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받지 못할 조선 서부극 '군도: 민란의 시대'

등록일 2014년08월21일 10시25분 트위터로 보내기


* 아래 리뷰 내용 중에는 '군도: 민란의 시대'의 내용을 상세하게 설명, 해설하는 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품을 아직 안 보신, 스포일러를 피하려는 분들은 먼저 작품을 본 뒤에 기사를 보시기 바랍니다.


여름 블록버스터 시즌을 겨냥한 국내 4대 메이저 배급사의 야심작 중 가장 먼저 개봉한 '군도: 민란의 시대(이하 군도)'는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의 감독 윤종빈의 차기작이자 크고 작은 영화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은 하정우, 그리고 제대 이후 첫 복귀작으로 이 영화를 선택한 강동원을 주연으로 해 큰 기대를 받아왔다. 하지만 군도는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대작이라기보다는 괴작에 가까웠다.

조선시대 철종 13년을 배경으로 탐관오리들에 맞선 의적떼인 군도, 지리산 추설의 활약을 보여줄 블록버스터 사극을 기대하고 간 관객들은 느닷없이 펼쳐지는 서부극에 아연실색했다. 나레이션과 황야로 시작하는 인트로, 말 달리는 사내들, 모래색으로 빛바랜 화면, 인물들의 눈으로 갑자기 들어가는 극단적인 클로즈업, 장고처럼 클라이막스에 뜬금없이 등장하는 기관총, 마지막 석양으로 떠나는 주인공에 이르기까지 군도는 제목에서 기대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요소를 배신하고, 조선을 무대로 한 서부극 만들기에 몰두한다.


잠시 시선을 돌려 군도를 서부극의 클리셰로 즐길 수 있다면 재밌는 지점이 없지 않다. 우선 리 반 클리프 주연의 1967년작인 '황야의 분노'의 주제곡인 'I GiorniDell'ira'를 편곡해 메인 테마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 곡은 작년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를 휩쓴 쿠엔틴 타란티노의 서부극 '장고: 분노의 추적자'에서도 쓰인 바 있어 영화 내내 서부극의 분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없도록 만든다.

아울러 장고:분노의 추적자가 파격적인 흑인 장고를 주인공으로 노예 해방의 역사적 요소를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군도:민란의 시대는 탐관오리와 도적떼가 들끓던 철종 13년을 배경으로 한다. 서부극이 실제 사건들과 엮이며 사극적 요소를 갖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스파게티 웨스턴의 창시자 세르지오 레오네의 '석양의 무법자'는 미국의 남북전쟁과, '석양의 갱들'은 멕시코 혁명과 엮여있다. 또한 서부극은 총을 쓰는 서양을 배경으로만 한 것도 아니다.

스파게티 웨스턴의 효시인 세르지오 레오네의 '황야의 무법자'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사무라이 활극 '요짐보'의 표절작이며, 구로사와 아키라는 존 포드의 서부극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 서부극은 총칼과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영화에 깊은 영향을 준 장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감독들이 영원한 로망을 품은 장르이기도 할 것이다. 헌데 군도가 서부극이 된 것이 왜 문제가 된 것일까?

우선 내용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군도의 각 챕터가 한 편의 영화였어야 될 정도로 너무 많은 캐릭터와 스토리를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TV시리즈 드라마를 요약한 '총집편'에 가까워 보일 정도다. 조선이라면서 웬 사막 한가운데 뚝 떨어져 서있는 성을 보면 이 거친 만듦새조차 완성도가 들쭉날쭉한 만주 웨스턴의 패러디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정상적으로 봤을 때 군도는 TV드라마나 미니시리즈가 더 어울릴 법하다.


