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PC 리듬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들에게 있어 가장 주목을 받은 게임이 있다면 역시 '플라티나 랩'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짧은 시간에 게임의 개발과 마케팅 그리고 론칭이 이루어졌음에도 '플라티나 랩'의 첫 데뷔는 인상적이고 안정적이었다. 서브컬처 친화적인 기조, 타 PC 리듬게임과는 또 다른 기조의 수록곡들, 치는 맛이 좋은 패턴 등 노련한 전략과 준수한 완성도를 겸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출시 직후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5월 초 업데이트 이후 생겨난 프레임 드랍 등의 기술적 이슈, 심미적으로는 만족스럽지만 기능적으로는 다소 불편하게 느껴지는 UI & UX, 불합리하게 느껴질 여지가 있는 플러스 라인의 통합, 상대적으로 부족하게 느껴지는 콘텐츠 볼륨이나 비어있는 패턴, 미구현된 각종 기능 등 아직 개선 및 검토해야 할 요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다른 리듬게임들도 얼리액세스 단계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을 겪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대부분 해소되었던 만큼 결국 '시간이 약이다' 라는 생각으로 조금 너그럽게 기다려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내가 '플라티나 랩'의 프로토타입을 처음 본 것이 2024년 봄과 여름 언저리였고 게임이 얼리액세스로 론칭한 것은 2025년 4월이다. 약 1년 만에 제로부터 시작해서 이 정도의 게임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되게 빠른 수준이다. 개발 속도와 효율을 위한 키음 배제, 공용 BGA의 활용 등을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물론 나도 '얼리액세스 방패'를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지금까지의 행보를 믿고 조금만 더 기다려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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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 리듬게임이지만 아케이드 리듬게임처럼
'플라티나 랩'이 수록곡이나 개발진의 면면으로 주목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나 또한 처음에는 그랬다. 하지만 게임을 조금 깊게 들여다보면 '아케이드 리듬게임'의 여러 공식들을 차용해온 점이 보다 눈에 띈다. 당연하겠지만 아케이드 리듬게임을 많이 플레이 한 개발진의 경험이나 기획이 여기에 대거 녹아 들었을 것이다.
'디제이맥스 리스펙트 V'를 필두로 한 국내 PC 리듬게임들은 다년간의 개발 및 서비스 기간을 거치면서 저마다의 마일스톤과 방향성을 정립하는데 성공했다. 수익을 내기 어렵고 업데이트 주기도 개발자들에게 부담스러웠던 '디제이맥스 온라인' 서비스 시절을 생각하면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이 가운데 '플라티나 랩'은 시스템, 수록곡 등의 공식은 어느 정도 따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국내 PC 리듬게임에서 잘 시도되지 않았거나 또는 시도 되었더라도 조금 다른 방향으로 재해석한 점이 눈에 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이미 아케이드 리듬게임에서 활용되고 있는 세부 판정을 도입한 점이다. '플라티나 랩'은 '퍼펙트 하이'부터 '미스'까지 5단계로 구분되는 판정 체계를 갖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퍼펙트 디코드'(정확도 100%)를 달성하는 데는 '퍼펙트' 판정 까지도 인정해준다. 체감상 '퍼펙트 하이'는 짠 편이지만 '퍼펙트' 판정은 상당히 여유롭기 때문에 설정에 문제가 없는 한 100%의 정확도를 달성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퍼펙트' 판정을 하나라도 더 줄이며 '퍼펙트 디코드'의 'P.A.T.C.H.' 보너스를 노리는 수준의 고수에게는 '이론치' 달성이라는 높은 목표를 제시하고, 중수나 초보자들에게는 굳이 '퍼펙트 하이'라는 최고 판정이나 'P.A.T.C.H.' 보너스에 목매달지 않아도 '퍼펙트 디코드'를 달성하며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설정한 점에서 개발진의 리듬게임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엿볼 수 있다.
'연구 일지'도 아케이드 리듬게임의 문법에서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은 시스템으로 보인다. 조건을 달성하면 신규 곡이나 캐릭터들을 해금할 수 있는 콘텐츠로, 발매 초기에는 해금에 걸리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지적이 있어 난이도가 대폭 완화된 바 있다. 그리고 이 해금 콘텐츠와 연계되는 '보스곡'의 존재와 등장 연출도 여러모로 아케이드 리듬게임의 문법과 닮았다. 랭킹을 인게임이 아닌 웹에서 볼 수 있도록 하거나 '기타도라'에서 영향을 받은 섹션 시스템이 탑재된 것 역시 그러한 흔적일 것이다.
동기 부여 시스템 'P.A.T.C.H.'
실력 척도를 한 눈에 알 수 있고 다음 목표도 자신이 설정하는데 도움이 되는 'P.A.T.C.H.'는 이 게임을 지속적으로 플레이 하도록 하는 핵심 시스템이다. 이미 여러 리듬게임에서 활용되고 있는 '레이팅' 시스템의 일종으로, '플라티나 랩'에서는 플레이 한 패턴 중 상위 50개의 점수를 합산해 등급을 매기는 형태로 되어있다.
