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폐막한 부천국재에니메이션페스티벌(BIAF)에서 주목받은 작품 중 하나로 '금의 나라, 물의 나라'라는 독특한 제목의 작품이 있었다.
일본의 오랜 전통의 애니메이션 제작사 매드하우스에서 선보인 작품으로, 쟁쟁한 베테랑 감독들이 아닌 첫 극장용 애니메이션 감독을 맡은 여성 감독 와타나베 코토노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이 눈에 띄어 기자도 감상해 봤는데...
첫 작품이라고 믿기 힘든 퀄리티의 작화와 스토리 완성도를 가진 수작이라 깜짝 놀랐다. '수병위인풍첩'의 카와지리 요시아키 감독 등 매드하우스 간판 노장들이 원화와 연출 보조 등으로 협력했다는 점도 '신기'했다.
11월 중 국내 정식 개봉도 예정되어 있다고 하니, 원작 팬은 물론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꼭 극장에서 확인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BIAF 참석을 위해 와타나베 코토노 감독이 부천을 찾았기에, BIAF 조직위원회의 협조로 그녀를 직접 만나 작품에 대해 자세히 들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와타나베 코토노 감독과 나눈 대화를 옮겨 본다.
인터뷰 진행 및 기사 작성: 이혁진 기자
사진 촬영: 김치형
육아와 병행해 완성해낸 작품, 매드하우스 선배들의 협력으로 가능했어
이혁진 기자: 먼저 한국 관객들을 위해 본인과 '금의 나라, 물의 나라'라는 작품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와타나베 감독: 저는 매드하우스에서 일하는, 평소에는 TV 애니메이션의 감독, 연출 일을 주로 하고있는 애니메이션 연출가입니다. 이번에 극장용 작품을 처음 감독했는데, 매드하우스 선배들의 힘을 빌린 덕에 어떻게든 멋진 한편의 영화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은 원래 일본의 만화로 '이 만화가 대단해!' 라는 시상에서 2017년 여성 부문 대상을 탄 작품입니다. 원작과 원작 작가를 원래 좋아했는데 그 작품을 애니메이션화한다고 할 때 저에게 이야기가 와서 감독을 맡게 됐습니다.
'금의 나라, 물의 나라'라는 작품의 특징은 보고 나면 행복한 기분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분위기, 행복한 기분을 영화를 보고 나서도 느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만화를 보고 영화를 보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반대로 애니메이션을 보고 원작을 찾아보는 분도 있을 테니 '이 작품의 대단함을 알리고 싶다'는 생각도 있어서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TV 시리즈에서는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나 '치하야후루' 등에서 각화 연출로 실력을 보여주셨는데, 극장용 영화 감독을 해 보신 소감은 어떤가요
와타나베 감독: TV 애니메이션이라면 원작 그대로 이야기가 진행되어야 하고 개그신의 템포도 만화 스토리대로 전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극장용 애니메이션이라면 120분 정도로 끊어야 해서 그 120분 안에 보는 사람들의 감정도 제대로 흔들어야 하고 정보 정리, 전달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성립하지 않죠. 그런 부분에 신경써서 만들었습니다.
BIAF 김성일 프로그래머가 육아와 병행해서 작품을 만드셨는데 대단하다고 힘들지 않았나 꼭 물어보라고 하더군요. 가능하시면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와타나베 감독: 애니메이션 업계라면 일하는 코어 타임이 주로 저녁이나 밤이 많은데, 보통 사람들이 일하는 시간에 코어 타임을 설정해서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그렇게 해도 아이가 아직 어리다 보니 아무래도 시간에 제약이 있을 수 밖에 없었는데, 슈퍼바이저 마츠하라씨가 도와주시고 연출 면에서도 제가 TV 시리즈 연출 일을 할 때 감독을 하시던 분들을 넣어주셔서 대선배들에게 도움을 받고 회사 도움도 받아서 이렇게 가정 붕괴 없이 완성해낼 수 있었지 않나 싶습니다.(웃음)
코로나 사태 하에서 제작했다는 점도 있어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와타나베 감독: 작화에 들어가는 가장 바빠질 시기에 코로나 사태가 시작되었죠. 사실 코로나 초기에는 원인불명의 전염병이 돈다는 식이어서 초등학교나 유치원이 다 쉬어서 1~2개월 가량은 작업이 완전히 멈춰 버렸습니다.
큰 혼란이 지나가고 정리된 다음 힘든 시기니 다들 힘내자는 분위기와 일체감 같은 것이 생겨나기도 했고요. 선배들의 프로정신을 보고 저도 저렇게 하고 싶다는 기분이 되어 달려가 잘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원작을 못 보고 봤는데 극장용 애니메이션 데뷔작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훌륭한 작품이라 놀랐습니다. 원작과는 어떤 부분이 다른 것인가요
와타나베 감독: 원작을 그대로 애니메이션으로 옮기면 1권짜리 만화라 해도 두껍고 컷이 세밀하게 나뉜 작품이라 적어도 130분 이상, 150분은 필요할 것 같았습니다. 현실적으로 볼륨은 2시간 정도로 해야 해서 원작을 다 보고 나서 느낀 만족감, 행복감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조정하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아무래도 진지한 전개에서 개그신이 들어가면 몰입하던 관객들이 현실로 돌아오게 되죠. 그렇게 몰입했다 현실로 돌아오는 감각을 고려해 분량을 조절했습니다.
