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카닉 디자인의 신, 카와모리 쇼지를 만나다

마크로스의 창조자, 그의 메카닉 디자인 철학

등록일 2013년11월22일 11시25분 트위터로 보내기


카와모리 쇼지. '마크로스'로 20대에 감독 데뷔한 이래 여전히 일본 애니메이션을 대표하는 메카닉 디자이너로 군림 중인 천재 크리에이터로 그가 감독을 맡은 '마크로스' 시리즈는 세계적으로 매우 유명한 로봇 애니메이션 중 하나이다.
 
'마크로스' 외에도 '사이버 포뮬러', '천공의 에스카플로네' 등 그가 메카닉 디자인, 설정 등으로 참여한 다른 애니메이션들도 높은 인기를 얻었다. 특히 그의 감독 데뷔작 '마크로스: 사랑 기억하십니까'는 일본은 물론 한국의 크리에이터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기념비적 작품이며, 마크로스 극장판을 보고 애니메이션, 게임업계로 뛰어든 크리에이터들도 한둘이 아니다.(기자 역시 마크로스 극장판 때문에 오타쿠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카와모리 쇼지가 한국을 찾았다. 카와모리 쇼지는 부천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의 초대를 받고 한국을 찾아 메카닉 디자인에 대한 자신의 철학에 대해 강연했다. 그의 강연은 유료 강연이었지만 관람객들이 줄을 이었고, 강연에 앞서 열린 사인회에서는 사인을 받기 위한 인파가 새벽부터 줄을 서 그의 인기를 증명했다.

 

부천에서 열린 카와모리 쇼지 사인회 모습

 

게임포커스는 한국에서의 바쁜 일정을 소화중인 카와모리 쇼지를 만나 메카닉 디자인에 대한 그의 철학, 그리고 마크로스 제작에 얽힌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메카닉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건 '오리지널리티'
게임포커스: 마크로스는 기자가 일본 애니메이션이라는 걸 인지하고 본 첫 작품이다. 뵙게 되어 영광이다.
카와모리 쇼지: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오히려 제가 더 영광이다.

 

게임포커스: 카와모리 감독은 정말 다양한 작품에서 메카닉 디자인을 맡았다. 애니메이션 뿐만 아니라 영화, CF, 그리고 실제 로봇까지 다양한 작업을 하면서 기본이 되는 것,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
카와모리 쇼지: 사실 나는 같은 일을 반복하는 걸 무척 싫어한다. 일을 맡는다면 완전히 새로운 일을 하고 싶다고 늘 생각한다. 마크로스에서 변형 메카를 디자인했으니 변형 메카가 나오는 작품을 다시 하긴 싫었다. 합체 로봇도 한 번 했으면 충분하고, 곧 한국에 개봉하는 '쥬로링 동물탐정'은 변신소녀물이다. 내가 이런 작품을 한다는 것에 놀란 팬도 계시겠지만 신선한, 처음 해 보는 작품이라면 더 적극적으로 신나서 하게 된다.

 

그런데 이게 뭔가 철학에 기반한 것이라고 하기에는 좀 애매하다. 그냥 늘 새로운 걸 하고 싶고, 쉽게 질리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게임포커스: 카와모리 감독의 작품이 매번 새로운 내용, 설정이 되는 것도 그래서인가?
카와모리 쇼지: 그렇다. 늘 새로운 걸 하고 싶다. 물론 했던 작업을 절대 안 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극적으로 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매번 더 어려운 작업에 도전하고 싶다.

 

물론 사정상 새로운 기획을 통과시키는 건 무척 어렵다. 일단 메카가 등장하면 안심하는 것 같지만 메카가 안 나오는 작품도 하고 싶고. 하지만 기획이 통과만 되면 새로운 것에 도전해서 재미있는 걸 만든다는 면에서 어떤 소재건 다를 게 없다.

 

게임포커스: 정말 많은 작품에 관여하셨다. 지금까지 작업한 메카닉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기체를 꼽는다면?
카와모리 쇼지: 하나만 꼽는다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 역시 가장 새로운 걸 만들었다는 실감이 드는 건 'VF1 발키리'다. 발키리를 처음 만들 때에는 기존에 없었던 걸 만든다는 실감이 있었다.

