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계 최대의 화두로 떠오른 ‘4대 중독예방관리제도 마련 토론회’가 결국 주최 측의 편파적인 진행 속에 실속 없이 마무리 됐다.
이날 토론회에선 주최자인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을 비롯해 새누리당 남경필 의원(한국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 새누리당 황우여 원내대표, 보건복지부 최영현 보건의료정책실장, 전북대 윤명숙 사회복지학과 교수, 의정부성모병원 이해국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김미선 아이건강국민연대 사무국장, 최승재 한국인터넷문화콘텐츠조합 이사장, 한국 예술종합학교 이동연 교수, 강남을지병원 방수영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문화체육관광부 이수명 게임콘텐츠산업 과장, 보건복지부 이중규 정신건강정책 과장이 참석했으며 황우여 의원과 남경필 의원이 각기 상반된 주장을 펼쳐 토론회 초반부터 뜨거운 분위기를 만들어나갔다.
그러나 초반의 뜨거운 분위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급속도로 냉각되기 시작했다. 토론은 일방적이었으며 한 시간 동안 이어진 주제 발표 역시 거의 대부분 이번 법안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내용들이었다. 더구나 게임업계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어야 했던 K-IDEA 회장인 남경필 의원 역시 모두발언만 마친 후 토론회장을 빠져나가 그야말로 그들만의 잔치에 숟가락을 얹어준 꼴이 됐다. 한편으로 국정감사에 참여하는 남 의원을 이해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를 대신할 만한 대리인을 토론회에 참석시키지 않았다는 점이 못내 아쉬웠다.
남 의원이 빠진 토론회는 그야 말로 그들만의 잔치였다. 일부 반대 의견을 제시할 참석자들 역시 '학예회(學藝會)'와 다를 것이 없다고 냉소를 흘릴 정도였으니 오죽했으랴.
찬성측 패널로 참석한 전북대 사회복지학과 윤명숙 교수는 중독의 폐해와 사회 경제적인 파급 문제를 다루며 시종일관 게임과 인터넷 중독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들을 소개했다. 윤 교수는 “신문이나 미디어를 통해 하루를 빼놓지 않고 중독과 관련된 소식을 접한다. 수 많은 위협중에서도 안전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문제가 중독이다”며, “인터넷 게임 중독은 세계에서 넘버원이다. 때문에 세계에서도 한국의 인터넷 규제 방안을 두고 한국 정부가 어떠한 방법을 실행할지 지켜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청소년 중심의 중독을 우려하고 있지만 사실상 성인의 문제도 있다. 인터넷 중독 역시 물질 중독이나 도박 중독에서 보이는 유전적 기전과 상당히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결국 이러한 중독 문제는 치료를 위한 국가적 재정문제를 야기하고 나아가 다른 중독과 연계되어 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의 발표를 들으면서 기자는 발표 자료에 대해 몇 가지 의구심을 가지게 됐다. 우선 정의조차 확실하지 않은 ‘인터넷 게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근거자료로 제시한 자료들 역시 직접적인 문제가 되는 게임 중독에 대한 자료보다는 범위를 적용시키기가 애매한 인터넷 중독 현황과 관련된 자료를 공개했으며 ‘게임’과 관련된 존속 살해 기사를 두고 게임에 대한 위험성을 강조하는 객관적이지 못한 주장을 펼쳤다. 또한 발표 중간 중간 ‘인터넷 게임’이라는 단어를 섞어 사용하면서 마치 ‘인터넷=게임’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주장을 하기도 하는 등 발표를 듣는 청중들의 귀를 교묘하게 속였다.
발표 내용 중 특히 주의 깊게 본 부분은 인터넷 중독과 충동성 자료에 대한 부분이다. 인터넷 중독으로 인해 뇌 기능에 변화가 일어나고 충동조절의 어려움이 있으며 적절한 의사결정 장애가 동반된다는 대목인데 주로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인터넷 중독이 뇌기능에 이상을 끼칠 수도 있다는 내용이 골자다.
분명 모든 사람이 중독에 대해서 조절 능력이 월등하게 뛰어나다고 주장할 수는 없기 때문에 얼핏 듣는다면 논리적으로 맞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윤 교수가 근거로 내세운 뇌 기능의 변화와 관련해서는 객관적인 자료 역시 없을뿐더러 일찍이 게임과몰입 상담치료센터 윤덕현 교수가 발언한 내용과는 다른 내용이었다.
