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디지몬', '꼬마마법사 레미'부터 '꽃보다 남자'까지, 토에이社 베테랑 프로듀서 세키 히로미를 만나다

등록일 2022년11월01일 11시05분 트위터로 보내기

 

'디지몬' 시리즈, '꼬마마법사 레미' 시리즈, 그리고 '꽃보다 남자', '금색의 갓슈벨', '토리코' 등등의 만화 원작 TV 시리즈 애니메이션들. 일본 굴지의 애니메이션 제작사 토에이에서 만든, 국내에도 팬이 많은 이 애니메이션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토에이의 베테랑 여성 프로듀서 세키 히로미(関 弘美)의 작품이라는 점이다.

 

1985년 토에이에 입사해 30여년 동안 수많은 인기 애니메이션을 제작해 온 세키 히로미 프로듀서가 지난주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심사위원 자격으로 부천을 찾았다. 부천에서 바쁜 일정을 소화한 세키 프로듀서를 만나 과거 작업들에 대해, 그리고 현재 하고있는 일에 대해 직접 들을 기회가 생겨 부천으로 달려갔다.

 

'디지몬'과 '꽃보다 남자' 등 그녀가 제작한 작품을 봤던 애청자로서 제작 당시의 이야기나 지금 하고있는 작업에 대해, 그리고 무엇보다 세키 히로미 프로듀서의 대표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꼬마마법사 레미' 시리즈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직접 듣고 싶었다.

 



 

직접 만난 세키 프로듀서는 시원시원하고 재미있게 말을 이어가는 이야기꾼이었다. 프로듀서가 되기 전 각본가로도 활약했고 프로듀서가 된 뒤에도 기획, 각본에 관여를 꽤 했다는 것이 이해가 되는 대목.

 

세키 히로미 프로듀서와 나눈 그녀가 관여한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에 대한 시각 등을 옮겨본다.

 

오래 사랑받는 작품은 '이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에서 나온다

이혁진 기자: 제작에 참여하신 애니메이션 목록을 보면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아 이 작품을 만든 분이구나 라고 알게될 것 같습니다. 먼저 세키 프로듀서님이 참여한 작품 중 대표작을 몇 작품 소개하며 어떤 활동을 해 왔는지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세키 히로미 프로듀서: 토에이에 들어온 것이 85년이었는데, 어시스턴트 프로듀서로 일하며 몇몇 작품에 참여를 했습니다. 그 뒤 프로듀서로는 '마멀레이드 보이', '사랑은 여기', '꽃보다 남자'에 '꼬마마법사 레미', '디지몬' 시리즈를 거의 동시기에 했고 그 다음에 만든 작품은 '내일의 나쟈', '금색의 갓슈벨' 등이 있네요.

 

그렇게 TV 작품을 만들던 시기가 길었고, 그 다음에는 중간 관리직을 맡게 됐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저는 관리직보다는 현장이 적성에 맞는 인간이라고 생각해요. 회사에서도 그 점을 이해해주셔서 현장에서 '쿄소기가' 등 TV 시리즈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영화 작업 중에는 호소다 마모루 감독과 함께 작업한 '디지몬' 극장판 2작품, 그리고 '꼬마마법사 레미' 극장판들과 '디지몬 어드벤쳐 라스트 에볼루션'의 프로듀서를 맡았습니다.

 

현재는 2023년 개봉하는 '디지몬 어드벤쳐 제로투'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중간 관리직 시절에는 TV 기획부 부장을 담당했지만 관리직은 너무 안 맞더라고요.

 

한국에 오셔서 맛있는 음식은 좀 드셨나요
세키 히로미 프로듀서: 많이 먹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간장게장이 끝내줬습니다. 게 자체도 맛있지만 밥을 넣고 고추장에 비벼먹으니 너무 맛있더군요. 간장게장이 있으면 정말 무한정 먹고 마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이어트를 하는 입장에서는 한국은 너무 위험한 나라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웃음)

 

'디지몬', '꼬마마법사 레미' 시리즈와 같이 오랫동안 사랑받은 작품을 많이 만드셨습니다. 오랫동안 사랑받는 작품을 만드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세키 히로미 프로듀서: 역시 만드는 입장에서도 '이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을 강하게 가진 사람이 몇명은 모이지 않으면 사랑받는 작품은 못 만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저 혼자였다면 못 만들었을 것이고 감독 혼자만 그랬어도 못 만들었겠죠. 그런 부분이 애니메이션의 재미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앞으로 나아가는 힘 같은 것이 나오지 않으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된 드라마와 스토리를 만든 다음 거기 맞는 캐릭터를 세운다

