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의 마지막 달 12월은 묘하게 사람들을 들뜨게 한다. 이러한 기분의 정점을 찍는 날은 역시 크리스마스다. 한국에서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온 거리가 번쩍이고 시내가 심각한 도로 정체에 시달리지만, 유럽권에서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정반대의 풍경이 펼쳐진다고 한다. 특히 영국의 경우에는 모든 대중교통이 운행을 정지할 정도로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날이라는 의식이 강하다. 물론 가족이 아니더라도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지낸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행복할 것이다.
올 크리스마스에는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모여 음식과 선물을 나누며 단란한 하루를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 설에 가족들이 모여 윷놀이를 하듯이 크리스마스엔 보드게임을 함께 즐긴다면 금상첨화다. 빨간 산타클로스 복장을 하고 보드게임을 들고 현관을 들어선다면, 굳이 굴뚝에서 나타나지 않아도 좋은 산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보드게임 선물을 고르려고 해도 막상 뭘 골라야 할지 고민되는 초보들을 위해 크리스마스 보드게임 파티에 어울리는 게임 10선을 가격대별로 모았다.
가격은 만만하지만 게임은 만만하지 않아! 1~2만 원대 보드게임
아슬아슬 원숭이 구출 작전, '텀블링 몽키' (만 5세 이상, 2~4명, 20~30분)
할리갈리만큼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이 게임도 안 해본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보드게임 카페에 가면 누군가는 반드시 이 게임을 하고 있기 마련이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사랑받아온 것은 물론이고, 최근 10년 동안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선물용으로 불티나게 팔려온 어린이 게임의 절대 강자이기도 하다.
야자나무 가지에 야자 대신 주렁주렁 매달린 원숭이들을 최대한 떨어지지 않게 하면서, 자잘한 나뭇가지들을 뽑아내야 한다. 번갈아가며 주사위를 굴리고, 주사위의 눈 색깔에 따라 나뭇가지를 하나씩 뽑는 것이 게임의 방법. 원숭이들을 남들보다 많이 떨어뜨린 사람이 패배하는 것이 게임규칙이다. 여러 사람의 손길이 나무에 닿으면 나뭇가지가 점점 줄어들어 어느 순간 원숭이들이 우르르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 와중에도 몇 마리가 절묘하게 나뭇가지에 꼬리를 걸어 살아남은 모양 덕분에, 지고서도 웃음이 배어 나온다.
쉽게, 간단하게, 여럿이서, '우노' (만 6세 이상, 2~10명, 30분)
보드게임에 익숙하건 익숙하지 않건, 서로 다른 여러 사람이 모였을 때 우노만큼 꺼내기 쉬운 게임도 없다. 손에 든 카드를 가능한 한 빨리 없애야 한다는 목표, 그리고 앞에서 낸 카드와 색깔이나 숫자가 같은 카드만 낼 수 있다는 쉬운 규칙이 이 게임의 백미이다. 이런 게임 방식은 정형화되어 있는 것이라서, 실제로는 우노를 처음 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어딘가에서 해봤던 게임인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6세 전후에서부터 이해할 수 있고, 실력보다는 카드 운이 게임 진행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런 점이 치열하고 경쟁적인 분위기가 아닌 가볍고 즐거운 분위기를 유지해 주는 장치가 되며, 플레이어의 숙련도나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승리의 기회가 찾아들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추리를 통해 다른 사람의 비밀 코드를 맞혀라, '다빈치 코드' (만 7세 이상, 2~4명, 20분)
제일 유명한 추리 보드게임이 뭐냐고 물으면 조금 고민해볼 법도 하지만, 제일 잘 팔리는 추리 보드게임이 뭐냐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할 수 있다. 다빈치 코드는 현재 한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베스트셀러 추리 게임이다.
0부터 11까지의 숫자가 쓰인 타일을 나눠 가지고 서로가 가진 타일을 맞추는 것이 게임의 방식. 처음에 주어지는 단서는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타일의 색깔과 타일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갈수록 수가 커진다는 것 두 가지 뿐이다. 하지만 차례가 진행될수록 어떤 타일은 공개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제시한 추리를 통해서도 단서를 쌓아나가게 된다. 타일이 놓이는 규칙만큼은 절대적으로 따라야 하기 때문에 단서만 충분히 확보한다면 논리적인 연역추리 과정을 거쳐 다른 사람의 타일을 추리해 낼 수 있다. 다른 사람의 타일이 무엇인지 맞히면 그 타일은 공개되고, 모든 타일이 공개된 플레이어는 게임에서 탈락한다. 게임을 한번 하는 데 드는 시간이 길지 않지만, 게임이 끝나자마자 '한 번 더'를 외치게 되는 마성의 추리 게임. 손기술로 인한 긴장감보다는 가뿐한 머리 회전에 따른 긴장감을 원하는 분에게 추천한다.
