을 인지할 필요가 있겠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시스템과 메커니즘, 비주얼만 중시한 인디게임에 대해 이 게임만의 차별점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으레 "익숙한 스타일 위에 우리 만의 색채를 더했다"라는 답변이 따라온다. 그동안은 게이머도, 기자도 굳이 그 '색채'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되묻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조금 다를 것 같다. '국산 인디'라는 타이틀을 떼고도 우리가 이 게임을 응원하고 관심을 가져야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지금까지보다도 훨씬 강도 높은 인디게임 개발팀의 자기증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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