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니지M'의 기록적인 흥행을 바탕으로 국내 모바일게임 시장에서는 MMORPG 장르의 게임들이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러나 매출 등의 성과와는 별개로 유저들의 불만은 점차 커져가고 있는데, 외형은 다르지만 본질은 비슷한 천편일률적인 게임 내 콘텐츠와 단순히 오래 게임을 켜두고 많은 금액을 지불한 플레이어가 빠르게 성장하는 '자동 전투' 시스템도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넥슨의 상반기 최고 기대작 '트라하'의 출시 초반 성과는 주목할 만하다. '불칸'과 '나이아드'라는 양 진영의 대립과 중세 판타지 풍의 세계관은 기존의 모바일 MMORPG에서 다루는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고, 모바일 디바이스 환경에 타협하지 않은 그래픽은 기자의 기기(갤럭시 S8)는 물론 어지간한 기기에서는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트라하'는 출시 초반 구글 플레이 최고 매출 순위 2위를 기록할 정도로 모바일 MMORPG의 기대작으로서의 면모를 입증하고 있는 상황.
이처럼 겉으로 보았을 때는 특별한 점이 없는 '트라하'가 이처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겉모습 뒤에 숨겨진 '트라하' 만의 과감한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트라하'는 기존 모바일 MMORPG의 편견을 과감히 깨는 것은 물론, MMORPG의 본질적인 재미인 '성장'을 다시금 플레이어가 돌려주기 위한 고민들을 엿볼 수 있는 인상적인 게임이다.
성장의 재미를 다시 플레이어에게
출시 이전부터 '트라하'에서 가장 큰 관심을 모았던 부분은 수동 조작을 강제한 게임 시스템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수동으로 스킬을 조작할 경우 최대 3배까지의 경험치를 추가로 획득할 수 있도록 한 '전투 보너스' 시스템.
각 스킬에는 여러 조건들이 부여되어 있는데, 조건이나 타이밍에 맞춰 스킬을 사용할 경우 전투에서 경험치를 추가로 획득할 수 있다. 여기에 '행동력' 개념이 도입되어 하루에 진행할 수 있는 퀘스트 숫자가 한정되어 있는 만큼 같은 시간 동안 효율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수동 조작이 사실상 강요되는 셈이다.
다만 수동 조작이라는 것이 완전 개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동과 목표 설정은 자동으로 하는 도중에도 플레이어가 개입해 스킬만 제대로 조작한다면 온전히 전투 보너스를 얻을 수 있도록 한 점에서는 배려를 느낄 수 있다.
이동부터 목표 설정, 일반 공격까지 플레이어에게 맡겼다면 '트라하'의 전투 피로도는 지금보다 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여기에 스킬의 정확한 타이밍이나 몬스터의 위치가 계속 변경되기 때문에 매크로를 사용하기 까다로운 환경이라는 점에서도 최대한 공정한 환경에서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라는 개발사의 의도.
이러한 변화를 통해 '트라하'는 기존에 기계가 대신해주던 성장 과정의 재미를 다시 플레이어에게 돌려주는데 성공했다. 특히 성장의 전 과정에 플레이어가 개입하는 만큼, 자신이 육성하는 캐릭터에 대한 애착 역시 배가 된다는 점도 '트라하'의 매력이다.
여기에 하루에 사용할 수 있는 '행동력'이 제한되어 있고 수동 조작으로 게임을 즐겨야 하기 때문에 플레이어간의 격차가 크게 벌어지지 않는다는 점도 흥미로운 점이다. 하루 종일 게임을 실행해야 겨우 다른 유저들과의 격차를 유지할 수 있던 기존 모바일 MMORPG에서 피로감을 느낀 유저라면 보다 합리적인 '트라하'의 성장 시스템에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도 할 수 있다”라는 희망을 주는 합리적인 성장 시스템
사실 모바일 MMORPG에서 캐릭터의 성장에 있어 과금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대부분의 모바일 MMORPG가 유저의 성장 과정을 단축시키기 위한 BM을 제공하기 때문에, 게임을 일찍 시작한 유저가 과금만으로도 기존 유저의 성장치를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은 물론 게임 초반부터 압도적인 격차를 벌릴 수 있다. 게임에 많은 금액을 투자할 여력이 있는 플레이어라면 거부감을 느끼지 않지만, 소과금이나 무과금 유저들에게는 여기에서 오는 박탈감을 느낄 수도 있는 것.