저는 특히 '디지몬' 시리즈의 팬이라 초기 기획 당시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디지몬'의 몬스터는 귀엽기도 하지만 조금 무섭기도 한, 일반적인 귀여운 디자인은 아니라는 점이 특이하고 좋은 점 같아요
세키 히로미 프로듀서: '디지몬'을 시작하던 당시는 '포켓몬스터'가 시작되어 2년쯤 지난 시기였습니다. '포켓몬스터'의 인기가 폭발하던 즈음에 '디지몬'을 만들기로 한 거였죠.

 

그때 사실 저는 '포켓몬스터' TV 시리즈는 한편 정도 봤던가 싶은 정도였던지라 스탭들, '포켓몬스터'를 봤다거나, 아이가 '포켓몬스터'를 즐긴다는 스탭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렇구나, 그쪽이 귀여운 몬스터 노선으로 간다면 이쪽은 조금 다른 노선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림도 조금 '아메코미'(미국 코믹스)풍에... 몬스터 디자인은 사실 저도 조금 무섭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는데요. 무섭지만 다양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싶으니 몬스터들에게 제대로 대사를, 사람과 같이 말을 하게 해서 캐릭터성을 갖게 하기로 했습니다.

 



 

'디지몬'의 초창기 게임은 단순한 그래픽의 다마고치 같은 게임이었어요. 몬스터들에게 캐릭터성을 갖게하기 위해 사람의 말을 하는 몬스터로 설정해 커뮤니케이션이 되도록 했습니다. 대화가 되면 무섭다고 느낀 몬스터에게 애착이 생기고 귀엽다고 생각하게 될 거라고 봤습니다. 몬스터가 갖고 있는 원래의 무서운 느낌은 남겨놔야 한다고 생각해서 디자인적으로 무서움을 가진, 멋있고 귀여운 몬스터들이 되었습니다.

 

'디지몬'은 남자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작품이라는 느낌이지만 여자아이들을 위한 히트작도 많이 만드셨습니다. 타깃에 따라 다른 접근법을 사용하시나요 아니면 같은 접근법으로 해오신 느낌인가요
세키 히로미 프로듀서: 접근법에 조금 차이가 있었다고 봐야겠지요. '디지몬'의 경우는 인간이나 몬스터들의 드라마에서 시작해 액션으로 끝나는 패턴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꼬마마법사 레미'는 웃음에서 시작해서 웃는 사이에 드라마가 시작됩니다. 그 드라마에서 우는 아이도 나오고 감동도 있는 것이죠.

 

이렇게 '디지몬'과 '꼬마마법사 레미'는 접근법이 조금 달랐지만 둘 다 제대로 드라마를 만들어 보여준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생각합니다.

 



 

토에이의 모리시타 코조 프로듀서, 감독(현 토에이 회장)을 만났을 때 작품을 만들 때 캐릭터부터 세우고 스토리는 그 다음이라고 하셨던 것이 생각납니다. 세키 프로듀서는 스토리가 먼저라는 접근법으로 이해하면 될까요
세키 히로미 프로듀서: 모리시타 회장님은 '드래곤볼'과 같은 위대한 만화가의 작품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오신 분입니다. 만화가의 재능은 캐릭터를 세우는 센스가 대단하다는 점에 있고 그런 원작을 애니메이션으로 옮긴다면 원작의 매력을 살리기 위해 캐릭터를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만든 오리지널 작품들은 재능있는 분들을 모아서 제작을 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집단으로 만드는 작품들입니다. 집단으로 만들 때에는 만들고 있는 작품에 감정이입이 되어야 하고, 스토리의 재미가 제대로 있도록 어레인지하는 데에 힘을 써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는 원작이 있는 작품인가 오리지널 작품인가로 어프로치가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세계관을 먼저 세우고 테마를 정하고 그 다음메 스토리의 큰 라인을 중심으로 역산해서 필요한 캐릭터를 만드는 형태로 작업을 해 왔습니다.

