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서브컬처 게임 시장에서 독보적인 팬덤을 구축한 두 스타 개발자의 대담이 NDC 2026 현장에서 성사됐다.
독창적인 세계관과 캐릭터성으로 확고한 입지를 다진 넥슨게임즈의 김용하 본부장, 프로젝트 문의 김지훈 대표는 이번 대담에서 개발자이자 경영자로서 두 사람이 겪은 실패와 성공, 서로 다른 개발 프로세스, 유저 피드백에 대처하는 자세와 멘탈 관리법, 그리고 생성형 AI 시대 속에서 창작자가 지켜야 할 예술적 본질에 이르기까지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다.
특히 이번 대담은 스스로가 정말 하고 싶은 게임을 만드는 '작가주의'적 시도에서 출발해, 세계관의 선행과 체험의 실재감이라는 각자의 방식으로 게임을 완성해 나가는 치열한 고민의 흔적들을 공유하는 자리로 꾸며졌다. 빠르게 변화하는 라이브 서비스 환경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테이스트'를 증명해 낸 두 개발자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AI라는 기술의 파도 속에서 인간 게임 개발자가 갖춰야 할 기조와 방향성을 정리했다.
(이미지 출처: NDC 2026 온라인 스트리밍)
본인이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드는 과정에서 '작가주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하다
김용하 본부장 : 과거에는 어떤 게임이든 다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해보니 다양한 장르를 누구나 좋아할 법한 공식으로 만드는 것은 내가 잘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시장을 너무 의식하다 보면 ‘유저들이 이건 왜 안 좋아할까?' 하고 끊임없이 예상하며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점점 길을 잃게 된다. 커리어에서 실패를 겪은 뒤, 이렇게 개발하다 보면 결국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는 게임만 만들다 끝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패를 하더라도 정말 하고 싶은 걸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고민을 조금 더 담아 만든 것이 '큐라레: 마법 도서관'이었다.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걸 보여드리니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생겼다. 감사하게 생각하며 이러한 생각을 이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김지훈 대표 : 사실 나는 거창하게 '작가주의'를 표방하며 게임을 만들지는 않았다. 내가 재미있고 하고 싶은 게임을 만들다 보니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생겼고, 그분들이 좋아하는 방향을 고민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작가주의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기 보다 그냥 내가 만들려고 했던 것을 만들다 보니 이렇게 됐다.
김지훈 대표 : '로보토미 코퍼레이션'을 만들 때는 만들고 싶은 것이 확실했다. 반면 '라이브러리 오브 루이나'는 원래 원했던 형태로 만들지 못했다. 원래는 자동전투 기반의 '대항해시대' 선상 일기토 같은 모습을 원했지만, 당시 '슬레이 더 스파이어'류가 한창 태동하던 시기라 결국 덱 빌딩 형식이 됐다. 여러 시도를 하다가 게임 시스템보다는 전달하려는 이야기와 주제, 장면들에 더 집중했다. 이후 '림버스 컴퍼니'에서는 원래 하고 싶었던 모습으로 구현하며 '라이브러리 오브 루이나' 때의 아쉬움을 보완했다.