그러나 '트라하'의 BM은 조금 다르다. MMORPG 장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10+1 장비 뽑기 패키지'나 특수 강화석 등의 과금 상품 대신, '트라하'의 BM은 자동 전투를 통해서도 추가 경험치를 얻거나 정령 카드라는 강화 요소를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이 대부분이다. 자동 전투에 대한 추가 경험치는 1일치로 짧은 편이며, 정령 카드가 캐릭터의 성능에 미치는 영향도 적기 때문에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면 나도 언젠가는 상위 랭커의 전투력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는 희망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 게임 내의 콘텐츠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점도 '트라하'의 성장 과정을 합리적으로 만들어주는 요소다. 클래스 레벨이 낮아 전투력을 올리는 속도가 느려져 플레이어가 지루함을 느끼려는 순간, '생활 스킬'을 통해 추가적으로 전투력을 올릴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하나의 클래스에서 한계점에 도달하더라도 '인피니티 클래스' 시스템을 통해 다른 무기를 장착하고 레벨을 올리면 전투력이 함께 상승하는 등 '트라하'에서는 게임 내 모든 콘텐츠가 전투력으로 직결된다.
결국 '과금을 얼마나 했는지'보다는 '얼마나 게임을 부지런하게 했는지'가 레벨 및 전투력에 반영되는 만큼, 기존 MMORPG의 천편일률적인 성장 체계에 염증을 느낀 플레이어라면 '트라하'에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최상위권 유저들과의 싸움에서는 과금에 따라 차이가 갈리더라도 '양민'에서 벗어나는 과정이 합리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이 '트라하'의 초반 흥행 이유 중 하나라고 여겨진다.
형식적인 진영 대립은 그만, 플레이어가 피부로 느끼는 갈등
진영간 대립을 다룬 RvR 콘텐츠의 설계도 인상적이다. 많은 MMORPG들이 두 진영의 세력 다툼을 주요 소재로 사용하고 있지만 100대 100의 대규모 공성전이나 진영전, 자유 PK 모드 등 게임 내 별도 콘텐츠에서만 진영 사이의 대립을 내세우고 있어 상위 랭커가 아닌 이상 진영 사이의 갈등을 체감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트라하'는 단순히 게임 내 스토리 뿐만 아니라 플레이 과정에서도 진영 간의 대립을 체감할 수 있도록 했다. 플레이어는 빠르면 20레벨부터 두 진영이 마주하는 '중립 지대'에 입장할 수 있는데, 여기서는 플레이어의 레벨에 상관없이 언제라도 다른 플레이어를 기습할 수 있다. 사냥 도중에도 언제나 상대 진영 플레이어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만큼, 게임 초반부터 중립 지대에서 진영간 대립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중립 지대에서는 보다 많은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퀘스트들이 제공되기 때문에 커뮤니티에서는 연일 상대 진영의 비겁한 기습을 비난하는 여론들도 나오고 있다. 양 진영이 이처럼 살벌하게 대립하는 것 역시 기존의 모바일 MMORPG에서는 느껴보기 힘든 재미 중 하나. 특히 저레벨 구간 유저들도 진영 사이의 대립을 체감할 수 있도록 한 시스템이 인상적이다.