'금의 나라, 물의 나라'는 평범한 두 주인공이 활약하는 이야기라 평범하지 않은 이들이 활약하면 그들이 주인공처럼 되어버리게 되니 주인공 외의 캐릭터가 활약하는 부분을 조금 정리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볼륨을 조절해 나갔습니다.
원작에서 활약하는 좌대신 살라딘이나 레오폴디네 등은 애니메이션에서도 활약을 하지만 이런 미남미녀의 평범하지 않은 캐릭터가 너무 활약하면 전체 이야기에서 중심이 되어야 할 사라와 나얀바야르가 가려지게 됩니다. 두 사람의 사소한 일상의 바람, 우리가 살아가며 느끼는 것들을 주인공들도 느끼는구나~ 하는 부분을 작품의 축으로 두고 싶어서 살라딘이나 레오폴디네가 활약하는 정치적인 부분은 움직이고 활약이 보이기는 하지만 너무 메인에 위치하지는 않도록 조정했습니다.
원작자 협력으로 더 좋은 작품 만들 수 있었어
원작을 원래 좋아했다고 하셨는데,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드셨나요
와타나베 감독: 이와모토 나오 작가는 '텐구의 아이' 부터 좋아했는데, 독특한 구성,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독특해서 와 닿았습니다. '금의 나라, 물의 나라'는 1권짜리 만화인데 그 안에 충실감이 있고 다른 작품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행복감을 주는 만화 작품입니다.
배경이 되는 두 나라를 보면 특정 하나의 나라, 문화가 아닌 현실의 다양한 문화권이 뒤섞인 느낌을 줍니다
와타나베 감독: 원작자 이와모토 나오 선생이 원작을 그릴 때 참고한 자료를 애니메이션 제작시에도 빌려 주셔서 같은 자료를 참고해 만들었습니다. 실제 자료를 바탕으로 애니메이션에서 판타지 세계를 만드는 형태가 된 것이죠.
현실에 있을 법한 것이 많다고 해도 일단 판타지입니다.(웃음)
원작자가 제작에 관여한 것이네요. 다른 협력도 있었나요
와타나베 감독: 이와모토 나오 작가님은 원작에선 나오지 않은 나라 이름도 애니메이션을 위해 직접 정해 주셨고, 그 외에도 다양한 협력을 해 주셨습니다. 원작에서는 두 나라의 이름이 A국, B국이라고 표현됩니다만 영화에서 A, B로 하는 것은 조금 아닌 것 같아 제대로 이름을 생각해 달라고 요청해 작가님이 A, B로 시작하는 두 나라의 이름을 애니메이션을 위해 생각해 주셨습니다.
지금까지 봐 온 작품들에서 일반적으로 '물의 나라'가 부유한 나라이고 '금의 나라'는 빈곤한 나라인 경우가 많았던 것 같은데 반대로 묘사된 것도 독특했습니다
와타나베 감독: 기본적인 모델이 된 것이 16세기 오스만 투르크 제국입니다. 교역이 번성했던, 실크로드를 통한 교역으로 유명한 시기이죠. 교역로를 차단당한 나라는 수자원이 있고 숲은 풍부하지만 빈곤하고 토지도 식량 생산에 활용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설정입니다.
데뷔작임에도 기승전결이 깔끔하고 스토리 전개의 밸런스가 좋아서 놀랐습니다. 어떻게 가능했나요
와타나베 감독: 슈퍼바이저 마츠하라씨와 작전회의를 자주 했는데 거기서 현대극 같은 개그를 넣어버리면 역시 관객들이 현실로 돌아가 버리니까 자제하자는 결론을 냈습니다. 그런 밸런스는 잘 잡으면서 전하고 싶은 메인 스토리는 절대 놓치지 않기로 정해서 진행한 것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작품 해설, 진짜 악인은 나오지 않는 상냥한 작품
다 보고 나니 결국 진짜 악인은 없었다는 느낌입니다. 메인 악역 역할일 우대신 피리파파조차 완전한 악인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와타나베 감독: 원작자 나오 선생님이 '이 작품에 나쁜 사람은 없다'고 하시더군요. 저도 만화를 다 보고 났을 때 '결국 나쁜 사람은 없었구나' 싶었습니다. 다 보고 나서 느낀 행복감은 그런 부분에서 나오는 것도 있을 것 같네요.