김용하 본부장 : 과거에 '확산성 밀리언아서'를 플레이하면서 '내가 만들면 다르게 재미를 넣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더 중요한 건 미소녀가 많이 나오는 게임이라는 점이었지만, 아무튼 하나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보았다. 이전 작의 아쉬운 점들을 보완하며 '이렇게 해보면 더 좋았을 텐데' 하고 아이디어를 넣다 보니 지금의 '블루 아카이브'가 됐다. 물론 운도 따랐다. '큐라레: 마법 도서관'이 잘 안 됐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수도 이었다. 결국 본인이 만들고 싶은 게임, 하고 싶은 게임을 만든다는 결과로 귀결되는데, 여기에 디렉터 고유의 '테이스트'를 얼마나 담아내느냐의 문제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미지 출처: NDC 2026 온라인 스트리밍)
각자 선호하는 게임 개발 방식과 그 장단점은 무엇인가
김지훈 대표 : 나는 세계관과 스토리를 먼저 정하고 게임 플레이를 쌓아 올린다. 이미지가 잘 안 그려져 벽을 느낄 때도 있지만, 세계관에서 확실히 보여주고 싶은 지향점이 있으면 디테일은 부족하더라도 어떤 장면이 나와야 하는지 이정표처럼 그려진다. 이미지를 떠올리고 거기서부터 상상을 역으로 해나가는 편이다. '로보토미 코퍼레이션' 개발과 '라이브러리 오브 루이나'의 얼리 액세스를 거치면서 경험하고 느낀 과정이 있었고, '림버스 컴퍼니'에 와서는 하나의 개발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김용하 본부장 : 나 역시 처음부터 체험을 중심에 두고 게임을 만들겠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큐라레: 마법 도서관' 시절에는 '확산성 밀리언아서' 같은 기존의 미소녀 콜렉션 게임 문법의 확장으로서 게임 플레이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체험적인 부분을 더 고민하게 된 것은 VR 게임인 '포커스온유'를 개발하면서부터였다. 그 세계에 실제로 들어가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핵심인 플랫폼이다 보니, 미소녀의 존재감이나 실재감을 어떻게 구현할지 많이 고민했다. ‘블루 아카이브’에서도 플레이어가 이세계에서 '선생님'이 되어 어떤 관계를 맺고 소통할 때 가장 몰입감을 느낄 수 있을지 하나씩 퍼즐을 맞춰갔다. 우리 IO 본부의 캐치프레이즈가 '들어가고 싶은 이세계를 만든다'인데, 그런 측면에서 ‘블루 아카이브’가 어떤 세계이고, 플레이어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인물들과 관계를 맺어 가는지에 신경을 쓰게 됐다.
김지훈 대표 : 모바일로 플레이할 때의 UI 감각이나 선생님이 실제로 쓰는 기기(싯딤의 상자)라는 콘셉트, '어른의 카드' 등이 현실과 겹쳐지는 것을 보며 추구하는 맛을 이해하게 됐다. 하지만 기획하기에 엄청 어려워 보인다.
김용하 본부장 : 물론 게임적 타협은 존재한다. 게임의 형식미라는 것이 있고, 자칫 몰입감이 깨질 수도 있으니 한계가 있다. 하지만 타협하더라도 내가 ‘맛있다’고 느끼는 것을 보여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준비 중인 '프로젝트 RX'도 어떻게 그 맛을 낼지 고민하고 있다.
라이브 서비스 게임인 만큼 유저들의 피드백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확고한 세계관을 밀고 가는지, 유저 피드백에 맞춰 수정하는 편인지 궁금하다
김지훈 대표 : 나의 경우 실제로 수정한 사례가 있다. 창작자로서 자존심도 있고 만들고 싶은 세계가 무엇인지 ‘뼈대’는 확실히 존재한다. 하지만 살을 붙이다 보면 트렌드에 맞춰야 하거나 설정 오류가 생기기도 한다. 인정하기 싫고 부끄럽더라도 그런 부분은 바꾼다. 다만 '이것까지 바뀌면 내 게임이 아니다' 하는 핵심 지점은 남겨둔다. 나머지는 내가 만든 테두리 안에서 자유롭게 수정할 수 있게 개발자들에게도 열어두는 편이다.
'라이브러리 오브 루이나' 때 욕심을 부리다 큰 설정 오류를 낸 적이 있다.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 오버해서 결과물이 나오고 보니 설정이 꼬여 있었고 묘사도 부족했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보스전과 스토리를 새로 만들어 크게 수정한 적이 있다. 최대한 피하려 하지만 절대 안 고치는 것은 아니다. 내 원동력은 업데이트 후 반응이나 리뷰를 살펴보는 것인데 그 자체가 나의 존재 이유이자 모티베이션이다.