하지만 더 나아가 서부극적인 클리셰조차도 즐기지 못하는 것은 적어도 한국에선 서부극이 한창 인기 있었던 시절의 복싱처럼 이미 대중적인 인기의 맥이 끊겨버린 장르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클리셰와 패러디는 원본을 알고 있지 못하다면 큰 재미를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한국에선 장고:분노의 추적자도 그 호평에도 불구하고 전국 관람객 수 26만여 명으로 막을 내렸다. 이런 상황에선 군도는 관객들에게 서부극이 아니라 이승기와 이서진이 등장해 '싸다~!'를 외치던 모 소셜커머스 같은 의도적인 촌티 광고 이상의 느낌을 줄 수가 없다. 한마디로 감독의 로망 충족에 급급해 관객의 눈높이를 잊은 것이 아닐까?


이런 미스 매치는 캐릭터와 메시지에서도 계속 된다. 군도는 제목처럼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를 기대하고 영화를 보러 들어갔다가 강동원이 연기한 조윤을 보고 '따로 있구나!'라고 수긍하면서 나오게 되는 괴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는 조윤뿐 아니라 지리산 추설의 군도들도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애초에 지리산 추설이 되기 위한 조건 중 하나로 무언가 평범한 사람과는 다른 특별함을 갖출 것이기 때문이다. 부제는 민란의 시대이지만 이 영화에 평범한 백성은 낄 구석이 없다.

군도가 담고 있는 메시지 중 가장 큰 문제는 민중이 굉장히 수동적이고 영화의 들러리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제 목숨 살리자고 자기들을 도와주던 지리산 추설의 산채를 불게 만들 일이나 권력에 굴종해 나눠 받은 곡식을 다시 갖다 바치는 장면을 보고 있자면 제목은 민란의 시대이지만 기대하던 민중의 모습은 이 영화에 없다. 냉소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민중의 현실적인 모습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따위 더러운 세상을 뒤엎자'던 영화의 홍보 문구들을 생각하면 배신감마저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지배층을 풍자할 것을 기대했는데 거꾸로 민중의 모습을 조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도치와 조윤의 마지막 대나무숲 전투에서 보인 민중의 모습은 주체로서의 각성이 아닌 부화뇌동에 다름 아니며, 영화의 스토리적으로는 두 주인공의 멋진 피날레를 방해하는 방해꾼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감독의 전작인 '용서받지 못한 자'와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에서 보여주었던 메시지조차 훼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더불어 영화는 강동원이 맡은 조윤의 캐릭터 메이킹에 지나치게 공을 들인 나머지 밸런스가 무너져 중심이 악역인 조윤 쪽으로 확 기울어지게 만들었다. 군도에는 굉장히 많은 캐릭터가 등장하나 태생부터 캐릭터의 형성 과정까지 원인과 결과를 세세하게 설명해준 것은 조윤 하나밖에 없다.


그런 나머지 영화는 기대하던 군도가 민중과 합세해 탐관오리를 벌하는 내용이 아니라, 서얼로 태어나 그 한계를 뛰어넘으려던 조윤이 무지렁이들에게 발목 잡혀 추락하고 마는 비극의 드라마처럼 보이게 되었다.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복수하러 온 도치와 민란을 일으킨 백성들을 앞에 두고 조윤이 일갈하는 “너희들 중 주어진 운명을 바꾸기 위해 목숨을 걸어본 자가 있다면 나서라. 내 그자의 칼은 받겠다”는 화룡점정이라 하겠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스펙을 쌓아도 주류 사회에 편입될 수 없는 수많은 젊은 관객들이 자신을 군도가 아닌 조윤에게 이입할 수밖에 없다.

군도는 감독의 로망, 영화의 캐릭터와 메시지, 그리고 홍보의 엇박자가 만들어낸 괴작이 되어버렸다. 기대를 벗어난 부분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는 분명 있었지만, 차라리 이럴 바에는 '범죄와의 전쟁은 잊어라!'라는 흔한 홍보문구로 조윤의 다크 히어로 전기를 만드는 게 낫지 않았을까?

* 본문의 내용은 게임포커스 리뷰어 Sion님이 기고하신 '군도: 민란의 시대' 리뷰를 가필, 수정한 것으로 게임포커스 편집부의 편집 방침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필자 프로필
닉네임 Sion. 영화, 서브컬쳐 칼럼니스트.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지만 덕후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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