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스타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 19일, 인트라게임즈가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왔다. 일본의 RPG 명가 니폰이치소프트의 PS Vita 플랫폼 신작 '오오에도 블랙스미스' 한국어 버전을 인트라게임즈를 통해 국내 출시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이전까지 게이머들은 물론 게임업계에서도 니폰이치소프트는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재팬아시아와 독점계약을 맺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실제로도 니폰이치 게임은 오랫동안 국내에 SCEK를 통해서만 출시되었고 니폰이치 타이틀의 한국어 버전 출시를 성사시킨 인트라게임즈 마저도 독점계약으로 알고 있다가 니폰이치와 미팅을 갖고 나서야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을 정도였다.
니폰이치소프트는 게임포커스와 창사 20주년 기념 인터뷰를 진행했다. 2012년 말 당시의 니폰이치 대표 프로듀서 5인방
기자는 몇개월 전부터 니폰이치 타이틀이 SCEK가 아닌 다른 퍼블리셔를 통해 출시가 확정될 경우 니폰이치와 SCEK의 관계, '디스가이아4 리턴즈'의 행방 등을 정리하기로 결심하고 있었고 결국 그 때가 왔다.
니폰이치와 SCEJA의 관계, 야구의 '포스팅 제도'와 비슷
니폰이치와 SCEJA의 관계는 요즘 한창 화제인 야구의 포스팅 제도와 비슷하다.
양사는 10년 이상의 우선 협상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SCEJA는 니폰이치 타이틀에 대해 우선 협상권을 갖는다. SCEJA(국내에만 출시할 경우 SCEK)가 일정 시한까지 니폰이치 타이틀 출시 협의를 마무리짓지 못하고 포기하면 다른 현지 퍼블리셔들이 해당 타이틀의 출시 협의에 나설 수 있다.
하지만 2014년 중반까지만 해도 니폰이치가 출시하는 타이틀 대부분을 SCEK가 국내 출시했던 터라 다른 퍼블리셔들은 '니폰이치 타이틀을 우리가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조차 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니폰이치소프트 니이카와 대표. 그는 기자와 만나 일본 중견 개발사들이 지금까지는 해외에서 내고싶다면 주는 수동적 입장에 있었지만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해외시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2014년에 접어들어 국내 퍼블리셔들이 경쟁적으로 라인업 확충에 나서고, 무엇보다 국내 시장에서 잘 나가는 플레이스테이션4와 PS Vita 타이틀을 찾아나서며 'SCEK가 안 내는 니폰이치 타이틀은 어떻게 되는 걸까?'라는 의문이 생겨났다. 그리고 몇몇 퍼블리셔가 니폰이치와 접촉한 끝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인트라게임즈가 실제 니폰이치 타이틀 획득에 성공하게 된 것.
이를 통해 니폰이치의 기존 타이틀 및 향후 발매 타이틀 중 SCEK가 내지 않은 타이틀도 국내 출시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특히 오오에도 블랙스미스의 사례가 보여주듯 국내 퍼블리셔들이 로컬라이즈 버전 제작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아 게이머들에게는 더 좋은 환경이 마련된 셈이다.
디스가이아4 리턴즈는 어디로? 확정에서 유보로
본지에서는 2014년 1월, 디스가이아4 리턴즈 한글 버전 개발이 확정되었다는 보도를 한 바 있다. 해당 시점에서 이 보도는 정확한 정보에 근거한 것이었다.
지난 2013년 SCEK와 니폰이치는 PS Vita 타이틀 디스가이아4 리턴즈의 한국어판 개발, 출시 협의를 끝냈고 SCEK는 2013년 말 국내 외주업체를 통해 디스가이아4 리턴즈 한국어 번역 작업까지 마쳤다.
한글 버전 개발 확정 기사가 나간 시점은 외주업체의 한국어 번역이 SCEK에 넘어간 시점이었다. 당시 관계사 모두의 확인을 거쳐 기사를 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개월이 지나도록 아무 소식이 없어 답답했을 독자가 많을 것이다. 기자 역시 답답했다.