 

엄마가 마녀라고 믿던 아이가 성장해 '꼬마마법사 레미'를 만들기까지

캐릭터 하니 '꼬마마법사 레미'의 세키 선생님은 세키 프로듀서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캐릭터라고 들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세키 프로듀서님이나 다른 제작진의 경험과 기억을 담은 부분이 더 있나요
세키 히로미 프로듀서: 도레미와 주변에 배치된 친구들은 제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이 모티브입니다. 이름은 한두글자 다르지만요. 초등학교 친구들은 제대로 풀네임을 기억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별명으로만 기억하는 아이도 있죠. 그렇게 별명으로 기억나는 아이일수록 임팩트가 더 강하고요. 그런 친구들의 기억을 되살려서 캐릭터 설정과 섞어서 만들어 나간 형태입니다.

 

거기에 '꼬마마법사 레미'는 제 취미, 취향도 반영된 작품입니다.

 

사실 저는 어린 시절 마녀는 우리가 살고있는 이 세상, 바로 근처에 실제 살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다만 그걸 논리적으로 증명할 방법이 없을 뿐이라 생각했지요.

 

로알드 달(기자 주: '그렘린', '찰리와 초콜릿 공장'으로 유명한 20세기 영국 작가)이라는 유명한 작가의 아동소설 중에 '마녀가 가득해'(한국 제목: 마녀를 잡아라)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거기에 마녀란 인간 세계, 현실 세계의 우리가 살고있는 곳 바로 근처에 살고 있다고 적혀 있더군요. 그 작품을 봤을 때 '아 내가 기다리던 대답이 여기 있구나,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었구나'라는 생각에 굉장히 기뻤습니다.

 



 

특히 저는 어린 시절 엄마를 마녀라고 확신하는 아이였어요. 대부분의 아이 시선에서 엄마는 화나면 엄청 무섭고 내가 작은 거짓말을 해도 쉽게 간파하는 존재이죠. 거기에 주방에서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뭔가 통통통 소리가 나는 도마에 불이 확 올라가고 신기한 요리하는 소리가 이어지면 테이블에 맛있는 음식이 생겨납니다. 요리할 때 기웃거리면 방해되니 저리 가 있으라고 하는 것까지 포함해서 엄마는 뭔가 특별한 마법을 사용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거짓말하다 들켜서 혼난 경험이 맣아 더 그랬던 것 같아요.(웃음)

 

파를 좀 씻어두라고 하셨을 때 하지 않고 씻었다고 거짓말을 해도 제 얼굴을 들여다보고 냄새를 맡고는 '거짓말!'이라고 간파하면 마법 같았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은 아 파 냄새를 맡은 것이겠다고 알 수 있지만 어릴 때는 엄마가 어떻게 알았을까, 왜 들켰을까 신기했죠.

 

화장실을 참고 있으면 '화장실 가고 싶구나, 얼른 가라'고... 생각해 보면 엉덩이를 움찔거리고 하는 것에서 쉽게 간파가 되었겠다 싶지만 어릴 때는 이렇게 다 들키니까 엄마는 마녀라고 생각했던 거죠.

 

이렇게 저는 마녀는 우리 주변에 흔히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라 '꼬마마법사 레미'를 만들 때에는 그런 어릴 적 기억을 전부 담아서 만들었습니다.

 

시나리오 라이터, 당시 다섯 분 정도 시나리오 라이터와 함께 작업을 했는데요. 어릴 때 이런 일이 있었다고 이야기를 하면, 프로듀서인 제가 직접 이야기를 하는 것이니 시나리오 라이터들도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어지고... '그러고 보니 이런 일이 있었는데요' 하고 기억을 되살려 만들게 되더군요.

 

그런 다양한 아이디어를 스탭들에게 뽑아내서 하나의 시나리오로 만드는 일을 해 온 셈입니다.

 

여담이지만 저는 정말 아이 때는 마녀처럼 하늘을 날 수 있게 되기 위해서는 뭘 먹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아이였어요. 우유를 마시면 키가 큰다고 하는데 너무 커지면 나뭇가지에 머리가 부딪혀서 곤란하지 않을까? 키가 너무 크면 하늘을 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유치원부터 초등학생 저학년 시절까지 진지하게 고민했던 기억이 납니다.

