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보다 특별한 게임속에서의 하루

정의할 수 없는 장르 '튀어나와요 동물의 숲'

등록일 2013년04월03일 17시00분 트위터로 보내기



출퇴근 길마다 닌텐도 3DS를 들고 '튀어나와요 동물의 숲(이하 튀동숲)'을 하고 있노라면, 직장 동료들 혹은 친구들이 게임 화면을 옆에서 지켜보다가 "이게 무슨 게임이야?"하고 묻는 일이 많다. 바닷가에서 낚싯대를 들고 서성이거나, 꽃을 심고 물을 뿌리거나, 나무에 매달린 풍뎅이에 극도로 집중하는 모습이 퍽 신기해 보였나 보다.

튀동숲의 게임 장르는 무엇이라 딱히 정의할 수 없을 만큼 모호하다. 가장 대중적인 RPG, 최근 모바일을 통해 인기를 얻어가고 있는 TCG, 그 외 어드벤처, 액션, 슈팅 등등 그 어떤 분류들을 대입해봐도 튀동숲과 공통점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가장 유사한 것은 심즈 시리즈와 같은 '시뮬레이션'이지만, 시뮬레이션 장르의 특징인 "극도의 현실성"은 동물의 숲 시리즈가 지금까지 추구해온 '휴식처' 또는 ‘상상 속 이상향’과 같은 방향과는 맞지 않는다.

실제로는 이렇게 귀여운 (공주병) 핑크색 꼬마곰이 있을 리 없다. 누군가 땅에 묻어둔 함정 씨앗에 걸린 행인의 모습.

닌텐도가 소개하고 있는 튀동숲의 장르는 '커뮤니케이션'이다. 그리고 동물의 숲 시리즈를 쭉 즐겨온 플레이어들은 '일상' 장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있다. 두 달 전 처음 이 게임을 시작했을 때 필자에게는 양쪽 모두 매우 생소한 표현이었지만, 이제는 위의 두 가지 장르명 모두가 이 게임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라는 점을 이해하게 되었다.

마을에서 함께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동물 주민들의 고민을 들어주며, 현실과 똑같이 시간이 흐르는 가상의 세계 속에서 나만의 특별한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뤄나가는 과정. 그 자체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섬세하게 풀어낸 게임이 바로 튀동숲인 것이다.

촌장 취임! 권력(?)이 주어진 만큼 책임도 더 많아졌다
마을에 처음 이사를 온다 → 빚을 지고 집을 마련한다 → 빚을 갚는다 → 다시 빚을 지고서 집을 증축한다. 지금까지의 동물의 숲 시리즈는 마을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플레이어에게 항상 위와 같은 플레이 목표를 제시했다. 그러나 아무리 재미있어도 11년 넘게 항상 같은 레퍼토리만 반복한다면 지루해지는 법. 그렇기에 시리즈의 최신작인 튀동숲에서는 기존에 없는 새로운 '권한'이 부여되었다. 플레이어가 마을의 조경과 동물 주민들의 생활 패턴을 직접 관리할 수 있는 '촌장'이라는 직책이 바로 그것이다.

이사 온 마을에 얼떨결에 촌장이 된 필자.
그러나 악덕 부동산 업자 너굴에겐 촌장이라고 DC해주는 법은 없다.

사실 '촌장'이라는 부분을 드러내고 나면 플레이어의 위치는 전작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과일을 수확하거나 곤충, 물고기 등을 채집하면서 차곡차곡 모은 돈을 내 집과 마을을 꾸미는데 사용한다는 커다란 틀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플레이어의 위치가 '마을 주민'에 불과했던 전작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심리적 모순점("왜 주민인 나 혼자만 마을을 가꿔야 해?" 혹은 "내가 왜 저 귀찮은 심부름을 들어줘야 하지?" 같은 감정들)이 '촌장'이라는 직함을 통해 매우 강한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내가 바로 촌장이니, 내 마을을 멋지게 가꾸는 것은 당연하다는 동기부여가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튀동숲에서는 동물 주민들도 내 마을을 더욱 멋지게 가꿔가는데 함께 협력하는 존재로 한층 성장했다. 촌장으로 추진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제외한 나머지 공공사업들은 평소 친밀도를 쌓아둔 동물 주민들의 의뢰를 받아야만 시도할 수 있다는 점은 그 일부에 불과하다. 마을 촌장인 플레이어가 선포한 조례에 따라 동물 주민들의 생활패턴 및 상가의 영업시간이 영향을 받기 때문에, 어떤 조례가 현재 나의 상황에 잘 맞는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해졌다.