김용하 본부장 : 계획이라는 것은 언제나 그럴싸하지만 쉽지 않은 영역이다. 과거 이야기인데, 자체 퍼블리싱이 아니다 보니 '큐라레: 마법 도서관' 때부터 퍼블리셔와 인식을 맞추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예를 들면, 새로 업데이트 되는 캐릭터에 대해 ‘우리는 괜찮다’고 판단해도 퍼블리셔가 반대 의견을 낼 때도 있다. '블루 아카이브' 얘기는 아니지만 퍼블리셔 피드백에 안 맞춰주면 마케팅을 안 해준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렇다면 유저 피드백은 창작의 범위를 제한하는 허들인가, 아니면 자유를 주는 요소인가
김용하 본부장 : 퍼블리셔의 우려 속에서도 끝까지 밀어붙였을 때 결과적으로 좋았던 적이 많았다. 그런 경우에는 유저 피드백이 우리에게 강력한 힘이 된다. 우리가 지키려고 했던 기획이 유저들의 마음에 닿았다는 확신을 얻는 쪽이기 때문이다. 또 유저 피드백이라는 측면에서 2차 창작과 팬아트가 많이 올라오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가령 ‘블루 아카이브’의 최근 공개된 PV에서 머리와 목까지만 모습이 공개된 학생의 몸매에 대해 여러 의견이 오가는 걸 봤는데, 물론 정답은 결정되어 있지만 이런 식으로 유저들의 다양한 피드백을 보는 것 자체가 자극이 된다.
김지훈 대표 : 나는 유저 피드백과 반응이 있어야 존재하는, 하나의 '상품'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은 자기만족으로 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소비되고 팔리는 게임을 만들어야 하기에 팬들의 경향을 살펴본다. 물론 바로 반영하면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목소리 큰 유저들의 의견만 따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 조심하고 있다. 나는 인터넷에 댓글을 쓰지 않는 편인데, 글을 쓰고 목소리를 내는 편이 아닌 분들의 입장으로 운영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신속하게 기획을 수정하고 대응했던 구체적인 사례가 있다면
김용하 본부장 : 피드백을 받아 빠르게 사과한 사례로 과거 '블루 아카이브'의 버추얼 유튜버 '이루아' 프로젝트가 있다. 나는 바깥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내향적인 사람인데 생방송을 해야 했다. 게임 세계관 밖에 있는 버튜버 기획을 준비했지만 우리의 잘못된 기획이었다. 사과문을 쓴 날이 마침 휴가 날이었는데 집에서 쉬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신속하게 프로젝트를 접는 판단을 내렸다. 한국에서만 하는 기획이었다 보니 게임과 너무 밀접하게 엮였을 때 다른 권역까지 연결되어야 하는 문제, 그리고 후행 서비스라 영향이 가면 안되는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소비자가 받아들여 주지 않는 기획은 소용이 없다.
(이미지 출처: NDC 2026 온라인 스트리밍)
라이브 서비스 도중 사건·사고가 터졌을 때의 멘탈 관리와 스트레스 해소법은 무엇인가
김용하 본부장 : 관리가 정말 쉽지 않다. 라이브 서비스 기간이 길어질수록 더 힘들기도 하다. 사고는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터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위기가 올 때마다 머리를 비울 수 있는 새로운 취미를 만들게 되더라. 서비스 초창기에 안정성 이슈로 고통받을 때는 명상하는 느낌으로 기계식 키보드의 스위치를 일일이 분해하고 윤활유를 칠하는 취미에 몰두했다. 그 뒤에는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는 취미도 만들었다.