개발팀의 빠른 피드백 수용
한편, '트라하'를 개발한 모아이게임즈의 빠른 대응도 인상적이다. 특히 4월 18일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트라하'에서는 오픈 초기 약 1주일 정도의 시간 동안 플레이어들의 피드백을 적극 반영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해 앞으로 '트라하'의 운영 방향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픈 초기, '트라하'에서는 시간에 따라 충전되는 행동력을 제외하면 추가 행동력이 없었는데 게임을 즐길 시간이 너무 짧다는 플레이어들의 의견을 반영해 바로 다음날부터 행동력 포션이 도입되었다. 여기에 지역 간 이동에 필요한 페가수스를 이용하는데 드는 비용이 너무 비싸다는 의견을 수렴해 페가수스 이용 비용을 없애고 텔레포트 비용도 반값으로 인하하는 대대적인 개편을 실시하기도 했다.
여기에 최근 유저들의 피로도가 높은 '고고학' 콘텐츠를 비롯해 '파티 던전'의 입장 제한 레벨을 낮추는 업데이트를 예고하는 등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의 편의를 위해 초기 기획했던 콘텐츠를 대대적으로 개편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개발팀 내부에서도 빠른 피드백 수용을 1순위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힌 만큼, 향후 '트라하'의 지속적인 변화 가능성에도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반복적인 퀘스트 구조는 아쉬워, 아직은 부족한 직업별 밸런스
플레이어가 성장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은 '트라하'의 매력이지만, 단순 반복 형태의 퀘스트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골드를 획득할 수 있는 퀘스트와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는 퀘스트가 나뉘어져 있지만 결국 퀘스트의 주된 내용은 특정 몬스터를 몇 마리 잡아오라는 것만 있기 때문에 게임을 플레이하다 보면 금세 지루함을 느낀다. 특히 플레이어가 사냥을 수동으로 해야하는 만큼, 반복적인 퀘스트 구조는 개선될 필요가 있다.
직업 별 밸런스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전투 보너스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쌍검'이나 '활' 클래스의 경우 사냥이 수월하지만, '지팡이'나 '방패' 등 보조형 클래스는 몬스터 한 마리를 사냥하는데도 비교적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전투 보너스를 획득하는 조건도 까다롭다. 여기에 캐릭터의 성별과 체형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클래스가 나뉜다는 점도 아쉽다. '너클', '방패', '지팡이'라는 3대 약체 클래스를 가지고 있는 작은 체형 여성 캐릭터는 유저들이 기피하는 대표적인 외형. 직업마다 특화된 전투 보너스 집계 방식의 도입도 고려해볼만 하다.
핵심 BM이 없다는 약점 가진 '트라하', 장기 흥행 성공할 수 있을까
기자가 '트라하'를 플레이하면서 주목한 것은 화려한 비주얼이나 장대한 서사가 아닌 성장 본연의 재미를 추구하는 게임의 시스템이었다. 특히 플레이어가 직접 조작하며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캐릭터에 대한 애착이 형성되는 것은 물론, 하루 종일 자동 전투를 돌려도 과금 없이는 따라잡을 수 없는 기존 모바일 MMORPG의 불합리함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그러나 100% 수동 전투를 강요하면서도 퀘스트의 구조가 반복적이라는 점은 개선될 필요가 있다. 특정 몬스터를 반복해서 사냥하는 것 이외에도 다양한 퀘스트를 제공해야만 유저들을 오래 붙잡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밖에도 특정 클래스가 전투 보너스를 얻는 조건이 까다롭다는 문제들도 개선될 필요가 있다. 탱커 역할을 하는 클래스가 빛을 보는 시점이 게임 최후반부이기 때문에 멋모르고 탱커 클래스를 잡은 유저들의 하소연도 이어지는 만큼, 보다 개선된 시스템이 필요해 보인다.
더욱이 게임 내에 핵심 BM이 없다는 것도 '트라하'의 약점이다. 게임 출시 초기에는 과금부터 하는 유저들로 인해 매출 순위가 반등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게임 내에서 꾸준히 유저들의 현질 욕구를 자극할만한 BM이 없다 보니 상위권 게임과의 경쟁에서 불리한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 성장 본연의 재미를 추구하면서도 수익성을 확보할 BM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개발팀이 유저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만큼 묘수를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 |
| |
| |
| |
|
관련뉴스 |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