 



 

모리시타 프로듀서와 이야기할 때 프로듀서란 고생을 하지만 눈에 안 띄는 일을 하는 입장으로, 일하다 몸이 아프기라도 해야 열심히 했다고 인정받는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프로듀서로 일해온 입장에서 비슷한 느낌이신가요
세키 히로미 프로듀서: 제 인생은 대본이 아니지만 어느 시대를 산 여자 이야기로는 남길 수 있다는 말을 인터뷰 때 한 적도 있습니다만, 제가 어린아이일 때의 기억과 경험을 '디지몬'이나 '꼬마마법사 레미'에 살리고 있으므로 유의미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2작품을 동시에 맡아 죽을 만큼 바쁠 때에도 오리지널 작품을 만드는 재미로 아드레날린이 솟구쳐서 고통을 느낀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도레미 20주년 기념작을 영화로 제작하셨는데, 차기작 계획은 없으신가요
세키 히로미 프로듀서: 물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제가 회사에 남아있는 동안에는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지요. 아직 어떻게 하겠다고 말할 단계는 아니지만요.

 

사실 20주년 기념작 '꼬마마법사 레미: 견습 마법사를 찾아서'도 20주년의 2년 전에 기획이 통과되어 제작을 한 것인데 코로나로 고생을 했지요. 개봉도 늦어진데다 아직 코로나 사태가 한창이라 관객도 극장으로 돌아오지 않은 시기였고. 흥행 성적은 조금 아팠지만 NHK 등 TV나 온라인 서비스 회사들에서도 연락이 많이 오고 작품의 평판도 좋고 해서 다행이었습니다. 마이니치 콩쿨에서 애니메이션 부문 대상을 타기도 했거든요.

 

'꼬마마법사 레미: 견습 마법사를 찾아서'가 2017년에 기획해서 2020년에야 공개된 것이니까 25주년 기념작도 최소한 25주년 안에는 발표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25주년이 되기 전에 완성할 수 있을지, 지나서야 보여드릴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지만요. 코로나 유행이 한번 더 오면 더 연기될 수도 있고 하니까.

 

말씀하신 대로 코로나 사태 때문에 작업에 어려움이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세키 히로미 프로듀서: 코로나 덕에 다양한 것을 되돌아 볼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회사에 가는 것만이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요.

 

사실 저는 재택근무가 되어서 '만세~'하고 기뻐했던 사람인데, 재택근무라도 사실 엄청난 양의 일을 해야 하고, 메일이 오고 회의는 길어지고 해서 '뭐야 집에서 하나 나가서 하나 차이가 없잖아'라고 생각했죠. 근무 형태의 문제가 아니라 사생활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있게 되어야만 진정한 '일하는 방식 개혁'이 이뤄지는 것 아닌가...(웃음)

 

일본 애니메이션의 세계화, 토에이는 수십년전부터 해온 것 계속 하면 돼

최근 반다이남코의 '건담' 사례를 봐도 그렇고 세계화를 이야기하는 일본 제작사가 늘었습니다
세키 히로미 프로듀서: 사실 저희 토에이는 일본에서 가장 먼저 칸 영화제 등에 애니메이션을 가져가서 영화를 팔고, TV시리즈를 해외에 팔아온 회사입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해 온 것이라 제가 들어왔을 때에도 일부러 말을 안 해도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요즘은 세계 동시 방영 같은 시도도 있습니다만, 당시는 디지털이 아니라 일본의 TV에 방영이 먼저 되고 3년 정도 지나면 해외 어딘가에서 방송되는 식이었죠.

 

이렇게 해외에 내가 만든 작품이 방영된다는 것은 아주 자극적인 이야기였습니다. 다양한 나라에 팔기 위해 음악 등을 제대로 만들고 주제가도 해외에는 해외의 가수가 부르게 하고. 주제가 소절 하나만 해도 오케스트라를 쓰고 제대로 준비해 진행해 왔습니다. 저희가 당연하게 해온 것들이 이제야 업계 상식이 된 느낌입니다.

 

모리시타 프로듀서는 일본에서 잘 되면 해외에서도 잘 될 수 있으니 먼저 일본에서 히트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더군요
세키 히로미 프로듀서: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지금은 한국도 중국도 애니메이션을 잘 만드니까 방심할 수 없는 환경이 되었지만 과거에는 일본이 애니메이션 선진국이니 일본에서 히트하면 일단 아시아의 다양한 나라에서 히트하고, 그 중 몇몇은 유럽에서도 인기를 얻었죠. 스페인 등에서 인기를 얻으면 자연스럽게 남아메리카로 유행이 퍼졌고요.