김지훈 대표 : 연차가 쌓이면 덤덤해질 줄 알았는데 여전히 매 순간 일희일비하거나 스트레스를 받고 흔들리게 된다. 심리 상담에서 반응과 거리를 두라는 조언을 들었지만, 반응을 안 보면 게임에 대한 애정마저 식어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다른 업계 관계자나 대표님들을 만나봐도 나이나 경력과 상관없이 다들 힘들어하더라.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는데, 개발에 도움이 되기 때문인가
김지훈 대표 : 맞다. '버추얼 유튜버’ 방송을 하고 있다. 게임 개발에 도움이 되겠구나 싶어서라기 보다, 김용하 본부장님처럼 버튜버를 좋아하기도 했고, 해보고 싶어서 취미 느낌으로 시작했다. 실시간으로 말을 하지 못할 때 답답하고 스트레스를 받아서, 오히려 방송을 할 때는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다. 많이들 좋아해 주고 계신다. 결국 멘탈 관리를 어떻게 하냐의 답으로는, 라이브 소통을 하며 멘탈 관리가 되어서 개발을 지치지 않고 해나갈 수 있는 것 같다.
김용하 본부장 : 나는 사실 방송에 나오고 싶지 않았다. 인생의 큰 오점이라고 해야할까? (웃음) 과거 기록은 한 번 남으니 지울 수가 없어서 그냥 포기하게 됐다. 새로 기록이 남을까봐 방송을 스스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나와서 이렇게 말을 하고, 또 애정을 가지고 플레이 하고 있다는 말을 하며 호응해 주시는 선생님들을 보면서 저 뿐만아니라 개발 동료들, 서비스, 운영 모두 힘을 얻고 있다. 오프라인 이벤트를 많이 하는데 만나게 되면 늘 웃는 얼굴로 찾아와 주셔서 위로를 받는다.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을 체감하는 순간과 해외 현지화의 비결은 무엇인가
김용하 본부장 : 운이 좋았던 것 같다. '큐라레: 마법 도서관'은 잘 안 되었지만 '블루 아카이브' 때는 대표님의 추천으로, 특히 서브컬처 장르이기 때문에 더더욱 일본 시장에 먼저 출시했다. 시장의 트렌드에 맞추면서도 우리가 하고 싶은 독창적인 맛을 내기 위해 '학원물'이라는 교집합을 고민했고, 클래식한 범주 안에서 특별한 맛을 추가한 것이 일본 시장에서 잘 통했다. 물론 우리만의 힘으로 됐다기 보다, 일본 지역 퍼블리셔(요스타)가 열심히 해 준 덕분이기도 하다. 우리가 좋아하고 대중도 좋아할 수 있는 것들을 고민했다. 너무 이상적이면 가짜 같기 때문에 실제 있을 법한 디테일들을 섞어 유저가 체감할 수 있는 실재감 등 여러 가지가 잘 맞아 떨어졌다.
김지훈 대표 : 우리 역시 글로벌 성공에는 운이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내부에 자체 번역 팀을 두고 글로벌 동시 출시 일정을 소화한다. 기계적인 외주 번역 방식으로는 실시간으로 써지는 시나리오 속도와 결을 맞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번역가분들이 고생하시지만 애정을 갖고 열정적으로 해주신다. 내가 직접 퀄리티를 관리할 수 있는 영어와 일어 번역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적인 문화 맥락을 잘 포장해서 전달하려고 노력하는데, 해외 유저들이 이를 신선하고 매력적으로 받아들여 주시는 것 같다.