결론부터 언급하자면 게임 번역은 다 되었었지만 니폰이치로 이 번역본이 건네지진 않았다. SCEK의 입장은 "관련 사항은 협의 중인 건으로 정해진 게 없다"는 것이지만 니폰이치가 이제와서 디스가이아4 리턴즈 로컬라이징 버전 개발에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
현재, 일본의 크고 작은 개발사들은 대부분 2015년까지 플레이스테이션3을 주력 플랫폼으로 한 개발 일정을 잡고 있다가 2014년 중반부터 시장의 빠른 플레이스테이션4로의 전환 압박을 받아 개발 일정, 라인업 조정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니폰이치 역시 현재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는 플레이스테이션4 플랫폼으로 나올 '디스가이아5'로 SCEK와의 협의의 초점도 디스가이아5에 맞춰져 있다.
디스가이아5 개발 후, (한국어 버전 출시가 확정된다면)로컬라이즈 버전 개발이 완료된 후에 SCEK가 계속해서 디스가이아4 리턴즈 한국어 버전 개발을 원할 경우 다시 개발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지만 기자는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니폰이치와 SCEK가 '밀월' 수준의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던 2013년과 지금은 사정이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니폰이치와 SCEK의 관계, 밀월에서 비즈니스로
니폰이치와 같은 중견 개발사의 해외시장 비중은 15~20% 정도가 보통이다. 물론 니폰이치의 경우 다른 개발사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해외시장 개척에 나섰고, 특히 2012~2013년 사이 한국 시장에 매우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는 당시 니폰이치의 고위 프로듀서로 재직하고 있었던 한국인 A의 영향이 크다.
A프로듀서는 플레이스테이션2 시절 한국 게이머들에게 사랑받았던 기억('라퓌셀'은 니폰이치 타이틀 중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타이틀이다)을 떠올리며 적극적인 한국어화, 더 나아가 한국어 버전과 일본어 버전의 한일 동시발매까지 추진했다.
2012년 말 기자와 만난 A프로듀서는 한국 시장을 메인 타겟으로 한 라퓌셀 속편을 직접 프로듀싱할 계획을 밝혀 기자를 깜짝 놀래키기도 했다.
실제로 그가 있던 시기 니폰이치의 타이틀, 특히 디스가이아 시리즈는 차례차례 한국어화가 성사됐다. 디스가이아4 리턴즈도 그 연장선상에서 한국어화가 확정됐고 그대로 잘 진행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A프로듀서가 니폰이치를 떠나고 말았다. 그가 떠난 이유는 확인할 수 없지만 그가 떠난 후 SCEK와 니폰이치의 관계가 좀 더 '드라이'해진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좀 더 '평범하게' 발매수량과 개발비, 상업성을 따지게 되었다. 이후, '디스가이아 D2'가 큰 재미를 못 봤고, 니폰이치가 급격하게 라인업을 늘리며 퀄리티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몇몇 타이틀의 실패가 이어졌다.
오오에도 블랙스미스의 인트라게임즈를 통한 한국어화 출시는, 이런 흐름 속에서 흥행에 의구심을 갖게 된 SCEK의 고민과 니폰이치의 '우리 게임을 한국에도 제대로 출시하고 싶다'는 바람, 가장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라인업 확보에 나선 인트라게임즈의 행보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한국 게이머들에게는 뜻밖의 선물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오오에도 블랙스미스'가 성공한다면 조금은 멀어진 니폰이치의 한국에 대한 관심을 다시 한국으로 끌어오고, 조금 소극적이 된 SCEK에 자극을 주고, 인트라게임즈의 일본 개발사들에 대한 입지를 강화시켜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게 한국 게이머들에게 좋은 영향을 가져오리라는 것은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부디 오오에도 블랙스미스가 좋은 성과를 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