 


 

게임포커스: 그렇다면 가장 어려웠던, 고생한 작품은 무엇인가?
카와모리 쇼지: 역시 아쿠에리온이다. 시간이 엄청 들었다. 인간 형태와 전투기 형태의 중간 단계인 '가워크'를 디자인할 때에도 굉장히 고생했지만 아쿠에리온만큼은 아니었다.

 

게임포커스: 메카닉 디자인에서 이것만은 지켜야 한다는 게 있다면?
카와모리 쇼지: 오리지널리티다. 그것만은 지켜야 한다.

 

내가 유명해진 후에는 세계 각지에서 내 디자인을 흉내낸 것들이 나오게 됐다. 그만큼 유명해졌다는 뜻이고 팬들에겐 좋은 일일 수도 있지만 프로라면 자기 자신의 작업을 해야 한다. 아무리 흉내를 내도 오리지널을 넘어설 수는 없다. 흉내를 내서 그럴듯한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내가 언제 이 작업을 했었지?'라는 생각이 들어 확인해 보니 표절작인 경우도 있었는데, 그런 경우는 좀 안타까웠다.

 

마크로스에 극중극 설정을 도입한 이유
게임포커스: 한국에서 카와모리 감독 하면 역시 마크로스 시리즈가 가장 유명할 것이다. 카와모리 감독의 유일한 시리즈 작품인 '마크로스'가 시리즈별로 설정이 크게 바뀌는 것도 같은 작업을 하고 싶지 않아서인가?
카와모리 쇼지: 그렇다.

 

마크로스 플러스에서 고교시절 이후의 친구인 미키모토 하루히코군에게 캐릭터 디자인을 맡기지 않은 것도 스타일을 바꾸고 싶었고, 가급적 다른 스타일의 작품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마크로스 플러스와 동시에 진행한 마크로스7은 전혀 다른 느낌을 줘야 했기에 캐릭터 디자인부터 다른 느낌이 나게 만들었다.

 


 

게임포커스: '마크로스 프론티어'를 끝내셨는데 다음 마크로스는 언제 볼 수 있는 건가?
카와모리 쇼지: 언제라고 말할 순 없지만 다양한 기획을 진행 중이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기 바란다.

 

게임포커스: 마크로스 시리즈는 작품 내용이 해당 시대에 만들어진 창작물로, 그 창작물을 우리가 보고 있다는 극중극(劇中劇) 설정으로 유명하다. 왜 이런 설정을 만드신 건가?
카와모리 쇼지: 마크로스에 시대성을 부여하고 싶었던 게 첫번째 이유이다. 아무래도 SF적인 감각으로 만든다 해도 시대를 반영하게 마련이고, 시간이 지나면 생활스타일이나 사회상이 달라지게 된다. 설정을 딱 묶어 두고 거기에 묶여서 만들기보다는 작품이 만들어지는 시대에 맞는 걸 만들고 싶다. 앞서 나온 작품에 새로 나올 작품이 묶이는 건 싫다. 그렇게 되면 대담한 작품은 못 만들게 된다.

 

두번째 이유를 들자면, 실제 역사도 그렇기 때문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유명한 인물들, 오다 노부나가나 레오나르도 다빈치, 나폴레옹에 대해서도 다양한 사람에 의해 다양한 작품이 나와 있다. 애니메이션 작품도 그런 스탠스로 만드는 것이 현실에 가깝지 않을까 한다.

 

게임포커스: 그렇다면 실제로는 작중 사망하는 로이 포커 같은 이가 죽지 않고 연인과 행복하게 살았을 수도 있는 건가? 민메이나 히카루, 미사도 평온한 삶을 살았을 수도 있는 건가? 히카루가 민메이와 맺어졌을 수도 있는 건가?
카와모리 쇼지: 그렇다. 제대로 이해한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민메이와 히카루, 로이 포커는 사실은 마크로스의 세계에 실존하지 않았던 가상의 인물일 수도 있다.

