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소프트의 마지막 오타쿠, 'MXM' 미디어믹스를 추진하는 김형진 PD

등록일 2015년05월14일 14시55분 트위터로 보내기


19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엔씨소프트는 한국 서브컬쳐계에서 내로라하는 오타쿠들이 모인 '오타쿠 양산박'과 같은 회사였다.

하이텔 애니메이션 동호회에서 맹활약하던 배재현(현 엔씨소프트 부사장), 90년대 중반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애니메이션 동아리 '애니뮤'를 설립한 애니뮤 초대 회장 고동일(현 싱타 소속 PD), 역시 하이텔 애니동에서 활약하며 애니뮤에도 소속되어 있던 뉴타입 한국판 필자 김형진(현 엔씨소프트 PD, 상무) 등이 모여들었고, 그들의 동지, 후배 오타쿠들이 그들에 이끌려 엔씨소프트로 모였다. 그 자신은 오타쿠가 아니었지만 오타쿠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던 송재경(현 엑스엘게임즈 대표) 역시 이런 흐름에 일조했다.

시간이 흐르며 송재경 대표와 고동일 대표는 엔씨를 떠났고, 배재현 부사장은 젊은 시절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하지만 김형진 PD는 여전히 오타쿠가 되고 싶어하던 젊은 시절을 긍정하고, 서브컬쳐 전반을 즐기며 자신의 일에도 투영하고 있다.


기자는 엔씨소프트의 마지막 오타쿠, 자신이 개발을 지휘하고 있는 'MXM'의 미디어믹스를 진지하게 추진하려는 김형진 PD를 만났다. 그의 개인 사무실에서 만난 김 PD는 현역 오타쿠답게 '아이돌마스터 신데렐라 걸즈'의 인기 캐릭터 후타바 안즈의 트레이드마크 '일하면 지는 거다'가 인쇄된 티셔츠(공식 상품)를 입고 있었다.

사실 그를 만나기 전에 걱정을 좀 했다. 게임업계의 '성공한 오타쿠의 대명사'가 되었어야 할 배재현 부사장은 '블레이드앤소울' 출시 직후 기자와 만난적이 있지만 젊은 시절의 덕심을 이미 잃은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김 PD를 만나러 가는 길에 '가정을 이루고 나이를 먹은 김형진 PD도 이미 '덕심'을 잃은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하지만 기자의 그런 걱정은 기우였다. 책장에 직접 조립한 프라모델을 전시해 둔 김 PD는 "눈이 두 개인 모빌슈츠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라는 말로 기자를 안심시켰다.


엔씨소프트가 오랜만에 선보인 신작 MXM은 게임 개발 과정부터 미디어믹스를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김형진 PD와 그가 모은 MXM 개발팀은 진지하게 MXM의 미디어믹스를 고민하고 있으며 이미 양영순 작가와 협업해 웹툰을 제작 중이다. 향후 애니메이션, 피규어 제작 등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김 PD는 "MXM 애니메이션은 진짜 만들 생각이 있고 제대로 추진할 생각"이라며 "회사에서 허가해 줄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개발실에서는 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웹툰은 첫 발걸음에 불과하다는 것이 김형진 PD와 MXM 개발팀의 생각. 김 PD는 "웹툰이 미디어믹스로 하기 좋은, 비교적 쉬운 단계라 웹툰으로 시작을 했다"며 "웹툰을 시작으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서 피규어도 제대로 된 조형으로 뽑아내고 애니메이션까지 제대로 해보려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라면 제목이 오버라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정도로 엔씨소프트의 마지막 오타쿠라니?'라는 생각을 할 독자도 있을 것이다.

기자가 김형진 PD를 엔씨소프트의 마지막 오타쿠라 칭송한 것은 그가 스스로가 오타쿠임을 극구 부인했기 때문이다. 김형진 PD의 '나는 오타쿠가 아니다'라는 실제로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타쿠에 대한 리스펙트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기에 나온 말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뉴타입(일본판)을 모으다 뉴타입 한국판 창간을 위한 자료로 넘겨주고 한국판 뉴타입 초기 필자로 참여했던, 아이가 생기기 전인 2005년까지 일본 코믹마켓에 여름, 겨울 모두 빠짐없이 다녀왔던 김형진 PD는 결혼해 아이를 갖고 엔씨소프트의 임원이 되어 바쁜 나날을 보내는 지금도 오타쿠에 대한 리스펙트와 높은 기준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존경의 의미로 '엔씨소프트의 마지막 오타쿠'라 표현한 것이다.

오타쿠라는 말에는 시대, 사람마다 다양한 의미를 부여한다. 90년대 중후반 일본문화가 정식 수입되진 않았지만 빠르게 전파되고 있던 시기, 서브컬쳐를 즐기던 취미인들에게 오타쿠란 '취미인으로서 도달해야 할 지향점이자 목표'였다. 지향해야 할 목표이지만 아직 도달하지 못했고 도달할 수 없지만 언젠가 도달하고 싶은 그런 경지가 바로 오타쿠였다.

한국에서 '오타쿠는 오타쿠임을 부정해야 한다'는 명제, 스스로가 오타쿠라고 자칭하면 오타쿠가 아니라는 인식이 생겨난 것도 이런 오타쿠에 대한 인식에 기반한 면이 있다.(지금은 말만 남고 의미는 사라졌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김형진 PD와 동지 오타쿠들이 선보일 MXM과 미디어믹스 전개에는 기대를 걸어봐도 좋을 것 같다.

엔씨소프트 임원이라는 입장 상 특정 제작사의 이름을 말하진 못했지만 그가 여전히 애니메이션을 즐겨보고 '킬라킬', '아이돌마스터 신데렐라걸즈', '시로바코' 등 좋은 퀄리티를 보여주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제작사를 체크하고 있다는 점에서 블레이드앤소울 애니메이션과 같은 아쉬운 작품이 나올 가능성은 없을 것이란 믿음이 생긴다.

김형진 PD는 "어린 시절에는 정말 열심히 취미생활을 했다고 생각한다"며 "지금도 좋아하는 마음은 여전하고 8월과 12월이 되면 올해도 코미케에 못 간다는 생각에 슬퍼진다"고 말했다. "피규어와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게 된다면 퀄리티 체크를 확실하게 할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엔씨소프트는 5월 말 중국에서 MXM 테스트를 진행하고 연내 국내 론칭까지 나아갈 계획이다. MXM 게임 본편과 함께 김형진 PD가 주도할 MXM 미디어믹스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 같다.


* 마지막으로 김형진 PD가 추천하는 영화, 애니메이션들을 소개해 본다.
1. '4월은 너의 거짓말'. "최근에 본 작품 중 가장 재미있었고 추천할만한 작품. 주인공들의 부모 세대에 감정이입하며 본 것 같다"

2. '시로바코'. "재미있게 봤다. 4월은 너의 거짓말이 연주자에 집중했던 것처럼 시로바코도 뭔가를 표현하는, 그 표현으로 다른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사람들을 그렸다. 시로바코를 보고 내가 하는 일에 임하는 자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위 두 작품을 보면서 게임을 열심히 만들자는 각오도 새로 다질 수 있었다. 물론 그런 면을 빼고 생각해도 아주 재미있고 좋은 작품들이다"

3. '버드맨'. "아주 감명깊게 봤다. 올해 본 영화 중에서는 가장 재미있게 봤다. 사실 버드맨도 위 두 작품과 비슷한 생각을 담았다고 생각한다. 퇴물 영화배우가 브로드웨이에서 재기하는 이야기, 내가 연극을 한다는 게 어떤 것인가를 고민하는 이야기다. 나의 업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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