조금 더 다양한 선택, 3만 원대 보드게임
코코넛 장전하시고, 쏘세요!, '코코너츠' (만 5세 이상, 2~4명, 20~30분)
한 때 세상을 풍미했던 온라인게임 '포트리스'와 모바일게임의 전설인 '앵그리 버드'를 알고 있다면, 보드게임에는 코코너츠가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두자. 발사대를 이용해 무언가를 날려 표적을 맞히는 방식의 게임은 디지털 게임 초창기부터 존재해왔지만, 포트리스나 앵그리버드 등을 통해 21세기에 더욱 인기를 끌었다. 물론 완구나 보드게임에도 이 아이디어를 구현한 것은 많았다. 하지만 정교한 조준과 힘 조절을 통해 손맛을 제대로 살린 게임은 코코너츠 정도다.
포트리스의 주인공이 전차, 앵그리 버드의 주인공이 새라면, 코코너츠의 주인공은 원숭이들이다. 코코너츠는 원숭이 발사대로 코코넛을 날려서 컵에 넣은 후 그 컵을 획득하는 게임이다. 아주 미세한 힘 조절에 따라 코코넛의 비거리가 달라지기 때문에 잘 조준해서 쏘아야 한다. 코코넛은 땅에서 튀는 재질로 되어 있어 컵에 들어갔다가도 나오는 수가 있으므로 골프에서 퍼팅할 때와 비슷한 감각의 섬세함이 필요하다. 중앙에 놓인 컵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가져간 컵을 노리고 쏘아 가져오는 것도 가능한데, 이 장치 때문에 더 즐겁고 예측불허의 혼전이 된다. 특히 게임 중반쯤 되어 중앙의 컵이 얼마 안 남게 되면, 모두가 선두의 컵을 노리고 집중포화를 퍼붓게 되기 때문에 실력이 좋다고 꼭 유리한 것만도 아닌 점이 매력 포인트다. 귀여운 원숭이 테마에 대한 거부감만 없다면 성인들에게도 권할만한 게임이다.
요즘 잘나간다는 그 게임, '할리갈리 컵스 딜럭스' (만 6세 이상, 2~4명, 15분)
'과일이 다섯 개가 되면 종을 친다'라는 간단한 규칙만으로 보드게임의 전설이 된 할리갈리. 할리갈리의 인기는 여전하지만, 최근 몇 년간 새로운 형태의 게임이 어린이들의 인기를 접수하며 할리갈리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바로 할리갈리의 작가 하임 샤피르가 개발한 '할리갈리 컵스 딜럭스'. 컵 쌓기는 컵이 발명된 이래 매우 자연스럽게 발생한 놀이이며 지금은 별도의 규격화된 컵과 규칙이 있는 스포츠와 유아 교구도 발전했다. e스포츠와 유아 교구를 유심히 관찰한 하임 샤피르는 이들을 절충하는 더없이 쉽고 직관적인 게임, '할리갈리 컵스 딜럭스'를 만들어냈다.
게임의 규칙은 카드를 보고 컵으로 똑같이 만들어서 먼저 종을 치는 것이 전부다. 보통은 별도의 설명이 없어도 다른 사람들의 플레이를 10초 정도 보면 규칙 파악이 끝난다. 카드에는 여러 색의 물체가 다양한 구도로 그려져 있는데 카드를 보고 재빨리 그림의 상하좌우를 파악하는 능력이 필요해 유아 교육용으로도 제법 효용이 있다.
따끈한 토스트를 프라이팬까지, '토스트 통통' (만 8세 이상, 2~4명, 10분)
귀여운 프라이팬, 예쁜 토스트, 컵과 그릇과 숟가락과 포크가 조합된 귀여운 토스터가 동심을 저격한다. 이 토스터는 본래 다 익은 토스트를 접시 위까지 날려주는 최첨단 기능이 탑재될 예정이었으나, 실험 모델에 불과하여 토스트를 사방으로 날려버린다. 바닥에 떨어진 토스트를 주워 먹을 수는 없고 문명인이 나는 토스트를 손으로 잡아챌 수도 없으니 프라이팬으로 받아주자. 이 토스터는 가끔 토스트 대신 썩은 생선을 뱉어내기도 하니 무조건 낚아채지 말고 관찰도 해야 할 것이다.
토스트 통통은 최근 프랑스에서만 100만 카피 판매를 기록한 완구 형식 게임의 신흥 강자다. 어린이가 있는 집이라면 하나씩 들여다 놓아도 좋다. 굳이 파티가 아니더라도 생각날 때마다 프라이팬을 들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박스가 묵직한 4~5만 원대
2016년 개정판 출시된 '우봉고' (만 8세 이상, 2~4명, 30분)
수년 전부터 많은 학교의 방과 후 교실 등을 통해 알려진 '우봉고'는 이미 초, 중학생들과 학부형들에게는 유명한 게임이다. 게임의 콘셉트는 구성물을 보는 순간 바로 이해할 수 있다. 각자 퍼즐 판을 받고 한 명이 주사위를 굴린 다음, 모두가 정해진 타일을 가져와 정해진 구역에 꼭 맞도록 배치하면 된다.