 

'남미로 가면 그 다음은 북미 상륙이다!' 같은 느낌으로, 흥행의 최종 결착점은 북미에 갈 수 있는가 없는가로 정해지는 그런 흥행의 흐름이 있었습니다. '드래곤볼' 뿐만 아니라 '세인트세이야' 등도 있었고. 모리시타 회장님은 흥행의 순서, 어디에서 어디로 흥행이 이어이는지의 흐름을 누구보다 잘 아는 분입니다.

 

토에이에서는 최근 CG 애니메이션도 자주 선보이고 있습니다. CG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볼 계획은 없으신지요
세키 히로미: 최근에는 메타버스가 아주 주목받고 있죠. 그런데 사실 메타버스가 비즈지스로 성공하려면 높은 허들이 있습니다. 그 허들 안에서 원작권을 직접 갖고 있느냐 없느냐가 큰 조건이 된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꼬마마법사 레미'나 '디지몬' 같은 IP는 다 오리지널 작품으로 저희가 저작권을 100% 갖고 있어서 다양한 전개가 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현재 CG 팀이 열심히 검토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토에이의 CG 부서는 그 동안 규모가 매우 커졌는데, CG 부서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제가 '디지몬 어드벤쳐'를 만들 때입니다. 조금이라도 좋으니까 CG를 써 보자, 디지털 몬스터니까 CG로 해야 하지 않겠냐고 제작부 임원에게 부탁을 했는데, 마침 그 임원도 앞으로 CG 부서를 만드는 것이 좋지 않나 생각하고 있던 참이라 협력을 얻어 작지만 CG를 만들어 TV 시리즈에 넣는 것부터 시작됐습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CG 쪽이 2D 애니메이션 쪽 규모를 넘어선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아주 커졌습니다.

 



 

올해 12월 '슬램덩크' 신작 영화가 개봉합니다. 이것도 엄청난데 완전 CG로 제작중인 작품이지만 그냥 보기에는 2D 애니메이션의 질감입니다.

 

CG의 질감은 역시 게임같은 느낌으로 게임에 한없이 가까운 지점을 추구하게 되는데, 저희는 2D 애니메이션의 장점인 질감을 남기면서 제작은 CG로 하는 스타일에 도전하려 합니다. 이것은 도박같은 시도이지만 저는 적어도 '새로운 것'에 도전해 실패하는 것은 좋은 일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사실 조금 실패해도 회사가 망하진 않으니까 말이죠.(웃음)

 

개인 회사라면 한번의 실패로 큰일이 나겠지만 토에이 정도의 규모를 가진 회사라면 제대로 새로운 것에 도전해서 뭘 할 수 있을지 두근거리며 재미있게 일할 수 있어야하는 거죠. 이것도 하지마 저것도 하지말라고 다 못 하게 하면 이런 회사에 다녀도 별 거 없다고 의욕을 잃게 될 겁니다. 하고싶은 것은 가능한 한 조금씩 할 수 있도록 하고싶고, 사실 저도 회사가 커진 덕에 좋은 시대에 토에이에서 프로듀서를 하고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이에요.

 

'슬램덩크'는 저도 기대중이라 일본에 개봉하면 보러 갈 계획입니다
세키 히로미 프로듀서: 꼭 보러 오세요.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시나리오부터 연출까지 이노우에 다케히코 선생(원작자)이 제작 스튜지오에 거의 눌러앉아서 같이 만들고 있는 상태입니다.

 

우리 스탭도 도와서 이노우에 선생이 하고싶은 것을 어떻게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할까 고민해 만들고 있는데, 실력있는 감독 카마타니 하루카, 저희 여성 감독으로 '꼬마마법사 레미: 견습 마법사를 찾아서'를 사토 준이치 감독과 함께 만든 감독입니다. 아주 우수한 분으로 이번에 이노우에 다케히코 선생을 도와 슬램덩크를 만들도록 붙여준 상태입니다.

 

카미타니씨도 그렇지만 회사에 다양한 재능이 계속 나타나서 든든한 느낌이에요.