 

역사상의 인물도 실제로는 없었다거나 성별이 달랐다는 설이 있듯 불분명한 경우가 있고 작품에서도 그런 게 좋다고 생각한다. 첫 마크로스의 경우도 극장판과 TV시리즈 차이도 같은 사건을 어떻게 다르게 그렸는가의 문제다.

 

다음 마크로스는 아이돌 그룹?
게임포커스: 마크로스 시리즈를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 토미노 감독은 다른 사람이 만든 건담은 인정하지 않으신다던데.
카와모리 쇼지: 건담이나 스타워즈 같은 작품은 다른 사람이 만들어도 괜찮게 나오는 작품이 있다. 하지만 마크로스는 룰을 지키는 게 어려운 작품이다. 가능은 하겠지만 쉽진 않다고 본다.

 


 

게임포커스: 실존 아이돌 그룹인 AKB48을 모델로 한 애니메이션을 만드셔서 놀랐다.
카와모리 쇼지: 처음 그 제안을 받았을 때에는 현실의 그룹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건 어렵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니 1~2년이 지나면 멤버가 바뀌고 인기있던 멤버의 인기가 하락할 수도 있고, 어려움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데뷔부터 유명해지기까지의 이야기를 리얼타임으로 한다면 즐거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부분을 그리는 건 매력적이었다.

 

게임포커스: 다음 마크로스에는 대규모 아이돌 그룹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카와모리 쇼지: 그런 것도 재미있겠다고 생각 중이다. 다만 AKB에서는 메카 전투를 그리지 않아도 되니 많은 수의 멤버를 그려낼 수 있었지만 발키리도 등장 시키려면 AKB처럼 멤버 숫자가 너무 많은 그룹을 등장시키는 건 무리다.

 

'마크로스 프론티어', 가장 최근에 나온 마크로스 시리즈로 한국, 일본에서 큰 인기를 모았다

 

게임 개발, 애니메이션 제작보다 어려워
게임포커스: 카와모리 감독은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발키리가 등장하는 게임의 감독도 맡으신 바 있다. 게임과 애니메이션 중 어떤 작업이 더 힘들었나?
카와모리 쇼지: 게임 만드는 게 어려웠다. 묘사하는 방법이 일단 전혀 다르다. 애니메이션에선 같은 주인공이 발키리의 모드를 바꾸더라도 조준해 적을 공격하도록 묘사하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게임에서는 모드 별로 조준을 맞추게 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 같은 캐릭터, 같은 기체라도 변신하면 조준이 달라진다. 그런 부분의 밸런스를 맞추는 게 어려웠다.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보다 더 고심을 해야했고 트라이애슬론이 정말 힘든 경기라는 걸 이해하게 됐다.(웃음)

 

게임포커스: 게임 제작에 다시 도전할 생각은 없나?
카와모리 쇼지: 게임을 개발하고 싶다는 생각도 물론 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슈팅보다는 시뮬레이터에 가까운 형태다. 그런 감각을 어떻게 게임으로 재현하는가에 흥미가 있어서 아마 내가 다시 게임을 만든다면 시뮬레이터를 만들게 될 텐데 게이머들이 그런 것에 흥미를 갖게 하긴 어려울 것 같다.

 

게임포커스: 발키리가 에이스컴뱃에 나온다거나, 마크로스의 캐릭터, 메카닉이 전혀 관계없는 다른 세계관에 등장하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카와모리 쇼지: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다. 멋진 자동차가 다양한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작품에 나오는 것이 가능하듯 세계관을 무너뜨리지만 않는다면 좋은 일이라고 본다. 흉내낸 표절작이 나오는 것보다는 그게 훨씬 낫다.

 

오리지널 작품 하고 싶지만, 어려운 시대
게임포커스: 노래라는 소재를 자주 사용하시고 마크로스처럼 핵심 소재로 등장하는 경우도 많다.
카와모리 쇼지: 인간이 맨몸으로 아무런 도구 없이도(물론 마이크는 있지만) 사용할 수 있는 표현수단이라는 점에서 굉장히 매력적이다. 노래에는 말의 장벽을 넘어서 의미를 전달하는 힘이 있다.