윤덕현 교수는 지난해 1월 기자간담회를 통해 "단순히 뇌의 단층사진의 빨간점, 파란점으로 환자를 판단하지 않는다는 점이 다른 병원들과 우리 센터의 가장 큰 차이다. 현재 도입되고 있는 다양한 치료방법들은 환자들의 연구 분석을 통해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것"이라고 밝힌바 있으며 단순히 게임 과몰입이 됐다고 뇌기능이 변화되고 있다는 성급한 일반화에 대해서는 "굉장히 큰 오류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나타낸바 있다. (관련기사)
반대 패널로 참석했던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동연 교수 역시 “인터넷 게임의 정의가 분명치 않다. 게임도 분류가 있는데 애매모호한 인터넷 게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인터넷 자체를 중독으로 규제하고 싶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이를 정확하게 하고 싶으면 용어를 인터넷 게임이 아닌 온라인 게임으로 규정을 시켜야 한다. 이 법안이 그대로 통과될 경우 아이들을 위해, 노인들을 위해 많은 것을 개발했던 닌텐도의 게임들도 중독물로 규정해야 되며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도 규제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교수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사회자는 이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기 보다는 재빨리 다른 패널에게 발언 기회를 주면서 이 교수의 의견을 '듣기'만 했다.
자신의 귀를 막은 채 토론이라고 할 수 없는 수준을 보여준 이번 토론회에서 무엇보다도 불편했던 것은 바로 청중들의 태도와 사회자의 편파적인 진행이었다. 대다수의 찬성 측 관계자가 참여한 이번 토론회에서 반대 측의 의견이 제시될 때마다 청중들의 태도는 조롱 일색이었다. 특히 한국인터넷PC방협동조합 최승재 이사장이 격앙된 발언으로 PC방 사업자들의 생존권 문제를 생각해 달라고 이야기 하자 “PC방 안하면 될 것 아니야”라는 말과 함께 비웃음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토론회에 참석한 청중들의 태도라고는 믿기 힘들었다.
게임개발자연대 김종득 대표가 “게임은 다른 중독과 다르게 콘텐츠가 한정되어 있는 만큼 이용자 스스로가 콘텐츠를 전부 소모하면 스스로 그만두게 된다. 이렇게 다른 성향을 가진 게임을 왜 4대 중독으로 받아야 되는가”라고 묻자 사회를 진행한 인천성모병원정신과 기선완 교수는 “정신과 의사들이 중독이라고 말하는데 게임업계 사람이 중독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해당 안건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을 제시하라”고 말했으며 김 대표가 재차 “게임 중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왜 인터넷 중독 자료를 인용하고 게임 중독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인가”하고 묻자 기 교수는 “말꼬리 잡지 말라”며 김 대표의 말을 묵살하기도 하는 등 중심을 유지해야 하는 사회자의 태도로 보기 힘든 고자세를 유지하며 찬성 측 관계자를 중심으로 토론을 이끌어나가는 몰상식한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토론회가 끝나고 신 의원과 짧은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신 의원과 이야기 하며 "이번 토론회의 이해 여부에 따라 중독법안의 근본을 바꾸실 생각도 있냐"고 묻자 신 의원은 "나 혼자 추진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며 해당 법안에 대한 법사위의 결정도 있어야 되는 만큼 향후 변경될 수도 있다"는 애매모호한 말을 한 뒤 회장에서 사라졌다.
끝으로 토론회가 끝나가는 모습을 보며 기자가 가장 실망했던 것은 일방적인 토론의 방향도 아니오, 법안의 논리적인 허점도 아니며 청중과 사회자의 몰지각한 행동도 아니었다. 대한민국 게임업계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대표 게임사 임원 등 관계자들이 단 한명도 참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법안이 그대로 통과되고 게임 중독이 공식적인 ‘질병’으로 인정되게 되었을 때 생기는 파급 효과는 게임업계에 종사하는 10만 명에게 돌이킬 수 없는 직격탄이 될 것이다. 의료 업계는 막대한 이익을 얻을 것이며 게임으로 인해 동반 성장하고 있는 다른 기업들 역시 연쇄적으로 무너져내려갈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들 게임업계 관계자들에게는 '강건너 불구경' 이었던 듯 싶다.
사회의 편협한 시각에 게임 업계들이 정면으로 맞서지 않는다면 사회는 지금껏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이렇게 흘러갈 것이고 그것이 결국은 게임업계의 심장을 겨누는 비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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