경치 좋은 해안절벽에 공사지를 선정한 후, 모금을 받아 비석을 세웠다.

모으고 또 모으고… 끝이 보이지 않는 수집 요소
화석 발굴, 곤충 채집, 낚시 등 튀동숲의 다양한 채집 활동들은 그 결과물 자체가 매우 광범위한 '수집 요소'이기도 하다. 계절/시간대/날씨에 따라 채집할 수 있는 대상이 달라지기 때문에 정상적인 플레이로는 단시간 내에 100% 수집하는 것이 불가능 하다. 꾸준하게 시간을 투자하는 것 외에는 '꼼수'가 거의 통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눈 또는 비가 오는 날씨의 바다에서만 매우 희귀하게 낚이는 실러캔스.

내 집을 꾸미는 '가구'들이나 캐릭터가 입는 '의류' 역시 수집의 대상에 포함된다. 가구나 의류들을 수집하는 것은 하루 동안 상점에 진열 및 판매되는 수량이 항상 일정하고, 무작위로 등장하기 때문에 혼자서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예상할 수가 없을 만큼 방대하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플레이어들끼리 게시판을 통해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서로가 갖지 못한 가구를 맞교환하는 문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일은 수집의 과정이 쉬웠다면 절대 일어나지 못했을 일이다.

플레이어의 게임 내 성취도를 눈으로 표현해주는 ‘배지’는 수집 욕구의 정점을 찍고 있다. 이는 일종의 다른 플랫폼 게임들 속 업적 또는 트로피 같은 요소인데, 캐릭터 프로필 카드를 통해 다른 플레이어들에게도 공유되는 정보이기에 일종의 경쟁 심리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배지를 입수하는 조건들을 살펴보면 '물고기를 500회 낚아 올리기' 혹은 '주민에게 100회 편지를 보냈다' 등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요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만약 이 배지가 금색으로 가득 채워진 플레이어를 만난다면, 진정한 튀동숲 마스터라고 쿨하게 인정할 수 있을 것 이다.

광범위하게 추가된 신규 가구들로 인테리어의 폭도 더욱 넓어졌다.
배지라는 명칭이나 이를 주는 NPC 파론티노의 의상을 보니 '보이스카웃'이 떠오른다.

오늘 우리 마을에는 또 어떤 이벤트가 생길까
튀동숲의 일상은 어떤 면에서 보면 매우 단조롭다. 처음 접속하자마자 일단 잡초를 뽑고, 바닥의 X자 표시를 삽으로 파내서 화석과 함정씨앗을 획득한 다음, 마을에 심어둔 꽃들에 물을 준 뒤, 카페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상점 쇼핑을 다닌 후, 동물들과 대화를 나누는 정도면 하루의 일과가 끝이 난다. 이런 생활 패턴이 거의 매일 반복된다고 할 수 있다.

자칫 일상이 무료해지고 지루하다는 기분이 들 때쯤, 마을에 찾아오는 방문자들이 이러한 분위기를 환기시켜준다. 비정기적으로 마을에 찾아오는 특별한 방문자들은 광장에 점집이나 미술품 상점을 차려 장사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플레이어에게 도움을 요청해 올 때도 있다. 이러한 이벤트들은 모두 게임 전반에 걸쳐있는 '수집 요소'와도 연관이 되어있기 때문에 플레이어로 하여금 아무리 사소한 변화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만든다.

행운과 불행을 예언해 주는 신비로운 고양이 마추릴라.
기억상실증+노숙자 갈매기 죠니. 오늘은 남쪽 해변가에서 노숙중이다.

계절별로 발생하는 특별한 이벤트들 역시 자칫 단조로워질 수 있는 일상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어준다. 정월대보름이나 부활절, 할로윈데이 같은 기념일마다 개최되는 축제(미니게임) 외에도 겨울 시즌 동안 눈덩이를 굴려 멋진 눈사람을 만들거나, 가을철 잘라낸 나무 밑에 자라난 버섯을 채집하는 등 '한정된 기간'에만 즐길 수 있는 요소들이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물론 튀동숲은 이러한 이벤트들에 대하여 "반드시 이것에 참여해야만 다음 순서로 넘어간다" 식으로 참여를 강요하진 않는다. 참여할지 말지는 결국 플레이어의 선택이다.

왕년에 눈덩이 좀 굴려봤던 필자의 완벽한 밸런쮸
한글판 튀동숲에서는 정월 대보름날 '부럼'을 얻을 수 있다.