 

극장용 애니메이션 하니 곧 국내에 개봉하는 '원피스' 신작이 일본에서 대성공을 거뒀더군요
세키 히로미 프로듀서: 저희 제작 텀을 보면 '드래곤볼' 영화가 3년에 하나 정도에 '원피스'도 3년에 하나 정도 나오고 있습니다. '프리큐어'는 1년에 2작품이 나올 때도 있죠. 여기에 '슬램덩크'도 있고 '꼬마마법사 레미'도 있고,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는 토에이는 밥먹듯 영화를 만든다는 이야기까지 듣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토에이는 원래 영화회사라 TV 애니메이션 뿐만 아니라 영화도 정기적으로 꾸준히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리스크는 크지만 이번 '원피스 레드'처럼 일본에서 히트하면 세계로 그 성공이 이어지게 됩니다. 앞서 개봉한 '드래곤볼'의 경우 솔직히 말하자면 골든위크에 개봉하려다 사정 상 가을로 개봉이 연기되었는데, 일본 내 흥행이 아주 잘 되진 않았어요. 일본 국내에서의 흥행 수치는 별로였지만 세계에선 수치적으로도 엄청난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이번 '원피스'는 코로나가 진정된 시기에 나와서 일단 일본에서 큰 성공을 거뒀죠. 회사에서도 다들 '다행이다~'라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마무리할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한국도 그렇지만 일본도 아이들이 줄어드는 추세인데, 이런 상황에서 미래를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세키 히로미 프로듀서: 말씀하신 대로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아이들이 줄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 전체를 보면 여전히 아이들이 많고 전체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건 아니에요. 6월에 프랑스 앙시에 다녀왔는데 프랑스는 이민을 받아서 다양한 인종, 종교 사람들이 늘고 있고 아이들도 늘고 있더군요. 특히 이슬람계 아이들이 늘고 있고 향후 유권자 수에도 이런 부분이 반영이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나라의 정치 지형이나 사회의 모습도 달라지게 되겠죠.

 

프랑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나라에서 아이들은 많아지고 있습니다. 미국도 그렇죠. 전체적으로 보면 유럽도 줄지 않았습니다. 일본과 한국은 경기가 안 좋고 높은 교육비, 양육비 등의 영향으로 줄고 있지만요. 아시아로 눈을 돌리면 인도네시아 같은 나라에서 아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결국 경제적으로 GDP 면에서 인도네시아가 한국과 일본을 추월하는 날이 와도 놀랍지 않을 것입니다.

 

여전히 인구가 느는 나라도 있고 세계를 토털로 생각하면 아이들의 수는 줄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이들이 재미있게 볼 작품은 계속 만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죠. '원피스'도 '드래곤볼'도 '꼬마마법사 레미'도 '디지몬'도 지금 고객들은 어릴 때 보던 것을 20대, 30대 40대가 되어서도 계속 봐 주십니다. 그 말은 지금 아이들이 아이 때 볼 작품을 제대로 만들지 않으면 우리 회사는 20년 뒤 존속이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좋아할 작품에는 계속 힘들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어릴 때 '디지몬'을 보고 성장한 아이들이 10년이 지나면 20대가 되어 사회인이 되고 좋아하는 작품의 신작이 나오면 거기에 돈을 쓰게 됩니다. 그렇게 10주년, 15주년, 20주년을 이어가며 팬들과 함께 해 나가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어 IP를 소중하게 키워가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토에이 영업기획본부 안에 IP 전략실이 생겼는데 가진 IP를 최대한 활용하자는 부서입니다. TV 방송국이 제대로 아이용 작품을 만들지 않으면 IP 전략부가 성립되지 않죠. 작품을 만들고 IP를 관리하는 양쪽에 모두 힘을 써야 하고 해외에서도 기획을 세워서, 해외 회사와도 협력해서 해보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CJ엔터테인먼트와 함께 뭘 할 수 있을까에 대해 한창 협의중이고 유럽에서도 뭔가 함께 만들어보자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최근 가장 흥미로운 지역은 사우디아라비아입니다.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자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저희는 기독교, 불교, 무슬림이 와도 협력해서 함께할 수 있는 회사입니다. 계속해서 좋은 작품을 보여드리려 노력할 것이고, 전해드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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