 

게임포커스: 특별히 좋아하는 음악 장르가 있으신가?
카와모리 쇼지: 특별히 구애되는 장르는 없다. 매력적인 음악이라면 뭐든 좋다. 굳이 따지자면 특이한 음악을 좋아하는 편이라 각 민족의 민족음악 같은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게임포커스: 풀 CG 애니메이션은 생각이 없나?
카와모리 쇼지: 해보고 싶지만 어렵기도 하고, 손으로 그런 것과 디지털 사이에 큰 차이를 못 느끼는 편이다. CG는 그저 표현 방식의 하나일 뿐이다. 결국에는 어떤 게 표현이 쉬운가, 코스트가 적게 드는가의 문제일 뿐이다. 둘 다 좋아하고 어느 쪽이 더 좋다는 건 없다.

 

게임포커스: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실사영화 '입식사열전'에 출연하셨다.
카와모리 쇼지: 사실 그 영화는 영화라기보다 나를 비롯한 출연자들에게 이상한 포즈를 취하게 하고 오시이가 갖고 놀던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역시 연기를 하는 것보다는 찍는 쪽이 좋은 게 사실이다.

 


 

게임포커스: 근래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가 힘들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린다.
카와모리 쇼지: 인터넷의 영향이 역시 크다. TV애니메이션이 그 자체로 성립하기는 어려워졌다. 예산, 시간 면에서 점점 사이클은 빨라지고 환경은 나빠져 왔다. 그런 면에서 극장용 작품은 복제도 어렵고 금방 인터넷에 돌지도 않아서 선호하는 분위기다.

 

이대로 가면 TV 애니메이션을 더 만들 수 없다는 위기감을 다들 느끼고 있다. 어서 다음 모델을 만들어내야 한다.

 

게임포커스: 극장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쏠리지만 극장 애니메이션을 경험한 감독은 그리 많지 않다.
카와모리 쇼지: 사실 이야기를 만들어 구성하고 스토리를 재미있게 보여주는 건 45분을 넘어서며 확 어려워진다. 일본에서 TV 드라마가 45분인 건 오랜 경험과 통계에서 나온 분량이며 45분이 인간의 머리로 구축, 구성해 재미있게 보여주고 어떻게든 수습을 할 수 있는 한계점이다. TV 애니메이션은 더 짧아서 25분이 보편적이다.

 

하나의 작품 분량이 60분을 넘어서면 결말을 재미있게 하는 게 정말 어려워진다. 장편영화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한정되는 건 사실이다. TV 애니메이션과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비슷한 것 같지만 무척 다르다. 이제부터라도 젊은 감독들을 키워나가야 한다.

 

게임포커스: 그런 의미에서 카와모리 감독에게도 영화 관련 일이 몰릴 것 같다.
카와모리 쇼지: 실제 앞으로 영화 관련 일을 본격적으로 하게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오리지널 작품을 선호하지만 오리지널 기획을 통과시키긴 어렵다는 게 아쉽다.

 

TV 애니메이션부터 하고 그걸 극장판으로 만드는 건 비교적 쉽다. 마크로스 프론티어도 그런 형태로 진행을 했다.

 

게임포커스: 한국의 메카닉 디자이너들, 메카닉 디자이너를 지망하는 이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카와모리 쇼지: 메카닉 디자인을 정말 하고 싶다면, 자기가 뭘 요구받고 어떤 룰 안에서 어떤 목적으로 뭘 표현할 것인지 기준을 확실히 세우고 이해하고 표현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그 부분을 확실히 하지 않으면 흉내밖에 안 된다. 오리지널리티를 가져야 한다.

 

물론 천재에겐 이런 조언이 의미가 없겠지만 천재가 아니라면 그런 인식을 가져주기 바란다.

 

게임포커스: 마지막으로 한국 팬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카와모리 쇼지: 한국에는 과거 일본 애니메이션 규제가 존재했고 지금도 어느 정도 규제가 존재하는 걸로 안다. 그런 환경 속에서 내 작품을 봐준 분들에게 감사드리고 정말 기쁘다. 이번 동물탐정 쥬로링에서는 한국 분들과 함께 일을 했는데, 국경을 넘은 일을 하며 크리에이터로서 보람도 느꼈고 즐거웠다.

 

앞으로도 함께 즐거운 일을 하고,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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