다만 과거 출시 전 일반 패턴과 플러스 패턴이 나뉘어져 있던 것과 달리 현재는 통합되어 있다는 것은 단점으로 느껴진다. 완전한 '즐겜' 유저가 아닌 이상 어느 정도 'P.A.T.C.H.'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는데, '오버' 패턴까지만 플레이하고 '플러스'는 많이 즐기지 않는 유저들은 'P.A.T.C.H.' 점수를 올리기 어려워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그런 케이스다. (전 패턴을 다 돌진 못했지만) 6라인의 '오버' 패턴은 25~26레벨에서 어떻게든 점수를 따도, 6라인의 '플러스' 패턴은 21레벨 이상부터는 사실상 클리어에만 의미를 둬야 할 정도로 버겁게 느껴지기 때문에 '플러스' 패턴으로는 'P.A.T.C.H.' 점수 상위 TOP 50에 들기 매우 어렵다. '오버'와 '플러스'는 난이도나 경험적 측면에서나 차이가 상당히 큰데, 향후 '플러스' 패턴이 더 많아지면 따로 분리되거나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어본다.
이 난이도 통합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플레이어에게 점수를 올려야 한다는 부담감을 크게 주지 않으면서도 플레이를 지속하고 실력 향상을 도모하는데 동기 부여가 되는 형태로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고 평할 수 있겠다. 저번 체험기에서 언급했던 필터 기능이 매우 세심하게 잘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이를 활용하는 것도 좋겠다.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강력한 무기 '수록곡'
수록곡은 '플라티나 랩'의 또 다른 핵심 세일즈 포인트이자 가장 강력한 무기다. 수록곡이 좋지 않은 리듬게임도 드물지만 '플라티나 랩'은 여러모로 색다른 시도와 의외의 결과들이 보다 눈에 띈다.
수록곡의 면면을 살펴보면, 하드코어 유저와 라이트 유저 모두에게 어필할 수 있는 다(多) 장르인 것은 물론 예상을 뛰어넘거나 반가운 이름까지도 한 자리에 모여 있어 놀라움을 자아낸다. 향후 타 IP와의 콜라보는 물론 보컬로이드, 애니메이션 OST, 동인 음악 레이블과의 협업 등 여러 방면으로 힘을 낼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기대감을 가져도 좋을 것 같다.
이러한 '플라티나 랩'의 수록곡 기조는 '이렇게 좋은 곡을 쓰는 작곡가들이 많아요' 또는 '이런 레이블과 곡도 있어요'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나도 아케이드 리듬게임은 'EZ2DJ'와 'EZ2AC', '사운드 볼텍스', '펌프 잇 업' 정도를 가볍게 즐겼던 것이 전부이기 때문에 그리 잘 안다고 하기는 부끄러운 수준이라, '플라티나 랩'을 즐기면서 곡과 작곡가에 대한 시야를 조금 더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
패턴은 이미 지난 체험기에서도 호평 했듯이 상당히 완성도가 뛰어나고 '치는 맛'이 잘 살아있다. 내가 '디제이맥스 리스펙트 V'의 8버튼 트리거나 '사운드 볼텍스'의 FX 노트를 잘 처리하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6라인 플러스의 적정 레벨대에서는 신기하게도 손이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패턴이 쳐지는 경험을 해서 상당히 놀라웠다. (특히 'Cutter' 6라인 플러스 17레벨 패턴이 나한테 딱 맞는 난이도에 치는 맛이 정말 좋았다.)
전반적으로 패턴의 기조 자체가 억지스럽지 않고 '어렵지만 이 정도면 할만하다'는 느낌을 주도록 되어 있어 패턴 제작에 대한 이해도가 남다르다는 느낌도 받았다. 물론 고 레벨 패턴들은 상당히 어렵다.
'HIGH-END' 그리고 'PLATiNA'
'플라티나 랩'이 최초로 게이머들에게 공개되기 전 한창 개발 중인 프로토타입을 접했을 때가 생각난다. 사명이나 게임 이름이 아직 결정되지 않아 고민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과연 어떤 재미있고 기억에 남는 이름으로 정해질지 내심 기대했던 기억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하이엔드'와 '플라티나'라는 상당히 포부 넘치는 단어가 들어간 사명과 게임 이름을 접했을 때, 새삼 개발진의 목표나 기준(게임의 완성도든, 성적이든, 네임밸류든)이 매우 높게 설정돼 있다는 걸 실감했다.
사전에서 '하이엔드(HIGH-END)'는 '비슷한 기능을 가진 기종 중에서 기능이 가장 우수한 제품'을 뜻하는 명사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 '플라티나(PLATINA)'는 희귀하고 고급스러운 금속 '플래티넘(PLATINUM)'의 스페인어 어원이다. 이는 높은 가치 또는 최고 등급 등을 상징한다. 여러모로 최고급을 지향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플라티나 랩'이 리듬게임계의 '플래티넘', '하이엔드'가 될 수 있을지 여부는 아직은 확언할 수 없다. 지향하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이루어내는 것은 다른 이야기니까. 하지만 기대는 해봄 직 하다. 화제를 몰고 다니며 마침내 얼리액세스로 출발한 '플라티나 랩'이 세간의 평가처럼 '다크호스'이자 '생태계 교란종'으로 활약할 수 있을지, 또 리듬게임 간에 건강하고 긍정적인 경쟁과 협업이 보다 자주 적극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 그 행보를 지켜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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