나쁜 사람도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니었고 각각 사정이 있었던 것이고요. 그 부분이 이와모토 선생님의 재미라고 해야하나, 그 작품의 재미라고 해야 할까요. 캐릭터가 잘 살아있고 성격도 잘 서 있고, 그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 재미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대신 피리파파도 국왕을 생각하는 마음에 그렇게 행동한 것으로, 극중 모두의 행동은 '누군가를 생각해서 한 행동'이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는 피리파파의 생각과 행동이 정의, 옳은 것일 수도 있죠. 정치적으로는요. 하지만 이야기라면 옳지 않을 수 있는 것이고. 그런 다양성이 재미있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주인공이 미남미녀가 아니라지만 보다 보면 '정말 미남미녀가 아닌가' 싶어지더군요
와타나베 감독: 캐릭터 디자인을 담당한 다카하시씨도 원작의 팬이자 원작자의 팬인데요. 두 사람을 너무 미남미녀로는 보이지 않게 해 달라는 요청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스토리가 시작해서 이야기가 진행되면 감정이입을 하게 되니 사라 공주가 전형적인 애니메이션의 미인 비주얼이 아니더라도 응원하고 싶은 디자인이 되어 있지 않나 합니다.
후반부의 사라 공주와 족장의 음주 대결 장면을 생략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와타나베 감독: 그 부분은 원작도 그렇습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대결 장면을 표현해 볼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사라 공주가 족장과 음주대결을 하기로 정했을 때, 그 순간에 그녀의 마음은 정해진 것이고 결과도 보는 사람 모두가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죠. 실제 겨루는 장면은 보여주지 않더라도 그녀의 결단의 순간에 결과가 보이는 것이라 원작 그대로 묘사하지 않는 것이 템포가 좋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다음에 그녀가 컴플렉스로 나얀바야르를 좋아한다고 깨닫지만 나아가지 못하는 묘사로 연결되므로, 술을 마시는 순간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것도 곤란하다고 생각했고요. 그런 이유로 묘사하지 않게 됐습니다.
사라 공주의 남편으로 오는 강아지는 귀엽던데 견종은 특별히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성장한 모습은 래트리버 같았습니다
와타나베 감독: 래트리버가 맞습니다. 그런데 사실 래트리버는 강아지라도 꽤 크죠. 판타지라 강아지 시절에는 적당한 크기로 표현하자는 정도로 그렇게 묘사한 부분입니다.(웃음)
살라딘은 10년 뒤를 그린 엔딩에서도 모습이 그대로던데 그것도 이유가 있나요
와타나베 감독: 어른의 10년은 아이들의 10년과는 다르니꺼요. 특히 살라딘은 연기자입니다. 연기자라면 10년이 지나도 외모를 유지하는 것이 적당히 말이 되지 않나 싶었습니다.
후반부의 액션신도 흥미롭던데 액션신 연출에 자신이 있으신가요
와타나베 감독: 특별히 자신은 없습니다만 극장 애니메이션이라면 액션신이 어느 정도 들어가지 않으면 볼거리가 부족하지 않나 싶어서 필요한 대목에서는 액션을 제대로 준비해 두는 느낌으로 하고 있습니다.
엔딩 스탭롤을 긴 두루말이 그림을 보여주듯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작중 언급만 된 캐릭터의 가족들이나 미래의 모습도 나와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했더군요
와타나베 감독: 본편에 나온 캐릭터들을 넣고, 에필로드 시점에서 그 녀석은 그 후에 어떻게 됐을까, 그 아이는 행복해졌을까 등이 신경쓰일 거라는 생각에 제대로 행복해진 모습을 보여줘 행복감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영화 작품이니 플러스 알파의 서비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 극장에서 나갈 때 제가 원작 만화를 다 봤을 때의 그 충족감을 관객들에게도 느끼게 해 주자는 생각으로 엔딩 스탭롤을 두루말이 그림으로해서 넣자고 제안해 실현시킨 형태가 됐습니다.
첫 작품이 이 정도라니 앞으로의 행보에도 기대가 됩니다. 감독으로 어떤 작품을 만들어 나가고 싶으신가요
와타나베 감독: TV 애니메이션 작업도 아주 좋아하고 극장 애니메이션 작업도 해보니 즐거웠습니다. 앞으로도 둘 다 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만화 원작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을 텐데, 오리지널 작품이라도 만화 원작 작품이라도 '그 이야기의 소중한 부분을 제대로 표현하는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고 싶습니다.
'금의 나라, 물의 나라'는 곧 국내 개봉이 되는 것으로 압니다. 추천사와 한국 관객들이 주목해줬으면 하는 부분은 어떤 부분인지도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와타나베 감독: 미남미녀가 아닌 주인공들이 사소한 행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입니다.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에나 젊은 시절 애니메이션을 많이 감상할 때에도 그랬습니다만, 현실에서 힘든 일이 많고 어쩔수 없는 일이 있을 때 현실도피처럼 애니메이션을 봤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애니메이션을 보고 나면 마음에 울리는 말이 남고 다시 힘을 얻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그렇게 힘을 얻었던 것처럼 힘을 드릴 수 있는, 매력적인 작품이 되었다 생각하므로 꼭... 어른일수록 봐 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어른들의 동화같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일본에서의 캐치카피는 '최고 순도의 상냥함'이었던 것 같은데, 진짜로 그런 작품이니 꼭 봐주시기 바랍니다.
이 작품은 아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어른들도 봐도 좋다고 생각하므로, 꼭 다양한 분들...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감상 가능한 상냥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시대는 힘든 일이 많은 시대이니 이런 시대라 더 봐주시길 바랍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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