마이디자인과 리폼 – 플레이어가 콘텐츠를 생산한다
게임 콘텐츠가 무한으로 쏟아지는 가장 이상적인 구조는 아마도 '플레이어가 직접 게임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는 환경'일 것이다. 그리고 동물의 숲 시리즈는 전통적으로 이러한 부분을 항상 염두에 둬 왔다.

동물의 숲은 시리즈 초기부터 '마이디자인'이라 불리는 기능을 통해 규격이 정해진 사각형 도화지 위에 도트 그림을 그리듯 패턴 텍스처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지원해왔다. 이렇게 그려낸 패턴은 옷에 입혀 게임에 없는 독특한 의상을 만들거나, 바닥에 깔아 근사한 보도블럭을 꾸미는데 사용되곤 했다. 그리고 튀동숲에서는 플레이어들이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는 범위를 더욱 확장시켰다. '리폼'을 통해 가구의 일부분에 내가 그린 패턴을 입힐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튀동숲은 3DS가 가진 QR코드 기능을 활용하여 플레이어가 그린 패턴을 QR코드화 하여 다른 플레이어에게 공유하거나, 반대로 다른 이들이 올린 QR코드를 찍어 손쉽게 해당 패턴을 가져올 수 있도록 개선했다. 예전처럼 십자수 도안 같은 도트 패턴을 보고 일일히 색상을 골라 찍을 필요가 없어진 셈이다. 덕분에 패턴을 찍을 줄 몰라 해당 기능을 이용하지 않던  플레이어들도 좀 더 적극적으로 이런 패턴들을 활용해 볼 수 있게 되었다.

튀동숲 공식 홈페이지에서 배포중인 마이 디자인 패턴 중 일부.
리폼을 통해 가구의 색상변경 뿐만 아니라 나만의 패턴을 입히는 것도 가능해졌다.

슬로우 라이프, 3DS와 함께 즐기는 유유자적한 삶
닌텐도의 퍼스트 파티 타이틀인 동물의 숲 시리즈는 휴대용 게임기와 유독 궁합이 좋은 게임이다. NDS버전의 '놀러와요 동물의 숲'과 3DS버전의 '튀어나와요 동물의 숲' 모두 출시 이후 해당 플랫폼의 판매량을 확실히 견인해 준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현실 시간과 동일하게 시간이 흘러가는 가상의 마을이라는 컨셉 때문일까? 문득 생각날 때 바로 게임을 시작할 수 있는 환경이 아무래도 동물의 숲과 잘 맞아떨어졌던 것 같다.

튀동숲은 현재 출시된 3DS용 게임들 중 해당 기기가 가진 다양한 커뮤니티 기능들을 가장 완벽히 활용한, 마치 교본과도 같은 타이틀이다. 3DS 게임기를 지닌 사람들끼리 스쳐 지나갈 때마다 자동으로 서로의 게임기에 특정 데이터를 공유하는 '엇갈림 통신' 기능은 서로의 집을 구경하고 진열된 가구를 주문할 수 있는 '해피홈 하우스'에 활용되었고, 3DS기기마다 고유하게 부여된 '친구코드'는 거리에 상관없이 무선 인터넷으로 상대방의 마을에 방문하여 멀티플레이를 즐기기 위한 필수 요소로 쓰이고 있다. 기간 한정으로 특정 가구를 배포하는 과정 역시 모두 3DS가 가진 기능을 활용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베스트 프랜드 기능, 채팅 기능 등 멀티플레이를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 제대로 갖춰져 있다.
무선 인터넷 환경만 갖춰져 있다면 전 세계 튀동숲 유저들의 마을을 자유롭게 구경할 수 있다.

한국에 정식 발매된 3DS로 즐길 수 있는 전용 타이틀은 국가코드 등의 이유로 아직 그 라인업이 다른 게임기들에 비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한글화된 튀동숲 자체만으로도 정식 발매된 3DS는 충분히 소장 가치가 있다고 느껴지지만, 이러한 구매욕구를 상쇄시키는 '라인업의 부재'라는 문제는 게이머의 입장에서 매우 안타깝다. 부디 아직 정식 발매되지 못한 닌텐도의 다른 퍼스트 파티 타이틀들도 한국에서 한글로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3DS에 수시로 초록 불빛이 반짝이길 기원하며 이번 리뷰를 마친다.

* 본문의 내용은 게임포커스 객원리뷰어 엘타냥님이 기고하신 리뷰를 가필, 수정한 것으로 게임포커스 편집부의 편집 방침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필자 프로필
닉네임 엘타냥. 전직 게임 기자. 현재 모 게임개발사에 기획자로 재직중인 인기 게임블로거(
http://blog.naver.com/tepery79). 좋아하는 게임이라면 안 따지고 구입하는 열혈 게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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