게임판의 양면이 각각 3개, 4개 타일을 이용하기 때문에 난이도 조절이 가능해 나이 차이가 있더라도 공평한 경쟁을 할 수 있다. 단순히 빨리 맞춘다고 해서 무조건 게임에 이기는 것은 아니다. 빨리 맞추면 유리하기는 하지만 맞추는 순서에 따라서 보석을 가져가고 최종 순위는 가져간 보석에 따라 정해지기 때문에 순위가 뒤집힐 가능성도 있다.
최근에 출시된 2016년 개정판은 다소 복잡했던 점수 계산 규칙이 좀 더 단순하게 고쳐져서, 전보다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퍼즐을 맞춘 순서에 따라 정해진 보석을 가져가고, 보석마다 정해진 점수를 받아 점수가 높은 사람이 승리한다.
클래식한 보드게임의 매력, '쿼리도' (만 8세 이상, 2명 또는 4명, 15분)
'쿼리도'는 외관부터 여타 보드게임들과 확연히 다른 인상을 준다. 보통 예쁘고 화려한 일러스트가 선호되기 마련이지만, '쿼리도'는 이런 경향과 반대로 중후한 느낌이다. 고급스러운 목재 판에 역시 목재로 된 말과 벽을 놓으면서 게임을 하고 있으면 영화에 가끔 나오는 천재들이 체스를 두고 있는 모습이 연상될 정도다. 외관부터 이미지가 이렇다 보니 TV 드라마나 두뇌를 사용하는 예능 프로그램에도 여러 번 등장했고, 그냥 테이블에 놔두면 인테리어 소품 역할도 한다.
'쿼리도'는 다른 게임처럼 웃고 즐기는 분위기가 아니라, 깊은 생각을 하고 서로의 두뇌를 겨루는 게임이다. 벽을 놓아 장애물을 만들어 상대의 진로를 방해하면서 내 말을 상대보다 먼저 반대쪽 끝으로 보내는 것이 규칙의 전부. 단순한 규칙에 깊이 있는 전략으로 국내 출시된 추상 전략 게임 중에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다.
새로운 국민 보드게임, '스플렌더' (만 10세 이상, 2~4명, 30분)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빠른 속도로 인기를 얻은 게임은 단연 '스플렌더'다. '스플렌더'의 가장 큰 매력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선 5분 이내에 기본적인 게임 방법을 다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규칙이 간단하다. 그리고 올해 개최된 '스플렌더 그랑프리'에서도 초등학생 참가자들이 다수 본선 3라운드까지 진출하고, 10대 청소년이 준우승을 차지할 만큼 모든 연령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이다.
자기 차례에는 보석 토큰을 가져오거나 보석 토큰을 사용해 카드를 산다. 단순한 선택이지만, 한 번의 선택을 위해 몇 분씩이나 고민하게 되는 순간도 있다. 이렇게 카드를 모으면, 모은 카드만큼 다음에 카드를 살 때 할인을 받을 수 있고, 또 점수도 얻을 수 있다.
게이머 커뮤니티에서 초보자에게 처음 권하는 전략 게임은 '스플렌더'라는 공식이 만들어질 만큼 쉽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이니 아직 본격적으로 게임에 입문하지 않았다면 '스플렌더'로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독일 보드게임의 대명사 '카탄' (만 10세 이상, 3~4명, 75분)
'카탄'은 1995년 출시 이래 전 세계 2천만 개 이상 판매된 최고의 게임이다.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보드게임이라면 우선 '카탄'부터 얘기할 만큼 보드게임의 대명사가 되었다.
'카탄'이 보드게임의 대명사로 취급되는 데에는 단지 유명한 것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다. 좋은 보드게임이 갖춰야 할 요소들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카탄'은 주사위를 굴려 자원을 얻고, 거래를 통해 얻은 자원을 서로 맞바꾸고, 이렇게 모은 자원으로 나라를 발전시키는 게임이다. 우선 주사위를 굴려 자원을 얻는 부분에 운의 요소가 있다. 그리고 거래 부분에서 플레이어 간의 활발한 상호작용이 존재한다. 자원을 모아 마을과 도시를 짓는 것은 자기 나라를 키워나가는 아기자기한 느낌을 선사한다.
지금 보드게임을 취미로 즐기는 사람 중 많은 수가 '카탄'을 계기로 보드게임에 빠져들었고, 주변 사람들에게 '카탄'을 추천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분명 매력 있는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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