해외 유저들에게 받는 피드백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김지훈 대표 : 도쿄게임쇼(TGS) 같은 오프라인 행사에서 개장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대기 줄이 마감되는 것을 보며 피부로 인기를 실감했다. 가슴 벅찬 순간이었다. 또한 불치병으로 투병 중이거나 힘든 환경의 해외 팬들로부터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을 때 누군가에게 삶의 의미가 될 수 있구나 하고 느꼈다. 학창 시절에 '페르소나4'를 플레이하며 사람 간의 관계성과 소통의 중요성에 대해 좋은 영향을 받았는데,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선한 영향을 주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
김용하 본부장 : 해외 유저들의 팬레터를 볼 때 ‘블루 아카이브’가 본인의 삶에 위로가 되었고, 또 심지어 영감을 받아 교사라는 직업을 준비하거나 실제 선생님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다소 뻔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선한 영향력을 이어가야 한다는 책임감과 보람을 느낀다. 개인적으로는 2차 창작이나 코미케 부스의 반응을 볼 때 내가 만든 것에 호응을 해주는 분들이 전 세계에 있어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코믹마켓은 감사 인사를 드리고자 이번에도 가볼 생각이다. 라이브 서비스는 계속 이어가야 하므로 비슷한 패턴에 안주하지 않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NDC 2026 온라인 스트리밍)
생성형 AI 기술이 게임 업계의 화두다. AI의 쓰임새와 한계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용하 본부장 : 게임은 기술이기도 하고 예술이기도 하다. 코딩 버그를 잡거나 정보를 검색하고 정형화된 업무 메일의 답신 초안을 작성하는 보조적인 수단으로서 AI는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훌륭한 파트너다. 하지만 디자인이나 스토리 같은 핵심 창작 영역에 AI가 쓰여 창작자 개인의 개성이 희석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AI가 내놓는 모범적인 결과물보다 서투르고 투박하더라도 디렉터 고유의 '인간적인 결함과 편향점'이 묻어나는 기획이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AI로 작성된 전형적인 메일 답변을 보면 내가 쓴 것 같지 않아 결국 직접 다시 쓰게 되더라.
김지훈 대표 : 소비자들이 게임을 즐기는 본질적인 이유는 창작자가 뼈를 깎으며 겪은 고뇌의 흔적, 즉 영혼을 쥐어짜 낸 일종의 '즙'을 느끼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팬들이 우리 게임을 아끼는 이유도 결국 '김지훈의 눈물 맛'이 나기 때문 아닐까 싶다. 세상 모든 창작물이 AI를 통해 순식간에 양산되는 시대가 오더라도, 인간의 고통과 시간이 축적된 게임은 마치 슬로우 푸드처럼 가치가 올라갈 것이다. 언젠가는 '100% 인간 수작업 마크'를 붙여 파는 시대가 올 수도 있을 것 같다. AI가 대세가 된다면 그 흐름 뒤를 따라 나만의 방식으로 써가면 된다. 선제적으로 AI를 사용해 헤쳐 나가는 방향은 내가 해보고 싶은 영역이 아니다.
AI 기술의 발전 속에서 미래 디렉터의 역할과 경쟁력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김용하 본부장 : 디렉터의 본질적인 역할 자체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실무자들이 AI를 통해 기술적인 한계를 넓히고 퀄리티를 높이는 데 도움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결국 주관이 강한 창작자들의 협업과 팀워크를 어떻게 융화시키고 중심을 잡느냐가 핵심이다. 디렉터는 전체 기획의 '중심 맛'을 결정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김지훈 대표 : 실무적인 테크닉이나 전문 지식의 요구치는 기술의 발전으로 낮아질 수 있지만, 사람 간의 관계를 조율하고 AI를 도구로 사용하면서도 창작자만의 고유한 인간미와 맛을 불어넣는 역량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게임 개발을 준비하는 청중과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김용하 본부장 : 오늘 ‘맛'이나 ‘테이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 같다. ‘테이스트’라는 용어는 게임 업계가 아닌 곳에서도 많이 쓰는 표현인데, 취향 또는 안목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 오신 분들은 게임을 좋아하시니 개발을 생각하는 분들일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취향과 안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스스로에게 깊은 질문을 던지며 영점을 조절하고 뾰족하게 깎아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나만의 맛을 잘 낼 수 있는 지점을 찾아가면서, 여러분들의 ‘테이스트’를 고도화 해 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김지훈 대표 : 돌이켜보면 성공의 가장 큰 지분은 결국 '운'이었다. 나보다 능력이 뛰어나고 노력을 많이 하는 분들이 가득한 업계이기에 운의 영향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 올지 모르는 그 귀한 기회를 맞이할 때까지 지쳐 쓰러지지 않는 정신적, 체력적 끈기가 필요하다. 물 위에 떠 있으려면 계속해서 물장구를 쳐야 한다. 물장구를 멈추는 순간 가라앉는다. 끝까지 발을 움직여 버텨내는 체력을 기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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