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가상현실(VR)에서의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 극복

등록일 2015년12월11일 18시30분 트위터로 보내기


미래 게임 산업의 주역으로 점쳐지는 VR(Virtual Reality: 가상 현실) 게임은 플레이어가 직접 가상 세계 속에 들어가 가상의 대상과 상호 작용하고 또 체험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HMD(Head mounted display;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를 장착해 본래의 시각을 차단하면, 양 쪽 눈에 각각 다른 각도의 화상을 비춰 입체적인 가상의 공간 속에 들어와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VR게임은 단순히 시각적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그 공간에 실제로 있는 것과 같은 현장감을 전달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아직까지 VR기기는 대중화되지 않아 특별한 장소에서나 잠깐 동안 기기를 체험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헤드 트래킹 기술의 발전 정도를 가늠하거나 깊은 공간감을 체험하는 데모가 지배적이었다. 때문에 플레이어와 1대1로, 그것도 감정적인 상호 작용을 요구하는 '사람'이 등장한 소니VR의 데모 '섬머레슨'은 무척 파격적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따스하게만 보이는 햇살이 비치는 방 안에는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사물, 책상, 책꽂이, 의자 등이 놓여있다. 그곳에서 여름날 한 여학생의 과외 지도를 한다는 설정의 '섬머레슨'. 3D그래픽으로 만들어진 인물을 눈 앞에 두고, 아니 그와 같은 공간에 있음을 인지하고 상대와 '교감'하는 것이 목표다.

과연 '섬머레슨'을 체험한 플레이어들은 어색하거나 불편함 없이 눈 앞의 여학생에게 애착을 느낄 수 있을까? 가상 공간에서 만난 가상의 인물에게서 플레이어는 어떤 느낌을 받는 것이 최선일까? 3D가 일상화 되고 VR게이밍 시대를 앞둔 시대에 더 이상 게이머들에게 '언캐니 밸리' 즉 불쾌한 골짜기는 없을까?

이상적인 얼굴과 불쾌한 골짜기, 3D그래픽에 익숙해지다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 이하 불쾌한 골짜기)' 이론은 일본의 로봇 공학자 모리 마사히로가얘기한 것으로, 로봇이 사람과 얼마나 닮았는지에 따라 그것을 접한 사람들의 감정에 호오가 생긴다는 이론이다. 모리 마사히로에 의하면, 로봇이 사람을 닮을수록 호감도가 상승하지만(첫째 봉우리) 너무 사람에 근접하면 오히려 섬뜩한 기분을 느낄 수 있게 되며 완전히 사람과 닮은 꼴이 되어 거의 구별할 수 없을 때 다시 호감도를 되찾는다(둘째 봉우리).

모리 마사히로는 이 같은 이론을 제시하며 사람과 아주 똑같은 로봇을 만들기란 힘들기 때문에 사람과 닮기만 한, 첫째 봉우리에 도달하는 정도의 외형의 로봇을 만들기를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사람들은 불쾌한 골짜기를 벗어나 둘째 봉우리를 향한 노력을 계속해왔다.

3D그래픽으로 사람의 모습을 구현하여 생동감을 전달하는 기술은 게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데, 21세기에 들어서 영상 매체(애니메이션, 영화 등)에서 3D그래픽은 특히 활발하게 쓰였다. 2004년 개봉한 풀 3D그래픽 영화 '폴라 익스프레스'가 과도한 사실주의 추구로 인해 불쾌한 골짜기를 유발했다는 평가를 듣곤 했던 것을 돌이켜보면, 2009년 3D그래픽으로 점철된 '아바타'의 흥행은 놀라울 따름이다. 그나마 이종족(異種族)을 묘사해서 그러한 비판을 피할 수 있던 것이 아닌가 싶지만, 그만큼 대중들이 발전된 3D그래픽으로 만들어진 매체에 익숙해졌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폴리곤 덩어리의 집합체가 허우적거리는 초창기 3D그래픽 게임에서 느꼈던 어색함 역시 불쾌한 골짜기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3D그래픽으로 구현된 인간의 모습 그 자체가 익숙하지 않았던 시절을 벗어났다.

'섬머레슨'이 보여준 VR세계에서 '불쾌한 골짜기'를 피하는 법
다시 '섬머레슨'의 경우를 얘기해보자. '섬머레슨'에 나타난 3D그래픽 인물은 우리가 게임을 포함한 여러 매체에서 익히 볼 수 있는 수준이다. 외관과 움직임의 구현 정도는 무척 뛰어나서 이를 봤을 때 불쾌한 골짜기를 느끼기는 힘들다. 그리고 '섬머레슨'은 그래픽 자체의 구현 정도에서뿐만 아니라 또 다른 영역에서 불쾌한 골짜기를 지워내고 있다. 바로 거리감이다.

기자는 '섬머레슨'을 체험하며 플레이어와 가상 인물과 거리감 조성에 특히 감탄했다. '섬머레슨'에등장하는 가상 인물은 플레이어와 대화하고 플레이어를 향한 행동을 취하는 동시에 플레이어로 하여금 관음적인 시선을 가지게 만든다. 가상의 인물은 플레이어와 눈을 마주치기보다는 떨어진 연필을 줍기 위해 허리를 굽히거나, 높은 곳의 책을 집는 등 기꺼이 관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플레이어는 섬머레슨에서 등장 인물의 과외 선생님이 되어 대화하고 간단한 선택지를 통해 의사 표시를 하는 등 얼핏 보면 그와 능동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전시물과 관람자의 관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익히 볼 수 있는 360도 관람 가능한 전시회 체험과도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VR세계의 공간에서는 플레이어가 '평면 화면'에서 받아들이는 것보다 더 많은 정보가 주어진다. 모리 마사히로의 '불쾌한 골짜기' 이론을 훗날 반박했던 이들은 불쾌한 골짜기는 로봇의 외형(얼굴)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쳤으며, 행동 양식이나 움직임을 통해서도 불쾌한 골짜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반대로 보면 아무리 겉모습이 완벽하다 해도 우리가 다른 곳에서 불쾌한 골짜기를 느낄 여지가 남아있다.


몇몇 전문가들은 VR게임에서 그래픽보다도 청각적인 요소가 공간감이나 현장감을 전달하는 데 더욱 효과적이라고 설명한다. 마찬가지로 불쾌한 골짜기를 느끼는 현상은 가상 세계의 소리, 청각적인 요소를 재현하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

VR 환경에서의 불쾌한 골짜기를 논의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 싶을 정도로 충분한 콘텐츠가 쌓이지 않았다. 불쾌한 골짜기는 당장 산재해있는 VR기기의 문제점들보다 두드러지지 않지만 VR이 추구하는 '자연스러움'을 위해서라면, 기기의 대중화에 앞서서 꼭 점검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섬머레슨을 통해 VR에서의 한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듯 앞으로 가상 현실 환경을 기반으로 더 많은 것들이 실험되고 시도될 것이다. 기술 발전과 경험으로 시각적인 영역에서의 불쾌한 골짜기를 극복할 수 있던 것처럼 새로운 기술 분야가 게이밍 환경을 더욱 발전시켰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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